美蘇 대결을 善惡 대결로 본 레이건

"이 세상에는 죄와 악이 있다. 예수님과 성서의 명령에 따라서 우리는 全力을 다해 이에 대항해야 할 의무가 있다"
1983년 3월8일 플로리다州 올랜도에서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 협회의 전국 대회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서 소련을 「악의 제국」(The Evil Empir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단어 때문에 이 연설은 역사적인 연설이 되었습니다. 이 연설이 소련 및 동유럽 공산권을 무너뜨린 한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역사가들도 있습니다.

연설문 작성자 안토니 돌란이 기초한 연설문 초안을 검토한 국무부와 백악관 안전보장회의 등은 이 자극적인 용어를 삭제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레이건 대통령이 직접 다시 써 넣었다는 것입니다. 레이건은 할리우드에서 노조 활동을 할 때의 체험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의 전술을 알았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개별적인 선악 개념이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는 당(인민)의 승리와 패배, 역사에 대한 반동인가 진보인가가 판단 기준일 뿐이란 것을.

레이건은 이 연설에서 레닌의 말을 인용하여 『(공산주의자들은) 도덕성이란 것은 계급의 이익에 종속되는 것이며, 舊사회체제를 말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또 『공산주의자들은 현 세계에서 악의 중심이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는 『악의 제국이 가진 공격적 본능을 애써 무시하고서 美蘇 양국을 똑같이 비판해야 자신이 우쭐해지는 위선에서 벗어나 옳은 것과 그른 것, 선과 악을 직시하자』고 강조했습니다.

레이건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善과 惡의 대결로 규정했습니다. 따라서 美蘇 양쪽이 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비판하면서 자신을 초월자의 자리에 놓으려는 위선자들은 '사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또 '이 세상에는 죄와 악이 있다. 예수님과 성서의 명령에 따라서 우리는 全力을 다해 이에 대항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름으로써 소련을 守勢로 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기자들은 소련 지도자들에게 물을 것입니다.

―소련이 악의 제국이란 말이 사실입니까.

소련 지도자들은 물론 부인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질문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스탈린의 대숙청은 악이 아닙니까.

―1930년대의 재판극(show trial)은 악이 아닙니까.

―인위적인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악이 아닙니까.


소련 지도자들이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부터 그들은 레이건이 판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소련의 실력자들이 『스탈린의 대숙청은 과오였지만 지금 소련은 인권을 존중한다』고 대답한 이후에는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입니다. 美蘇 관계가 惡과 善의 대결로 그려지고 미국은 善이 되고 소련은 惡이 됩니다. 소련이 惡이 아니라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내부 개혁을 해야 하고 惡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련이 붕괴된 몇 년 뒤 미국과 러시아 군축회담에 참석했던 한 러시아 장군이 술을 마신 뒤 갑자기 흥분상태에 빠져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치면서 미국 측 대표들을 향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소련이 왜 망했는지 아십니까?』


『…』


『그 망할 놈의 「악의 제국」 연설 때문이랍니다. 소련은 정말 악의 제국이었단 말입니다!』

소련 사람들도 레이건의 연설을 통해서 소련 체제가 악이란 것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1983년 3월23일 레이건은 소련을 상대로 또 다른 중대발표를 했습니다. 소련의 미사일을 완벽하게 요격할 수 있는 전략방어구상(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발표했습니다. '별들의 전쟁'으로 알려진 이 전략구상은 소련의 미사일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서 소련 지도부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소련은 이 방어망을 뚫을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해야 하는데 엄청난 돈이 들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또 소련 경제가 내부로부터 붕괴되어가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레이건은 중거리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하는 계획도 밀어붙입니다.

1983년 9월1일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요격기에 의해 격추되어 수십명의 미국인을 포함한 269명의 승객이 사망하자 레이건은 소련에 대한 비난을 강화합니다. 그는 대한항공기 격추를 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이 폴란드 장교 1만5000명을 학살한 사건과 비교하여 공격했습니다. 이런 전방위 압박에 견디지 못한 소련은 결국 굽히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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