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30년간 워싱턴에 주재하면서 미국의 여섯 대통령을 상대한 소련 대사 아나톨리 도브리닌은 ‘In Confidence'(‘비밀리에’: Times Books)라는 회고록을 남겼다. 美蘇 냉전 시대에 소련의 입장에서 본 현대사의 內幕 이야기이다. 흥미진진한 秘史가 많고 소련 대사의 눈에 비친 歷代 미국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가 특히 재미 있다.
도브리닌은 소련측이 상대하기 가장 어려웠던 대통령으로 로널드 레이건을 꼽았다. 소련 지도부의 눈에 비친 레이건은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이고 모순덩어리이며 한편으로는 아주 마음씨 좋은 매력적 인물이었다. 소련측이 인식의 혼란을 겪은 것은 레이건의 二重性 때문이었다. 레이건은 폴란드의 자유노조 지원, 군비확충, 아프가니스탄 게릴라 지원, S D I(Strategic Defense Initiative. 이른바 별들의 전쟁 계획. 미사일 방어망 구축계획) 등 對蘇강경정책을 추진하고 공개적으로 소련을 ‘惡의 제국’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한편에선 도브리닌을 만나면 그렇게 다정하게 대해줄 수가 없고, 친필로 소련의 서기장 앞으로 다정한 편지를 써 美蘇 관계 개선을 희망하곤 했다. 도브리닌이 더욱 당혹한 것은 레이건 자신은 이런 모순적 행동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았다는 점이다. 레이건은 자신의 二重的 행동에 대해서 조금도 의문을 가지지 않고 오직 자신의 판단과 행동이 정당하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는 것이다.
레이건에 대해서 그의 적과 동지들은 모두 과소평가했다고 도브리닌은 지적했다. 레이건은 겉보다 속이 깊은 사람이었고, 천성적인 낙관론과 자연스런 제스처, 그리고 인간적 매력으로 해서 잘못된 점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그는 정치적 상상력이 뛰어났고 특히 S D I와 같은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우직하게 밀고나가는 배짱이 있었다. 예컨대 레이건은 1984년에 ‘제로 옵션’이란 파격적인 戰略무기감축안을 제시했다.
당시 소련은 東歐 공산국가 안에 중거리핵탄두미사일을 배치하고 있었다. 레이건은 미국도 서유럽국가에 중거리핵탄두미사일 퍼싱2型을 배치하도록 NATO에 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소련이 東歐의 중거리미사일을 철거하면 미국도 배치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이 대담한 제안에 대해서 소련은 물론 거부했고 미국내 진보파도 反核을 부르짖으면서 미국 미사일의 서구 배치에 반대하고 나섰다.
소련은 西歐의 언론과 여론을 선동하여 퍼싱 미사일 배치 반대운동을 벌이도록 했다. 레이건은 끄떡도 하지 않고 밀고나갔다. 미국은 독일의 콜 수상과 영국의 대처 수상을 설득하여 1984년에 퍼싱 미사일을 서유럽에 배치하였다. 제로 옵션을 반대해오던 소련은 미국측과 교섭해가면서 서서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으로 취임한 1985년 이후 소련은 제로 옵션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선회하다가 1987년엔 모든 중거리핵탄두 미사일을 全세계적으로 폐기하자는 제안을 했고 미국이 이를 받아들였다. 엉뚱한 것 같았던 제안을 레이건이 우직하게 밀고나가니 소련의 생각이 변하고 사상최초로, 전략무기를 제한하는 데 머문 것이 아니라 감축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도브리닌은 소련이 서둘러 중거리 미사일을 東歐에 배치했다가 폐기하는 과정에서 수십억 루블이 낭비되었다고 지적했다.
1984년 레이건은 소련과 격렬하게 대결하면서도 도브리닌 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소련의 反체제 물리학자 사하로프의 부인이 미국에 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소련 지도부에 말을 잘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소련 지도부는 사하로프 박사의 부인이 꾀병을 부리고 있다면서 이 부탁을 거절했으나 1985년에 고르바초프가 등장하자 부인의 출국을 허용했다.
도브리닌은 이 회고록에서 東西 냉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난 것이 레이건의 功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과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련 내부의 변화와 고르바초프의 개혁의지가 결정적이었다면서 냉전의 종식은 美蘇의 공동승리라고 주장했다.
소련측에서 본 레이건의 '우직한 상상력'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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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29, 22: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