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변경지역 독신 남성 60%, '탈북여성과 살아 본 경험이 있다'.
북한 국경지역에는 젊고 예쁜 여자가 드물며 중국 당국의 탈북자 체포, 북송에 따르는 페해가 심각하다.
탈북 여성들은 인신매매단에 팔리거나 중국내에서의 신변안전 때문에 원하던 원치 않던 중국인 남성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탈북 여성들이 중국인 남성과 결혼 해 살다가 주변의 신고나 공안의 불신검문, 호구조사 시 체포, 강제북송 되는 경우 그 사이에 태어 난 아이는 무국적자로서 고아의 신세가 되고 만다.
중국 두만강 류역, 훈춘(琿春)-허룽(和龍)시 충쌘(崇善) 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족 독신 남성 30명을 면담한 결과 탈북여성과 생활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18명으로 60%을 차지했고 현재 함께 생활하고 있는 남성도 7명으로 20.3%였다.
탈북 여성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고 답한 사람은 6명으로 20%를 차지했고 6명 중 아이의 엄마가 체포, 북송 된 경우는 3명으로 50%에 달했다.
이들은 국경지역에 살고 있다는 이점 때문에 돈을 주고 여자를 사는 경우는 드물지만 대신 두만강변에서 낚시를 하거나 주면 농지에서 일하다가 탈북 여성들이 나타나면 동정을 베풀면서 일정기간 함께 생활하다가 팔아 넘기는 경우도 있다.
취재진이 만나 본 싼허(三合)거주 조선족 차 영호(가명, 63세)씨는 “내가 데리고 잔 탈북자 여자만 해도 10대에서 50대까지 2~300명은 잘 된다. 두만강 가에서 살다보니까 여름철이면 매일이다 싶이 탈북한 여자들을 만날 수 있는데 야밤에 건너 온 여자들을 갑자기 어디 보낼데가 없어서 집에서 재운다. 그런 경우 혹시 공안이 들이 닥칠가 바 걱정돼서 어쩔수 없이 한 이불을 덮고 잠자리를 같이 할 수 밖에 없다”면서 마치도 응당한 일이라도 한 듯이 흉물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훈춘(琿春)시 거주 조선족 김성국(가명, 남, 32세)씨에 따르면 그가 살고 있는 부락에서는 두 명의 남성이 3명의 탈북 여성을 데리고 살았는데 친구사이에 서로 예쁜 여자와 잠자리를 함께 하겠다고 다투다가 칼 부림까지 나 두사람 다 공안에 잡히는 것은 물론 3명의 탈북 여성들까지 체포되는 사례가 있었다. 그중 한 여성이 아이를 낳았는데 3살된 아기는 현재는 연길시 소재 고아원에 있다고 한다.
탈북 여성과 중국인 남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엄마가 있다고 해도 국적을 올리기가 하늘의 별따기이지만 엄마가 북송된 경우 아이는 버려지거나 어려서부터 엄마가 없는 아이라는 설움을 겪어야 한다.
9세 손자를 키우고 있는 카이싼툰(開山囤) 거주 조선족 김 씨 할머니(67세)는 “손자의 장래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앞선다” 면서 두만강 변에서 농사를 짓던 아들이 불쌍한 탈북 여성과 결혼 해 손자를 낳았는데 애가 3살 나던 해 연길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며느리가 공안에 잡혀 북송 된 다음 소식이 없고 애 아빠마저 돈을 번다면서 집을 나간 후 약초장사를 하면서 혼자서 손자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90년대 중반 이후의 대량 탈북사태와 2000년대 들어 여성 위주의 탈북이 이어지면서 북한 국경지역에는 젊고 예쁜 여자가 드물다는 주장이 나왔다.
북한 인민보안성 내부 소식통은 2월 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국경지역에는 젊고 고운(예쁜) 여자들이 많지 않다. 청진 이남과 이북의 차이가 심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국경지역에서 살고 있는 총각들이 앞쪽(청진 이남지역) 여자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지난달 결혼한 내 며느리도 단천 여자”라고 덧붙였다.
여자에 비해 남자의 비율이 높은 남한과는 달리 북한은 남자에 비해 여자의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북한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많다는 비유로 ‘명태 다음으로 흔한게 여자’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남한 입국 탈북자가 1만 여명을 헤아리고 그 중 여성 탈북자의 비율이 70%라는 통계가 있다. 2000년대 들어 평안남북도와 황해남북도, 강원도 등 내륙으로 탈북 지역이 확대 됐지만 90년대 말까지는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들의 대 다수가 양강도 혜산시, 함경북도 연사군, 무산군, 회령시, 온성군 등 국경지역에 국한 돼 있었음을 감안할 때 국경지역 여성의 비율이 감소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소식통에 따르면 탈북자의 수가 늘어 나면서 부모가 없는 고아 꽃제비들이 늘어나 지방 당 정권기관, 인민보안서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매 도 소재지에 설립 돼 ‘꽃제비’를 전문 단속, 귀가시키던 ‘9.27’상무가 시군들에도 생겨나고 단속을 강화하는데 2000년대 들어 대폭 수자가 불어난 고아 ‘꽃제비’들의 경우 귀가 시킬 집이 없어서 ‘고아원’에 보내지만 워낙 ‘고아원’의 시설이나 식생활이 보장 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잡아넣어도 틈만 나면 도망가기에 통제불능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탈북으로 생겨난 ‘고아 꽃제비’들의 경우 북한 당국으로서는 그들에 대한 주민등록을 재 조정해야 하지만 탈북한 부모가 이미 한국에 갔거나 3국에서 방황할 경우 신원을 확인 할 방법이 없고 새롭게 국적을 올려 줄 보호자가 없다는 고민이 있다.
중국인과 탈북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나 북한 내 ‘고아 꽃제비’들은 결국 김정일의 악정, 폭정이 생산해 낸 ‘국제고아’ 인 셈이다.
한편 탈북자 지원 단체인 두리하나 선교회 천기원 목사는'탈북여성 들이 중국으로 넘어와 조선족이나 중국사람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호구에도 오르지 못하고 국적이 없는 꽃 제비로 떠돌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밝힌 바 있다.
중국특파원 최광혁 기자 bmw00000@empas.co.kr
[중국현지소식] 고아 꽃제비, 그들은 국제고아
- 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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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05, 16: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