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한군과 단독으로 맞붙을 땐 해볼 만…"

脫北장교의 북한군 이야기:"미국과 붙으면 북한은 끝이라고 생각한다"
최경운기자 codel@chosun.com


북한군 출신 탈북자 이정연씨 그동안 외부 세계에 자세한 실정이 공개되지 않았던 북한군 병영생활을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플래닛미디어 간행)는 제목의 책으로 펴낸 북한군 출신 탈북자 이정연(38)씨.

12일 기자와 만난 이씨는 키가 180㎝가 넘는 체격이었다. 북한군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장교로 복무하다 1999년 귀순한 이씨는 “‘180만 대군’을 가진 북한군도 허술한 측면이 있지만 조국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며 “북한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지금 일본 모 방송국에서 북한 관련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본지 12일자 A8면 참조>

이씨는 특히 책에서 북한군 내에서 발생한 각종 군기사고도 적지 않게 소개했다. 1991년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에 위치한 북한군 2보병사던 6보병연대에서 입대 3년차 상등병이 고참들의 구박에 반감을 품고 막사에 수류탄을 던져, 소대원 16명 중 7명이 즉사하는 등 10명이 숨지는 사고가 났다고 한다. 1995년엔 군단기구대대에서 왕따를 당하던 상등병이 무기고에서 총기를 탈취해 소대원 24명을 사살한 사건도 있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군 관련 사건도 눈길을 끈다. 군사분계선을 넘은 미군 헬기를 격추한 사건들인데, 1994년 동부전선을 넘어온 미군 헬기가 북한군 2사단 6보병연대 본부 상공까지 접근하자 부소대장이 미사일을 발사해 격추시켰다는 것. 당시 북한은 월동기간이어서 많은 인원이 외부에 나가있었는데, 상부의 대응지시가 내려오지 않자 이 부소대장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쏜 게 명중하면서 이 부대장의 인생은 완전히 역전됐다고 이씨는 전했다.

격추된 헬기에 탑승했던 2명의 조종사 중 생존한 1명은 당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방송됐는데, 그는 한국 등에도 영상이 나온 보비 홀 준위이다. 이보다 앞선 1977년에도 동해안을 따라 월경(越境)한 미군헬기 한 대에 당황한 북한군인들 사이에서 평소 훈련된 대로 ‘철갑탄’이라고 외친 상등병 때문에 미군 헬기를 격추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 북한군은 한국군을 어떻게 보나.

“남한 군사력이 막강해졌다는 점은 다들 인정한다. 하지만 남한군과는 단독으로 맞붙을 경우 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한다. 10년을 복무한 북한군인과 1년 반을 복무한 남한군인의 숙련도와 전투력이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북한군의 ‘적군(敵軍)학’ 교재에서 한국 군인은 ‘차렷’ ‘열중쉬어’를 배울 때쯤 제대한다고 비하하고 있다.

하지만 미군에 대해선 다르다. 병사들에겐 ‘미군은 키만 크지 겁쟁이’라고 교육하지만 실제로는 미국과 붙으면 북한은 끝이라고 생각한다. 미군은 북한 군대에 두려운 존재다.”

▲ 금강산댐은 동해안 지역으로의 병력 및 장비 보급로 확보용이라고 주장했는데.

“1996년 금강산댐 터널공사 당시 김정일이 댐 밑으로 뚫은 지하통로를 지프차를 타고 순시한 적이 있는데, 차량이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보급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북한군은 6?25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동해안 지역에 병력과 장비 보급이 제대로 안 돼 고전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보급로 확보를 위해 터널을 뚫었다고 봐야 한다.”

▲ 전방지역에서 북한 공작원이 비무장지대(DMZ)를 넘어 월북하는 것을 봤다고 했는데.

“1990년대 초 한국군 모사단 맞은편에 있는 북한군 2사단 초소 쪽으로 월북자 한 명이 들어왔다. 한국군 군복을 입고 M-16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북한 잠수함으로 동해안으로 침투했던 해군사령부 정찰대대 작전조원이었다. 파도가 높게 일어 잠수함과 접선하는 데 실패, 휴전선을 넘어 복귀했던 것이다. 전방지역에 근무할 때 그런 경험이 몇 차례 더 있었다.”

▲ 간간이 북한 군 내 쿠데타 시도설도 나도는데.

“개인적 경험으로 판단해볼 때 북한 군 내에서 ‘반(反)김정일’을 표방한 조직적인 쿠데타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북한군의 명령 체계는 일선 지휘관이 당위원회와 협의하도록 돼 있는 등 당의 방침이나 명령도 중요하다. 또 중대급에까지 정치지도원이 파견돼 있어 감시망을 피해 쿠데타를 모의하고 병력을 동원한다는 건 평시에는 어렵다고 본다.”

▲ 북한군은 선제공격형 시스템인가. 또 남침가능성은?

“꼭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북한군도 실상은 남한이나 미국의 선제공격을 두려워 한다. 북한도 이제는 전면적이고 선제적인 남침을 통해 남한을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진 않는 것 같다. 실제 전방부대 방어진지를 보면 상당히 방어적 성격을 띠고 있다. 남침가능성은 미군의 존재와 위력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을 것이다. 또 6?25 때와 달리 북한에 병참지원을 해줄 우방도 없어진 점이 선제적 전면도발을 어렵게 할 것이다.”

▲ 일각에서 ‘북한이 제정신이라면 도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국지적 도발이나 남한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전쟁 직전으로의 위기고조 행위는 있겠지만 김정일이나 북한군 수뇌부도 전면적 도발을 감행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미군의 지원 때문에 북한군으로선 함부로 도발하기가 쉽지 않고, 일주일 정도의 단기전이면 몰라도 그 이상 전쟁을 수행할 북한군의 재정적 상태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북한군 장교들은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북의 도발 가능성이 낮다는 것과 한국이 미국과의 연합작전에 빈틈을 보인다고 북한이 오판할 수 있는 상황이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측면에선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치지도자들의 예상과 달리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핵실험까지 감행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가능성이 낮아지긴 했지만 지나치게 북한군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왜 북을 떠나게 됐나.

“딱 부러지게 이것 때문이다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보위부원으로 활동할 때 내 상관과 자유롭게 업무를 보고하고 했는데 나중에 그게 부메랑이 됐다. 당시 과학자들에 대한 당 충성도 문제에 대한 토론 과정에서 ‘앵무새처럼 당에 대한 충성만 내세우는 과학자보다 논문이나 연구성과로 묵묵히 조국에 대한 충성도를 평가하고 그에 걸맞는 물질적 대우를 해주자고 했는데, 이후 ‘자본주의적 발상이다’라는 지적과 함께 나에 대한 미행과 감청이 진행되는 걸 느꼈다. 이후 결정적으로 탈북을 결심할 계기는 있었지만 말하기 곤란한 부분이다.”

▲ 탈북 후 저널리스트와 인터넷에서 네티즌들과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주로 일본 언론사들과 일한다. 이들은 북한에 대한 관심이 한국 언론보다 어떤 부분에선 더 높다. 물론 이 같은 관심이 일본 우경화에 활용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 아쉽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가 운영하는 ‘유용원의 군사세계’에서 네티즌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힘이 아닌가 느꼈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게 힘 아닌가.”

▲ 북한, 특히 북한군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어느 특정한 관점에서 북한을 이야기한다거나 북한을 무조건 부정하는 시각에는 반대한다. 또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시각으로 북한이나 북한군을 들여다보는 것도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북한 체제가 싫어서 떠났지만 북한을 여전히 조국으로 생각하고 충성하는 북한 군인들이 많다. 나는 거대한 북한군의 정책이나 비밀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북한군 내 병영생활이나 문화에 대해 여러 독자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이해를 높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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