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버지의 깃발'을 보고

유황도 高地에 성조기를 꽂은 여섯 병사들의 운명. 의식과잉이고 복잡한 전개이지만 진지한 영화였다.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아버지의 깃발'을 대한극장에서 보았다. 약130분의 상영시간이다. 이 영화는 'Flags of Our Fathers'라는 넌 픽션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나는 2001년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서 이 책을 사서 읽었는데 역시 영화가 책보다는 감동이 덜했다.

이 책의 필자 제임스 브래들리의 아버지 존 브래들리는 1945년 2월23일 일본섬 유황도(이오지마)의 수리바치 高地에 성조기를 세운 해군 위생병이었다. 성조기를 꽂는 장면은 AP 사진기자 로젠탈에 의해서 촬영되었다. 브래들리를 포함한 여섯 명의 병사가 성조기를 일으켜세우는 사진은 조각품 같은 인상을 준다. 이 사진은 두번째 성조기 게양 장면을 찍은 것이다. 첫번째 성조기 게양이 의미가 있었다. 격전 끝에 미군이 중요한 고지를 점령하여 성조기를 올리니 미군의 사기가 충천했다. 바다에서 이를 바라보던 미 해군은 뱃고동을 울리면서 환호했다. 첫번째 성조기를 올릴 때 사진반원이 이를 촬영했으나 이 사진은 알려지지도 않았다.

부대장이 맨 처음에 올라간 성조기를 기념물로 보존하려고 이를 내리고 다른 성조기를 올리도록 했는데 이때 마침 현장에 도착한 것이 로젠탈 기자였다. 그는 엉겁결에 셔트를 눌렀다. 필름채로 본국으로 보냈기 때문에 자신이 찍은 사진이 어떤 모습이 될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이 이 필름을 인화해보니 걸작이었다. 이 사진은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미국 신문의 1면을 장식하면서 유명해졌다.

이 사진에 찍힌 여섯 명의 병사는 영웅이 되었다. 플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들을 귀환시켜 전쟁國債 모집 홍보요원으로 쓰라는 지시를 한다. 여섯 명의 행방을 알아보니 세 명은 그 뒤 계속된 전투에서 戰死했음이 밝혀졌다.

유황도 전투는 세계전쟁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힌다. 10평방킬로미터 정도인 작은 섬에서 일본군이 약2만2000명, 미군이 약6만 명 엉겨붙어 30여일 동안 싸웠다. 일본군은 거의 전원이 죽었다. 미군은 약8000명이 전사했다. 일본군은 동굴과 땅굴을 파고들어가 싸웠다. 전함, 탱크, 전투기 등으로 중무장한 미군은 地上을, 기관총과 대포, 소총이 전부인 일본군은 地下를 장악했다. 일본군은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미군에 대해서 최대한의 피해를 주고 자살해버리는 작전을 폈기 때문에 쌍방의 피해가 컸다. 일본군의 사전에는 항복이 없었다.

'아버지의 깃발'은 전장에서 벗어나 후방으로 불려가 國債모집 홍보요원으로 일하게 된 세 사람의 사병들이 겪는 변화를 다루었다. 단순히 성조기를 꽂았고, 그 장면이 사진에 잡힌 것뿐인데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이들은 영웅으로 조작된다. 성조기를 꽂기 위하여 고지로 올라갈 때 일본군의 저항은 全無했음에도 언론은 이들이 彈雨를 뚫고 고지를 점령한 영웅이라고 소개한다.

이들은 야구장, 파티장, 증권거래소 등을 돌아다니면서 인기배우와 같은 대접을 받는다. 세 영웅의 반응이 다르다. 인디언 출신 병사는 영웅대접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곤 고민하면서 술을 퍼마시다가 인생이 망가진다. 다른 젊은이는 애인까지 끌어들여 인기를 즐긴다. 저자의 아버지 브래들리는 조작된 인기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지킨다.

著者는 생전에 아버지로부터 영웅담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기자들의 인터뷰를 거절하기 위하여 '전화가 오면 낚시하러 갔다고 이야기하라'고 아들에게 시킨 기억뿐이다. 단 한번 아버지는 이런 말을 했다.
'유황도의 진정한 영웅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죽은 뒤 유품을 정리하다가 상자를 발견한다. 그 속에 성조기 게양사진, 편지 등이 들어 있었고, 이것이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깃발'을 쓰게 만든 계기였다고 한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두 번 유황도를 다룬 미국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존 웨인이 주인공으로 나온 '유황도의 모래', 토니 커티스가 인디언 병사로 나온 '이오지마의 영웅'이 그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세번째 유황도 영화인데 전개가 복잡하고 의식과잉의 느낌도 들었지만 진지한 영화임에는 틀림 없다. 미국에서 워낙 평이 좋았기 때문에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작년말에 개봉된 또 다른 유황도 영화가 있다.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톰 클루즈와 함께 나왔던 일본의 세계적 배우 켄 와다나베가 주연한 '유황도로부터 온 편지'이다. 이 영화는 유황도 방어사령관의 입장에서 본 전투이야기이다. 아마도 재미는 이 영화가 나을 것이다.

전쟁을 미화하는 것은 전쟁을 해보지 않은 민간인이고 전쟁에서 희생되는 것은 군인이기 때문에 군인이 가장 전쟁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남긴 이가 맥아더이다. 군인보다는 독재자가 전쟁을 더 많이 일으켰다. 김정일도 군대에 간 적이 없고 전투를 해본 적도 없으니 전쟁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자들에게 전장의 진실을 알리는 데 좋을 것 같다. 김정일이 영화狂이라니 이 영화를 이미 보았을지도 모른다.

전쟁은 젊은이들의 무덤이다. 전투에 참여하는 이들은 거의가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아이들'이다. 전쟁을 결정하고 군인들을 이용하는 이들은 어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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