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中탈북여성들은 극심한 생활난에 시달리거나, 꽃제비로 유랑걸식을 하다 팔려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굶어가는 자식들과 병든 부모를 살리려 몸을 판 어머니와 딸자식도 있다.
인신매매꾼들은 북한 현지에서 적당한 여성을 선택해 강을 건너보내는 『물건수집責』, 중국 땅에서 여성들의 목적지를 정하는 『물건선별責』, 구매자와 거래를 성사시키는 『연계인』, 구매자에게 데려가는 『운송 담당』으로 구분된다.
물건수집責은 「중국서 돈 벌게 해 주겠다」 또는 「배불리 먹게 해 주겠다」고 북한여성들을 속여 渡江시킨 후 중국 내 모처에 머물게 하는데, 이곳이 인신매매의 첫 함정인 『집합소』다. 탈북여성들은 『집합소』를 거쳐 많게는 2만 위안(240만원)에서 적게는 1천 위안(12만원)에 팔려나간다.
인신매매꾼들은 여성들을 『돼지』라는 은어로 부른다. 내몽골 돼지 한 마리 가격이 1천 6백 위안(약 17만원). 인신매매되는 여성들에 대한 취급도 돼지와 다를 바 없다는 데서 나오는 표현이다.
<강제결혼 후 「일꾼」이나 「노리개」로>
중국 농촌에 강제로 시집온(?) 북한 여성들은 말이 「신부」지 「일꾼」이나 「노리개」에 가깝다.
이들을 돈으로 산 남편들은 알콜중독자 등 심신(心身)에 장애나 문제가 있는 이들이 많다. 더 젊은 탈북여성을 산 뒤, 현재의 탈북여성은 팔아버리는 일도 있다. 王씨에게 팔렸다 낙태당한 뒤, 李씨에게 다시 팔리는 격이다. 이렇게 만난 사이에 부부의 정이란 찾아볼 수 없다.
RFA와 인터뷰한 탈북여성들은 말한다.
『중국 여자들 데리고 살자면 돈이랑 많이 든단 말입니다. 그런데 북조선 여자 데리고 살면 돈 조금 들이고, 그냥 우리를 노예처럼 부려먹으니까...여름 내내 그냥 일 시키고, 자긴 얼마 일도 안 하고, 나 혼자 일 다 하고 그럽니다(흑룡강성 허OO)』
『능력도 없고, 몸도 많이 아프고 그런 사람하구 살구 있습니다. 저번에 때릴 때 보니까 그런 말 하더라고요. 「야 이 간나, 내 너를 얼마에 주고 사왔는지 아는가」고. 예. 그러면서 구박합디다.(혜림시 강OO)』
『신부? 신부란 말이 어디 있어요? 그냘 술 먹고 때리는 것이 일이에요. 제일 처음에 만난 남편은 입이 다 삐뚤어지고...거기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지금 사는 남자는 몸은 성성한데 쌔씨개(지나친 사람)입니다.(흑룡강성 정OO)』
<모두가 야위고 겁에 질린 여성들>
在中 탈북여성들이 중국남편과 살며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남편의 정신적, 물리적 폭력이다. 탈북여성들은 외부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채 구타와 멸시에 시달린다. 흑룡강성에 사는 김OO씨는 이렇게 말한다.
『짐승보다 더 못하게 볼 때가 있습니다. 짐승은 그래도 길러서 판다고, 돈이 된다고 좋아하지만 우리 북조선 여자들은 가둬놓고,..엇갈하면서 인간 이하의 천대를 받고 살고 있습니다』
RFA는 『탈북여성은 맞아서 몸이 잘못 되더라도 다른 사람의 눈에 띄면 안 된다는 이유로 병원에 가지 못한다』며 『모두가 몸은 여위고, 겁에 질려 있었고, 젊은 여성들인데도 화장해 본 적이 없는 얼굴』이라 전했다.
<『팔려온 여성들은 이렇게 시들어간다』>
탈북여성들의 신분을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떨어뜨리는 원인은 불안한 신분이다. 이들은 집을 나가도 달리 갈 곳이 없고, 강제송환의 위험으로 집을 나가기도 어렵다. 숨어사는 처지라는 점을 악용당해, 인신매매·강제결혼·구타와 性폭행을 당해도 보호받지 못한다.
하얼빈에 사는 정OO씨는 『이제 모든 걸 체념했다』며 『팔려온 신부들은 남편이나 시집 식구들로부터 「도주하거나 말을 잘 안 들으면 공안에 신고한다」는 위협을 늘상 받으며 산다』고 말했다.
흑룡강성에 사는 조OO씨는 『그저 공안에서 잡아갈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라며 『애 때문에...잡혀가도 살아올 지,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그건 장담 못하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공안에 잡혀간다」는 공포감 탓에 탈북여성들은 밖에서 문소리만 나면 밥을 먹다가도 숨어야 한다. 극히 드물게 부부답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공포감은 예외가 아니다. 언젠가는 공안에 체포될 수 있는 「비법월경 범죄인」이며, 실제로 10년을 넘게 살고도 강제 북송돼 생사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RFA가 전하는 한 탈북여성의 모습이다.
《팔려온 탈북여성이 살고 있는 길림성의 어떤 집은 남의 집 창고를 세내어 사는 상태였다. 문 앞에는 든든한 자물쇠가 잠겨있었다. 두 평 남짓 침침한 방안에는 이불 한 채와 냄비 한 개, 옷 보따리 한 개가 전부였다. 찾아오는 손님도 없는 이런 집에서 돈에 팔려온 북한 여성은 「신부」라는 감투를 쓰고 소리 없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를 낳아도 언젠간 강제북송>
인신매매와 강제결혼을 겪는 탈북여성들 모두가 겪는 가장 큰 마음의 고통은 아이문제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들을 현실에 묶어 놓는 고리가 된다. 해림시에 거주하는 허OO씨의 말이다.
『낳고 싶지 않아 낳았는데...그래도 내 자식이니까 아이를 보면 한쪽으로는 불편하고...자식은 낳았는데,,,자식 보면 그러면 안 되는데...남편이랑은 도저히 살기가 힘이 듭니다』
아이를 보며 도망칠 마음을 포기하는 여성들도 많고, 이미 도주한 여성들은 두고 온 아이 때문에 다시 돌아가고, 모진 마음먹고 남한行을 택한 여성들도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다.
중국인과 탈북여성 사이 낳은 아이들도 「비공식 절차」를 거쳐 아빠의 호적에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 합법적 중국인의 엄마는 영원한 「비법월경 범죄자」로서 체포 대상, 강제 송환의 대상이다.
만일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강제 송환되면 북한 내 「집결소」에서 강제낙태, 영아살해 그리고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는 등 인간이하의 유린을 당해야 한다.
노래방, 룸싸롱 등 유흥업소에 性노리개로 팔려가는 탈북여성들도 많다. 그러나 이들의 생활 역시 자유가 박탈된 가혹함의 연속이다. 모두가 金正日 정권이 낳은 기아와 폭압과 유린의 결과들이라고 탈북여성들은 절규한다.
<『우리를 도울 그런 세상이 없는지』>
RFA와 인터뷰한 탈북여성들은 바라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그저 우리를, 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자유롭게 해줄 수 없는지...이런 우리 사정 알아줄 수 있는 데는 세상에 없는지...』
『가고 싶습니다. 근데 아버지도, 어머니도 막 보고 싶습니다. 근데 어떻게 갑니까!... 조선에 가면...조선에 가면...』
『그냥 여기서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돈을 벌어서 고향에 있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식구들이랑 같이 잘 먹고 잘 살고 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한번 북한에 가 보고 싶긴 한데... 저희 부모들은 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근데 가고 싶어도 힘들게 살 것 생각하면 그렇고...사람들이 남조선 가면 좋다고 하니 남조선으로 가보고 싶습니다.』
『그냥 우리도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중국 공안에서 우리를 부득부득 잡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 그런 바람입니다. 잘 살면서 그러면 좀 낫겠지만 얼마나 못 살면 다 버리고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 자유롭게...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 金成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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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19, 02: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