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야기③ [2007-02-23 ]
[질문하기]
한국에 온 탈북자들이 싫어하는 남한사람이 있다. “네레 잘 왔시오.”하거나 “김일성 아바이 동무레 싫어서 왔시요?”하는 사람들이다. 한 수 더 뜨는 사람들은 “북조선 종간나새끼들 아바지 동무의 잘못도 당에다 고해바친다면서? 일 없구만”하기도 한다. 다시 안보면 좋을 사람들이다. 북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지탄을 받기도 한다.
반대로 북한의 독제체제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질문하는 자세부터가 다르다. 한국인이나 유럽인이나 미국인이나, 농사짓는 사람이나 직장인이나 포장마차 주인이나 할 것 없이 문제의 핵심을 파고든다. 22일, 뉴욕의 중심가에 자리잡은 “월스트리트 저널”의 응접실에서 논설위원들을 만났고, 그들이 던진 질문은 너무나 단순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당신은 죄인이다. 무슨 죄를 짓고 한국으로 왔는가?”
“당신처럼 중국을 떠돌다가 강제 북송됐던 친구들 중, 살아서 월남한 사람들이 상당수다. 북한당국의 경계가 그렇게 느슨한가?”
“당신과 당신 친구들의 한 달 평균 노임은 얼마인가, 당신의 선택이 지금도 옳았는가?”
“당신은 아베 총리와 부시 대통령을 만난 바 있다. 한국 대통령을 못 만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몇 가지 질문을 마주하고 세 시간 반을 고스란히 ‘드렸다’
[들어주기]
인천공항에서 나리타로, 나리타에서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월간조선 3월호를 쉬지 않고 읽었다. 특히 조갑제 선생의 글은 '우리들의 이야기'여서 눈 깜작 하는 사이에 읽어버렸다.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홍순경 선생이 한 이야기고, 덕남이가 한 이야기고, 김은주가 한 이야기며 내가 했던 이야기들이다. “그 인간 말 시켜놓고 눈 한번 마주치는 일 없이 냅다 적기만 하네”고 투덜거렸던 탈북자도 있다.
2개월 전 이 곳 뉴욕의 '한미자유동맹' 초청 강연장에서도 조 선생은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우리들이 하는 평범한 이야기도 그의 수첩 안에서 한번 담금질되면 검과 방패가 되어 사랑과 증오를 깨우쳐 준다. 김정일에 대한 증오가 북한인민들에 대한 사랑임을 그렇게 확실히 증거할 수가 없다.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 그도 부족하여 시도 없이 적기까지 하는 사람.
깨닫는 바가 있어 주머니를 뒤집어 보니 양쪽 호주머니 안에 담배가루만 수북했다.
[웃어주기]
다시 워싱턴에서 민주주의진흥재단(NED)의 칼 거쉬만 회장, 국회 도서관 관장 등과 함께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워낙에 바쁜 사람들인지라 나에게는 이야기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먼 발치에서 눈도장만 찍고 있는데, 그 때마다 “내가 너를 알고 있다”는 듯이 빙그레 웃는다. 한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미국놈들'의 인상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탈북자들을 원론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은 같은 한국인이어도 웃지 않았던 것 같다. 웃어주기는커녕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섬찟한 표정들이 아닌가. 청와대며 통일부며 국정원 직원이며… 꼽으라면 손발가락 다 해도 모자랄 것 같다.
… 잠시 생각하며 섰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어깨를 두드린다. 국회 도서관 관장이다. '당신들이 하는 일 잘 알고 있다. 국회도서관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데 연결시켜 주고 싶다. 방송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신념을 가지고 일을 하다보면 바라던 바라지 않던, 좋은 일이 따르기 마련이다… '
이번에는 칼 거쉬만 회장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어깨를 꼭 눌러 잡는다. “당신들이 하는 일은 당신들의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동지들에게 전하라”
[행동하기]
다시 뉴욕이다. 그러고 보니 이틀 사이에 뉴욕에서 워싱턴을 두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했다. 뉴욕에서 워싱턴이 200마일, 그러니까 서울에서 부산 사이 정도 되는 거리를 갔다가 왔다가, 또 갔다 온 셈이다. 인권관련 국제회의차로 한 번, '북한자유연합'의 정기모임차로 또 한 번.
어느 잘 나가는 건축회사 사장의 이야기다. 기차를 타고 다녀오면 좋지 않겠는가고 하자, “그 돈이면 탈북자 한 명 살려!”하고 일침을 놓는다. 비행기표보다 비싼 열차이용권이라니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의 나이가 예순 다섯이다.
북한에서는 노망이라고 축에서 빠지는 나이다. 그렇게 노망이 들려서인지 잘나가던 회사가 잘 안 나갈 정도로 회사일은 등한시 하고 “입에 거품만 문다”. 거품을 물고 김정일을 북한 백성 잡아먹는 식인종이라 욕질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북한백성 외면하는 자라고 욕질을 해 댄다. 그래서인지 그가 북한관련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 비신사적이라고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곁에서 며칠간 지켜보니 이 사람,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비신사적이다. 딸 자식 결혼비용 뽑아서 탈북자 50명을 한국으로 입국시켰단다. 집안재산 탕탕 털어서 북한인권 관련 사진전시회를 열었고, 한도 끝도 없이 그 일에만 매달려 있단다. 세상 참 더럽다. 이런 미친 사람의 일기를 서로가 쓰고 있으니 말이다.
탈북자 김성민
질문하기·들어주기·웃어주기·행동하기
-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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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24, 09: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