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KBS 텔레비전의 ‘국민가수 李美子 쇼’를 역 대합실에서 보았다. 60대 후반의 李美子씨는 日帝시대 유행했던 ‘애수의 소야곡’ ‘찔레꽃’ ‘두만강 푸른 물에’에서부터 2003년에 유행했던 ‘어머나’까지 참으로 다양한 노래들을 불렀다. 안다성, 남진, 나훈아, 양희은, 주현미의 히트곡도 부르고 자신의 노래도 불렀다. 스테이지 매너, 옷차림도 좋았다. 완숙한 唱法이고 연기였다. 李美子씨는 노래를 수줍게 부르는 편인데 이날은 신나게 불렀다. 이날 무대와 청중석을 압도한 그의 카리스마는 외국의 그 어떤 대중가수로부터도 찾기 어려운 品格이었다. 노래경력 50년을 앞둔 이 불세출의 여가수로 해서 수많은 한국인들이 지나간 격동기를 그래도 덜 살벌하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李美子씨의 노래를 들을 수 있기에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갑자기 했다. 참으로 드물게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서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1984년 나는 한국의 40代論을 쓴 적이 있었다. 그때 대표적인 40대 인물 李美子씨를 인터뷰하여 그해 8월호 月刊朝鮮에 실었다. 그 기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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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면서 싫은 척』이 싫어
李 美 子 가수
『내 노래 듣기가 쑥스러워요』
취입한 노래가 1천5백이나 되어 자기 노래를 자기가 들어도 모를 때가 많다는 李美子씨(44)지만 무대 이외에선 한번도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단다. 私席에서 『노래 한 번 불러 보라』는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난다고 한다. 李美子씨는 또 자기 노래를 듣는 게 쑥스럽다고 했다. 다방 같은 데 들어가면 그를 알아보고 그의 노래를 틀어주는 수가 있는데, 얼굴이 확 달아올라 나와버린다는 것이다.
『남과 함께 들을 때는 그렇지만, 나 혼자 들을 때는 괜찮아요』
李美子씨는 목소리에 대한 건강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 음식을 조심하는 것도 아니고, 보약을 먹지도 않는다. 목청을 혹사했다 싶으면 2~3일 쉰다. 그러면 원상 회복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노래 연습도 많이 안하는 편이다. 『너무 많이 연습하면 노래에 순수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노래한다는 것은 뼈에다가 살을 붙이는 것과 같은 일인데, 너무 힘을 주면 살이 곱게 붙지 않고 군더더기같이 붙는답니다』
스스로의 점검에 따르면 李美子씨의 목소리는 옛날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올라가게 돼 있는 키 음이 오히려 내려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당 기간 안심해도 좋다는 얘기가 된다. 그는 假聲으로 부르는 노래가 싫다고 했다. 배속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불러야 몸과 노래가 하나가 되는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李美子씨는 요즈음 假聲으로 부르는 가수가 인기를 얻고 있는 풍토가 못마땅한 듯했다. 그저 쉽게 부르고 쉽게 듣는 것만이 좋다면 작곡가나 가수가 고민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느냐고 그는 답답해 했다.
李美子씨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대중가요에 대한 한국인의 허위 의식인 듯했다.
『술자리에서 흥겨울 때는 누구나 「두만강 푸른 물에…」나 「타향살이」를 부르지 팝송을 부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면서도 「뽕짝」은 저질이고 서양식 노래는 좋다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많은 데 화가 나요. 팝송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제대로 알고 불러야지…』
나이를 모르는 목소리
한국의 40대 가운데 가장 지명도가 높을 것 같은 李美子씨는 전 공화당 총재 金鍾泌씨를 존경한다. 총리시절 공관에서 파티를 할 때 李美子씨가 초대되어 갔다. 「흑산도 아가씨」와 「섬마을 선생님」을 불렀는데, 金총리가 아코디언을 들고 나와서 「기가 막힌」 반주를 해주더라는 것이다. 『대중가요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은 분이었다』면서 李美子씨는 金鍾泌씨로부터 선물받은 金씨의 그림을 자랑했다.
李美子씨는 가끔 『나는 지나간 가수』라는 섭섭한 표현을 했다. 너무 오래 불렀고, 개성이 너무 뚜렷하여 요즈음 세태를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절정기를 70년대 초로 보는 듯했다. 극장 쇼 무대에서처럼 가수가 청중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노래 부를 수 있는 「문화」가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쉬운 듯했다. 李美子씨는 『제가 데뷰할 때는 지방 공연을 많이 다녔는데, 제가 노래하면 동료 가수들도 무대 앞으로 나와 노래를 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목소리가 천부적이었다는 얘기다. 문학에서 문장의 미학을 중시하듯 李美子씨는 가창력이 가수의 기본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가창력이 뛰어난 후배 가수로 그는 양희은을 꼽았다. 『가수로서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 과연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최상급의 칭송을 했다.
70년대의 상징적 가수인 양희은씨는 그런 상징성이 자신에게 부담이 된다는 투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노래는 여러 사람이 흥겹게 부를 수 있는 노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양희은씨는『길을 가다가 나의 노래를 합창하는 자리가 있으면 고마워서 찾아가 따라 불러주고 싶다』고도 했다.
「모두가 흥겹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한국가요사상 가장 많이 불렀을 李美子씨는 노래 부를 때는 자신의 감정을 냉정하게 통제하는 편인 듯했다. 남을 감동시키려면 자신은 냉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고 할까.
李美子씨는 일본에서 우리나라 가수들이 인기가 높은 것은, 일본 가수들은 假聲으로 부르는데 우리 쪽은 혼신의 힘으로 열심히 부르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李美子씨는 『50대 분 들이 내 노래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면서 방송 금지가요가 된 「동백 아가씨」를 가장 아낀다고 했다.
우리나라 40대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이 먹어보이는 이는 대우 회장 金宇中씨(49)와 李美子씨일 것이다. 두 사람이 40대라고 하면 『언제부터 李美子인데』하고 놀라는 이들이 많다. 40대의 두 슈퍼스타의 성취가 그만큼 컸다는 얘기가 되겠다. 세월은 흘러도 변하지 않는 목소리 李美子씨에겐 나이나 세대론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李美子, 그리고 한국인으로 태어난 행복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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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28, 00: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