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론과 노예근성

당당하게 핵무장을 선언하는 것은 자유민의 특권이고 의무인데도 노예근성의 소유자들은 "우리가 그렇게 나오면 일본도, 미국도, 중국도 싫어할터인데 그냥 참고 있지, 뭐"라고 단념해버린다.
남북한은 다 같이 核非擴散조약(NPT)에 가입함으로써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며 군사적 대결은 재래식 무기로 한다'는 약속을 한 셈이다. 칼싸움을 하기로 하고 결투장에 나타난 두 사람중 한 사람이 갑자기 칼을 던지고 총을 잡았다고 하자. 다른 사람도 칼을 버리고 총을 잡든지 항복하든지 兩者擇一뿐이다. 노무현 정부는 총을 잡은 김정일 정권을 눈 앞에 두고도 총도 잡지 않고 굴복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상대가 총을 잡았는데도 '나는 총을 잡지 않겠다. 칼로 싸우겠다'고 말하는 것은 자살하겠다는 말이든지 항복하겠다는 말을 복잡하게 표현하는 꼴이다.

敵對國이 핵개발을 했는데도 自國이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나라는 국가적 자살을 하겠다고 만방에 선언하는 꼴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금 이 짓을 하고 있다. '만약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무장을 해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당방위 차원에서 합법적 절차를 거쳐 NPT에서 탈퇴하고 자체 핵개발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할 수 없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라 계모임이나 동창회 수준도 안된다.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당연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는 한국사회는 이 나라가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가 60년이 넘었으나 아직도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했구나 하는 절망감을 갖게 한다. 식민지 근성, 노예근성이란 '난 여기까지밖에 할 수 없어'라고 선을 그은 다음 체념하고 포기하는 마음이다. 당당하게 핵무장을 선언하는 것은 자유민의 특권이고 의무인데도 노예근성의 소유자들은 '우리가 그렇게 나오면 일본도, 미국도, 중국도 싫어할터인데 그냥 참고 있지, 뭐'라고 단념해버린다.

노예는 스스로 노예가 되는 것이다. 화를 내면서 싸워야 할 때 참고 피하면 노예가 되는 것이다. 자유민은 자유를 위하여 싸울 의무가 있다. 자유만 누리고 싸우지 않으려는 자들도 노예근성의 소유자이다.

머리 좋고 자칭 우파라고 말하는 識者들이 공기나 물처럼 당연한 자위적 핵무장 선언에 대해서 잘게 썰어낸 단편적 지식으로써 反論을 펴는 것을 자주 본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런 예를 들고싶다. 인도가 핵개발을 하니 그 가난한 파키스탄도 했다. 이스라엘이 핵무장을 했기 때문에 이란도 하려고 한다. 브라질이 핵개발을 하려고 하니 아르헨티나도 핵개발에 나섰다가 쌍방이 포기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니 일본의 자민당 간사장이 '우리도 핵무장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도 핵무장론을 말하는데 왜 우리만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가. 정부가 할 수 없다면 지도층 인사들이나 한나라당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서서 싸우기 보다는 앉아서 맞아죽는 길을 선택하려고 하는 '살찐 돼지' 같은 사람들에겐 자유와 번영이 사치이다. 이런 식으로 좌익과의 싸움을 피하는 '살찐 돼지'류의 우파는 선거와 전쟁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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