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의 저녁 산책

오, 내 조국. 그게 왜 그리도 소중한가고? 그 곳엔 자유(自由)가 있기 때문이다.
3.1절의 저녁 산책

오늘은 3.1절인데 건강 형편들이 좋지가 않아 오후 2시에 시청 앞에서 거행되는 3.1절 국민행사에 참석할 수 없으니 참으로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다. 오늘이 어떤 날인데! 3.1절 행사에 빠져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저녁 시간인데 오늘의 허전한 마음을 달랠 겸 저녁 산책에 나선다. 지금 시간은 6시 반 경, 흐린 날씨에 인적도 드물다. 한 30분쯤 걷다가 의자에 앉아 하늘을 처다 본다. 그리고 사방에 둘러싸인 아파트 건물들에 시선이 돌려 지는 순간, 문득 태극기 생각에 정신이 바짝 든다.
앉은 채로 주변에 있는 아파트들을 둘려 보고 또 살펴보았으나 태극기 달린 집이 한 곳도 없다. 눈이 의심스러워서 일어나 다시 둘레에 있는 아파트 네 곳을 관찰해 보았지만 역시 태극기는 보이질 않는다. 이럴 수가? 아니 이럴 수가!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려 주택 단지 안쪽의 산책길을 더듬어 가며 주변의 아파트 들을 하나씩 눈여겨 본다. 큰 도로 쪽에 면한 아파트들에선 태극기가 한 집도 안 보이더니 안쪽으로 들어오면서는 간간히 태극기가 꽂힌 집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이건 또 무슨 현상인가?

한참 걸어오다가 다시 의자에 앉아 주의를 살펴보니 층이 낮은 아파트 단지이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 중 한 아파트를 골라서 셈을 해 본다. 9층 건물에 여섯 줄이니 54가구란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 태극기를 단 집은 겨우 4가구뿐이다. 나는 허전한 마음으로 힘없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길가 앙상한 나무 가지엔 까치 한 마리가 둥지를 틀고 있는지 꿈쩍도 않고, 나무 아래 길가에는 참새 몇 마리가 서성거리고 있다. 초저녁의 어둠은 짙어 가고 바람은 한 점 없다.

나는 눈이 저절로 감기면서 왜정 때의 무시무시한 광경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환상 앞에서 몸을 떤다. 그리고 공산당들에 쫓겨 38선을 넘는 고비마다에서 “빨갱이 놈”들을 외치며 사선을 넘기던 그 때를 회상하면서 다시 이를 악문다. 그리고 월남하여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징병 연령은 이미 지났으나 위기에 처한 조국에 대한 고민 끝에 학도병으로 자진 입대하여 여러 비참한 죽음 앞에서 오열하던 그 한때를 떠 올리며 한 없이 울고 있다. 아니 소리 없는 통곡일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지금 산산조각이 난 조국을 부둥켜안고 또 다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오, 내 조국. 그게 왜 그리도 소중한가고? 그 곳엔 자유(自由)가 있기 때문이다. 노예의 땅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경험한 사람만이 그 자유의 귀중함을 알 수 가 있다. 자유는 이론이 아니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자유는 곧 삶이다. 사람다움의 삶이다. 지금의 삶이다. 이 순간의 호흡이다. 생존의 실존적 자각(自覺)이 아닌가! 그 자유 때문에 대한민국이 귀하고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3.1절은 1919년에 일어난 옛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의 사건인 것이다. 오늘의 3.1 운동이다. 그때의 독립선언과 자유를 위한 민족 자결 운동일 뿐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절박한 역사적 싸움이다.

그 때 3.1. 운동에서 우리는 어떤 그림을 다시 보고 있는가?
남자도 여자도 모두 하나 같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을 외치다가 손이 잘리고 발이 잘리는 그 그림이다. 어린이도 청년도 어른도 노인들도 한 마음으로 민족 자결의 울부짖음을 행동으로 표시하는 그 함성이다. 천도교도 기독교도 불교도 모든 종교인들이 한 뜻으로 뭉쳐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줄줄이 밧줄에 묶여 끌려가는 그 광경이다. 지식이 있는 자도 지식이 없는 자도, 유식하다는 사람도 무식하다는 사람도 오직 민족 생존을 위한 순수한 애국정신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만세를 외치면서 죽음의 행진을 하던 그 장한 모습들이다.

지금은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할 때이다.
우리는 지금 이념 풀이로 한가한 세월을 낭비할 처지가 아니다. 어째서 정상배들의 이념 술수가 일반 국민들의 정치 이슈(issue)로 전염(傳染)되어 가야 하는가? 어째서 이념 논자들이나 학자를 자칭하는 이데올로기 놀이꾼들의 그럴듯한 괴변으로 대중을 속여 순진한 국민들의 생각을 혼란시키고 그들의 정치적 자결 행위를 오도 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 우리는 태극기를 소중히 여겨야할 시점에 처해 있다. 이는 내가 나라를 사랑한다는 행동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밖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애국심은 밖으로 표현된 행동을 수반해야 한다. 아침 일찍이 태극기를 다는 일이나 태극기를 흔들면서 나라를 생각하는 행위는 내면화된 애국심의 지연적 발로이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해서 이뤄지는 행동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국적이 없는 사람들에겐 태극기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2007.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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