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은 왜 全斗煥을 초청했나?

"미국은 親美的인 권위주의 정부와 反美的인 전체주의 정권을 구별해야 한다"
1980년 11월20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선자는 카터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방문하여 요담했다. 카터는 카드를 꺼내놓고 거기에 적힌 대로 15~20개항의 주요 國政상황을 레이건에게 설명해주었다. 카터는 레이건에게 기록할 백지를 주려고 했으나 레이건은 이를 거절하고 듣기만 했다. 나중에 레이건은 카터의 메모 카드를 복사해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다. 카터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날 듣고만 있던 레이건이 유일하게 의미 있는 발언을 한 것은 한국 문제에 대해서였다고 한다.
카터는 레이건이 한국의 全斗煥 대통령에게 김대중씨를 살려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 데 대해서 감사했다. 화제가 이에 이르자 레이건은 열을 내어서 故朴正熙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에 부러워하는 말을 하더란 것이다.
그는 '朴 대통령은 대학에서 소요가 일어나자 대학의 문을 닫게 하고 시위학생들을 징집했던' 것을 부러워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1970년대 초에 레이건은 한국을 방문하여 朴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었다.

레이건이 취임하자말자 全斗煥 대통령을 초청하여 頂上회담을 한 것은 流血사태를 통해서 집권한 全 정권의 안정을 도왔고 일부 한국인에게는 레이건이 독재정권의 비호자로 인식되도록 했다. 레이건은 1980년 대통령 선거 기간중 진 J 커크패트릭 여사를 만나 단번에 매료되었다.

이즈음 커크패트릭 교수는 유명한 기고문을 통해서 '미국은 親美的인 권위주의 정부와 反美的인 전체주의 정권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는 또 美蘇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조국에 먼저 책임을 씌우는 위선적인 민주당원들을 향해서 '항상 미국을 먼저 비난하는 집단'이라고 이름 붙여 공격하기도 했다. 레이건은 커크패트릭 여사를 유엔대사로 임명하고 장관급으로 대우했었다.

全斗煥 정권은 레이건이 全 대통령을 초청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형을 선고받기 직전에 있던 김대중씨를 살려주겠다는 미끼를 던졌다. 레이건이 全 대통령을 초청한 것은, 우방국들에 대해서 자유진영 편에 서 있는 권위주의 정권은 '우리 편'이란 메시지를 던지기 위함이었다. 레이건은 카터의 인권외교가 공산정권엔 먹히지 않고 이란의 팔레비나 한국의 박정희 정권과 같은 온건한 親美정권에만 타격을 주어 對蘇戰力을 약화시켰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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