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型비리의혹1호: 김대중秘資金1조說

이 의혹을 밝혀내어야 할 의무를 진 것이 한나라당이고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씨이다.
2003년 초의 對北송금사건 特檢은 이 사건의 主犯격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 진술서 한 장 받지 않고 면죄부를 준 미진한 수사였다. 그럼에도 그의 반역적 행태를 완전히 덮지는 못했다. 워낙 사안이 크고 악질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김정일과의 회담을 끌어내기 위해서 현대그룹을 앞세우고 산업은행 돈을 쥐어짜내고 간첩 잡는 국정원을 송금책으로 이용하여 4억5000만 달러를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계좌 등으로 보내게 했다. 이 돈이 군사비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고, 不法임을 알고도 送金을 묵인했다. 그리고 국회와 국민을 속였다. 이 돈이 핵무기, 미사일 개발에 쓰였고 對南공작비로 내려왔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4억5000만 달러는 김대중씨가 조성하고 보내준 자금중 드러난 일부이다. 언론보도와 수사를 통해서 드러나기 전까지는 한푼도 보내준 적이 없다고 한 것이 김대중 정권이었다. 따라서 더 만들고 더 보내주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난 1월호 월간조선은 김대중 정권이 2001년 초에 시중은행들을 시켜서 3000억원을 조성했다는 당시 정부 要人의 증언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서 김대중씨측은 반박도 고소도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정치에선 반박되지 않는 거짓말은 진실이 된다고 하는데 반박되지 않는 의혹은 사실로 간주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 要人은 북한정권에 보내주기 위해서 돈을 모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돈이 北送되었는지의 여부는 알 길이 없다. 수사를 해봐야 알 것이다.

對北송금사건 수사에서 김대중씨의 측근이 정몽헌 현대그룹회장에게 3000만 달러를 스위스 은행 계좌로 보내게 했다는 혐의도 드러났다. 이 사건 수사는 그 뒤 유야무야 상태이다.

미국에선 교포언론이 김대중씨의 자금으로 추정되는 약3억 달러가 들어와 부동산에 투자되었다고 2년간 연속으로 보도하고 있고, 미국 수사당국도 내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죄는 反국가단체를 돕는 역적질이다.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反국가단체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김대중씨는 대통령의 권한을 악용하여 국민들을 속이고 불법한 방법으로 어마어마한 비자금을 조성하여 反국가단체 수괴에게 갖다바쳤다. 그리하여 약점이 잡힌 그는 대한민국에 불리하고 主敵에 유리한 일들만 골라서 했다.

좌파정권 10년을 청산할 준비를 해야 한다. 좌파정권은 한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권력이었다. 뇌물을 主敵에게 갖다바치는 행위는 공무원에게 돈을 주는 것보다 수백 배나 위험하고 악질적인 부패이다.

김대중씨는 4억5000만 달러, 3000억원, 그리고 3억 달러, 3000만 달러의 비자금 조성說에 대해서 고백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고백하지 않으면 법에 따라 고백을 받아야 할 권한과 의무를 진 것이 대한민국이다.

일단 이 사건을 '김대중 비자금 1조 의혹'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 가운데 4억5000만 달러 조성은 확정된 사실이다. 나머지 부분은 증거가 없고 의심이 드리워진 상태이다. 이는 좌파권력형 非理의혹 사건 1호이다. 이 의혹을 밝혀내어야 할 의무를 진 것이 한나라당이고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씨이다. 손학규씨는 이미 對北송금사건 수사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후보들은 좌파권력형비리의혹사건을 차기정권에 가서 밝혀내겠다는 공약을 해야 한다. 그럴 용기와 배짱이 없으면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않는 게 나라를 위해서 좋을 것이다.
==============================================================
김대중의 이상한 침묵

월간조선의 3000억 비자금 조성의혹 보도에 무대응으로 일관.

金成昱

月刊朝鮮의 지난 1월호는 『2001년 수개월 동안 금융기관을 통해 3000억 원을 조성했다』는 김대중 정권 당시 정부기관 고위인사의 증언을 크게 보도한 바 있다.

보도 이후 金 前 대통령 측의 공식적인 반발이나 해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반박돼지 않는 주장은 사실』이라는 정치 격언대로라면, 보도의 진실성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法的대응 여부 질문에 『할 말 없다』

기자는 3월6일 金 前대통령 측의 입장을 확인키 위해 접촉을 시도했다. 비서실 담당자는 문제의 월간조선 기사에 대해 『터무니없는 기사를 써서...』라며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

기자가 「김 前대통령 측의 공식 입장이 무엇이냐」고 묻자,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당신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허위사실이라고 보는 것인가?」라고 다시 묻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법적대응을 검토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할 말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月刊朝鮮은 당시 보도에서 김대중 정권에서 근무했다는 익명의 요인에 의한 3000억 원 비자금 관련 증언과 함께 사용처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건네진 5억 달러 外 북한에 건네진 뒷돈일 가능성 △남북정상회담 비용을 댄 현대 그룹을 지원하기 위한 돈일 가능성 등이다.

증언을 한 전직 고위급 인사는 3000억 원에 대해 『북쪽에 보낼 돈이었다』며 다만 『보낸 걸로 아는데 그건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月刊朝鮮 2003년 5월호는 정몽헌 회장의 친인척의 말을 빌려, 對北송금액수가 「5억 달러가 아닌 8억 달러」라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었다.

3000억 조성시점과 美유입 시점 일치?

비자금이 미국으로 흘러갔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2006년 6월 미국 교포사회 시민단체인 「정의사회실천시민연합(이하 정실련)」이 「김대중 前 대통령의 비자금이 뉴욕에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美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했다.

정실련은 『한인타운 內 대형쇼핑몰이 법원경매를 통해 재미교포 李모씨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金 前 대통령과 관련된 거액이 들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실련은 당시 돈 심부름을 한 양某씨의 제보를 통해 「김대중 정권 비자금 뉴욕 유입 조사 보고서」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에는 金 前 대통령의 아들 홍업씨가 뉴욕으로 직접 와 홍某, 이某 등 미국 내 金 前 대통령의 측근들을 지휘했음을 암시하는 증언들이 나온다.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닌 VIP」로 묘사되는 金회장이라는 인물에 대해, 정실련이 『그럼 우리가 추정한 대로 김대중 前 대통령 아들 김홍업씨인가』라고 묻자, 양씨는 『그렇다. 이 진술에는 변함이 없고 나중에 재판에 가더라도 그대로 증언하겠다』고 증언했다.

보고서는 金 前대통령이 홍某, 이某 등을 미국 현지 대리인으로 하여 재산을 관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문건은 美수사기관에 참고자료로 제출됐다.

월간조선에서 증언한 전직 고위관계자의 3000억 원 비자금 조성 시기는 양씨가 돈 심부름을 자주 했다는 시점과 서로 일치한다. 고위관계자 某씨는 『2001년 수개월 동안 3000억 원을 조성했다』고 했고, 양씨는 『특히 2001년에는 돈 가방을 수도 없이 날랐다』고 말했다.

금융기관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이용되는 방식은 해외에서 펀드를 조성한 후 손실 처리하는 것이다. 2000년 對北송금 당시 현대전자는 해외공장 매각대금 중 1억 달러를 중동의 현대건설 페이퍼컴퍼니에 대여한 후 손실 처리했다.

지난 해 6월8일에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정실련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호남인들 모임(대호사랑)」 등의 주최로 「김대중 비자금 미국유출규탄 特別기자회견」이 열렸다. 당시 정실련의 저스틴 림 대표 등은 『미국으로 유입된 DJ비자금 상당액이 미국 내 친북단체의 자금으로 쓰이거나 북한으로 송금됐다』고 주장했다.

정실련이 美수사기관에 제기한 「김대중 비자금 수사」는 현재 진행중이다.
============================================
김대중이 核개발자금을 댔다는 물증

對北불법송금 特檢의 수사자료: 현대와 국정원 시켜 김정일의 비자금 계좌로 송금한 사실 확인.

趙甲濟

對北불법송금 特檢의 수사자료를 보면, 송금용 외화의 환전과 송금업무는 국정원이 全擔(전담)했다. 간첩을 잡는 것을 주임무로 하는 국정원이 간첩을 내려보내는 김정일의 對南공작기관 비밀계좌로 불법자금을 보냈다는 이 반역적 행위로 해서 국정원은 넋(魂)이 나간 조직이 되었다. 외경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국정원이 지금처럼 경멸의 대상이 된 것도 이 사건에 기인한다. 수사기록을 읽어본다.
<(金保鉉 국정원 3차장) 김윤규가 액수까지 부탁을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다만 頂上회담 전에 보내야 한다고 다급하게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문(특검 박광빈 특검보) 임동원 원장은 당시 제5국장이었던 진술인으로부터 『현대 측으로부터 2억 불을 북한으로 보내려고 하는 과정에서 환전편의 제공요청이 왔었다』면서 자신에게 『실무부서에 가능여부를 하문해 달라』는 건의가 있었으며, 최규백 실장으로부터 가능하다는 보고와 함께 실무자의 연락처를 받아서 진술에게 건네준 기억이 있다고 하던데 어떤가요.
답(金保鉉) 임원장에게 2억 불이라고 보고를 했는지 기억이 없으나 위와 같이 보고를 하여 임원장으로부터 실무자인 김○○, 김△△의 전화번호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김윤규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적이 있습니다>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은 송금방법에 대하여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2000년 6월7일 (4000억원을) 대출받은 이후 6월8일 김윤규 사장을 따라 나가서 국정원 직원을 만났으나 별다른 이야기도 없어 얼굴 정도만 확인한 채 돌아갔고, 사무실로 돌아와 바로 김윤규로부터 북한 측 돈자리(계좌번호)를 건네서, 국정원 직원을 만나서 자기앞 수표 2240억원을 건네주니까 국정원 직원이 송금을 마치고서 영수증을 건네주기에 가져온 것이 전부라고 한다> (특검 검사의 심문)
돈을 보낼 북한측 「돈자리(계좌번호)」는 2000년 5월23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 부두 기공식에 참석한 鄭夢憲 회장에게 직접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기록을 검토한 결과, 현대상선이 조달한 2억 달러는 2000년 6월9일 북한 對南공작기구 대성은행의 계좌(중국은행 마카오 지점)로 송금되고, 현대전자와 현대건설이 조성한 2억5000만 달러는 홍콩과 싱가포르에 있는 金正日의 비밀계좌로 송금됐다는 기술을 발견했다.
현대상선이 조성한 2억 달러 가운데 국정원 직원 김○○의 명의로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 계좌주 「DAESUNG BANK」로 송금한 4500만 달러가 실제 계좌주인 「DAESUNG BANK-2」와 일치하지 않아 송금처리되지 않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대전자의 미국 및 현지 법인은 현대건설 런던지사가 팩스를 통해 알려준 영국 홍콩상하이 은행의 현대건설 명의 계좌로 2000년 6월9일 1억 달러를 송금했다. 현대건설은 같은 날 2000만 달러, 6월12일 8000만 달러 등 모두 1억 달러를 북한측 계좌로 송금했다.
현대건설이 조성한 1억500만 달러는 이승렬 현대건설 금융재경본부 금융재정담당 상무이사, 임종익 당시 현대건설 재무기획부장이 실무를 담당하여, 2000년 5월 말경 외환은행 홍콩 지점 등 10개 계좌를 이용하여 홍콩 및 싱가포르에 있는 金正日 비밀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특검조사에서 확인됐다.
金保鉉 당시 국정원 5국장은 북한에 넘어간 5억 달러의 금품이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특검에서 밝혔다. 金大中 대통령은 林東源 국정원장으로부터 『頂上회담 합의의 대가로 정부가 지불하기로 한 1억 달러를 현대에 부담시키기로 했다』는 보고와 함께 對北송금의 실정법상의 문제점을 보고받고, 『실정법에 다소 어긋나더라도』 對北 송금을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돈을 직접 주는 것은 국민적 비판여론을 감내하기 어렵고 둘째 혹시 북측이 군사비로 전용할 우려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1억불 정도를 주더라도 남북정상회담을 열어서 해빙무드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金保鉉 진술>
<2000년 5월 초순경 현대가 부담하기로 하는 박지원 특사와 임동원 원장의 제안에 대해서 저도 동의를 하고, 곧바로 대통령에게 보고를 드렸는데 보고시 임동원 국정원장은 대통령께 정부가 부담해야 할 1억 불을 현대가 맡기로 했다고 보고를 드렸고, 보고를 받은 대통령께서는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느냐』고 하셨고, 그러면서 『정부가 떳떳하게 해야 하는데』라고 하시며, 서운해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李起浩 진술)
<문(특검 이병석 검사) 임동원 국정원장의 진술에 의하면, 진술인(박지원)과 이기호 수석이 현대의 북측에 5억 불 대가 지급에 대한 보고를 드리면서 5억 불 송금에 대한 실정법상의 문제점과 그에 반해서 현대 측이 취할 수 있는 이익 등에 대한 논의결과를 보고드리자, 보고를 받으신 대통령께서는 실정법에 다소 어긋나더라도 현대의 사업을 장기적으로 볼 때 인정해 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면서 사실상 묵인하는 쪽으로 말씀을 하셨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사업의 대가로 5억 불을 지급키로 했다는 내용의 잠정 합의서가 작성되었다는 보고를 받으셨지만 5억 불 지급에 대하여 승인하시는 그런 말씀은 없으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朴智元 진술)

========================================================
드디어 드러난, 김대중의 對국민사기극 전모

조갑제

1. 남북한의 정상배들이 만나 정상회담의 대가로 김정일 비자금 계좌로 5억달러를 보내기로 합의한다. 김정일측은 어름장을 놓는다. 1달러라도 약속에 미달되면 평양 땅을 밟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2. 2000년6월9일 김정일 계좌로 송금할 때 계좌 이름을 잘못 써 수천만 달러가 들어가지 않는다. 김정일은 10일 한국측에 정상회담 날짜를 12일에서 13일로 연기한다고 일방 통보한다. 김대중측은 질겁을 한다.
3. 6월12일 저녁 마지막 돈이 북한측으로 들어간다.
4 .김대중은 위축된 심리에서 평양에 내린다. 김정일은 그런 김대중을 자기 차에 태운다. 우리 경호원이 없는 이 차중에서 무슨 말이 오고갔는지 모르지만 김대중은 守勢에 있었을 것이다. 이 순간까지 그가 국민들을 속이고 저지른 범죄행위가 드러나면 망할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돈을 받은 김정일은 큰 소리 치고 돈을 준 김대중은 주눅 든다.
5. 김정일측은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김대중의 김일성 시신 참배를 강력히 요구했다. 6월13일 順安비행장에서 백화원 초대소까지 김대중이 오는 데 20분이 더 걸린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참배를 하지 않았을까. 두고 보자.
6. 다음날 1차 정상회담 때 김정일은 김대중씨를 갖고 놀려고 한다. 開口一聲이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어제 환영받은 것을 기념으로 하고 그만 돌아가시지요. 오늘 남조선 텔레비전을 보니 대학가에서 인공기를 올렸다고 검사가 학생을 구속한다는데 이런 분위기 아래에선 회담 못합니다'이다.
7. 김대중측은 이런 일격에 놀라 변명에 급급한다. 돈을 다 받아먹은 김정일은 이런 식으로 영악한 선제공격을 한 다음 김대중씨와 회담을 하니 김정일 페이스대로 합의를 본다.
8. 6.15 선언의 핵심은 김정일의 대남적화통일전략인 연방제 통일방안을 김대중씨가 인정한 2항이다. 남한에서 친북세력이 날뛰는 근거를 만들어준 셈이다. 내북의 적에게 대한민국을 파괴한 자유를 준 셈이다.
9. 서울로 돌아온 김대중씨는 김정일과 전쟁을 안하기로 합의했다, 김정일이 주한미군은 통일 이후에도 주둔해도 좋다고 이야기했다고 선전한다. 국제사회에서 그는 김정일의 대변자로 전락한다.
10. 그 뒤 김대중씨는 김정일에게 굴종에 굴종을 거듭한다. 장충식 韓赤 총재를 해임시키라면 해임시키고, 선박을 보내 우리 영해 침범을 강행해도 나가주십시오라고 애걸하고, 친북인사의 평양방문은 허용하면서 황장엽의 방미를 막고, 남북 축구장에선 태극기를 압수하고, 서해도발을 당해서도 응징도 하지 못하고, 부시와 김정일의 대결에선 동맹국 편을 들지 않고...
11. 이제 거의 모든 미스터리가 밝혀졌다. 김대중씨는 왜 그토록 김정일에 굴종했던가. 김정일에 돈을 주고 약점이 잡혔기 때문이다. 조폭에 약점 잡혀 집안에 있는 재물을 갖다 바치는 家長이 된 것이다. 그 집안의 아들들이 '이거 어디 자존심이 상해서 살겠습니까. 경찰에 신고합시다'라고 해도 家長은 자신의 약점이 들통날까봐 묵묵히 굴종하면서 집안의 이익과 체면과 자존심을 팔아먹은 꼴이다.
12. 더구나 돈으로 산 남북정상회담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으니 김대중씨는 김정일에게 약점을 잡힘과 동시에 신세까지 진 셈이 되었다. 김정일에 대해서 한번도 할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그 김정일을 비판하는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적대시하여 죽이려 들었다. 그동안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서 한 일들을 놓고 한 인간으로서, 국군최고사령관으로서, 국가원수로서, 소위 민주투사로서 어떻게 이토록 비굴하고 거짓되며 애국심이 없을 수 있느냐고 의아해 했던 부분의 상당수는 해명이 가능하다. 자신의 허영심으로 하여 김정일에게 약점 잡힌 바 되었으니 정상이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황장엽씨의 말대로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었고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던 것이다.
13. 김대중의 對국민사기극과 對국가 배신 행위는 헌법에 따라 가장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반역의 허가를 내주는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대한민국이 살기 위해선 김대중과 그 심부름꾼들을 법정에 세워 헌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
孫鶴圭의 놀라운 김대중 옹호


이 정도의 對北관을 가진 그라면 그는 좌파와 김대중 세력의 지원을 받는 정당의 후보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직할 것 같다.
趙甲濟

孫鶴圭 전 경기도 지사는 2007년 3월호 月刊朝鮮과 인터뷰하면서 노무현 정부에 의한 '對北송금사건 특검수사'는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특검은 사법적인 부분에서 정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북정책적 측면에서는 현명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그렇게 해서 이 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해 한 발자죽 나간 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이 정부가 대북관계에서 진전시킨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주 미시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하면 큰 대전략을 운영하는 데 현명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돈 퍼주고 뒷거래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그건 말이 안되는 것이죠. '까발릴 거냐, 이것보다 더 큰 상위목표를 위해 보류할 것이냐' 하는 전략적인 판단의 문제입니다'

이 말은 孫씨의 이념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결정적 사실이다. 孫씨는 對北불법송금 사건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하다. 만약 알고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는 법치국가의 대통령으로선 부적격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에 김정일과 한 소위 남북頂上회담을 사실상 매수했다는 말을 듣는 것은 그가 회담 유치를 위해서 현대그룹을 앞세우고 국정원을 시켜서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계좌 등으로 4억5000만 달러를 불법적으로 송금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특검 조사에 따르면 김대중씨는 이런 행위가 불법임을 알고도 실행을 지시했다. 국정원은 이렇게 들어가는 돈은 군사비로 전용될 위험이 있음을 알고도 대통령의 지시를 실행했다.

국가정보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일의 비자금은 군사비, 핵개발비, 對南공작비로 쓰인다. 김정일 정권은 대한민국을 적화시킬 목적으로 존재하는 反국가단체이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反국가단체에 북한의 연간 수출액의 약 半이나 되는 거액을 불법적으로 제공한 김대중씨에 대해서 특검은 진술서 한 장 받지 못했다. 법정에 세워야 할 김대중씨에게 이런 면죄부를 준 특검은 실패했다. 그럼에도 孫씨는 그 정도의 특검도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對北송금사건의 본질은 대한민국의 主敵을 도운 반역사건이다. 반역사건 수사를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김정일의 전위대와 從金세력에 대해 반역면허증을 발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는 이 사건을 덮는 것이 더 큰 국익을 위한 것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역을 허용하는 것이 더 큰 국익이란 말처럼 들린다.

4억5000만 달러의 뇌물을 학살자에게 건네주고 김정일을 만난 김대중 대통령은 對南적화전략문서가 되어버린 6.15 선언에 합의함으로써 한국사회의 좌경화와 북한의 핵무장을 지원했다. 6.15 문서는 김대중이 대한민국의 이름을 빌어가 대한민국이 북한정권의 對南적화 전략의 핵심인 연방제를 수용하는 것처럼 조작했다. 일종의 사기, 반역문서였다. 그 뒤 친북세력은 6.15 선언을 반역면허증으로 삼아 연방제 통일, 미군철수, 보안법 철폐 등 일대 赤化공세를 전개중이고 이 부분에서 공안기관은 손을 놓고 있다. 반역은 내어놓고 하고 애국은 숨어서 하는 세상을 만든 것이 6.15 선언이다.

孫씨는 6.15 선언이 중심부를 차지하는 햇볕정책을 지지할 뿐 아니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공언했고, 그 6.15 선언을 만든 對北불법송금 사건은 덮었어야 했다고 말한다. 孫씨는 좌파와 김대중 지지세력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햇볕정책을 지지하면 6.15선언을 지지하는 것이고, 이는 연방제를 수용하는 것이며, 이는 대한민국헌법 위반행위이다. 대한민국헌법 1, 3, 4조는 反국가단체인 북한정권을 자유민주체제로 흡수하는 방식의 통일만 인정하고 있다. 북한정권과 대한민국을 동격으로 놓는 연방제나 연합제는 헌법이 강제하는 國體와 국가이념을 부정하는 중대한 정치적 범죄행위이다.

현직 군군통수권자가 국민 몰래 主敵의 수괴에게 4억5000만 달러의 뇌물을 바친 행위를 수사하는 것을 미시적이고 옹졸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법치국가의 대통령이 된다면 법은 무너지고, 대한민국은 조종실을 김정일에게 열어주는 셈이 된다. 孫씨는 대통령이 超法的인 통치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王權神授說의 신봉자가 아닌가 의심된다.

이 정도의 對北觀을 가진 그라면 그는 좌파와 김대중 세력의 지원을 받는 정당의 후보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직할 것 같다.

=======================================================
돈 먹은 김정일이 돈 준 김대중 협박

金大中은 「내부의 敵」이었다

(월간조선 2003년 7월호 편집장 편지)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 (mongol@chosun.com)


2000년 6월14일 오후 평양. 金大中-金正日 회담이 열렸다. 金正日은 對坐(대좌)하자마자 이런 말을 했다(배석자의 증언).

『오늘 아침 남조선 텔레비전을 보니까 대학에서 인공기를 걸었다고 검사가 학생들을 구속하겠다고 하는데 지금 여기서 頂上회담이 열리고 있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런 분위기에선 회담을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는 환대를 받으신 걸로 만족하시고 푹 쉬신 다음에 돌아가시지요. 대통령께서도 만남 자체가 중요하다고 하셨잖습니까』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金대통령은 당황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 불측한 발언이, 金大中 당시 대통령과 鄭夢憲 현대그룹이 공모하여 5억 달러를 金正日의 비자금으로 바친 뒤에 있었다는 점을 독자들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즉, 「돈 먹은」 金正日이 「돈 바친」 金大中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막말은 세계 어느 頂上회담에서도 있었을 것 같지 않다. 악마와 사기꾼 사이의 密談에서나 있을 만한 低俗語(저속어)이다.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 金日成 대학교에 태극기를 올린 학생들이 있었다면 金正日은 현장 사살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인간적 윤리에도 어긋난다. 20세나 연장자인 金대통령이 아닌가.

이는 도저히 「돈 먹은」 자의 태도가 아니다. 돈 먹고 약점 잡은 깡패의 태도이다. 金大中씨는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이 자를 「효심 있는 지도자」라고 평했다. 국가 지도자로서는 말할 수 없는 굴욕을 당한 사람이 최소한의 분노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金正日 一家와 金大中 사이의 오랜 인연을 짐작케 한다.


「돈 먹은」 金正日이 「돈 준」 金大中을 농락하고 있을 때 그는 「이제 확실히 金大中의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자신만만해 하였을 것이다. 頂上회담을 5억 달러에 판 그는 걱정할 일이 없었다. 북한 노동신문이 폭로를 하겠는가. 이 거래가 알려진다 한들 『金大中이 수령님을 알현하러 오면서 조국통일에 써 달라고 갖다 바친 돈이다』고 하면 칭송받을 일이다.

金正日로서는 金大中씨와 現代가 함께 만들어 준 5억 달러가 고맙지 않았을 수도 있다. 文藝春秋 2000년 12월호에 실린 金正日의 간부회의 육성 기록(1999년도 작성)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정권을 쥐고 있는 金大中은 야당시대를 먼 옛날처럼 잊어버리고 美帝의 등에 타고, 反사회주의 책동에 음양으로 혈안이 돼 있다. 수령님은, 金大中은 민족주의자임과 동시에 애국주의자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대해서, 그리고 수령님의 사랑과 배려, 동지적 신뢰에 대해서, 오늘의 金大中은 배신으로 대답하고 있다. 金大中은 야당시대에 민주화를 외치며, 우리들에 접근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신뢰와 의리를 모두 저버리고, 反사회주의와 反통일정책에 미친 듯이 나아가고 있다>

金日成·金正日 주변에 있었던 인물로서 이 金正日의 발언과 맥을 같이 하는 증언을 한 두 사람을 필자는 알고 있다.

金大中씨는 폭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金正日과는 달리 5억 달러 비자금 제공 사실을 덮지 않으면 파멸한다는 불안을 가질 이유가 충분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目前에 둔 그해 가을의 노벨 평화상은 물거품이 되고 정치적 실각 상태를 맞을 것이다. 당시 이미 한국의 한 정보 기관은 6월12일 저녁에 「4개 중 마지막 한 개」를 받은 조광무역상사(對南공작기관) 총지배인 박자병이 평양의 金正日 비서실로 「입금사실」을 보고하는 전화통화를 녹음해 두었던 것이다.

金大中씨로선 무엇보다 미국 정보기관의 추적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林東源의 國情院은 송금할 때부터 金正日의 對南공작기관과 내통하고 동맹국 미국의 정보기관을 따돌리는 데 고민해야 했다. 적어도 이 순간 金大中의 남한 정보기관은 敵과 野合하여 대한민국과 동맹국을 반역하고 있었다.


2000년 6월14일 그날 金大中은 대단히 위축된 심리상태에서 金正日을 만나고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약속한 5억 달러 중 마지막 수천만 달러 입금에 차질이 생겼다고 해서 頂上회담을 일방적으로 하루 연기하여 자신을 당황하게 만들고 세계를 놀라게 한 인간과 對面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金正日이 인공기 수사 건을 꺼내면서 『그만 돌아가시죠』라고 위협한 것은 「돈 먹은」 金正日이 「돈 주고 약점 잡힌」 金大中을 더욱 긴장시키기 위하여 한 술책일 것이다. 이날 두 사람이 만든 6·15 공동 선언은 결국 약점 잡은 자와 약점 잡힌 자 사이의 합의였다. 이 합의에 두 사람 사이의 음험한 관계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 않다면 그것이 이상할 것이다.


金大中씨는, 따라서 대한민국은 金正日이 내민 6·15 선언 제2항이란 독약을 마셨다. 그 뒤 한국 사회는 심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그 후유증은 지금의 안보불안, 경제불황으로 심화되었다.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제2항은 金大中씨가 친북적인 자신의 개인 통일방안에 나오는 연합제와 북한 정권의 가장 중요한 對南 적화 전략을 야합시킨 반역적 행위였다. 5억 달러를 매개로 하여 敵과 내통한 金大中씨가 그런 敵과의 야합을 생산해 낸 것 또한 자연스런 일이다. 6·15 頂上회담의 성사가 야합의 구조를 갖고 있었으니 그런 토양에서 핀 꽃도 「반역의 장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金大中씨의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적 행위는 그가 서울로 돌아온 이후 본격화되었다. 이미 필자는 그가 金正日에게 넘겨준 50개 항목의 國益·國富 목록을 정리, 소개한 바 있어 반복 설명을 생략한다(月刊朝鮮 발간 -「대한민국이 金大中을 고발한다」 참조). 「어떻게 대통령이란 사람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가」라고 땅을 친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제야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불법 비자금을, 그것도 對南공작부서 계좌에, 바침으로써 金正日에게 약점이 잡힌 金大中은 결국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을 배신했구나」 하는 감회가 그것이다.


왜 그는 金正日이 주한미군의 통일 후 주둔까지 양해했다고 선전하고 다녔는가(金正日은 입만 열면 철수를 주장하고 있던 그 시점에), 왜 그는 黃長燁의 訪美를 그렇게 악착같이 저지하면서 親北좌익세력의 활동을 방치했는가, 왜 그는 反美운동에 아무 제동도 걸지 않고 방관했는가, 왜 그는 국민세금까지 동원하여 赤字 금강산 관광을 유지시켜 주고 그것을 매개로 金正日 측에 현금이 계속 들어가도록 했는가, 왜 그는 그렇게 갖다 바치고도 국군포로·납북어부 한 사람 데려오지 않았는가(金大中 정부는 오히려 탈출한 납북어부의 귀국을 막으려 했었다), 왜 그는 親與방송의 親北보도를 방치하면서 金正日에게 가장 비판적인 조선·동아일보에 대한 편파적 수사를 감행했는가, 약점 잡은 金正日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인가, 왜 그는 美北 대결에서 동맹국 편에 서기를 거부하고 敵의 입장만 대변했는가, 왜 그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민족반역자 金正日 손에 이렇게 무더기로 넘겨 주었는가. 왜, 왜, 왜인가.

이제는 알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그는 敵에게 약점 잡힌 인간이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號의 선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동안 온갖 詐術과 虛言으로 국민을 속인 다음 이 배를 敵陣으로 몰고 가려고 했다는 것을 이제는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게 되었다. 敵의 공격력을 강화시켜 주고, 국론분열을 조장하여 我側(아측)의 방어력을 약화시킨 뒤에 韓美동맹에까지 금이 가게 만든 金大中은 내부의 敵이었다. 대한민국은 선장실을 차지한 敵과 동침해 온 셈이다. 대한민국이 그럼에도 赤化되지 않았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가 궁금하다. 韓美동맹, 조선·동아일보의 감시와 견제, 저질 상류층이 아니면 벌써 선진국 국민 대우를 받고 있어야 할 건전한 주류층의 존재,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의 중심 잡기, 야당의 역할 등을 꼽을 수 있다. 지난 50여 년간 대한민국 세력이 키워 온 자유의 巨木, 그 나무에 붙은 무성한 잎사귀, 즉 市場·법치·국회·언론 같은 근대 국민국가의 제도가 결국은 金大中의 정체를 폭로하고 그를 지금 삼켜버리고 있는 것이다.


헌법이 내부의 敵을 처단하여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라고 국민들에게 쥐어 준 칼이 국가보안법과 형법의 外患罪 규정이다. 지금 特檢이 다루는 사건을 對北송금사건이라고 하지만 드러나는 범죄의 성격상 이제는 「金大中 반역 음모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 형법에 「반역죄」란 명칭은 없지만 金大中이 金正日과 대한민국에 대하여 한 일들을 「반역」이란 말로 定義(정의)할 수밖에는 없다. 6·15 頂上회담 이후 일본에선 「악마와 詐欺師의 악수」란 표현이 나왔다. 필자는 정확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自國의 대통령을 그렇게 부른다는 데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았다. 다만, 「위선자는 간교한 자에게 망하고, 간교한 자는 정직한 사람에게 죽는다」는 말을 썼다.

돌이켜보면 金大中의 실패와 비극은 金正日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金正日을 그런 식으로 만나지 않고 대한민국의 정상성과 정체성을 유지하였더라면 金大中씨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유지해 간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실패의 공식은 盧武鉉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그가, 金正日을 만나는 것이 무슨 업적이나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런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비참한 대통령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런 악마의 속삭임을 그의 귀에 대고 들려 주는 간신들도 있을 것이다. 국가정보 기능의 사령탑을 장악한 親北 편향 인사들이 그런 말을 할 때도 있을 것이다. 盧武鉉 대통령이 이런 자들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순수하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金正日에게 약점이 잡히지 않았다면 盧武鉉 대통령은 金正日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국군이 있고 세계 최강의 동맹국이 있다. 험프리 미국 부통령은 1966년 2월23일 한국을 방문하여 이런 말을 했다.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은 한국 방위에 대하여 확고한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휴전선 상, 즉 군사분계선 상에 한 사람의 미군이라도 있는 한, 美 합중국 전체의 힘이 한국의 안전과 방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미국과 한국을 합한 만큼 강대한 것이며, 또한 미국도 오늘날 한국과 미국을 합한 만큼 강대한 것입니다(Korea today is as strong as the United States and Korea put together. America today is as strong as the United States and Korea put together). 이에 관하여 여러분은 의문을 가질 필요도, 의심할 여지도 없습니다>


이런 韓美동맹이 울타리, 발판, 우산 역할을 하는 사이에 한국은 군사비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경제개발과 민주화의 과정을 통과하였다. 그동안 미국은 우리의 상품 약3500억 달러어치를 사 주었고 약 500억 달러의 흑자를 허용했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 대하여 바보짓을 많이 한 적은 있지만 나쁜 짓을 한 적은 별로 없다. 이런 韓美동맹이 舊韓末에 있었더라면 日帝 강점은 없었다. 이런 韓美동맹이 李承晩의 소망대로 6·25 전에 있었더라면 남침 전쟁은 없었다. 이런 韓美동맹이 없다면 한국 주도의 統一도 없을 것이다.

이 韓美동맹을 만들어 낸 1953년 여름 李承晩-아이젠하워의 결투가 이번 호에 실록으로 실려 있다. 충남대학교 사학과 차상철 교수는 「李承晩과 韓美상호방위조약」이란 논문에서 미국을 韓美상호방위조약으로 끌어들인 李承晩의 벼랑 끝 전술을 「칼 물고 뜀뛰기」로 비유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부모가 나무를 심으면 자식들이 그늘 덕을 본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韓美상호방위조약은 북한을 포함한 공산주의 세력의 무력공격의 충동을 사전에 억제시킴으로써 한국의 안보와 생존을 확보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李承晩은 신생 독립군인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韓美상호방위조약이라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나아가 그것을 심는 데 성공했다. 한국민은 그 「나무」의 그늘 덕을 아직까지 보고 있다. 韓美상호방위조약. 그것은 李承晩에게 있어서 한국의 생존이 걸린 정녕 포기할 수 없는 생명줄이었다>

필자가 이 대목을 쓰고 있는 6월13일 밤, 바깥 광화문 지역은 反美 시위로 소란스럽다. 金正日과 金大中이 키운 철부지 청소년들이 기성세대와 李承晩·朴正熙의 勞苦를 잊어버리고 망나니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들의 행패에 편승하여 정권을 잡은 세력은 金正日과 金大中이 동반 몰락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두 巨惡은 처한 환경의 차이로 해서 행태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비슷한 권력이었다. 권력남용, 부패, 속임수가 이들의 상표였다. 애국·애족하는 마음이 없는 권력자들의 공통 증상이기도 하다. 金正日과 金大中이 사라지는 것은 자유통일로 나아가는 걸림돌이 제거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대한민국 主導의 통일을 반대하고 나설 세력은 중국밖에 없을 것이고 그 중국을 무력화시킬 힘은 韓美동맹밖에 없다. 危機란 낱말에는 危險과 機會란 뜻이 들어 있다. 종말을 향해 내닫고 있는 두 巨惡으로 하여 오늘날 한반도 위기는 기회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단, 하나의 전제만 유지된다면. 韓美동맹, 그것은 번영의 나무 그늘이자 통일의 생명줄이다

===========================================
대한민국이 기억하는 김대중의 43가지 일들

主敵에겐 유리하고 조국엔 불리한 일만 찾아가면서 했던 이유는 그의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

趙甲濟




남북무장·이념 대치상황에서 대한민국 사람이 조국에 대한 확신과 존중의 마음이 결여되고 그런 마음이 金正日 정권에 대한 적대감·분노·정의감의 不在와 결합될 때는 親北 또는 중립의 좌표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중립지대가 존재할 수 없는 남북대결 구도에서 한국인이 중립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金日成 부자 정권에 유리한 행동을 결과할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는 말이다.

趙甲濟

김대중의 도전과 대한민국의 응전 43개 사례


金大中 전 대통령과 그의 정권이 5년에 걸쳐 일관되게 추진해온 對北·對內 정책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게 만드는 조건과 가치와 원칙에 대한 근 본적 도전행위가 그것이다.
대한민국은 反共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딛고 선 나라이다. 이 이념은 헌법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우리 헌법은 「북한정권을 국가로 인정해서는 안된다」, 「통일은 북한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흡수하는 것이다」고 우리에게 강제하고 있다. 이런 명령에 따라 국군은 북한정권과 그 군대를 主敵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북한정권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찬동하는 행위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해왔다.
金大中 정부는 남북 頂上 회담을 전후하여 냉전구조해체란 깃발을 내걸었다. 세계적인 냉전은 공산권의 붕괴로 종식되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냉전구조도 金正日 정권의 붕괴로써만 해체될 수 있다. 金大中 세력(정부·여당·외곽조직)은 그러나 냉전구조 해체를 외치면서 북한정권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포기하고 오히려 금강산 관광 등 정권을 강화시키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였다. 「북한정권 主敵論」등 한국의 안보구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핵심요소를 없애려는 이상한 정책도 계속해왔다. 냉전구조 해체를 명분으로 삼아 대한민국 해체를 하려고 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이제 그의 임기를 수개월 남겨놓은 시점이다. 金大中 세력이 추진한 對北·對內 정책을 총괄하여 그 利敵性, 違憲性 여부를 검토할 때이다.

가. 군사적 利敵 행위 혐의

먼저 북한군에겐 이롭고 우리 군에겐 불리했던(때로는 치명적인) 열두 개 事例를 소개한다.

1. 영해침범에 굴욕적 대응: 북한 선박이 우리 영해를 침범해도 우리 해군 함정은 경고 사격도 없이『나가달라』고 사정했고 이런 군의 대응에 대해 金 대통령은『적절한 것이었다』고 칭찬했다. 같은 시기 북한군은 실수로 북방한계선을 넘은 우리 어선에 조준사격을 가했다.
2. 남침 함정에도 먼저 쏘면 안된다: 金 대통령은 우리 해군에 대해 북방한계선을 지키되 먼저 쏘면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지시함으로써 현장 지휘관들의 신축적인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지시는 적에게 선제공격을 당하지 않고도 越線남침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그들의 모험을 결과적으로 고무하였다. 그 결과는 2002년 6월29일 불법 월선한 북한 함정에게 선제 기습을 제도적으로 허용하여 우리 해군의 고속정이 침몰하는 사태로 나타났다.
3. 北의 도발징후 축소 및 은폐: 2001년 6월29일 북한 군함이 서해군사분계선을 침범하여 우리 해군 경비정을 격침시키기 전 국군 정보부대는 도발징후를 포착하여 지휘부에 보고했으나 햇볕정책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묵살되었다.
4. 월남참전이 죄인가: 金 전 대통령은, 국군과 국민이 자랑해온 월남참전에 대해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사과했다. 대다수 국민과 군인들은 월남참전이 駐韓 미군의 감축을 막아 우리 안보를 튼튼히 하고 여러 가지 경제적 이득을 올린 민족사상 최초의 해외진출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5. 전쟁범죄자를 主敵으로 불러선 안된다?: 金大中 측근들은 국군이 북한군을 主敵으로 公稱(공칭)하지 못하도록 여러 각도의 압력을 군 지휘부에 넣었다.
6. 공산폭동 진압 국군 卑下: 金大中 정권이 主導하여 통과시킨 제주 4·3 사건 특별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공산폭동을 진압한 우리 국군의 역할을 격하시키는 분위기가 조장되었다.
7. 간첩北送: 남파 간첩과 빨치산 출신자들을 北送시켜주면서 在北 국군 포로의 송환을 요구하지 않았다.
8. 러시아 편들고 미국에 반대: 러시아와 ABM(탄도미사일 방어망 건설 금지 조약) 정책에 동조함으로써 군사동맹국 미국이 추진하는 미사일 방어망(MD: Missile Defense) 정책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부시가 악마적 정권인 金正日을 향해서 「악의 축」이라고 부르자 여당이 들고 일어나 동맹국 정부를 비난함으로써 사실상 韓美의 共敵을 두둔하였다.
9. 韓美 연합훈련 축소: 북한정권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명분하에서 韓美 연합훈련을 축소시켰다. 같은 기간 북한정권은 사상최대 규모의 훈련을 실시했고 병력의 前進 배치를 강화했음에도 金大中 정부는 이를 국민들에게 제때에 알리지 않았다.
10. 主敵에게 국민세금으로 군자금 제공: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북한측에 들어가는 현금이 무기 구입 등 군사력의 강화에 轉用되고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國庫 보조까지 해가면서 사실상의 對北 군사적 지원을 계속하였다.
11. 금강산 댐 건설에 침묵: 北의 금강산 댐 건설과 북한강 상류 차단, 부실 공사로 인한 붕괴 위험에 대해서 북한측에 공식적인 항의나 요구를 하지 않았다. 금강산 댐 붕괴 위험에 대해서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12. 속은 것인가, 속인 것인가: 金大中 대통령은 6·15 남북정상회담 직후 여러 차례 이 회담의 2대 업적을 자랑했다. 金正日과 전쟁을 안하기로 합의했다는 것, 그리고 金正日이 주한미군은 통일 이후까지 주둔해도 좋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金正日은 서해 기습을 도발했으며 주한미군 철수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그는 2001년 푸틴과 회담을 마치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서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林東源 당시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金正日이 통일 이후까지 주둔해도 좋다고 한 주한미군은 지금과 같은 성격이 아니라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를 버린 일종의 평화유지군이다』는 취지의 증언을 하여 金大中씨의 그 전 발언을 사실상의 과장보도로 만들었다.

이상 열두 개 사례를 분석해보면 세 가지 의도성 또는 방향성이 드러난다.
첫째, 북한군의 對南 기습력을 강화시키는 것들이다. 불법적으로 영해나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主敵의 선박에 대해서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먼저 쏘지 말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려 현장 지휘관의 재량권을 제약한 것, 김대중의 이런 親김정일 정책에 영향을 받은 軍지휘부가 北의 해상도발 징후를 보고받고도 이를 축소 은폐하여 해군 함정 격침을 사실상 허용한 것, 금강산 赤字 관광의 보전을 명분으로 하여 우리 세금을 主敵의 對南 군사력 강화에 바치고 있는 것, 서로 전쟁을 안하기로 했다든지 金正日이 駐韓미군의 계속 주둔에 동의했다는 등의 말을 퍼뜨려 對敵 경계심을 약화시킨 사례들은 모두 북한군의 기습을 용이하게 하는 반면 우리의 방어를 약화시킨 것들이다.
둘째, 국군의 존립근거와 士氣를 약화시켰다. 국군이 자랑으로 삼고 있는 월남전 파병에 대해서 대통령이 나서서 당시의 敵國 원수에게 사과하고, 국군의 제주도 공산 폭동 진압 행위를 문제삼고, 6·25 기습남침을 벌였던 민족반역 집단이자 戰犯 집단인 북한정권과 군에 대해서 최대 피해자인 국군이 主敵이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하는 압력을 행사하고 在北 국군포로들을 외면한 것들이 그런 사례들이다.
셋째, 駐韓미군에 대한 대통령의 이상한 발언, 부시의 「악의 축」발언에 대해 여당이 미국을 거세게 비판하고 나온 점, 러시아 편을 들어 동맹국의 가장 중요한 국방 전략을 사실상 반대한 사실들은 韓美 군사 동맹관계를 약화시켰다. 金大中 지지 세력의 일부가 反美 운동에 앞장선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크나큰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위의 12개 사례는 金大中 대통령의 어떤 입장을 반영하는 것인가. 이는 애국인가, 반역인가, 아니면 남북간에 중립인가.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을 놓고 싸우는 타협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 남북무장대치상황의 본질이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대결에서 중립은 없다. 더구나 남쪽의 대통령이 이 대치상황에서 중립에 서려고 한다면 이는 안정환이 한국-이탈리아戰에서 중립에 서는 것과 같은 지휘관의 戰線이탈이다. 공직자가 대한민국과 북한정권의 대결에서, 즉 민족사의 정통과 이단의 대결에서 중립을 선택한다는 것을 자동적으로 利敵 또는 親이단 행위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런 反민족-反국가적 행동이 외국인들에게 좋게 보여 金大中으로 하여금 노벨 평화상을 받게 했을지는 모른다. 그 평화상 덕분에 악당의 힘이 더욱 세어지고 善人들의 고통과 불안이 깊어지며 연장되고 있다면 한국인들과는 상관 없는 賞이다. 金 전 대통령이 그 賞을 받기 위해서, 또 그 상을 받은 뒤 수상자로서의 체면에 연연하여 金正日에 굴종하고 조국의 생존과 번영에 손해가 되는 노선을 견지했다는 의심을 살 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나.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관에 대한 총공격

金大中 세력(정권·여당·외곽조직)은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관(민족사적 정통성·헌법 등 핵심 가치)에 대한 도전·비판·공격을 일관되게 계속했다. 같은 기간 이 세력은 金正日 정권에 대하여 본질적인 비판을 전혀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金正日의 입장을 도와주거나 해명해주고 강화해주는 정책도 폈다. 국민의 가장 큰 교사인 대통령의 이런 언동은 국민들의 공민윤리를 혼란에 빠뜨렸다. 金大中 대통령 때문에 무엇이 악이고 선인지를 가르쳐야 하는, 자녀 및 후세 교육이 어렵게 되었다.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이 대한민국에 공격적이고 金正日에게 굴종적(또는 우호적)이었다는 이 對照는 黃長燁씨 같은 전문가들 눈에 '金大中과 金正日의 결탁관계'로 비쳐지기도 했다. 그의 在任 5년은 대한민국에 대한 金大中의 도전과 金大中에 대한 대한민국의 응전 과정이었다. 관련 사례를 소개한다.

13. 보안법의 근본적 개정 추진: 金 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의 근본적 개정을 추진했다. 그 핵심은 우리 헌법이 강제하고 있는 부분, 즉 '대한민국은 북한을 反국가단체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金 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이 있으면 남북교류가 불가능하다는 선동적 논리를 구사하면서 북한정권을 反국가단체로 보는 현재의 보안법은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보안법은 정상적인 남북교류를 저해하지 않는다. 다만 비정상적인 남북교류, 즉 간첩·공작·반역적 남북 교류를 저지하려는 법이다. 우리가 북한정권을 反國家단체가 아닌 국가로 인정하면 한반도에 2개 주권국가를 허용함으로써 분단을 영구화하는 것이 되며 대한민국을 민족사적 정통국가 반열에서 제외하는 것이 된다는 상식을 무시할 정도로 그는 애국심이 결여되었다.
14.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 시드니 올림픽에서 태극기가 퇴각하고 정체불명의 한반도기가 등장했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통정부의 國旗를 헌법상 반란집단의 叛旗와 동격으로 취급하여 같이 물린 것이다.
15. 방화치사범을 민주화운동가로 인정: 대통령 및 총리 직속의 위원회는 盧泰愚·金泳三 민주 정부 때 발생한 불법 시위·불법 조직·좌익행동·방화치사상 등 범죄의 주모자들을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했다.
16. 불법 장려: 金大中 대통령은 非정부단체의 불법 낙선 운동을 권장하였다.
17. 납북어부 외면: 1970년에 납북된 어부가 28년만에 탈출하여 재외 공관을 찾아가 구원을 호소하자 金大中 정권하의 외교관은 『당신 세금 냈어요. 왜 국가를 괴롭히려고 그래요』라고 문전박대했다. 이 어부는 민간인에 의해 구출되어 귀환했다.
18. 金正日에게 극존칭: 국정원은 공식 발표문에서「金正日 위원장께서 서울을 방문하시며」라는 극존칭을 썼다. 자기 나라 국가원수한테도 쓰지 않은 존칭이다.
19. 巨惡을 미화: 金大中 당시 대통령은 反國家단체의 수괴이자 전쟁범죄자이며 테러지령자인 金正日에 대해「효성이 있고 견식이 있는 지도자」로서 「노벨평화상을 함께 받지 못해 아쉽다」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한반도의 巨惡을 미화, 한국인의 공중도덕을 어지럽혔다.
20. 적화통일방안 상당 부분 수용: 金大中은 6·15 선언 제2항에서 金正日의 對南 赤化 전략인 연방제(낮은 단계 연방제)에 대해서 「남측 통일방안(연합제)과 공통성이 있으므로 그 방향으로 통일을 논의해가기로 하였다」고 하여 북한정권측의 對南 적화 공작을 상당 부분 수용하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통 국가임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가 말한 연합제는 대한민국의 공식 통일방안의 연합제가 아니라 국민과 국회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은 자신의 私的인 통일방안의 연합제이므로 이 행위는 반역이고 對국민사기이다.
21. 6·25 남침은 조상 책임: 金大中은 6·15 회담 이후에는 6·25 남침전쟁의 책임이 金日成에게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남침 책임을 조상과 日帝, 그리고 미국과 소련에게 전가하는 論法을 구사하였다.
22. '유감'을 '사과'라고 왜곡:2002년 6월29일 西海 기습에 대해 북한측 차관보 관리가 '유감'이라 표현한 것을 金 당시 대통령은 '사과'라고 해석하여 받아들였다. 그 며칠 뒤 북한당국은 西海도발이 '한국의 강경파가 미국의 對北적대 정책에 따라 일으킨 계획적 도발'이라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유감'이 '사과'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上記 열 개 사례의 공통점은 金大中이 대한민국은 민족사를 대표하는 정통국가이며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국가라는 점에 대해서 확신이 없거나 약함을 보여준다. 우리 헌법은 북한정권을 절대로 국가로 인정해선 안되고 反國家단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강제하고 있는 데도 그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진 대통령이 배신에 앞정선 것이다.
金씨는 또 金正日이 본질적으로 테러리스트, 전쟁범죄자, 민족반역자란 도덕적이고 사실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그를 미화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한국인들에게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적 역효과를 가져왔다.

다. 김정일에 굴종, 국가의 정통성과 국민의 자존심 훼손

金大中 대통령·정권·세력은 金正日에게 굴종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 국민들의 자존심을 훼손하였다. 여섯 개 사례를 소개한다.

23. 북한정권의 억지를 받아들여 張忠植 총재 해임: 북한정권이 張忠植 韓赤 총재의 月刊朝鮮 인터뷰 기사 내용을 트집잡아 그의 해임을 요구하자 金大中 정부는 이 억지를 수용하는 모습으로 張忠植 총재를 경질했다.
24. 黃長燁 訪美 불허: 金正日이 싫어하는 黃長燁씨의 訪美를 불법적으로 저지하고 그의 활동을 제약하였다.
25. 납치범 북송: 일본인 납치범인 건물간첩 辛光洙를 북송시켜주면서 일본인 피납자의 生死도 송환도 요구하지 않았다.
26. 北美호칭: 反國家 단체를 동맹국보다도 우선시키는 논법을 사용하였다.
27. 北의 하급관리와 동격이 된 한국측 장관: 우리의 장관급 인사가 북한의 하급 관리와 동등한 자격으로 회담하는 관례가 지속되고 있다.
28. 좌익 발호 방치: 金大中 세력(정권·여당·외곽단체 및 지지세력)은 金正日과 그를 추종하는 남한내 좌익세력에 대해 헌법의 명령대로 적대적 태도를 취하여야 할 의무를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방관적(또는 우호적) 태도를 취하여 그들의 발호를 허용하였다. 金大中 정권하의 공권력은 좌익수사를 소극적으로 하는 한편 한민족과 함께 애환을 같이 해오면서 체제를 지키고 강화해왔던 조선·동아 두 民族紙를 탄압했다. 두 민족지에 대한 세무조사는 金正日정권과 국내 좌파의 적극적인 응원하에서 이뤄졌다.

라. 金正日의 대변자 自任

金大中 대통령·정권·세력은 金正日의 대변자 또는 심부름꾼역을 自任(자임)한 듯한 행동을 보였다. 다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29. 서해도발 축소: 2002년 6월29일 서해 도발 사태가 나자 金大中 정부는 金正日의 책임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키는 해석을 내리고 미국에 대해서 예정된 對北 특사 파견의 이행을 촉구하였다.
30.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로비 代行: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테러의 직접 지령자인 金正日이 테러에 대해 인정·사과·책임자 처벌을 하나도 하지 않고 있는 마당에 피해자인 金大中 정부가 나서서 미국에 대해 북한정권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시켜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31. 金正日은 변하고 있다?: 金大中 정권은 계기가 있을 때마다 金正日은 변하고 있다, 金正日은 개혁개방할 것이라는 예언을 되풀이했다.
32. 부시 비판하여 金正日 변호: 金正日이 약속을 어기고 한국 정부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金正日에게 문책하려 하지 않고 부시 행정부의 對北 강경 정책 때문이란 억지 논리를 만들어 확산시켰다.
33. 전쟁하자는 거냐?: 金大中 세력은 서해 도발 같은 무력 기습에 대해 국내 여론이 강력한 응징을 주장하면 『그렇다면 전쟁하자는 이야기냐』는 식의 선동적 논리로써 북한정권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응징에는 전쟁 이외에 局地的 응징과 경제제재 등 수많은 평화적 방법이 있다는 것을 무시한 막말들이 정권측 인사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민족사의 정통국가를 대표하는 金大中이 민족반역 집단의 수괴에게 보여준 이런 굴욕적인 모습은 수많은 한국인에게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분노를 가져다 주었다. 국민들의 국가적 자존심과 主敵에 대한 정의감과 적대감은 중요한 안보 자산이다. 국군의 최고사령관이 이를 파괴하였다.

마. 왜곡과 허위와 과장

金大中 정권은 對北 지원이나 對北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실을 과장·왜곡하거나 나중에 거짓말로 밝혀지는 행동을 상습적으로 자행하였다.

34. 북한特需論: 金씨는 2000년 초에 중동 特需를 능가하는 북한 特需가 올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오일 머니가 쌓이고 있던 1970년대의 중동과 수백만 명이 굶어죽은 북한을 동등하게 비교한 과장이었다.
35. 개성공단: 『개성 공단에서 1년 내에 생산품이 나온다』
36. 철의 실크로드: 아직도 꿈이다.
37. 정상회담 발표문도 믿을 수 없다면?: 金 당시 대통령은 모리 일본 수상과 회담한 이후 대변인을 통해서「일본이 북한과 修交하기 전에 對北 지원을 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발표했으나 그런 합의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와 같은 허위·과장·왜곡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金正日이 워낙 거짓말을 밥먹듯이하는데다가 金大中과 측근들이 그 金正日의 말을 믿었다가 속는가 하면 자신들의 희망사항까지 보태어 과장을 거듭한 때문일 것이다. 사기꾼의 대변자는 자동적으로 사기꾼이 된다.

바. 국가원수로서의 의무태만

金大中 정부는 국가와 국민, 그리고 헌법이 그들에게 강제한 의무를 태만히 하고 있다. 반드시 해야 할 것들을 안하고 있는 이유를 들여다보는 것도 金大中의 진실을 아는 한 방법이다.

38. 고무찬양 방치: 金正日 정권을 고무 찬양하는 표현물이 범람하고 있음에도 수사를 하지 않아 국가보안법의 상당 부분을 死文化시켰다.
39. 主敵에게 주는 뇌물 방치: 訪北 인사와 단체들이 북한에 들어가기 위해 뇌물을 주고 북한에 들어가 金日成 동상과 유해 앞에서 절하는 행동을 방치하였다. 우리의 금품을 받아달라면서 主敵에게 뇌물을 바치는 정신병적인 상태가 화해 협력이란 말 뒤에서 벌어졌다.
40. 간첩수사 저조: 공안기관이 간첩수사도 집권층의 눈치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41. 남침기념행사 축소: 6·25 남침 50주년 행사를 축소시켰다.
42. 좌익인사 訪北 허용: 좌익인사들의 평양 방문을 막지 않아 남북한의 반역공조를 허용했다.
43. 북한인권문제 침묵: 국내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예민한 관심을 보여왔던 金大中 대통령은 한번도 탈북자, 在北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북한내 강제수용소 등 북한 인권 문제를 제대로 제기한 적이 없다. 이는 그가 가짜 민주주의자이고 위선적 인권론자였음을 폭로했다.

金大中 정부는 5년간 金正日이 싫어할 일은 하지 않고 그가 좋아할 일만 찾아서 해왔다면 과연 과장인가. 43개 사례는 일관된 공통점을 갖고 있다. 金正日정권에게 이롭고 대한민국에는 불리한 결과를 내고야말 정책과 조치란 점이다.
金大中 대통령의 上記 정책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존중, 애정,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上記 정책에선 金正日 정권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 및 북한주민에 대한 동정심이 보이지 않는다. 유태인의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자는 동정받아야 할 자에게 잔인하다」
남북무장·이념 대치상황에서 대한민국 사람이 조국에 대한 확신과 존중의 마음이 결여되고 그런 마음이 金正日 정권에 대한 적대감·분노·정의감의 不在와 결합될 때는 親北 또는 중립의 좌표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중립지대가 존재할 수 없는 남북대결 구도에서 한국인이 중립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金日成 부자 정권에 유리한 행동을 결과할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는 말이다. 金大中 대통령의 행동 양태-대한민국에 대해서는 무심하거나 비판적이고 金正日 정권에게는 굴종적이거나 우호적이었던 것의 비밀은 무엇인가. 이런 모든 수상한 현상의 진원지는 金大中 이었다.

==================================================
북한 핵실험은 김정일-김대중-노무현의 합작품


김정일이 핵실험을 포기할까 봐 '핵실험 관계 없이 한미연합사 해체한다'고 격려한 자가 노무현!
趙甲濟

북한의 핵무기 실험을 누가 도왔던가? 국민들이 대통령(국군통수권자)으로 뽑아 安保의 책임을 맡겼던 김대중, 노무현 두 사람이다. 이야말로 생선가게를 고양이한테 맡긴 꼴이다. 두 사람은 불법적으로 공권력을 남용하여 國富와 國益을 反국가단체 수괴인 김정일에게 갖다 바침으로써 핵무기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핵무기 저지 노력을 적극적으로 방해하여였다. 국민들은 그동안 핵개발의 共犯에게 핵개발을 저지하라고 요구해온 셈이다.

1. 핵무기 개발엔 거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1998년 이후 수십억 달러의 현금과 현금화할 수 있는 물자가 북한정권에 제공되도록 도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에 집착하여 남북정상회담을 매수하는 과정에서 현대그룹을 앞세워 4억5000만 달러를 김정일의 對南공작 및 군사비 전용 비밀 통장으로 보냈다. 우리 민족사상 최악의 반역적 행위였다.

2. 금강산 관광을 통해 북한에 전해진 돈은 북한노동당과 인민무력부로 들어가 역시 핵무기 개발에 쓰였을 것이다.

3. 북한은 식량을 수입하지 않지만 비료는 연간 2억 달러어치 이상씩 수입해왔다. 한국에서 매년 비료를 보내주어 이 2억 달러를 군사비로 전용할 수 있게 되었다.

4. 김대중, 노무현씨는 북한이 제네바 협정을 위반하여 우라늄 농축 방식에 의한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북한에 대한 아무런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이 기간에 對北퍼주기를 늘렸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적극적으로 방조한 것이다.

5. 노무현씨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방어목적이며 일리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변호하였다. 그는 미국과 일본이 김정일에게 압력을 넣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한국이 美日과 협조했다면 김정일의 핵무장은 불가능했다.

6. 그는 북한의 핵무기 탑재용 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함으로써 對北경계심을 해제하고 김정일의 핵무장을 사실상 방조하였다. 盧정권은 미사일과 핵실험이 임박했을 때도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국민들을 속였다.

7. 두 정권은 수많은 對北제재 및 압박 수단이 있음에도 이를 김정일 정권에 대해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핵개발을 방조했다. 권총을 가진 경찰관이 칼을 든 강도에 대해 권총을 빼들지 않음으로써 강도질을 방조한 것과 같다. 노무현은 미리 김정일에게 '당신이 아무리 핵무장을 해도 우리는 가만히 있을 것이니 열심히 하라'는 투의 메시지를 보냈다. 가장 중요한 국가기밀을 노출시킨 利敵행위였다.

8. 노무현 정권은 김정일의 핵무장을 방조하였을 뿐 아니라 그 핵무장에 대한 한국의 방어력을 무너뜨리는 데 全力을 경주했다. 韓美연합사를 해체함으로써 핵무장한 敵에 대한 연합戰力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핵우산 제공 여부도 불투명하게 만들려 한다. 그는 미리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한미연합군사령부 해체를 강행하겠다고 선언하여 북한의 핵실험 의지를 격려해주었다.

9. 盧씨는 敵의 핵무장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과 국군의 방어력을 동시에 해체함으로써 한국을 저항불능상태로 만들어 적에게 노출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두 사람은 김정일의 핵무장을 반드시 저지하여야 한다는 국가의지와 정책을 한번도 세운 적이 없다. 오히려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저지 행동을 방해하여왔다. 김정일의 손에 핵무기를 기어코 쥐어주고야 말겠다는 일관된 의지를 보여온 것이 두 사람이었다.

10. 대한민국의 안보책임자가 敵의 핵무장을 도운 이런 행위는 형법 제93조 與敵罪의 혐의사실로 검토해볼 만하다. 즉, '敵國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抗敵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조항이다.
-------------------------------------------------

*10월13일(금) 오후2시 서울시청광장 노무현 고발-퇴진촉구 국민대회

김정일의 核개발을 도운 노무현 퇴진 1000만명 서명운동을 시작합니다!

-김정일-김대중-노무현이 핵개발의 共犯입니다. 간첩을 골키퍼로 세워놓고는 축구를 할 수 없습니다. 반역자들이 대한민국 조종실을 점거하여 抗路를 북북서로 돌렸습니다. 7000만 민족의 불행인 반역 3인방을 몰아내지 않으면 조국이 불바다가 됩니다.

1.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김정일의 핵개발 자금을 제공했습니다. 對北불법송금 4억5000만 달러, 금강산 관광, 현금화되는 비료지원 등 對北퍼주기는 핵무기 개발 등 군사비 증강에 쓰였습니다.

2.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국제사회의 北核 저지노력을 방해했습니다. 김정일을 압박하면 전쟁이 난다는 거짓선동으로써 국민들의 안보의지를 허물고 미국 등 우방국들과 불화했습니다.

3. 노무현 정권은 김정일의 核개발을 두둔하고 걱정하는 애국세력을 공격했습니다. 김정일의 핵개발은 방어용이니 일리가 있다면서 비호해준 대통령은 국민들을 향해서 '별놈의 보수'라고 욕하고 여당대표는 '냉전수구세력'이라고 저주했습니다.

4. 그는 또 김정일의 핵무기 앞에서 대한민국을 저항불가능 상태로 만드는 한미연합사 해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핵실험을 강행해도 안보의 기둥뿌리를 뽑겠다고 다짐했습니다.

5. 노무현 대통령은 전향했다는 증거가 없는 386 공산주의자출신들을 청와대 등 권력핵심부에 배치하여 이들과 함께 김정일의 3大 對南적화공작에 동조하는 반역적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6. 김정일과 내통하는 반역세력이 대한민국의 조종실을 점거하고 있으니 김정일이 핵실험을 하면 조종실에선 환호소리, 객실에선 비명소리가 터저나올 것입니다.

7. 대통령은 스스로 좌파라고 고백했고 그의 귀와 입 역할을 하는 참모들은 거의가 김일성-김정일 추종자들입니다. 총리공관엔 지하공산당 간부출신 남편을 둔 친북前歷 총리가 살고 있습니다.

8. 利敵행위자를 대통령으로 두고 김정일의 핵무기와 대결하는 것은 이완용을 대통령으로 모시고 항일운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결단할 날이 있습니다. 선과 악, 거짓과 진실이 싸우는데 어느 쪽에 서겠습니까? 대한민국 만세, 국군 만세, 자유통일 만세!!!

=========================================================
'김대중이 흰기 들고와 거액의 선물 바쳤다'


고위급 탈북자의 증언: '對北퍼주기 없었으면 개혁 개방했을 것'
趙甲濟

김정일 정권하에서 고위직에 근무했던 한 탈북자는 흥미로운 증언을 했다.

'2000년 6월 김대중-김정일 회담 직후 평양에서 중앙부서 부부장급 이상을 모아서 당 선전부가 강연을 했다. 요지는 김대중이 흰 깃발을 들고 거액의 선물을 바쳐서 이뤄진 것이 평양회담이란 것이었다. 강연자는 또 햇볕정책은 이번 회담으로써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김대중이 북한체제를 존중하고 평화공존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직도 '거액의 선물'이란 말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물론 그때는 김대중이 5억 달러를 보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북한의 많은 엘리트는 김대중이 김정일을 도와주지 않았으면 북한이 중국식 개혁 개방으로 나갔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평양회담 직전에 엘리트층 안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 남한에서 들어오는 원조 때문에 김정일은 개혁의 의지를 포기하고 그런 움직임도 말살했다.'
========================================
김대중 前 대통령, 고발당해


´안보와경제살리기운동본부' 김한식 대표 등 김 前대통령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大檢에 고발.
황현성




16일 오전 ´안보와경제살리기운동본부´(안경본) 김한식 대표와 김상곤 사무총장, 서석구 미래포럼 상임대표, 활빈단 홍정식 대표 및 ´나라사랑어머니연합´ 등 자유진영 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하는 한편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고발인들은 고발장에서 '과거 직업에 종사하거나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저축할 수 없는 엄청난 재산을 가진 부정축재자인 것이 판명되었다'며 '더구나 대한민국의 재산을 미국에 불법유출하는 범죄를 저질렀고, 특히 대한민국에 적대하는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자금으로 지원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 편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주권자로서의 헌법수호역할을 위해 피고발인 김대중을 고발하게 되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아울러 '피고발인에 대한 고발사실은 모두가 정의실천시민연합(Citizens Coalition for Justice)이 김대중 비자금 불법자금에 관하여 조사한 자료에 의해, 뉴욕 검찰에 고발한 김대중 정권 비자금 미국 유입 및 대북 송금 의혹 건에 의한 것'이라며, 뉴욕검찰에 낸 고발장에 담긴 구체적 내용도 밝혔다.(아래 관련기사 참조)

이들은 '스스로를 민주화와 인권의 투사인 것처럼 미화하고 과거의 산업화의 성공과 그 기반으로 이룩한 민주화의 공적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과거사를 실패와 반공독재로 규정한 김대중이, 실제로는 가장 부패하고 더러운 부정축재자이자 사이비 민주주의자'라며 '더구나 북한에 보낸 4억 달러가 달러가 부족한 북한독재정권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무기와 핵개발에 사용되었을 것이므로 김대중은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한 반역자'라고 주장했다.

이와함께 '김대중의 재산은 뇌물, 불법 정치비자금으로 획득한 불법재산'이라며 '그 재산을 외국으로 도피 은닉시키고 불법재산을 반국가단체의 찬양고무, 이적, 항적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국고로 환수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도 했다.

고발장 접수를 마친 이들은 곧바로 대검찰청 기자실을 방문, 기사를 송고중인 기자들에게 고발사실을 전하는 한편 고발 취지를 설명했다. 계속해서 대검찰청 앞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황현성 기자(hhsofdaum@hanmail.net)


[인터넷 독립신문]http://www.independent.co.kr/



















<검찰은 2004년 5월 大選 자금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삼성이 2002년 大選을 앞두고 800억원 가량의 무기명채권을 구입했으며, 이 중 300억원어치는 李會昌 후보 캠프에, 15억원어치는 노무현 후보 캠프에, 15억4000만원어치는 金鍾泌 당시 자민련 총재에게 각각 전달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나머지 500억원에 대해 “채권의 일련번호를 알아야 추적이 가능한데, 이를 알고 있는 최씨와 김모씨가 해외에 있어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하다”며 내사 중지 처분을 내렸었다.
당시 검찰은 한나라당에 건네진 300억원대의 삼성 채권 일련번호는 거의 다 밝혀냈다. 그러나 노무현 캠프 쪽으로는 안희정씨를 통해 건네진 현금 15억원과 채권 15억원을 찾아낸 것이 전부였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삼성 채권 500억원 중 일부가 노무현 캠프 쪽으로 흘러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大選자금이 한나라당에 비해 10분의 1밖에 안 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에 맞추느라 노무현 캠프 쪽으로 흘러간 돈을 검찰이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의혹도 있다.
문제는 검찰이 500억원의 사용처를 밝혀낼 수 있을지 여부다. 검찰은 “최씨의 주소지에 수사관을 4번이나 보냈지만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으나 3개월간 별다른 수사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최씨가 삼성채권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작년 1월 출국해 이학수 부회장이 특별사면된 지 일주일 지난 올 5월 귀국했다는 점 때문에 최씨가 삼성측과 모종의 교감을 지속해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삼성측과 입을 맞췄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검찰은 최씨와 함께 채권 구입을 담당했던 김모씨도 최근 불러 조사했지만 별 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삼성 관계자는 “최씨는 2000년 하반기 삼성증권을 퇴사한 뒤 삼성과는 관련이 없다. 삼성에서 최씨와 접촉한다거나 교감이 있다는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위의 2005년 조선일보 기사는 좌파권력型비리의혹 제2호에 해당한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삼성(회장 이건희)이 여론조사에서 밀리고 있던 야당후보측엔 300억원을 주고 1등을 달리고 있던 노무현 후보측엔 그 10분의 1밖에 안주었다고 믿는 국민들이 4900만 국민중에 있을까? 정보가 빠르다는 삼성이 그런 짓을 하고도 살아남을까? 여기서 이건희-노무현 유착설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500억원어치 무기명채권의 용도를 밝히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밝히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발표를 안한 것이라고 의심할 권한과 의무를 가진 것이 국민이다.

검찰의 현직대통령 감싸기 수사와 낙선된 야당후보 때리기 수사는 2004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급조된 열린당이 다수당이 되고, 그 한 달 뒤 盧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도록 하는 데 공을 세웠다.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이라고 여기도록 하는 데도 공을 세웠다. 이건희의 삼성은 검찰 수사에 협조함으로써, 또는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盧정권을 살린 셈이다. 이 사실을 덮고 넘어간다면 한국의 검찰, 언론, 정치, 국민들은 白晝의 암흑을 깨부술 용기가 없으니 언론자유와 자유민주주의를 누릴 자격도 없다. 삼성은 위대한 기업임으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삼성 경영자의 부정까지 기업수준의 보호를 받아선 안된다. 이건희씨는 治外法權 지대에 살고 있지 않다. 좌파정권의 생존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삼성 무기명 채권 500억원의 행방에 대해서 이건희 회장이 국민들에게 고백해야 한다. 그는 좌파정권이 천년만년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침묵하는 모양인데 지금 고백하지 않으면 고백당할 날이 올 것이다.

기자가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이 이 권력형비리의혹은 한나라당,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씨가 가장 강력하게 주장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어제 정치인들이 모여서 깨끗한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고 맹세했다. 그 맹세가 진실이 되려면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이건희, 노무현씨가 먼저 과거를 백했어야 했다. 대한민국의 과거는 사소한 것까지도, 억울한 것까지도 집요하게 캐고 다니는 이 정권이 왜 한국 제일의 부자와 제일의 권력자 사이에 드리워져 있는 이런 의혹에 눈감는가?
============================================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