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권, 전 세계 테러지원 핵심 국가
北정권 제거 실패, 전 세계 동시다발 테러로 이어질 것
“지금은 미제국주의자가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세계의 혁명적 인민들이 달려들어 수족을 잘라 내버리면, 미 제국주의는 힘을 쓸 수가 없으며, 결국은 뻗어버리고 말 것이다…. 작은 나라들이 달려들어 미 제국주의의 머리와 다리를 각각 절단함으로 보복해야 한다.”(1968년10월8일, 김일성 교시)
북한은 ‘남조선공산혁명의 완수’를 위해 지난 1964년 이후부터 ‘3대혁명역량강화’(북조선, 남조선, 국제적혁명역량강화)노선을 채택했다. 특히 제3노선인 ‘국제적혁명역량강화’에 따라 노동당과 인민무력부에 해외공작기구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북한은 제3세계의 테러 요원들을 북한에 데려와서 훈련시키고 테러 교관들을 이들 나라들에 파견해 교육훈련을 시켜왔다.
북한이 교육시킨 테러리스트만 5천 8백여명
제3국 테러분자들의 교육훈련장소로는, 평양의 19개 특별구역중 하나인 삼석에 있는 15개소의 특별초대소, 그리고 평안남도 강동군 문흥리의 15개소의 특별초대소이다. 특별초대소란 북한의 일반주민들은 접근할 수 없는 특별 훈련 캠프이다.
북한의 테러범 교육훈련 기간은 단기는 3개월부터 6개월, 장기는 18개월이다. 교육내용은 미제의 팔, 다리, 머리를 각개로 잘라내는 기술과 전술, 비합법 침투, 잠복, 게릴라활동, 대적투쟁전술, 통신술, 살인폭파술, 기동훈련 등이다. 1966년부터 김일성이 죽은 94년까지 북한으로 초빙돼 교육훈련을 받은 인원수는 대략 이라크·쿠바·팔레스타인 등에서 온 5,800여명이다.
이와 함께 김정일 정권은 미 본토에 결정적 타격을 주기위해 전 세계적 범위에서 테러 요원을 양성하고 무기나 자금을 제공해왔다. 특히 2001년 4월 미 국무성은 ‘국제테러리즘의 양상 1999’ (Pattern of Global Terrorism 1999)를 통해 북한이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국제적 네트워크와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9.11테러, 김정일이 발상한 전술에 기초
이 때문에 빈 라덴의 테러 기법과 북한의 그것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실제로 북한은 과거 70년대 북한 공군의 주력 기종이었던 미그 15기 등 노후 전투기 1백 40여대를 대남 주요 목표물에 돌진시키는 ‘가미가제식’ 자살결사대를 지난 98년 창설했다.
이 부대는 지난 98년 8월말 김정일 직속으로, 공군사령관 출신인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차수)이 직접 진두지휘 하고 있으며, 원산과 해주 등 휴전선과 인접한 지하공군기지에서 훈련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38항공육전여단의 경우 여자들로만 구성된 자살특공대가 있다. 이 부대는 군사퍼레이드 등 공식행사에 대비해 창설되었으나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폭탄을 안고 주요 시설물을 파괴하는 ‘인간폭탄’임무를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지난 2001년 발생한 9.11 테러는 김정일과 조명록이 발상한 전술에 기초한 것으로, 북한의 테러 교육 과정에 따른 실습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日 월간지 정론, 2002년 3월호)
1999년 여름부터 2000년 말까지 북한에서 의료 활동을 했던 북한인권운동가 노베르트 폴러첸씨는 평양시내의 특별지구내에는 이라크, 팔레스타인, 이란등지에서 온 수많은 아랍인들이 외국인 전용맨션에서 살고 있으며 이들은 북한의 군 시설에도 들어갈 수 있고, 시설 내에도 이들을 위한 전용 숙박소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말에 능숙한 아랍 테러리스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인 아라파트(사망)의 측근 중 한명이 북한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조선어를 유창하게 말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때때로 아라파트는 북한을 방문해 김 부자와 동지적 관계를 다지기도 했다.
실제로 1990년 5월 10일 아라파트가 PLO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해 환영연석에서 했던 말이 1990년 5월 11일자 북한의 노동신문에는 다음과 같이 게재되어 있다.
“우리들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고, 세계 제국주의와 그들의 앞잡이들에 반대해서 같이 싸우는 투사이기 때문에, 큰 위협과 곤란한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그것을 극복 타개하여 공동투쟁을 계속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과 방도를 고안하고,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전투적인 귀국을 방문한 것이다.”
북한은 대외전략무기 수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1974년부터 1996년까지 북한은 무기 수출을 통해 연간 2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미사일 개발은 지난 80년대 초 이집트로부터 스커드-B(Scud-B) 미사일을 도입해 역설계 방법으로 이를 되살림으로써 시작됐다.
이후 적극적인 대외 판매가 이루어졌다. 실제로 지난 1987~88년에는 스커드-B 미사일을 이란에 1백 여기 수출한데 이어 1990년대 초에는 스커드-C의 양산체제를 갖추고 매년 100~150기를 시리아, 인도, 이란 등지에 수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리아 내전서 악명 떨친 북한산 방사포
또 북한은 사정거리 1천7백~2천2백km인 대포동 1호 미사일을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에 기술 또는 부품수출 형태로 판매하고 있으며 대포동 계열 미사일의 개발 과정에서 파키스탄, 이란 등과 공동 개발하는 형태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고사포, 방사포, 박격포, AK 소총 등을 베트남, 태국등 동남아 국가에 판매했으며 잠수정을 아랍에미리트와 베트남 등에 다수 수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미사일 수출 중단 압박에 따라 1997년 무렵부터 미사일 대신 탄약, 장갑차, 대전차포, 군복 등 수출 품목을 다양화 하고 자이르, 이디오피아, 르완다, 콩고, 미얀마, 예멘 등으로 거래선을 확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시리아로 수출된 BM-11 122mm 방사포는 시리아 내전에서 악명을 떨쳤다. 1982년 시리아에서 회교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내전이 발발했을 때 시리아군은 북한이 제공한 `BM-11` 122mm 방사포를 사용해 2 만여 명의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했다.
북한군, 레바논 내전서 이스라엘 군에 의해 체포되기도
이외에도 1982년 레바논 내전 시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시리아에 판매한 BM-11 방사포가 이스라엘군에 노획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은 북한군 24명을 체포하고 25명을 사살했다.
당시(1982년 7월) 이스라엘군 발표에 따르면 체포되거나 사살된 북한군들은 PLO군사고문단으로 활동하다 잡힌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이들 중 몇몇은 시리아 특수부대의 옵서버(observer)로 활동하던 요원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중은 지난 2001년 12월 6일 노벨평화상 제정 100주년 기념집회에 출석해 “빈부의 격차 해결 없이는 21세기의 세계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전쟁과 테러의 원인은 빈부의 격차, 즉 가난한 자의 가진 자에 대한 원한 또는 반항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사마 빈 라덴은 빈궁해서 테러리스트가 되었다는 것인가? 김정일이 돈이 없어서 테러리스트가 되었다는 것인가?
김정일 정권, 세계3위의 생화학무기 보유국가
빈부의 격차와 상관없이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도처에는 북한에서 교육을 받은 테러리스트들이 활개치고 있다. 이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폭 테러를 일으키기도 하며 9.11테러와 같이 수천 명의 인명을 삽시간에 앗아가는 테러를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북한은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6000톤의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서울이나 도쿄와 같은 대도시의 인구를 전멸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김정일은 핵무기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법은 오로지 김정일을 제거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독재를 부추기는 일체의 외부 지원통로를 차단해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한 대북공작에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 김정일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전 세계는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관련기사] 미 전문가 “김정일, 변화시도 의지 전혀없어”
미 의회조사국 한반도 전문가 래리 닉시 연구원
김정일 정권을 ‘적성국교역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논의가 미국과 북한 간에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한 대북전문가가 “북한의 동기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성격이 강하다”며 북한의 변화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났다.
미 의회조사국(CRS)의 한반도 전문가인 래리 닉시 박사는 9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지난 99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과의 무역이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내용 등 북한에 적용해온 적성국교역법의 제한조치 대부분을 해제했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닉시 박사는 “당시 미국은 북한과의 무역이나 경제 활동을 제약하는 내용을 뺏으나 사실상 미국이 얻은 결과는 하나도 없었다. 이후 (미국은) 북한과 새로운 무역을 한다든가 사업을 유치했던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클린턴 대통령이 대북제재를 해제한 이후 서울주재 미 상공회의소가 미국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북한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지금까지 북한은 미국과 무역을 개방하고 경제관계를 시작하려는 노력을 시도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김정일과 그 핵심세력은 미국과 무역개방을 하거나 투자관계를 시작하려면 북한은 투명성 차원에서 진정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북한은 아직 이러한 변화를 시도할 의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닉시 박사는 북한을 적성국교역법 적용 대상에서 빼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것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닉시 박사는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면 대단한 규모의 금융지원을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또는 아시아개발은행과 같은 세계금융기관으로부터 원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닉시 박사는 그러나 “외부 세계의 금융원조는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지더라도 자국 경제를 개방하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이며, 설상가상으로 일본이 북한의 납치 문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지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적성국교역법(US trading with the Enemy Act)에 따라 외국자산 통제규정을 적용해 미국 내 북한 자산을 동결하고 북한과의 교역과 금융거래를 전면 금지했다.
미국의 적성국교역법은 특별히 북한만을 제재하는 법률이나 정책이 아니다. 이 법은 지난 1917년에 제정되었고 공산권이었던 구 소련연방과 관련이 있는 중국, 북한과 같은 나라들이 미국의 ‘적대국가’로 분류돼 그동안 이 법안의 적용을 받아왔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news.com)
*위 기사의 출처는 인터넷 프리존뉴스 입니다.
제2의 9.11테러를 우려한다
- 프리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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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3-09, 1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