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평양에서 김정일 祖父가 주도(?)

수령절대주의 통치 기반 마련 위해 역사 조작
조선통신

올해도 북한은 “평양에서부터 3·1봉기가 시작됐다”고 관영매체를 통해 또다시 보도했다.
김정일은 1970년대 초 노동당 조직·선전담당 비서 시기, 후계자로 공식 지명되면서부터 수령절대주의의 통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역사를 조작해 나가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다.

3·1운동만 보더라도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을 선두로 평양에서부터 전개되었다고 선전하며 김일성 일가만이 반일투쟁을 한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북한은 2002년 3월 1일자 노동신문에서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몸소 키우신 애국청년학생들을 선두로 수많은 각계층 인민들의 참가 하에 진행된 봉기는 삽시에 전국 각지로 번져 전 인민적인 반일봉기로 확대됐다”고 허위 선전했다.

또 2006년 3월 2일 중앙방송에서 “3·1인민봉기는 평양에서의 대중적인 독립만세시위투쟁을 첫 봉화로 하여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장대재에 있던 학교운동장에서는 수천 명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청년학생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국가라는것을 선포했다”고 했다.

탈북민들은 3·1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남한에 와서 비로소 33명의 지도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서울의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의 고등중학교를 비롯한 각 급 학교 교재에도 김형직의 주도하에 3·1운동이 일어났다고 묘사돼 있다. 심지어는 3·1운동 당시 김일성이 7살의 어린 나이에 만경대에서부터 평양성까지 시위대열에 앞장서서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었다고 했다.

북한은 3·1운동을 노동계급의 당과 ‘탁월한 수령’의 지도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당은 노동당을 지칭하며, ‘탁월한 수령’은 김일성 일가를 의미한다.
3·1운동에 대한 평가가 이렇다보니 국가적 명절도, 공휴일도 아닌 평범한 기념일로 치부된다.

북한에서는 민족지도자 33인의 역할도 형편없이 평가 절하되어 있다. 일제에 민족의 독립을 구걸한 나약한 부르주아지로 묘사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보여준 행동은 철두철미 반민족적이며 반인민적인 배신행동이었으며 일제 강점자들에 대한 비굴한 투항행위였다는 것이다.

박민철 기자  pmc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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