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의 직무유기는 국가의 직무유기
2003년 7월 일본의 북한인권단체인 '북조선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회' 대표인 야마다 후미아키(山田文明 )오사카 경제대학교수는 60년대 북한으로 북송(北送) 했다가 탈북한 가족들이 중국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갔었다.
야마다 교수는 그를 돕던 한국인 김기주(47)씨와 함께 탈북자들을 상하이(上海)에 있는 일본인 학교로 이들을 피신시켜 일본으로 망명을 신청하기 위해 진입하던 중 이미 관련 정보를 파악하고 있던 중국공안 당국에 의해 전원 체포됐다.
당시 야마다 교수와 함께 체포됐던 김기주씨는 자신을 면담 왔던 한국대사관 직원의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 외교관보다 먼저 도착한 일본 외교관은 야마다 교수에게 '어디 불편한 것은 없습니까? 최대한 안전하게 풀려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니 안심하고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라고 정중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뒤늦게 나타난 한국 외교관은 '왜 이런 일을 했어? 최소한 몇 달은 감옥에 있어야 하니 그렇게 알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하고는 돌아갔다는 것이다. 김 씨는 자신이 감옥에 갇혀 억울함 보다는 일본 대사관 측과 한국 대사관 측이 자국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한다.
막말로 이런 xx자식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라 것에 너무나 기가 막히고 역겨웠다고 말했다. 탈북자는 고사하고 자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이러한데 탈북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1970년 4월 '봉산22호'를 타고 어로작업을 하다가 북한 해군에 나포돼 북한으로 끌려갔다가 98년 기적적으로 북한을 탈출한 납북어부 이재근(68)씨는 한국정부가 도와주지 않아 2000년 한국에 입국하기 전 2년 동안 중국에서 사지(死地)를 헤매야 했다. 당시 중국주재 한국영사관에 이 씨가 도움을 요청하자 '당신 대한민국에 세금 낸 적 있냐?'며 오히려 호통 친 대사관 직원 때문에 온 국민이 분노했던 사건도 국가를 대신해 해외에 근무하고 있는 외교관들의 정신이 얼마나 썩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
99년 11월 러시아 국경을 넘던 탈북자 7명이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체포되면서 국제사회에 이 사건이 널리 알려지자 러시아 당국은 국제관례를 깨고 이들을 모두 중국 정부에 이송시켰었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이들의 한국 망명의사가 확실하고, 국제사회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해 있음에도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자 7인 전원을 강제북송했다.
한국정부가 신속하게 중국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더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던 문제였다. 2006년 10월 중국주재 한국대사관이 보호하고 있던 국군포로 가족이 중국공안에 체포돼 북송된 사건도 대사관 직원의 실수도 물론 한 몫 했겠지만 갑자기 생겨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자국민 보호는 고사하고 북한주민의 인권에 대해서는 초보적인 성의나 관심도 없는 주중한국대사관의 누적된 태도의 결과다.
하지만 이들만 나무랄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외교관들의 썩어빠진 정신 뒤에는 한국정부의 잘못된 대북(對北)정책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정부는 탈북자가 중국주재 한국대사관에 진입하려다 정문 앞에서 중국공안에게 매를 맞으며 끌려가도 중국 영토 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관여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중일본대사관은 일본인 납치자가 북한을 떠나올 경우 두만강을 갓 넘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북-중 변방지역인 옌지(延吉)까지 차를 몰고 와 신병을 인도해가는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 대사관 측의 변명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일본 대사관의 대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국제사회에 떠들면서 탈북자문제를 푸는 것보다 조용한 외교로 푸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한국정부는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탈북자 문제는 중국정부를 자극해서 공론화하는 것보다 조용히 외교적으로 푸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인데, 중국정부가 국군포로 가족은 물론, 자유를 찾기 위해중국에 숨어사는 탈북자들을 체포하는 즉시 쉴새 없이 북송하고 있는데 조용한 외교로 푼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정부는 김영삼 정부시절 97년 2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중국 망명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중국정부에 탈북자의 강제북송을 막아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한 적이 없다. 한 중국 공안관계자는 '중국이 탈북자들을 강제북송하는 것은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물론 동맹국인 북한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밖에 없지만 탈북자에 무관심하고 적극적인 수용의지가 없는 한국의 입장을 대변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탈북자의 강제북송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심지어 탈북자 색출을 위해 금전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는 북한 당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정부의 조용한 외교는 탈북자 잡는 외교로, 反인권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외교 정책일 수밖에 없다. 이미 2003년부터 3차례에 거친 유엔인권위가 발휘한 대북인권결의안에 기권ㆍ불참하면서까지 북한의 비위를 맞추는 한국정부의 어이없는 대북정책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김정일 정권을 지탱시키는데 식량과 현금 지원은 아끼지 않으면서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을 다하는 한국정부가 유독 중국정부에게만 조용한 외교를 운운하는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는 자신들을 민주화세력이라 지칭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인권을 가장 중요한 국정목표로 삼고 탈북자의 비참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만 진정한 민주화세력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군포로 가족의 강제북송은 단순히 외교관의 직무유기로 볼 수 있겠지만 결국은 대한민국 정부의 탈북자 정책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노무현 정부가 진정한 민주화 세력에 의한 정부라고 한다면 중국정부를 강력하게 설득해 탈북자의 강제북송을 막고, 그 어느 정권보다 북한인권문제에 앞장서야 한다.
탈북자들을 구출하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있고 정확한 지침만 마련된다면 일선 외교관들도 이토록 무책임하게 행동할 수는 없다. 민족에 대한 사랑이 없고 얼렁뚱땅 보신주의가 체질화된 외교관은 단호하게 추방하고 탈북자문제에 대해서는 인권단체나 전문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전문 외교관을 선발할 필요도 있다.
이 모든 것에는 정부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일선 외교관들도 올바른 정신으로 무장할 수 있으며 자국민 보호는 물론 우리 동포인 북한주민의 인권에도 책임감을 가지고 대처하려는 자세가 생길 것이다.
강철환 북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
※ 이글은 월간 ‘헌정’에 소개된 글임
한국정부의 '조용한 외교'는 '탈북자 잡는 외교'
- 강철환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7-03-14, 13: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