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천사의 눈물 [2007-03-14 ]
<중국 광둥성 정치협상회의대표단의 북한 방문기> 북한의 실상을 어떻게 비참하다는 글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외국인들에게 비쳐진 북한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잘 꾸며진 준비된 코스를 따라 북한을 돌아보고 그것이 북한의 전부이며 전체 주민의 생활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실수이다.
12일 중국의 한 인터넷사이트에 올려진 <광둥성(廣東省)정협>위원으로 북한을 다녀온 한 여성의 방문기가 기자에 의해 공개되었다.중국의 포털사이트 www.isak.com 에는 광동성 한 신문사의 기자가 자기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실렸다. 다음은 기자가 쓴 글의 전문이다.
1월 6일 부모님들을 뵙기 심천행 기차에 올랐던 나는 열차에서 몇 명의 광둥성 정협위원들을 만나 함께 가면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타이완의 성공적인 민주주주의로부터 시작하여 총통부인이 재판을 받은 화제를 포함하여 모두가 관심을 드러내고 열띤 논쟁을 벌였는데 오직 민주주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재 가장 뜨거운 정치개혁 화제가 다시 떠오르게 되었고 자연히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의 동란의 시대를 논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자기의 주장을 말하고 또 말하다가 결국은 북한문제로 화제가 모아졌다. 이때 작년 2006년 11월 북한을 공식방문한 적이 있는 여성 정협위원이 자기가 본 북한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가 말하기를 그들은 작년 11월에 북한을 방문했다. 정협대표단의 북한방문을 북한측은 매우 중시했고 적극적으로 환대했다. 매일 제공되는 최상급수준의 3끼 식사, 음악회관람, 각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시장들이 친히 나와 우리를 열렬히 환영했고 동행했다.
우리가 북한에 도착했을 때는 기온이 이미 영하 17도까지 내려간 추운 날씨였다. 그는 남방 사람인 자기는 이러한 추위에 익숙하지 않아 숨을 쉬기도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날 그들 대표단은 평양의 한 노천경기장에서 어린학생들이 진행하는 집단체조를 관람하게 되었다. 북한의 집단체조는 그 수준이 대단했다. 수만 명이 열을 지어 학처럼 춤을 추면서 하나같이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경탄을 자아내였다.
집단체조가 끝난 후 순진한 우리 대표단은 집단체조에 참가한 이 어린천사들과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은 얼굴에 애써 밝은 웃음을 띠고 여러 가지 귀여운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옆에선 아이가 눈물을 뚝뚝 떨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나는 당장에 사진을 찍지 말라고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고 통역을 통해 묻자 우리 측 통역은 “지금 날씨가 영하17도인데 이 아이들이 신은 신발은 얇은 비닐슬리퍼이며 바지도 입지 않고 있다. 그러니 얼마나 춥겠는가”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우리는 누구도 더는 집단체조를 볼 마음이 사라졌다.
그들이 이 눈 위에서 추는 고통의 몸짓을 황홀하게 감상하면서 사진찍을 때에야 비로서 바지도 안 입고 얇은 비닐슬리퍼를 신고 추위에 떨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너무 기가 막혀 온 하루 종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통역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는데 이 애들을 그래도 북한에서 괜찮은 편에 속한다. 여기서 춤을 출 수 있는 것은 특별교육을 받고 나온 간부자녀들 뿐 이라고 한다. 이들은 모두 노래와 춤은 물론 피아노, 손풍금, 등의 악기를 다룰 수도 있다고 했다.
후에 우리는 평양시 교외에 위치한 여러 공장을 방문하였는데 중국의 문화대혁명시기와 똑같은 양상이었다. 공장에 출근하기 전 앞에서 붉은기를 높이 들고 대오를 지어 노래를 부르면서 공장에 출근하는 모습을 우리는 농촌에서도 볼 수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평성시를 참관하게 되었는데 저녁에 시장이 우리 대표단을 환영하는 연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물론 정전이 되는 현상은 중국의 내지에도 있는 현상이지만 시정부의 주최로 외국대표단을 환영하는 행사시간에도 정전이라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기이한 일이 발생했는데 우리 옆에 서있던 복무원들이 마치 로봇마냥 일제히 아무소리도 없이 연회장 밖으로 나가더니 3~4초 후에 온 연회장을 환히 밝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조용히 연회장 안을 빠져나갔다가 곧 몸을 돌려 원래의 위치에 복귀했는데 매 사람의 손에는 촛불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대표단이 북한의 거리를 관광할 때면 주위에는 항상 한 무리의 오리 혀 모자를 쓴 경찰들이 포위하고 있으면서 대표단과 군중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막았다. 그는 중국에서도 문화대혁명 시기에 이런 진풍경이 펼쳐졌다면서 만약외국인이 군중과 무슨 얘기를 했다면 그 군중들은 돌아간 후 좋은 결과가 차례지지 않을 것이며 이를 잘 알고 있는 군중도 그래서 묵묵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이 가는 곳마다 뒤에는 항상 한 무리의 남루한 옷을 걸친 애들이 뒤따랐는데 그들의 모습은 모두가 '머리 큰 인형'같았다. 마치 취양의 가짜분유를 잘못 먹은 '머리 큰 인형들' 말이다.
우리가 어디를 가도 그들은 뒤따랐고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경찰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마치도 도망치는 호수의 오리들처럼 “와”하고 멀리로 튀였다가 또다시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통역의 말에 의하면 그 애들은 모두가 북한말로 “꽃제비”라고 부르는 거지애들이었는데 그들은 얻어간 음식물을 혼자서는 먹을 수도 없고 자기들의 집으로 가져가 식구들과 나누어 먹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우리는 매끼마다 먹는 밥과 테이블 가득히 차려진 진수성찬을 바라보면서 감히 숟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밥상 위에는 하나도 다치지 않은 음식이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우리는 호텔에서 비닐주머니를 하나 얻어서 담을 수 있는 음식은 모두 담아 기회가 있게 되면 그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북한을 알게 해준 그 어린천사와 아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고 하루빨리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 개방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금철 기자 pakchol21@yahoo.co.kr
어린 천사의 눈물
- 박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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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3-15, 08: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