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2001년경부터 핵실험 준비 가능성

"이제 북한에는 법이라는 것은 없다"
핵실험 후 북한 사람들의 의식변화에 대해 최근 음력설을 지낸 후 북한을 탈출한 김인수 씨의 이야기를 중국 현지에서 들어봤다. 김인수 씨는 인민군 장교로 복무했고 제대 후에는 당 간부로 해외파견업무까지 한 바 있는 엘리트다.

김인수 씨는 핵 실험이 진행된 길주군 풍계리에서 갱도공사에 참여했다는 군인을 만났다고 한다. 2004년에 만난 그 군인은 3년 동안 몸담고 있던 부대 이름도 모르고 있을 정도로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갱도공사를 진행했고, 그 외곽에는 두 개 대대가 경비를 섰다는 것.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2001~2년경부터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또한 김인수 씨는 장마당에 가면 농수산물부터 전자제품, 의류까지 없는 게 없다고 밝혔다. 유통되는 물품은 거의가 중국산(産). 단지 식량만큼은 공개적으로 팔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뒤로 감추고 있다가 구하는 사람이 생기면 판다. 그는 “이제 위에서 장사하지 말라고 해도 장마당을 없애지 못한다”고 밝혔다. 마약, 폭발물, 전기선, 동선 등이 중국으로 자꾸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유색금속(금, 은, 동 등)’을 파는 자들을 중형, 사형에 처한다는 공개문도 붙였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것.

한 제철연합기업소의 경우, 포고문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소 직원들이 퇴근 할 때 물자를 배에 숨겨 나와서 개인회사에 파는 일이 계속됐다. 여기에 보위사령부까지 개입되어 있는 상황으로, 개인이 훔쳐온 선철을 모두 다 받아 중국에 팔아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김인수 씨는 이제 북한에는 법이라는 것은 없다고 전한다. “위에서 소리치겠으면 쳐라. 앞에서는 그저 예, 예 하지만, 뒤에 돌아서는 ‘에~익’하며 주먹질을 합니다”

최광혁 기자 bmw0000@emps.co.kr
김수연 기자 nksue@hanmail.net


[다음은 김인수 씨와의 대화 내용]

문: 핵문제에 대하여 상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작년 10월경 길주군 풍계리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정보가 공개가 되었죠. 길주군 풍계리는 어떤 곳이며, 또 이곳에서 핵시험을 했다는 것은 어떤 조건이 유리해서, 여러 가지 조건이 구비되어야 하겠지요. 길주군 풍계리에서 갱도공사에 참여했던 군인을 만나본 적이 있다고 했잖습니까? 그 군인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상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답: 길주군 풍계리란 곳은 저도 가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위치상황에는 아마 길주에서 백암, 혜산 즉 양강도로 가는 설로(철길)방향이 되겠습니다. 제가 다른 선을 통해서 길주군 풍계리에서 갱도공사를 했다는 군인을 만나봤습니다.

우연한 장소에서 만나보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하전사기 때문에 모르고, 자기는 그저 3년 내내 갱도굴 파는 일을 했고, 한 개 대대가 중간에서 굴을 파고 외곽은 두개대대가 보초를 서고 한해 두세 번 정도로 김중린 비서가 승용차를 타고 와서 들러보곤 했다고 합니다.


문: 김중린?

답: 예, 제가 인민군 하전사보고 속해있던 부대가 무슨 부대인지 물어보니 자기는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럼 군대나갈 땐 어떻게 나가느냐 물으니, 평안남도 숙천인가 하여간 평안도 사람이에요, 19살에 군대 나갔다고 하는데 군에 뽑혀가지고 어두운 밤에 차에 실려 길주역(함경북도 길주군)에 내려 다시 밤에 차를 갈아타고 몇 시간을 갔는지도 모르고 골짜기로 오니까 먹는 것도 잘 먹지, 자기는 3년 동안 집에서 보다도 생각지 못하게 국에는 매일 기름이 뜨지, 돼지고기에다 이밥을 꽝꽝 먹어서 ‘무슨 이런 부대가 있느냐’ 하니 계속해 굴 안에 들어가 굴만 팠다고 합니다.

그래서 군사 복무한 위치가 자기가 말 하는 길주군에서 그 때는 ‘풍계리’라는 소리를 안 하더래요, 캄캄한 밤에 차로 이동해서인지 위치는 정확히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너네들 들어간 곳에는 민가도 없느냐’ 물으니 ‘없다’고 하면서 도로는 산길도로인데 그런 데로 잘 냈다고 하던데요. 산으로 도로를 내서 밖에는 두개 대대가 지키고 있었고 자기네 대대에는 대대장 그 외는 다른 사람은 본 것이 없고 자기네 중대가 맡은 굴은 주야 3교대로 해서 굴을 계속해 파고 흙을 내다 버리고 그런 정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TV에서 핵시험을 했다는 내용을 보았단 말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에 아하, 그 때 군인이 하던 말이 맞구나, 얘가 ‘핵시험’ 공사에 동원됐다가 그런 과오를 범해가지고 뛰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 그게 몇 년도 일이지요?

답: 그러니까 아마 2004년 12월 이었습니다.

문: 2004년 12월경에 김인수 씨가 그 군인을 만나 봤는데 그 군인이 하는 말은 3년 동안 길주군에서 1개 대대가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갱도공사를 진행했고, 그 외곽에는 두 개 대대가 경비를 섰다는 것이겠습니다. 북한에 계시면서 핵발전소라든가, 핵연구소라든가, 핵무기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든가 이런 이야기는 들어보신 적은 있습니까?

답: 국가안전보위부 2국을 반탐국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제가 친구가 있죠. 그 친구는 미국과 스위스도 갔다 오고 하는 사람인데 나이는 젊었어요. 금년(2007)에 40살 입니다. 제가 그 친구 보고 너 국가보위부에서 해외 어디든 못 가본데가 없겠구나 하면서 핵 이야기를 하니까 영변핵발전소 안에는 못 들어가고 밖에서 삼촌을 만나봤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삼촌은 영변핵발전소 연구소 소장인가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은 토대가 다 좋으니까 자기 삼촌 만나러 갔다고 합니다. 자기네 국가보위부 신분증이면 어디든 다 들어가는데 자기도 들어가지 못하게 차단하고 무슨 용무로 왔는가? 그래서 삼촌이 연구소 소장인데 만나려 왔다고 그랬더니 연구소 소장이니 더욱 못 만나게 하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운 좋게 담당보위원을 만나게 되어 안에 들어는 못가고 밖에서 삼촌을 만났다고 합디다. 그 친구하는 이야기는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공급이 중앙당부장급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문: 워낙 북한이 폐쇄된 사회이다 보니까 김인수 씨가 중견 간부로 있었으나 핵전문가는 아니었고, 그런 부분에 종사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구체적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되겠군요. 지금까지 김인수 씨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북한이 이젠 핵시험을 했다. 6자회담을 통해서 2.13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우리(북한)가 승리한 것처럼 장군님이 통 크고 대담한 전략, 영도의 탁월한 승리이다. 이렇게도 선전하고 있지만, 인민들 한데는 전혀 관심 밖이다. 인민들은 핵이 있든 말든 상관이 없다.

우선 배만 골치 않게 해 달라! 이런 쪽으로 인민들의 관심이 가 있기 때문에 전혀 국가에서나 당에서 어떤 선전을 하던 관심이 없고, 그런 북한당국이 우리 이젠 핵강대국 됐다. 정치강국, 군사강국, 아무리 선전해도 마이동풍이다, 군인들도 관심이 없고 오직 돈에만 관심이 있다 이런 이야기가 되겠구요.

원래 2.13합의에 따르면 북한은 1단계에서 영변핵발전소를 동결시키고 전반적으로 핵관련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으로 합의가 됐고, 그에 따라서 영변 핵발전소를 동결시키며 중유 100만 톤을 주기로 하는 등 굉장한 대가의 대북 원조를 지원해주기로 돼 있고 또 미국과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국교정상화를 실현해서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동결되어 있는 북한의 자금을 풀어준다는 등 여러 가지 합의를 이루어졌는데 김인수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답: 북한은 그걸 포기하지 못해요. 선생님의 질문을 보충해 드리자면, 우선 그런 상세한 내용은 저와 같은 사람이나 알고 있습니다. 일반 인민들은 전혀 몰라요, 우선 북한 자체가 이번 6자회담이 잘 되면 은행구좌도 열고 중유공급과 같은 물자도 들어온다 등의 선전을 하지 않았어요. 아예 선전하지 않으니 백성들은 그저, 현물은 오면 조금은 알아요. 현물이 도착하며 UN에서나 독일에서 쇠고기 5만 톤 남포항에 도착했다. 이런 것은 신문에 나와요. 한국에서 식량 몇 톤이 어는 항에 도착해 왔다. 그런 정도의 보도나 신문은 나옵니다.

그 다음엔 참고 신문대상들이 알 수 있는데 그것도 대상이 한정되어 있어 별로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일반 백성들은 전혀 몰라요 아예 ‘6자회담이 뭐야’하며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원자로발전소인지 뭔지 건설해 준다는 그거로구나 이렇게 밖에 생각 안 해요.

또한 한국의 경의선이 강원도 그 쪽으로 철도건설 그게 아마 되는구나, 된다 해도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인데, 한국과의 철도가 연결되겠으면 되고 나는 오직 돈을 벌고 내 가족이나 생각하겠다는 것은 저나 일반 인민들도 다 같은 생각들을 해요.

제가 해외에서 조금 있었다는 관점에서 공화국을 보지요. 그 쪽을 보면 사람들의 생각은 지금 어떠한지, 보니 아예 완전히 북한 인민들의 생각은 오로지 돈, 돈만 있으며 뭐든 해결된다. 그러니까 예를 들며 100만원이면 입당한다, 출당된 사람도 복당 되고, 10만원만 먹여도 직장은 어디든 옮겨간다. 차표나 증명서 하나 없어도 돈만 주면 평양까지 무사히 갔다 옵니다.


문: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6자회담이 타결되니까 북한당국에서 전시예비식량까지 풀어가지고 인민들한테 일정량의 식량공급을 하고 그래서 장마당에서 쌀값이 좀 내려가 있다고. 해요 그리고 당국에서 40~50세의 미만은 장사 못하게 통제 하고 있고, 농민시장관리규칙의 규정을 보며 농수산물 제외한 공산품 같은 식량 의약품을 팔지 못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체 팔지 못하게 하다고 그래요.

그렇게 되면 국가가 인민생활을 책임지지 않은지도 하도 오래되니까 인민들은 장마당에 의존해 생존을 유지해 왔는데요, 살 길이 굉장히 막막해지고 그렇기 때문에 불평불만이 굉장히 많다고 그래요. 김인수 씨가 강을 넘어 오기 직전에 함경북도 무산 같은 장마당을 들러 본 적이 있었는지요.

답: 예, 장마당밖에 갈 곳이 없어요, 장마당가야 먹을 것도 다 있고 신심한(한가한) 사람들이 다 장마당에 가지요. 그 말씀에 조금 차이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장에 가면 없는 것이 없어요. 농수산물시장으로 해서 가정전자제품, 의류복장도 다 있습니다.

거의가 중국산이지요. 단지 공개적으로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식량입니다. 쌀 만큼은 공개적으로 팔지 못한다. 그런데 장마당가면 쌀도 다 살 수 있습니다. 어쨌든 다 엮어져 있어 위에서 ‘쌀 팔지 못하게 하라’ 해도 앞에서는 감추고 있다가 뒤에 쌀자루 두고 있다가 쌀을 요구하면 팔아요, 다 이렇게 합니다.

이제는 우선 통제를 못해요. 위에서 장사하지 말라 해도 장마당을 없애지 못한다. 보안성의특별지시문이 내려왔는데 마약, 폭발물, 전기선, 동선 같은 것을 중국에다 막 팔아먹어서, 자꾸 제기되니까

‘유색금속(유색금속- 금, 은, 동등을 이루는 말)을 파는 자들을 심지어 중형, 사형에 처 한다’는 ‘공개문’도 붙이고 유색금속을 팔지 못한다고 하고는 보위사령부 산하 수송회사 같은 데는 제철소에서 나오는 선철을 공개적으로 중국에 팔아먹고 있어요.

이건 사실입니다. 제철연합기업소 지배인이 노동자들을 쌀을 구해주자고 중국에다 쌀과 선철을 바꾸기 위해 중국 국경을 갔는데, 지배인이 울었다는데 이건 사실이고요. 자기네 공장 선철이 차판으로 막 넘어가는 것을 보았답니다. 이건다 보위사령부가 강서지역의 자회사들을 통해 중국에 팔아넘겼던 차판들입니다.

그래서 제철연합기업소 지배인이 장군님한데 제의서를 올렸어요. ‘저는 지배인을 못하겠다’는 이런 제의서를 올린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북한)제철연합기업소는 주석 예비물자요, 최고사령부예비물자요, 군사동원예비물자요, 총리물자요 하면서 있는 것을 다 뽑고 그 나머지로 인민 경제생활에 돌린다”고 보위기관이나 사회 안전기관이 ‘포고문’을 부쳤는데도 그 이후에도 노동자들이 퇴근 할 때는 여자나 남자나 배에다 챙겨가지고 나와 개인회사에다 파는 일이 계속되고 보위사령부와 같은 데서는 ‘포고문’ 관계도 없어요, 기업소 직원들이 훔친 선철을 모두 다 받아요. 보위사령부의 사람들은 순 개인한데서 다 받아요.

‘이젠 법이란 것이 없다’ 북한에서 법이란 것은 법이 아니에요. 한마디로 말해 우리(북한)사람들이 위에서 소리치겠으면 쳐라. 앞에서는 그저 예, 예 하지만, 뒤에 돌아서는 ‘에~익’하며 주먹질을 합니다


문: 추가적으로 한마디 더 질문을 드릴께요. 작년 10월에 북한이 핵시험을 감행한 다음 UN에 대북제제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이 되고 이후 국제사회가 북한의 국경이 사상 유래 없이 봉쇄하고 있지요. 여기 더 해서 중조국경에서 북한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고 또 중국을 통해서 북한식으로 표현하며 자본주의 황색바람이 북한에 유입된다. 그래서 그것을 차단시키기 위한 조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인수 씨는 강을 건너 오셨는데요. 일단 국경봉쇄조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국경을 봉쇄하게 되며 북한당국의 의지하고 있는 요구대로 인민들의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거부하고 당국의 의사를 따라주겠는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일단 우리들 자체가 청진시는 두세 번째 큰 도시기 때문에 실지 제일 밑바닥 인민들 속에 들어가면 북한에서 말하는 자본주의 사상이요 황색바람은 이미 막지 못해요, 다 유포가 되었고 볼 것 다 보고 한국영화, 홍콩영화, 중국영화 별난 것 다 빌려봤다. 제가 보고, 싶다면 다 있어요.

그런데 맨날 특별경비주간이다. 김정일 생일 특별경비기간 등 국경봉쇄다 했어도 100m 하나씩 초소를 서던 것을 10m씩, 실제는 근무서고 있는 것은 아니고 초소 군인들을 더욱 강조하고 주입시키려는 것이에요. 초소에 서있는 군인을 교대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경봉쇄하다, 경비 강화한다, 간첩들이 들어올 수 있다 등의 이런 소리는 군대나갈 때부터 들었기 때문에 믿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북한은 나처럼 5백원(중국 돈) 주며 나올 수 있습니다.


문: 국경이 봉쇄돼도 당국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그래도 불법행위는 다 이루어진다는 것, 자본주의 사상이 유입은 계속될 것이다. 막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말씀 고마웠고요,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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