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한미FTA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수준에서 타결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방송시장 개방이 주요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YTN, 투니버스 등과 같은 케이블 채널의 연합체인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와 언론관련 시민단체, 정부 기구인 방송위원회 등은 '미국 미디어 기업의 세계 방송시장 점유율은 42%이다. 이들에게 시장을 활짝 열어 줄 경우 국내 방송사들은 순식간에 붕괴할 수밖에 없다'며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스크린쿼터 제도의 존치를 주장하는 연예계와 함께 공동 투쟁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 또한 다른 한미FTA 반대 주장과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현재 한미FTA에서 미국이 주장하는 것은 CNN 등의 한국어 방송과 국내 광고 유치 허용, 방송채널사업의 외국인 소유 지분 49%에서 51%로 완화, 방송 관련 규제의 전반적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방송계는 이를 모두 수용하게 될 경우 '한국방송시장이 붕괴한다'는 표현을 사용해 설명하고 있다.
▲방송시장 붕괴?
하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방송시장의 붕괴'란 단어의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면 뭔가 이상하다. 현재 우리나라 방송시장은 철저히 정부의 규제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돈이 많다고 무조건 방송국을 차릴순 없다. 방송사업자에 대한 것이 철저히 법으로 규제되어 있다. 공중파 TV는 물론 라디오, 케이블 채널 또한 정부 산하기관인 방송위원회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때 인허가의 심사 기준은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공익성의 실현 가능성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계획의 적절성 ▲지역적·사회적·문화적 필요성과 타당성 ▲조직 및 인력운영 등 경영계획의 적정성 ▲재정 및 기술적 능력 ▲방송발전을 위한 지원계획 ▲기타 사업수행에 필요한 사항 등으로 일반적 사업과는 크게 다른 기준에서 평가한다.
이 때문인지 주식소유에도 제한이 많다. 지자체와 정부, 방송진흥위원회, 종교단체는 30% 이상의 지분을 가질 수 있지만 대기업은 방송사의 지분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있다. 신문 사업자의 경우에는 주식의 33% 이상을 소유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해외방송을 인공위성을 통해 받아 방송할 경우에도 방송위원회의 허가가 필요한 데 이때는 정통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외국인이나 외국법인, 외국단체 등은 아예 국내에서 방송사업의 주체가 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나마 가능한 게 자본참여인데 위성방송의 경우에는 33%, 유선·케이블 방송의 경우에는 49%를 넘는 지분을 가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방송사업자가 합병, 분할, 사업양도, 분야변경, 구역변경 등을 할 때나 대표자나 방송편성책임자 변경, 상호 변경, 이사를 할 때도 방송위원회 등에 변경 내용 허가를 신고하거나 승인받아야 한다.
이처럼 방송과 관계된 사업의 진입장벽이 높다보니 과거 일부 정권에서는 방송을 정권의 통치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이때 저항한 언론인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그 시류에 편승해 하나의 권력층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방송계는 언론계 중에서도 가장 배타적이면서도 특권의식을 가진 사회로 발전하게 된다. 게다가 영상으로 전달되는 정보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는 상황에서 이들은 하나의 독과점 시장을 형성해 왔다.
▲소비자 없는 방송시장
문제는 방송시장이 이런 식으로 형성되면서 정부는 법률과 제도, 그리고 돈으로 방송이 가진 힘을 규제하려 했고, 방송은 정부를 견제함과 동시에 공생관계를 맺고자 했다. 이렇다보니 실제 소비자인 시청자들은 권력과 기득권에 의해 시장에서 배제돼 버린 것이다. 현재 국민들은 공영방송인 KBS에 의무적으로 시청료를 내고 있다. 그러나 난시청지역이 늘어남에 따라 대다수의 국민들은 공중파 방송을 보기 위해 월 수 천원의 이용요금을 내고 유선 케이블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이들 방송사업자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방송업계 관계자들은 한미FTA를 통해 해외방송이 들어오게 되면 국내 방송시장이 완전히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거대한 자본과 풍부한 컨텐츠로 밀고 들어오면 '영세한' 우리나라 미디어 업계는 초토화된다는 것이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좌파 시민단체들도 이를 '시청각 미디어 분야를 팔아넘기는 행위'라며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방송과 문화를 핵심으로 하는 시청각미디어 분야는 정부의 총체적 협상 실패를 가리고 '묻지마 체결'을 하기 위한 막판 퍼주기 카드가 결코 아니다'라며 '시청각미디어 분야를 이런 식으로 외국에게 팔아 넘기는 나라는 없다'고 정부를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한미FTA에서 미국과 방송미디어 분야에 대해 협상하는 것을 '영화, 방송, 문화서비스를 통째로 내던지는 협상'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들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방송미디어, 문화서비스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일까?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해외 언론과 국내 언론의 경쟁이라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접근한다면 바로 공급자의 다양화가 아닌가?
공급자가 다양해지는데 시장이 붕괴한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다. 때문에 이들이 실제로 우려하는 것이 사실은 이미 사회의 강력한 기득권이 되어버린 방송계가 차지하는 권력과 그 위상이 줄어드는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소비자의 시각으로…
그렇다면 이들의 걱정대로 방송미디어 분야가 미국에게 개방되었을때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날까?
먼저 국내의 대표적 뉴스 매체와 미국의 대표적 뉴스 매체를 비교해보자. 24시간 뉴스채널이라는 YTN은 세계 최대의 뉴스채널이라는 CNN과 경쟁해야 한다. YTN은 연합뉴스가 만든 케이블 방송이다. YTN의 매출은 2006년 말 현재 832억원, 직원 수는 593명이다. 민영화를 통해 코스닥에 등록되었지만 지금도 한국전력과 KT&G, 한국마사회가 지분의 50% 이상을 갖고 있다. 작년에는 서울N 타워를 CJ그룹에 임대해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1980년 6월 테드 터너가 설립한 CNN은 1996년 타임워너사가 인수했다. 타임워너의 매출은 2006년 말 현재 436억5천200만 달러, 수익은 29억500만 달러다. 타임워너의 계열사가 된 CNN은 현재 6개의 케이블 방송, 3개의 독립 방송망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6개의 인공위성을 통해 세계 212개국 1억5천만명의 시청자들에게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CNN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속보성과 여과되지 않은 사실 전달이다. 때문에 전체주의 국가들은 CNN 방송이 자국에 들어오는 것을 꺼릴 정도다.
이런 기업과 경쟁하려니 YTN은 물론이고 다른 공중파 방송들도 두려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자신들과는 달리 국내 정치세력이 종속되지도 않으니 걱정될 것이다. 반면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보는 기분이 들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공중파 방송들이 보도하는 뉴스, 특히 한반도 및 그 주변 국가에 대한 뉴스의 공신력은 형편없이 떨어져 있다. 그러나 미국 뉴스들은 미국의 시각에서 여과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매 시간 해댈 것이다. 특히 친여 매체들이 보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북핵 관련 사실들이 시청자들을 찾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항상 새로운 정보에 목말라하는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해외정보와 새로운 소식을 얻기 위해 케이블 TV를 통해 일본 NHK나 미국 CNN, 블룸버그, 영국 BBC 뉴스 등을 시청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방송에서 한국어로 한국 소식도 다루게 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일까? 그렇게 되면 정부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 내용이나 전하는 국내 공중파 방송의 9시뉴스 시청률은 토론 프로그램 시청률에도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국내 방송계 또한 미국 매체를 따라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될 것이다(물론 기자는 새로운 3D업종이 될 것이다).
즉, 방송미디어 시장의 개방은 방송시장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공급자에게서 소비자로 방송의 선택권이 넘어가는 결과를 낳는다. 그럼에도 국내 방송업계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소비자를 도외시한 주장을 하거나 심지어는 사실왜곡까지 하고 있다. 여기서 지금 국내 방송언론계 인사들과 소위 언론개혁세력이라는 자들의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한국 방송계의 부활을 위해
이런 국내 방송미디어계의 위기는 사실 하나의 기회다. 뉴스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국내 방송계 컨텐츠의 90% 이상이 일본에서 베낀 것이라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시청자들 앞에서는 늘 창의력, 창작의 고통 운운하지만 해외여행과 유학이 자유로워진 후에는 더 이상 그런 거짓말이 통하지 않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 상당수가 한국 드라마는 보지 않는다. '일드족'미드족'이라고 해서 미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를 스스로 구해서 본다.
외국 드라마에는 지긋지긋한 불륜 이야기, 4각 관계, 재벌들의 사랑타령, 출생의 비밀 따위가 없다. 이제 우리나라 시청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또는 흥미진진하고 탄탄한 구성을 가진 외국 드라마를 더 즐기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막까지 자발적으로 만들어 배포한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방송이 이 정도로 외면당하면 기존의 방송계 인사들은 거의 그만둬야 한다. 그럼에도 기존의 방송계가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법과 제도가 이들을 철저히 보호했기 때문이다.
이런 보호막이 사라지고 역차별이나 불편부당한 규제들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리고 미국 매체들과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까지와 같이 학벌이나 소속사에서의 기자 직함으로 큰 소리 치는 자들은 모두 퇴출되고 정말 똑똑하고 아이디어가 빛나는 기자들과 새로운 방송인들이 대접받게 될 것이다. 또한 컨텐츠 제작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스타들의 몸값 또한 크게 깎임으로서 우리나라 방송계도 제대로 된 컨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 스탭들 또한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한미FTA에 반대하는 방송관계자, 영화인들은 '민족정신이 필요하다, 한국 사람은 한국 방송, 한국 영화를 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 또한 어린 시절 영화라고는 거의 외화만 봤던 사람들이다. 차라리 지금 젊은 세대들이 그들보다 더 민족적이다. 젊은 방송인들이 훨씬 더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열심히 일할 수 있다. 예술을 빙자해 역겹고 비정상적인 컨텐츠나 만들어내고는 시시덕 거리는 자들에게 왜 소비자들에 굽실거려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제 한미FTA를 통해 소비자는 정당한 권리를 찾고, 기득권 세력 때문에 인간다운 대접도 받지 못하는 젊은 방송인들 또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찾아 정상적인 방송계를 만들어야 한다. 기득권에 대한 자신들의 탐욕을 애국심과 민족의식으로 어떻게든 포장해 보려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구한 말의 위정척사파 같아 답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경웅 기자(enoch@freezonenews.com)
*위 기사의 출처는 인터넷 프리존뉴스 입니다.
왜곡된 방송 시스템 바로잡는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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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3-31, 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