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교사가 전교조를 고발한다'

"전교조 칼에 움츠리지 말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라. 그리고 전교조의 더러운 칼을 이기고자 한다면 위대하고 거룩한 스승의 칼을 들고 일어나면 된다"
<편집자 주 : 뉴스앤뉴스는 전교조(전국 교직원 노동조합의 약칭)의 실상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5년 전부터 전교조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정재학 선생의 활동상을 연재물로 보도한다.

전남 영암에 있는 도포중학교 국어 교사인 정재학 선생은 전교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들어가 자기 이름과 직책, 연락처를 밝히고 자신이 교단에서 직접 체험한 전교조 교사들의 패륜적 행위와 부도덕성을 고발하고 있다.

시인이기도 한 그는 2005년 4월, 「현직 교사가 최초로 고발한 전교조의 실체-집으로 가는 길」이란 책에서 『전교조 칼에 움츠리지 말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라. 그리고 전교조의 더러운 칼을 이기고자 한다면 위대하고 거룩한 스승의 칼을 들고 일어나면 된다』고 외쳤다.>


『드디어 조회 시간. 교감 선생이 전 교사들 앞에서 정식 사과를 하였습니다. 교감 선생의 사과가 끝난 뒤 교장 선생이 그 여교사에게 「사과를 받은 입장에서 한 마디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 여교사는 교감 선생에게 삿대질한 행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아주 슬픈 목소리로 그동안 힘들고 괴로웠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어떻게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지 참으로 가증스럽더군요.

여교사의 발언이 끝나자 해직 교사 출신의 전교조 교사가 저를 지목하고서는, 교사들에게 싸가지 없다고 한 말에 대해서 사과를 요구하였습니다. 저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른에게는 어른 대접을 해야 하고 사람은 정도껏 행동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죠. 그랬더니 전교조 교사들이 연달아 나서서 제 말꼬리를 잡고 시비를 걸기에 화가 나서 옆에 있던 蘭(난) 화분을 교무실에 바닥에 던져 버렸습니다.

이날 오후, 전교조 교사들은 두 차례 모임을 갖고 저를 형사고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날이 2002년 9월6일입니다. 그 다음날, 9월7일부터 저는 일선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교조 교사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고발하는 글을 전교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음은 정재학 선생과의 일문일답.

-전교조 교사들이 무슨 혐의로 형사고발하였습니까.

『화분을 던진 행위는 살인미수이며, 여교사들에 대한 욕설은 성희롱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저를 전남 교육청과 여성부에 고발하였습니다. 조사를 벌인 전남 교육청에서 저에 대해 아무런 제제조치를 내리지 않자 전교조 교사 4명이 年暇(연가)를 내고 이를 항의하러 서울에 올라가기도 하였습니다.

전교조 교사들은 제 고발에 돈이 필요하다며 1인당 10만원씩 거두었습니다. 그 중엔 제 친구도 있고, 대학 후배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교회 장로 직책을 가진 교사도 있었습니다. 그 분은 나중에 제게 「대세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낼 수 밖에 없었다」며 사과를 하였습니다. 제가 아무 탈 없이 진도실업고를 떠나게 되자 남은 돈을 나눠 가지더군요』

-전교조 홈페이지에 어떤 글을 올렸습니까.

『전교조란 단체의 탄생에서부터 일선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교조 교사들의 문제점이었죠. 제 체험에 근거한 글이었습니다. 거의 매일 글을 올렸습니다. 저는 「진도실고 국어교사 정재학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고자 하는 말에 대해서 이의나 의문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질의해 주십시오. 성의껏 답하겠습니다」라고 밝히고 당당하게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전교조에 대한 정면 비판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체험에 근거한 정재학 선생의 글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다른 글에 비해 조회 수가 두 세 배 높았다. 그의 글은 교육현장에서 침묵하고 있던 反(반) 전교조 교사들로 하여금 그들이 체험한 사례를 공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교조 측은 아무런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가끔씩 협박과 인신 공격성 글이 있었을 뿐이다. 대신, 전남 전교조는 각 지부와 지회는 물론, 단위학교 분회까지 회의를 열어, 정재학 선생이 올린 글 12편에 대하여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키로 결정했다.

그 후 정재학 선생은 경찰서를 수없이 드나들며 조사를 받았다. 이 사건은 전교조라는 단체가 공익에 끼치는 영향을 감안하여 명예훼손일 수 없고, 또한 정재학 선생이 실명과 직책을 밝히고 토론을 제안하는 형식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때부터 시작된 전교조와의 전쟁이 5년째 진행 중이다.

계속되는 정재학 선생과의 일문일답.

-불이익은 없었습니까.

『전교조 교사들 사이에서 완전히 왕따 당했죠. 아침에 출근해 학생과 사무실에 있으면, 평소 저를 따르던 나이 어린 전교조 소속 체육과 교사가 사무실에 들어와 저를 아래 위로 한번 훑어보곤 욕 한 마디를 던지고 가고, 밥 먹으러 식당에 늦게 가면 먼저 와 있던 전교조 교사들은 고개를 돌려버리고, 식당에 먼저 가서 앉아 있으면 제 주변엔 아무도 앉지를 않았어요. 빈 탁자에 혼자 앉아서 밥 먹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는 체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수모를 어떻게 견뎠습니까.

『그럴수록 기어코 이겨야 하겠다는 분노의 에너지가 생기더군요. 5년이면 지칠 만도 하겠지만 전교조가 괴롭히니까 그것이 에너지가 되어 지금까지 견디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 말고도 전교조와 싸우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 외롭지 않습니다』

-전교조를 처음 만난 것은 언제입니까.

『1988년 전남 고금도에 있는 고금중학교에 있을 때입니다. 전교조 결성을 준비하던 일단의 「교사 집단」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서 첫 발령받은 젊은 선생들이었죠. 당시 고금중학교 전체 교사는 30여 명인데, 전교조는 젊은 교사 위주로 결성되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대학가 운동권 조직에 직ㆍ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었어요. 교직 경력이 많아야 5~6년 정도 밖에 안 되는, 교육이 뭔지도 잘 모르는 새파한 젊은 교사들이 그 당시 외친 것이 참교육입니다. 결국 그 참교육이란 것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것임을 나중에 알았습니다만, 처음엔 순수한 의미로 받아 들였습니다. 전교조 출범 당시의 목적에 대해선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저는 교직생활 7년 차의 중간세대였습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못 본 척 외면하지 않고 분노하는 것이 제 성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교장선생들 입장에서 저는 버리기엔 아깝고 먹기엔 귀찮은 계륵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전교조 교사들은 저에게 집회 참석도 권유하고 선배 대접도 해주었습니다』

-전교조가 교직 사회에서 지지기반을 확대할 수 있었던 동기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당시 교직 사회의 풍토, 구체적으로 말하면 「과거 교장선생들의 잘못된 관행」도 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교조 출범 이전의 교장은 교사들의 보직과 인사에 전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선생들은 교장을 「백색 건물의 제왕」이라 불렀습니다.

저도 초임 교사 시절엔 교장 선생과 많이도 싸웠습니다. 지금의 교장ㆍ교감 선생들이 전교조 교사들로부터 엄청나게 수모당하고 있는 것은 과거 교장ㆍ교감들이 뿌려놓은 업보이고, 그래서 저는 그 부분만큼은 자업자득이라고 말합니다』 <5편 끝/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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