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北공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 즉 漢族과 다른 북방유목민족 출신임을 분명히 해야.
오늘 춘천의 강원대학에선 몽골학회(학회장 周采赫 강원대 교수)가 주최한 아주 뜻 깊은 학술 발표회가 열렸다. 주제는 중국의 東北공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였다. 이날 발표회에서 여러 발표자들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북방유목문화를 태반으로 한 나라라고 규정하고 민족의 원형질을 확인함으로써 민족적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중국의 제국주의적 역사관에 대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축사를 통해서 대강 이런 말을 했다.

“서기 668년 신라는 唐과 손을 잡고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켰지만 한반도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한 唐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金庾信, 文武王 등 신라 지도부는 전쟁인가, 평화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그들은 전쟁을 선택했다. 對唐결전이었다. 이때 신라가 평화를 선택했더라면 우리는 지금 중국 산동성 소속이 되어 중국말을 쓰는 중국인으로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 작은 신라가 왜 세계제국을 상대로 결전을 선택했을까? ‘우리는 너희들과는 달라. 너희들 밑에서 살 수 없어’라는 정체성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정체성이 민족적 자존심으로 승화된 것이 아닐까?

즉 당시 신라 지도부는 “우린 북방기마민족 출신이다. 너희 농경민족과는 出自가 다르다”는 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삼국통일을 완성한 文武王 비문엔 ‘나의 조상은 (흉노왕자) 김일제이다’는 뜻의 글이 새겨져 있다. 문무왕은 자신의 집안이 흉노족이란 점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즉 한글을 만들 때 ‘우리 말은 중국과 달라···’라고 말했다. 말이 다르다는 것은 思考方式이 다르다는 뜻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반대한 최만리 등은 몽골 오랑캐처럼 왜 별도의 글자를 만들어 부모 나라인 明을 거슬리려고 하느냐고 반대했다. 최만리 등 주자학자들은 이미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혼을 중국에 팔아버린 사대주의자였다. 철부지 같은 이들을 타이르는 세종대왕은 어른 같다. 세종대왕은 “우리는 중국 사람들과 출신이 다르다”는 점을 의식했던 것 같다.

신라는 對唐결전을 통해서 삼국을 통일했으나 곧 唐과 다시 국교를 회복하여 친선관계를 맺었다. 그리하여 동북아에서 약250년에 걸친 평화가 도래하여 고대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漢族과 韓民族은 그 뒤 1300년 동안 친선관계를 유지했다. 중국의 漢族 정권은 한번도 한국을 침략하지 않았다. 1950년 10월 毛澤東이 공산군을 들여보내 한국의 北進통일을 방해하기까지는. 漢族의 신라에 대한 존중심이 이 친선관계의 바탕에 있었을 것이다.

요사이 중국의 거대한 팽창은 대한민국을 7세기말의 신라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한다. 어떻게 하면 중국이란 거대한 磁石에 빨려들지 않고 국익과 민족혼을 지켜갈 것인가? 신라처럼 한국도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國力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중국의 영향권에 들지 않고 대한민국의 國益과 자존심을 지킬 만한 힘이 있다. 그 힘으로써 한반도를 자유통일하여 7000만 민족이 강국을 만들어야 동북아에 평화가 온다. 한반도가 분열되면 동북아엔 전쟁이 찾아온다. 한국이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강하게 되는 길은 북방유목문화를 태반으로 한 민족이란 정체성을 확실하게 한 바탕에서 농경민족인 漢族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고 힘을 바탕으로 대등하게 교류, 친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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