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전략과 대북전략, 승리는 누구에게?

<황장엽 진단2> ② 남한의 대북전략과 북한의 대남전략 비교
<북한민주화위원회 황장엽 위원장은 <자유북한>3~4월호에 발표한 ‘현 정치정세와 민주주의적 당면’을 통해 남북한과 관련된 다양한 정세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본 방송은 ① 남북한의 정체성 비교와 성공 및 실패의 요인 ② 남한의 대북전략과 북한의 대남전략 비교 ③ 핵과 6자 회담 문제 ④ 남북통일을 향해 등 4회에 걸친 연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살펴본다.>

황장엽 위원장은 남한의 대북전략에 있어서 가장 원칙적인 입장은 노예주와 노예주를 구분해야 하듯이 김정일 독재 집단과 독재의 희생자인 북한 주민들을 엄격히 나눠보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재 남한의 일부 정치가들이 주창하고 있는 소위 햇볕정책은 민주주의적 근본입장에서 탈선한 비민주주의적 대북정책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그는 햇볕정책에 대해 적어도 민주와 반민주화의 관계에서는 정상적인 대응방식이 아니라고 비판하면서, 김정일 독재체제가 햇볕에 녹기는커녕 선군사상으로 더욱 개악되었고, 독재의 옷을 벗기는커녕 핵무장까지 곁들여져 더 위험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비판했다. 반면에 남한에서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옷을 벗는 사람들이 급속히 증대하게 됐다는 것.

황 위원장은 공산주의자들의 무자비한 계급적 독재와 억압이 일제의 민족적 독재보다 더 혹독하다는 것은 많은 예를 들 필요도 없다면서, 이러한 북한의 민족반역집단과 민족공조를 약속하는 죄는 을사 5적보다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변하지 않은 목표는 '남한까지의 수령독재체제 확대'

한편 북한의 대남전략에 대해 황 위원장은 남한까지 수령 독재체제를 확대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며, 아직까지도 이 목표를 중심으로 국내정책과 대외정책, 대남정책이 다 일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대남전략은 기본적으로 폭력 제일주의에 의거하고 있어 전쟁에 의한 통일을 1차적 방법으로 보고, 내부와해 전략을 보조적 전략으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개혁개방으로 나가게 된 중국이 북한에 두 가지 입장, 특 북한과 동맹관계를 유지하지만 전쟁은 절대 반대한다는 것과, 동맹관계에 있어서도 지도사상적인 면에서의 지지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힌 이후 북한의 대남전략의 목표는 남한에 좌파 용공정권을 세우는 것으로 바뀌게 됐다는 것이다.

황 위원장은 6. 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이러한 북한의 대남전략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유사한 방법으로 남부 베트남을 장악한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탈북자 문제는 단순한 인도주의적,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북한 민주화의 과정에서 거대한 전략적 의의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김수연 기자 nksue@hanmail.net


[다음은 황장엽 위원장의 글 본문]

▶ 한국의 대북민주화 정책

다음은 한국의 대북 민주화 전략이 무엇인가, 북한의 대남 전략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인 만큼 대북정책도 어디까지나 북한을 민주화하는 전략으로 되어야 합니다. 민주화하는 전략에서는 기본이 독재정권을 반대하고 독재에 희생되고 있는 북한 인민들을 도와주고, 각성시키고, 그들과의 통일을 강화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의 대북 민주화 전략의 기본으로 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적인 원칙에서 볼 때, 국가와 사회의 주인은 인민입니다. 정권은, 좋은 정권의 경우에도 인민의 위임에 의하여 인민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지 정권 자체가 인민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인민이 인정하는 한에서, 인민의 이익을 옹호하는 한에서 대통령이 인민을 대표할 자격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주민을 굶어 죽이고, 온 나라를 감옥으로 만들고, 탈북자를 대량적으로 만들어내고 주민들의 모든 권리를 다 빼앗고, 자기의 노예로 만드는 북한의 독재 통치자는 북한 인민을 대표하는 국가 지도자인 것이 아니라 인민을 배반한 반역자입니다. 노예와 노예주를 갈라 보는 것처럼 북한의 김정일 독재집단과 독재의 희생자인 북한 동포들을 엄격히 갈라 보아야 합니다.

인민의 이익을 무시하는 독재자와 인민을 구별하지 않거나 독재집단을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보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자가 아닙니다.

참다운 민주주의자라면 언제나 국가와 사회의 주인을 인민으로 보고 그들을 옹호하고 인민을 억압하는 독재자들을 견결히 반대하여 투쟁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현실적으로 통치권을 장악하고 있는 독재정권을 상대로 하여 대화와 협상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상태에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도 대화와 흥정은 있는 법입니다. 적들과도 외교는 해야 합니다. 외교적 접촉이 없이는 적에게 정치적 타격을 줄 수 없습니다. 권투를 아무리 잘해도 접근하지 않고서는 상대방에게 타격을 가할 수 없습니다. 대화와 외교도 적과의 투쟁의 한 형식으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인민을 주인으로 보고 인민의 이익을 옹호하는 원칙적 입장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의 일부 정치가들이 주창하고 있는 소위 햇볕정책은 민주주의적 대북전략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 햇볕정책

햇볕정책은 민주주의의 근본입장에서 탈선한 비민주주의적 대북정책의 전형입니다.

물론 햇볕이 옷을 벗게 한다는 우화는 생활적 진리의 중요한 일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민주와 반민주와의 관계에서는 정상적인 대응방식이 아닙니다.

만일 어떤 부자가 흉기를 들고 들어온 강도에게 그가 요구하는 것 외에 적지 않은 돈을 주면서 “너는 왜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는가, 이 돈을 줄 터이니 이것을 밑천으로 하여 정상적인 노동생활로 돌아가라”고 설교한다면, 백 명의 한 명, 천 명의 한 명 정도는 감동되어 강도의 습성을 버리고 옳은 길로 나갈 수 있지만 대부분의 강도는 부자가 선한 마음으로 준 생활보조금을 강도적 범죄행위에 악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 강도 범죄자는 부자의 이러한 선심을 선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강도행위를 더 쉽게,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그 돈으로 더 무서운 강도수단인 권총 같은 것을 마련하는 데 쓰게 될 것입니다.

김정일 독재집단은 수백만의 북한주민들을 굶겨 죽이고 온 나라를 감옥으로 만들어 죽이고 수십만 탈북자를 만들고 다시 붙잡아 죽이는 극악한 독재집단이고 외화를 위조하고 마약거래와 테러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하는 파렴치한 범죄 집단인 만큼 한국의 원조(햇볕)를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데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기의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남침야망을 실현하는 데 이용하게 되리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중국과 같은 위대한 동맹자가 수십 년 동안 같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자고 권유하여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김정일이 개혁개방보다 훨씬 민주주의 도수가 높은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김정일이 개혁개방의 의사를 표현한 일도 없고 자기들의 지금까지의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한 일이 전혀 없으며 김정일의 독재체제가 달라진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어째서 김정일과의 공조를 주장하는가? 의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김정일 정권이 어떤 정권입니까?

8.15 해방 이래 소련사회주의 독재 진영 가운데서 가장 중세기적인 색체가 농후한 것으로 평가되었던 북한 정권, 6.25 남침전쟁을 일으키고 남한 동포들을 계급적 원수로서 무자비하게 살해한 김일성 정권을 세습적으로 계승한 정권이 바로 김정일 정권 아닙니까. 김정일 정권이 김일성 정권보다 몇 배나 더 개악된 군사독재 정권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 수 있단 말입니까? 지도이념에서나 대내정책, 대외정책, 대남전략에서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고 더욱 개악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만이 뚜렷한데 최고의 지성인으로 자처하는 햇볕정책 주창자가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알면서 어째서 최악의 민족반역집단과의 민족공조를 주장하며 전통적인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을 멀리하는 기만적인 정책에 매달린단 말입니까? 만일 햇볕정책 주창자가 양심에 거리끼는 점이 없다면 왜 국민들 모르게 막대한 외화를 김정일에게 갖다 줍니까?

그럴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비할 바 없이 우월할 뿐 아니라 미국과의 동맹 하에 군사적으로도 우월합니다. 김정일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며 일으키면 멸망을 앞당길 뿐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걱정이 되어 민족반역집단이고 국제범죄집단을 찾아가 공조를 약속하고 동맹국인 미국을 멀리 합니까?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정상적인 한국 사람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햇볕정책의 결과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과연 햇볕정책 주창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김정일이 독재의 옷을 벗었는가, 김정일 독재체제가 햇볕에 녹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 현실은 이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독재사상은 선군사상으로 더욱 개악되었고 독재의 옷을 벗은 것이 아니라 핵무장한 더 위험한 새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지금 북한 독재집단은 핵무기를 휘두르며 노골적으로 한국의 좌파반미용공정권을 더욱 강화할 야망을 드러내면서 만일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핵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위협하며 한국의 대선에까지 노골적인 간섭의 손을 뻗치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의 결과 북한의 독재 옷이 더욱 튼튼해진 반면에 한국에서 민주주의 옷을 벗는 사람들이 급속히 증대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친남, 친미 인사가 한 명도 늘어난 것 같지 않지만 남한에서는 친북반미 세력이 대대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민주주의 법질서를 파괴하는 불법 파업과 폭력 시위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고 김정일을 찬양하는 무리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6.15 공동선언 채택 5주년을 계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청년학생들의 68% 이상이 만일 북한과 미국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북한 편에 서서 미국을 반대하여 싸우겠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미국과의 동맹이 생명선이라고 볼 수 있는 한국 땅에서 일어난 이런 현상이야말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적 변화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햇볕정책의 기만성이 백일하에 들어나고 있는데도 진보와 평화의 탈을 쓴 햇볕정책 주창자들은 득의양양하여 제 세상인양 활보하고 있으며 북한의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세계여론까지 무시하며 탈북자의 비참한 상태에 눈을 감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교활 무쌍한 기만행위와 비민주주의적인 행위에 대하여 생각할 때 우리는 일제시기 식민지 통치를 반대하여 싸운 애국지사들과 인민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제 식민지 통치를 반대하여 싸운 애국지사들과 애국적 인민들은 한국의 독립을 팔아넘긴 민족반역자의 전형으로서 을사 5적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도 어린 시절에 부모들로부터 을사 5적에 대한 욕을 수없이 들어 왔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민족해방이 완전히 실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민족해방의 과업, 민족통일의 역사적 과업을 완수했습니까? 물론 민족해방, 민족통일의 과업은 남아 있습니다.

지난날 2천만의 우리 민족이 일제식민지 통치 밑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강토의 절반인 북한에서 공산독재 하에 신음하고 있는 우리 민족은 2천3백만 이상입니다. 이것은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민족적 억압이 계급적 억압으로 변하였을 뿐이지 지금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불행은 일제통치 시기의 그것을 훨씬 능가하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 통치가 가혹하였지만 오늘날 북한에서와 같이 수백만 주민들이 굶어죽은 일이 없으며, 수십만 주민들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일, 수십만 탈북자들이 외국에서 헤매다가 다시 붙잡혀와 악형을 당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군대에 끌려가 10년, 13년 동안 수령을 위하여 죽는 훈련을 받는 일도 없었고, 6.25 전쟁과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도 없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의 무자비한 계급적 독재와 억압이 일제의 민족적 독재보다 더 혹독하다는 것은 구태여 많은 예를 들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받은 우리 인민이 일제에 굴복하여 나라를 넘겨준 을사 5적을 증오하는 것은 응당합니다. 그러나 그 때 일제는 우리나라에 비하여 대항하기 어려운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약한 자로서 강한 자에게 굴복하는 것이 필연적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역량관계는 북한 공산독재집단에 비하여 한국이 압도적으로 우세합니다. 경제적 면에서는 백배나 위력하다고 볼 수 있고 군사적 면에서도 최대강국인 미국과의 동맹을 감안한다면 비할 바 없이 강합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막대한 외화까지 가져다 주면서 북한의 민족반역집단과 민족공조를 약속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적 정체성을 팔아 넘겨주려고 하는가, 이 죄가 을사 5적보다 가볍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 북한의 대남전략

북한의 대남전략은 한 마디로 말하여 남한까지 수령독재체제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북한의 수령의 유일한 희망이며 이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력하며 이에 배치되는 것은 모두 다 무자비하게 배격합니다. 이것이 북한의 국내정책과 대외정책, 대남정책을 다 일관하고 있습니다.

원래 대외정책은 대내정책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직접 통치하고 있는 인민들을 수백만씩 굶겨죽이고 온 나라를 감옥으로 만들어 죽이는 북한 독재자들이 남한 인민들에게는 민주주의적으로 대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그들은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를 적대시하고 남한을 적지, 적후라고 부르며 남한 동포들을 착취계급의 집단이라고 하며 무자비하게 타도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 통치자들은 남한까지 수령의 독재를 확대하여 수령의 유일적인 독재 하에 전국을 통일시키는 것을 변함없는 대남전략으로 견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도는 정세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무산계급에게는 유산계급보다 우월한 두 가지 특징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첫째는 무조건 단결하는 것입니다. 유산계급은 자기의 재산을 믿고 그것을 옹호하려 하다 보니 단결이 잘 되지 않습니다. 무산계급은 단결만이 살 길이기 때문에 무조건 단결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육체적 힘에 의거한 폭력의 우월성입니다. 유산계급은 수적으로 적기 때문에 육체적 힘이 얼마 안 될 뿐 아니라 자기 몸을 아끼다 보니 자기 몸을 희생시켜 육체적 힘으로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와는 달리 무산계급은 다수이기 때문에 육체적 힘이 크고 또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 몸을 아끼지 않고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산계급은 유산계급과의 투쟁에서 육체적 폭력에 의거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데로부터 무산계급에게 고유한 기본특징은 무조건적인 단결과 자기희생적 폭력주의라는 것입니다.

북한 통치자들은 남한까지 자기들의 통치권을 확대하는 데서 폭력 제일주의에 의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상․정치적 와해전술을 보조적 방법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즉 전쟁에 의한 통일을 1차적 방법으로 인정하고 내부와해 전략을 보조적 대남전략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냉전의 결과 소련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나가면서 전쟁을 반대하게 되자 북한 통치자들은 전쟁에 의거하는 대남전략에만 매달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개혁개방에로 나가면서 자기들의 국가적 이익으로부터 출발하여 북한 통치자들에게 두 가지 원칙적 입장을 확고하게 밝혔습니다. 첫째는 북한과 동맹관계를 유지하지만 전쟁을 절대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남침전쟁을 반대하고 북침전쟁도 허용하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적 현상유지를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북한과의 동맹관계는 지난 시기와 같은 지도사상(마르크스 레닌주의)에 기초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도사상에서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 측은 이 두 가지 원칙적 입장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엄격히 지키고 있습니다. 예컨대 한국과의 수교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북한 통치자들은 중국 측에 거듭 반대의사를 표시하였으며 마침내는 1년만이라도 미루어 줄 것을 애걸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측은 단호히 거부하고 한국과의 수교를 실현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이 북한과의 동맹관계에 구속되지 않고 한국을 적대시하여 온 종래의 계급주의 입장을 버리고 평화공존의 국가관계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줍니다.

북한 통치자들은 커다란 불만을 가지고 중국이 배신행위를 한다고 뒤에서 비난하였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폭력적 무력에 의거한 대남전략을 당분간 포기하고 당면하게는 평화적 방침으로 남한에 좌파 용공정권을 세우는 것을 주되는 전략적 목표로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북한 통치자들은 대남전략을 바꾼 다음에도 무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였지만 그것은 당장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강력한 무력에 의거하여 남측에 압력을 강화함으로써 남한 인민들 속에서 전쟁공포증을 조장시키고 평화를 구걸하는 방향으로 나가도록 하는 데 이용하려는 목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전쟁공포증과 평화를 구걸하는 군중심리야말로 남조선 인민들을 사상적으로 무장해제 시키고 좌경 용공정권을 수립하는 데에 필요한 대중적 기초로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 독재 통치자들은 평화와 민족공조의 간판을 내걸고 남한 인민들의 경각심을 마비시키고 핵무기를 휘두르며 전쟁공포증을 조장시키는 교활한 전술에 매달리는 한편, 남한에 좌파 용공정권을 수립하는 데 이용하는 폭력적 방법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래 그들은 육체적으로 비상히 단련되고 무술에 능한 특수 부대를 중요한 전략적 임무를 담당하도록 준비하여 왔습니다. 오래 전에 벌써 약 15만 명을 망라한 이러한 특수군단(경보병 군단)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정세 변화와 관련하여 특수 경보병 대열을 더욱 증대시키는 한편 이들과 긴밀한 연계 밑에 남한의 중요한 정치군사적 전략대상을 기습적 방법으로 장악하고 정치공작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 공작원들을 대대적으로 양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정세의 요구에 맞게 남한에 은밀히 잠입시켜 남한의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고 반미활동을 조종하여 미군철수와 보안법 폐지를 실현함으로써 외부로부터의 간섭의 구실을 주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좌파 용공정권을 수립하는 전략을 추진시키고 있습니다.

6. 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이러한 북한의 대남전략은 큰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북한 통치자들의 이러한 대남전략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공산주의자들이 의거하고 있는 상투적인 투쟁방법입니다. 바로 베트남의 공산주의자들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남부 베트남을 장악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 탈북자 문제

탈북자 문제는 대북정책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탈북자라고 하면 북한 공산독재를 반대하여 월남한 모든 사람들을 다 포괄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우선 주로 북한공산체제가 전면적 붕괴 위기에 직면하여 인민들에 대한 탄압이 극심하게 된 시기에 북한독재를 반대하여 탈북하게 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북한의 전반적 위기는 대체로 1990년경부터 시작되어 1995~98년경에 절정에 도달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시기 탈북은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는 결사적인 행동이었으며 그만큼 김정일 독재체제에 아픈 타격을 주었습니다. 또 그런 만큼 탈북자들은 김정일의 가장 큰 증오의 대상으로 되었습니다. 김정일이 가장 적대시하고 증오하는 탈북자들을 김정일과 공조하는 햇볕정책 주창자들이 달가워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심지어 일부 친김정일 집단은 대북민주화를 위하여 활동하는 탈북자들을 살해하겠다고 노골적으로 협박하고 있습니다. 좌경용공분자들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탈북자들이 자유의 조국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헤매다가 희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출판보도 부문에서는 탈북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는 것을 큰 사변인 것 같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북한 땅에는 수백만이 탈북을 염원하고 시도하고 있으며 압록강과 두만강의 사선을 넘고 탈북한 사람만 하여도 수십만을 헤아릴 터인데 아직 자유조국에 안긴 사람이 1만 명밖에 안 된다는 것은 애족, 애국의 정신의 부족의 표현으로서 민족적 수치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탈북자들은 ‘같은 선조들로부터 피를 같이 나눈 동포들이 잘 살게 되었다 하여 사선을 넘고 또 넘어 겨우 찾아온 탈북 동포들을 이렇게 냉담하게 대할 수 있는가’하고 섭섭하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김정일 집단의 간악한 이간정책과 기만술책의 결과라는 것을 생각하며 북한에서도 김정일 독재집단을 반대하여 싸울 능력이 없었고 자유의 조국에 와서도 김정일 독재집단의 흉계를 타승할 힘이 없는 자기 자신을 두고 개탄치 않을 수 없습니다.

정치적으로 권위 있는 인사의 말에 의하면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김정일 독재집단에게 준 원조가 8조원을 넘는다고 합니다. 이 막대한 자금을 탈북자를 받아들이는 데 썼더라면 벌써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탈북자는 수십만이 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더라면 최악의 국제범죄 집단인 김정일 독재집단을 규탄하는 전 세계 인권옹호자들의 정의의 목소리와 힘찬 지원 밑에 북한의 수령 독재체제는 무너지고 북한 동포들도 인간 생지옥에서 해방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탈북자 문제는 단순한 인도주의적인 도덕적 문제인 것이 아니라 북한을 민주화하는 데서 거대한 전략적 의의를 가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지난 10년 어간에 뚜렷한 변화는 다 죽어가던 김정일 독재집단은 햇볕을 받아 다시 소생하고 탈북자들이 하늘과 같이 믿고 천신만고 끝에 찾아온 자유의 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진지는 천만 뜻밖에도 좌파 용공세력이 판을 치는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탈북자들은 북한을 민주화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희망이고 목적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좌경용공반미 세력을 극복하기 위하여 한 목숨 바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탈북자들이 뒤떨어진 북한 사회에서 물든 악습을 버리지 못하여 성실하지 못하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결함을 발로시키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호감과 동정을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점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탈북자들의 기본특징이겠습니까? 우리는 가혹한 독재 통치 하에서 민주주의 사회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생을 체험하였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슬기롭고 용감하게 싸웠다는 데, 즉 독재를 증오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열의가 비상히 높다는 데 탈북자들의 본질적 특징이 있다고 봅니다. 탈북자들은 보통 생활환경에서는 체득할 수 없는 귀중한 품성을 체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탈북자들이 두만강, 압록강을 결사적으로 건널 때의 결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합니다. 그들이 한국에 와서 발로시키고 있는 결함을 처음부터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들이 탈북할 때의 그 비장한 결심을 가지고 한국의 좋은 생활환경을 이용하여 나갔더라면 모든 생활분야에서 성공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특색을 살려 강한 투지를 가지고 간고분투 하는 대신 한국 동포들의 자선과 방조에 의존하여 잘 사는 사람들을 모방하고 따라가려고 하는 데서 출로를 찾고 있습니다. 잘못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이야말로 북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설 수 있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서 헌신성을 발휘할 수 있는 소질을 지닌 귀중하기 그지없는 애국적 혁명인재들입니다. 이런 소질을 이끌어주는 자체의 지도적 조직이 필요합니다. 탈북자들의 조직은 자선과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애국적이며 민주주의적인 투사들의 집단으로 의식화하고 조직화하기 위한 전투조직으로 되어야 합니다. 현 시기 탈북자들에 대한 자선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은 애국애족의 이념에 기초한 혁명적, 동지적 원조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애국적이며 전투적인 탈북자들의 조직을 만들려고 하였지만 자신의 무능과 혁명성 부족으로 10년 동안 아무런 성과도 이룩하지 못하였습니다. 죄송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탈북자들 속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투쟁 속에서 단련된 유능한 젊은 지도일꾼들이 자라나 별처럼 빛을 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이 힘을 합쳐 빨리 탈북자들의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조직을 만들어야 하며 한국의 뜻있는 애국적 민주단체들이 이 사업에 동지적인 지지성원을 보내줄 것을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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