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공사
李 前공사는 공산월맹(북월)과 자유월남이 주변강국이 보장하는「평화체제」를 거쳐 적화(赤化)통일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던 인물이다. 그는 1963년 이래 월남에 주재하던 중 1975년 공산통일이 되자 수용소로 끌려갔고, 5년 후 구사일생으로 풀려났었다.
李 前공사가 전하는 20세기 후반 베트남과 21세기 초반 대한민국의 상황은 섬뜩할 정도로 유사하다.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한 親北(親월맹)反美세력의 발호, 駐越미군 철수와 韓美연합사해체, 월남과 한국의 경제 풍요와 정치 혼란 그리고 월맹과 북한의 식량난과 이로 인한 방심...월남은 미국이 보장하는「평화체제」를 통해 패망했고, 한국은 미국이 보장하는「평화체제」가 현재 거론되고 있다.
李 前공사는 『베트남에서 맺어진 평화체제인 1973년 10월 파리협정은 4+4+4=12개국이 감시하고, 월맹의 남침 시 미군의 즉각적 북폭(北爆) 등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있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국가 위기 앞에서 자유세력들은「월맹은 이미 망했다」며 방심한 채 내 편, 네 편 나눠 분열했습니다. 그 결과 공산화를 막지 못했죠.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세력이 분열해서 12월 대선에 져버린다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겁니다.「이미 망한」 월맹에게 월남이 당한 것처럼,「이미 망한」 북한에게 남한이 당할지 몰라요. 북한과 남한의 좌파세력의 적화통일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12월 대선은 한국의 운명이 걸려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