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신문의 訃告난을 보고 있으면 신문 경영인들과 편집자들의 한심한 교양 수준에 분노하게 된다. 신문의 발행인과 편집자는 그 사회의 분위기와 방향을 잡아가는 기준 설정자이다. 한 사회의 정신수준을 대표한다고 보면 된다. 訃告(부고) 난을 읽어보면 '홍길동(국세청 과장) 부친상' 식이다. 돌아가신 분의 이름은 없고 아들 딸의 이름만 나온다.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訃告를 실어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출세한 자녀를 두지 않은 부모들은 죽어도 이름 석자를 낼 수 없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訃告가 아니라 죽은 사람의 자녀를 애도하는 訃告이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넘치지만 본인이 죽으면 썰렁하다는 세태를 연상시킨다. 돌아가신 분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의 자녀를 보고 문상을 오라는 부고 아닌가 말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친지나 친구들은 이런 부고를 읽고는 알 수가 없다. 자녀 이름을 기억하면 '아, 내 친구가 죽었구나'하고 문상할 수가 있겠는데 부고 난의 이름이 한글전용이라 난감하다. '김성희'라고 한글로 적어놓으면 내가 아는 金成熙인지 여부를 알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한글전용 부고를 보고는 실수를 한다고 한다. 한글전용 부고를 아예 읽기도 싫다는 사람들도 있다. 한자 이름은 그 사람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기억된다. 朴正熙는 꼿꼿한 자세의 인간, 全斗煥은 우직한 인간을 연상시킨다. 이런 이미지 전달력이 전혀 없는 한글이름은 사람의 뇌리에 기억을 심지 못한다.
한국인의 이름은 부모들이 고심하여 지어준 것이다. 좋은 漢字를 고르는 데 며칠간 고민하고 자신의 희망을 담는다. 한국인의 이름은 그래서 좋은 의미를 많이 담고 있다. 한국인의 이름을 한글로 적는 것은 부모의 願望을 저버리는 행위이다. 인간을 부호화하는 非인간적 행위이다.
이래 저래 한글전용 訃告(부고)는 한국 신문 발행인들과 편집자들의 천박한 교양을 반영한다. 젊은 독자들, 무지한 독자들을 가르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이 편하도록 영합한 결과이다. 지도력을 스스로 포기한 사람은 반드시 없신여김을 당한다. 교양을 포기한 인간은 반드시 저질화된다. 요사이 한국 신문이 좌파권력의 공격을 당하고 있는 이유중 하나는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한국 신문이 이 정도의 교양수준을 지닌 사람들에 의하여 지도된다면 한국은 아무리 잘 살아도 영원히 2流국가 반열에 머물고 말 것이다. 訃告의 한글표기는 조상과 부모와 민족문화에 대한 반역이기 때문이다.
신문 訃告(부고)난의 한글전용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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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4-21, 22: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