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어쨌든 여기서 죽지 말고 살아서 나가라. 일단 나간 다음에는 일없다.”
최근 음력설을 지낸 후 북한을 탈출한 김인수 씨의 이야기를 중국 현지에서 들어봤다. 김인수 씨는 인민군 장교로 복무했고 제대 후에는 당 간부로 해외파견업무까지 한 바 있는 엘리트다.
수용소 안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부여된 과제를 해내지 못하면 그나마 조금 주는 식사가 줄어들게 되고, 그러다보니 같은 운명을 지닌 동료들끼리 인정미가 남아있을 수가 없다. ‘너를 죽여서라도 내가 살아나가야 된다’는 인식만 남아서 ‘약육강식’이 지배를 하는 생활을 한다는 것. 또한 그 안에서도 보위원들의 스파이가 있어서 유도질문에 넘어가 실수를 하게 되면 아무도 모르게 체포된다. 김인수 씨가 있었던 2년 동안 그렇게 사라진 사람은 10명 정도다.
그러다가 수감자가 목숨을 잃게 되면 주소, 이름, 생년월일을 적은 종이가 담긴 페니실린 병과 함께 매장된다. 묘라는 것도 푯말도 없이 그저 민둥하게 해 놓은 무덤이다. 김인수씨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무덤만 해도 127개.
수감자들의 죽음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후 가족통지가 되면 그 집안은 북한에서 나쁜 집안 성분으로 찍히기 때문에, 그 집안의 가족들은 간부는 물론 입당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보위원들의 충고는 “너네 어쨌든 여기서 죽지 말고 살아서 나가라 일단 나간 다음에는 일없다.”다.
김수연 기자 nksue@hanmail.net
[다음은 김인수 씨와의 대화 내용]
답: 그 밥 절반, 그 몇 숟갈 먹은 사람은 속으로 그저 완전히 피눈물이 흐르죠. 그거 먹고 나가 일하면 (밥 뺏긴) 그 사람은 배도 더 고프고 더 맥이 없고 하니까 거기서 그 담에는 매를 맞아요.
문: 결국은 나가서 일을 잘 했다고 하는 사람은 건강이 괜찮기 때문에 일을 남보다 많이 할 수 있고, 그럼 그 사람한테 밥을 더 주니까 그 사람은 계속 건강해서 일을 잘 할 수 있고, 허약해서 일을 못하는 사람은 자기 밥을 띠었기 때문에, 또 이게 배고픔에 계속 시달려야 되고. 그럼 (밥 띠인 사람은) 점점 더 허약해지겠네요.
답: 점점 더 허약해지면 그 다음에는 이제, 그렇게 하다가 또 매까지 맞아요. 왜? 그러면 우리는 삼인조라고. 그러니까 세 명 당 아침에 기상에서부터 (계속 같이 생활하는데) 어디 일대 군화에 들어와도 (그 사람들이) 딱 서있어. 내가 변소로 소변보려 해도 같이 서 있다가 가야됩니다. 혼자 행동은 절대 못해요, 죽어도. 혼자서는 내가, 그 안에서도 변소도 못가고, 간다 하면 (두 사람이) 같이 가자고 하면, 나는 소변이 마렵지 않아도 다 같이 가야돼요. 가서 그 사람이 변소에 들어가면 우리 둘이는 그 밖에서 지켜요. 그럼 거기 조장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내리 기합이지, 결국은.
중대장이 “어느 소대 작업관리를 못했다” 하면 소대장을 모아다 놓고 딥다 욕을 퍼붓지요. 그러면 소대장은 이제 들어가서 -매일 저녁 소대 사업총화라는 걸 합니다- 소대장은 직접 대원들을 데리고 있으니까 충실히 모아다 놓고, -한 개 소대가 한 20명씩 되는데- 이렇게 되면 죽 앉혀 놓고 또 조별로 총화해요. 그 다음에는 구타가 들어간다. 막 내적으로는 ‘이제는 지나치게 때리지 말라’고 무슨 정치부장이 내려와서 말을 하지만, 과제를 못하면 우리는 그만큼 고통이 오기 때문에 오늘 과제 못하면 내일은 소대에 그저 배로 막 추가시키고.
그 다음에는 뭐 예를 들면 어쩔 때는 소대가 막 감식당하는 경우가 있어요. “야, 이 소대 저 새끼. 오늘 말이야, 이 소대 저녁 밥 주지 말라” 하고선 이렇게 그러니까. 정말 먹고 쓰고 사는 동료들끼리 그 인정미라는 게 (있을 수가) 없어요. ‘내가 너를 죽여도 내가 살아나가야 된다’ 이런 인식밖에 없다. 어떻게 하나 사람들은. 거기서는 친구가 될 수도 없고, 그저 완전히 막 말로 말하면 정말 ‘약육강식’이 지배를 해요.
문: 그러니까 보위원들이 직접 때리지는 않지만, 그럼 이제 작업과제나 먹는 걸 가지고 제제를 가한다는 거네요. 그럼 이게(작업과제, 밥) 통제수단이고 방법이고 그렇게 되겠네요. 그럼 이제 그 안에서도 호상 감시하고 보위원들에게 보고하고. 이렇게 되면 위배되는 행동을 한 사람한테 처벌이 가해진다. 앞에서 말씀을 하시면서 그 안에, 요덕 정치범수용소 10호 관리소 안에 완전 통제구역이 있고 혁명화 구역이 있고, 또 그 안에 특별 뭐 감방 같은 게 있다고 그랬지요?
답: 네, 구류장이 있습니다. 거기는 어떻게 되는가. 그 스파이들이 다 공작을 하는 거죠. 이렇게 무슨 허위 식으로 ‘같이 밥 먹는다’ 하면서 다 보위원이 임무를 주지요. 매 보름에 한번, 한 달에 한번 (지령을 주는데) 그런 게 생기면 (보위원과 스파이들이) 쪽지놀음을 다해요. 쪽지로 글 써서 이제 보위원을 주면 보위원이 앞 일을 줘요.
예를 들면 “야, 인수가 이거 러시아에서 이렇게 마패질도 하고 들어왔으니까, 쟤가 다시 여기서 나가면 또 이렇게 도망치려고 안하는가. 이걸 좀 어떻게 하나 뽑아내라.” 그러면 그 내한테 별소리(하면서) 쓱 와서 그저 콩도 좀 닦은 거 먹으라고 이런 거 한줌 주고, 일할 때도 같이 와 옆에 와서 일하면서 자꾸 이런저런 말을 유도적으로 해요. 이렇게 거기서 혹시 실수를 하는 경우에는 우리도 모르게 (체포된다). 그러면 내가 있는 2년 동안에만 해도 한 15명을 체포해 잡아갔어. 잡아가서 완전 그거는 다시 돌아 못 온 사람이 그저 한 12명, 그저 한 12명 돼. 12명 중에 돌아 못 온 사람이 그저 한 10명이 됩니다. 나 나올 때까지.
문:그러니까 수용소 안에서 어떤 죄를 진 것, 이런 거 말고 이미 밖에서 뭘 잘못 했는데 조사할 때 진술을 하지 않았던 것. 이걸 이제 그 (스파이를) 시켜가지고...
답: 그게 이제 (같이 있으면 말실수로) 나올 때가 있어요.
문: 그렇게 해서 잡아가는군요.
답: 그럼 잡아갈 때는 어떻게 (잡아)가는가. 우리는 소대장이라 해도 모르지요. 그 보위원들이 대체로 회관에 집체적으로 일하다가도 그저 한 11시가 되면 “다 모이라” 하고선 긴급 경비들이 냅다 뛰어요. 작업현장까지 따라와서. 그러면 고저 막 소대, 중대별로 그저 들어오면 너무 그런 걸 (많이) 겪으니까, ‘야 이거 오늘 또 뭐 (한사람 족쇄)하나 채우겠구나.’ 회관에 쫙 들어가 앉으면, 좀 있으면 과장이랑 보위원들이 고저 쫙 들어온단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뒤에, 또 그 보안사에 딱 그 호송차 한 대 있습니다. 이렇게 지프차 같은 게, -북경 지프차같은게 하나 있는데- 그게 그저 차 들어오는 소리가 “찍” 타고 들어오는 소리 알린다고. 그러면 사람들 다 긴장하지요. ‘이게 또 무슨 (누구를) 체포해 가겠느냐. 뭐 나를 또 데리고 가겠는지...’ 그런 다음에 이제 과장이 딱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없어요- 탁 나와서는 “아무개” 하고 이름을 불러요.
그러면 (나오면) “뒤로 가라” 하면 그 뒤에 보위원들이 족쇄를 들고 딱 와요. 뭐 그 사람은 반항할 엄두도 못내요. 그러면 그저 족쇄 채우고 휭 하고 가면, 그저 그 다음 아까 제가 인터넷에서 본 바와 같이 (되는데), 그 구류장에 이제 들어갔다 나오면 보통 그저 20일부터 40일 걸립니다. 그러면 밥은 아까 10g 정도보다도 하루에 그저 한 50~70g 정도입니다.
문: 하루 동안에 50~70g 정도라고요?
답: 내가 어떻게 (아는가). 거기서 나온 놈들은 이제 나와서도 말을 못해요. 그러나 우리 소대장들은 슥 데리고 (물어보고), 우리는 호기심이 나니까 물어보죠. 그러면 말하는 게 “구호-구류장 안에서의 처벌이라는 것은 밖의 구류장보다 더 한심하고, 사람 어쨌든 더 한심하고... 그저 먹는 것은 10g, 20g. 사람 밥 한 술 먹고 살아야.”
그러니까 하루 종일 고통당하다 40일 만에 나오면, 진짜 (구류장에서) 나올 때는 그 차에다가 -사람이 쓰러졌으니까, 이게 보위원들이 차에다 태워서- 거기서 나오는데, 정 힘든 (사람은) 거기 병원도 있어요. 그 안에. 병원이라는 게 진료소 식으로 있는데 그게 고저 간호사가 같은 혁명학생 여자에요. 그때 내가 있을 때는 그 은덕에서 들어온 아이였는데 그 애가 그 간호사한테 데려가면, 그 병원에서 거기가 고저 구류장에서 나오면 60%는 다 죽어요. 나온 다음에는.
문: 수용소 안에 들어가면 죽는 사람이 많다고 그러던데요. 김인수 씨가 수용소 생활을 할 때 죽는 사람을 목격을 했거나 죽는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본 적이 있습니까?
답: 그건 제 눈으로 똑똑히 봤고, 뭐 어제까지 같이 밥 먹던 사람 중에, 내가 있는 2년 동안에 침상에서 죽은 게 둘이고, 그 다음에 병원에 가서 죽은 게 -병원이라 하면 다 우리 구역 안에 있으니까- 그 안에 가서 죽은 게 둘입니다. 총 4명 죽었습니다. 이제, 죽으면 그저 건설소대가 제제하는 거랑 다 했어요.
죽었다 하면 그날로 그저 그 안에 생나무로 제제를 해가, 건설소대가 제제도 하고 이런 거 다 하니까. 그러니까 (죽은 친구들을) 제제했어요. 관에다 박아서는 이제 페니실린 병에다가, 종이에다 글을 써요. 그 사람 주소, 성명, 이름, 생년월일을 적어서 페니실린 병에다 넣고 봉인해서, 관을 묶고. (매장지) 이름을, 그 묘지골이라고 합니다.
묘지가 이제 (많은데), 그저 묘라는 게 둥글둥글 민드라게 해놓고, 묶고, 그 다음에 그 위에다 페니실린 병에다 같이 묶고, 푯말도 없고. 그저 뽈록뽈록 뽈록뽈록. 그저 묘지 골에 가면 척보면 그저 다 그저 뽈록뽈록 해. 현재 (내가) 나올 때까지 127개(무덤이 있었는데). 여자는 두 명 나머지 다 남성입니다.
문: 그러니까 이제 관을 대충 짜는데, 그 안에 페니실린 병에 인적사항을 적어서 넣어 가지고 묻는 것이네요?
답: 관을 이제 먼저 묻고, 그 관 위에다가 페니실린 병을 놓죠. 그렇게 해서 묻어버리고. 그건 왜 그렇게 묻는지는 뭐, 우리가 잘 모르겠어요. 후에라도, 혹시 무슨 통일이 되면 훗날에도 '제 짝은 알아서 찾아가라'(는 뜻일지). 일단 그 안에 묻힌 다음에는 가족통지는 어떻게 하는가. 뭐 해당군 보위부에 통지를 해요.
그저 “아무개 어떤 김인수가 이렇게 죽었다” 하면 영원히 문건에 미해명자로 낙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 그 집안 성분은 완전히 북한에서 나쁜 집안 성분이 되기 때문에, 그 집안의 형제고 뭐고 간부도 될 수가 없고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보위원들 자체가 말해요. “너네 어쨌든 여기서 죽지 말고 살아서 나가라 일단 나간다음에는 일없다.” 그건 보위원들 자체가 그렇게 말하죠.
문: 아마 그 수용소 안에서 죽게 되면, 북한 법에 의해서 처단된 것으로 되거나 무슨 이유가 있겠죠. '그 안에서 죽지 말고 살아나가야 가족들한테 큰일이 없다.'는 말씀이죠?
답: 예. 없다 그러죠.
무덤 하나 없이 사라지는 목숨들
-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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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4-21, 2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