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光洙 검찰총장 작심 토로

"우리 사회엔 公共의 敵이 너무 많다"
[단독 고별 인터뷰] 宋光洙 검찰총장의 3시간 작심 토로
(2005년 4월호 월간조선)



『우리 사회에는「公共의 敵」이 너무 많아…국가보안법 폐지는 안 된다』



『强者에 강하고 弱者에 약한 검찰, 정치권으로부터 중립적인 검찰을 만들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 大選자금 수사 때 가장 큰 압박감 느꼈다. 鄭夢準 회장은 여리고 착한 사람.
●『金忠植씨(前 現代상선 사장)를 지난해 말 조사한 것은 사실. 金씨는 이때도 3000만 달러 송금영수증을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다』
●『공직부패수사처(公搜處) 신설은 부작용 있어 반대. 중수부 폐지 주장도 바람직하지 않다』

宋光洙
1950년 경남 마산 출생. 서울高·서울大 법대 졸업. 사법고시 13회 합격. 서울지검 수원지청 검사·마산지검 충무지청장·법무부 검찰 1과장·서울지검 형사 3부장·창원지검 차장검사·성남지청장·서울지검 2차장 검사·부산고검 차장검사·사법연수원 부원장·법무부 법무실장·대구지검 검사장·부산지검 검사장·법무부 검찰국장·대구고검 검사장 역임.

宋承鎬 月刊朝鮮 기자 (soonj@chosun.com)

「살아 있는 權力」에 司正의 칼을 들이대다


宋光洙(송광수·55) 검찰총장이 4월2일 임기 2년을 마치고 퇴임한다. 2003년 4월3일 취임 당시 흔들리는 검찰조직을 추슬러야 하는 게 宋총장의 가장 큰 과제였다. 전임 金珏泳(김각영) 검찰총장이 盧武鉉 대통령이 평검사와의 대화과정에서 검찰 수뇌부에 대해 불신감을 표하자 이에 반발, 취임 4개월 만에 전격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金珏泳 총장은 1988년 검찰총장에 대한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일곱 번째로 중도하차했고, 검찰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宋光洙 총장은 취임하면서 검찰 內部의 철저한 자기반성, 피의자 인권보호 등을 강력하게 천명했다. 宋총장은 검찰 개혁과 관련, 청와대 및 康錦實(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잦은 마찰을 빚으면서 마음고생도 많았다고 한다. 그는 재임 중 검사들에 대한 內部 감찰을 자주 강조해 「검찰총장」이 아니라, 「감찰총장」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감찰 강도를 늦추지 않았다. 宋총장은 취임 이후 자신의 판공비와 대검 경비를 절약해 남은 돈을 일선 검찰에 내려 보내기도 했다.

宋光洙 총장은 지난 2년 동안 ▲現代그룹 非자금 사건 ▲金大中 정부의 불법 對北송금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수사를 총지휘했다. 이 과정에서 權魯甲(권노갑) 前 민주당 고문과 朴智元(박지원) 前 청와대 비서실장 등 당대의 정치권 실세들이 줄줄이 구속됐고, 鄭夢憲(정몽헌) 前 現代그룹 회장이 자살했다.

宋光洙 총장은 2002년 12월의 大選(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하면서 국민의 관심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청사로 집중시켰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金榮馹(김영일)·崔燉雄(최돈웅)·辛卿植(신경식) 한나라당 의원과 徐廷友(서정우) 李會昌 후보 법률고문 등 한나라당의 李會昌 후보 캠프 핵심 관계자들을 구속하거나 불구속 기소했다. 「宋光洙의 검찰」은 鄭大哲(정대철)·李在禎(이재정) 열린당 의원과 安熙正(안희정) 盧武鉉 후보 정무특보, 崔導術(최도술)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盧대통령 측근들을 사법처리했다.

宋총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盧대통령 핵심 측근들을 계속 사법처리해 나갔다. 李光宰(이광재) 前 청와대 국정상황실장(現 열린당 국회의원), 姜錦遠(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呂澤壽(여택수) 前 청와대 행정관, 宣奉戌(선봉술) 샘물제조업체 장수천 前 대표 등이 司正(사정)의 칼날을 맞았다. 「살아 있는 권력」에 사정의 칼날을 들이댄 것이다.

뿐만 아니라 孫吉丞(손길승) SK그룹 회장과 李鶴洙(이학수) 三星그룹 구조조정본부장, 辛東仁(신동인) 롯데그룹 부회장 등 국내 財界(재계) 인사들까지 법정에 세움으로써 「성역 없는 수사」의 典型(전형)을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듯

기자는 지난 3월7일 오후 2시30분 서울 대검청사 8층 검찰총장 집무실에서 宋총장을 인터뷰했다. 宋총장의 임기 만료를 20여 일 앞둔 시점이었다.

宋총장과의 단독 인터뷰는 예정시간을 1시간 넘긴 오후 5시30분께 끝났다. 宋총장은 『물을 것이 있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물어 달라』고 했다.

宋총장은 체구는 크지 않았지만, 몸매는 단단해 보였다. 눈동자도 매서웠다. 목소리는 약간 허스키했고 경상도 사투리를 종종 사용했다. 긴 시간 인터뷰를 하면서도 宋총장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宋총장에게서는 고위 공직자들이 다소 억지로 호방하게 웃는 모습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간혹 옅은 미소를 짓기는 했으나, 그 미소는 길지 않았다. 宋총장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듯, 가끔씩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인터뷰는 金周賢(김주현·부장검사) 대검 혁신기획과장이 배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법조계 동기(사법고시 13회) 중 선두주자로 달려왔고, 司正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법복을 벗고 민간인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심정은 어떠신지요.

『1977년 서울지검 수원지청 검사를 시작으로 법조계에 몸담아 온 지, 1년 모자라는 30년입니다. 떠나는 날을 며칠 앞둔 지금의 시점에서 총장 재임 2년을 되돌아 볼 때, 아쉬움과 후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 제가 위로를 삼고 싶은 것은 법에 정해진 총장의 임기를 다 채우고 떠나게 됐다는 점입니다. 검찰총장이 임기를 다 채우는 것은 검찰조직의 독립성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은 强者에게 强하고, 弱者에게 弱해야 한다』

─후배들에게 어떤 검사로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제가 총장에 취임할 당시 검찰內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전임 金珏泳 총장께서 취임 4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사퇴를 하셨죠. 각종 크고 작은 사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검찰에 대한 불신도 높았습니다. 검찰조직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 각 계층의 요구도 분출됐구요. 그중에서도 검찰이 정치권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强者에 약한 검찰」이라는 국민적 비난을 받고 있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저는 「强者에 强하고, 弱者에 弱한 검찰」과 정치권으로부터 완전한 중립적 위상을 정립하는 길만이 실추된 검찰의 위상을 되찾는 최선의 解法(해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이 부분을 일선 검찰에 줄기차게 강조해 왔습니다. 따라서 후배들로부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켰고, 지키려고 노력했던 총장」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宋光洙 총장은 「소신이 뚜렷하고 윗사람에 대해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 평가에 대한 생각을 묻자, 옅은 미소와 함께 얼굴을 약간 붉혔다.

宋총장은 『소신이 뚜렷하다는 말은 과찬의 말씀이고, 그렇지 못한 때도 있었다』며 『지나온 과거를 생각해 보면, 그 순간의 분위기나 다른 어떤 사정에 의해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얼마 전 상영된 영화 「공공의 적 2」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부패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에 맞서 싸우는 소신 있는 검사가 주인공입니다. 정치권력과 결탁해서 검사의 수사를 방해하는 선배 검사와 소신 있는 검사를 지원하는 동료·후배 검사들의 행태도 묘사돼 있구요. 총장께서는 이 영화가 어느 정도까지 검찰의 실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저도 그 영화를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영화 자체가 검찰의 실상과 어느 정도까지 부합되느냐 여부는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검찰이라는 국가 기관이 국민이 원하는 논리에 충실하고 또 항상 正義만 지킨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선배 검사가 정치권력과 결탁해 소신을 지키려는 후배 검사의 수사를 방해하는 행위는 실제와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과거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해서는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

─과거 日本 東京지검 특수부는 「巨惡과 싸운다」는 모토를 내걸고 정치권력의 비리에 대해 聖域(성역) 없는 수사를 했고, 상당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日本과 우리나라 검찰의 권력집단에 대한 수사능력을 비교하면 어떻다고 보시는지요.

『우리나라 대검 중앙수사부와 서울지검을 비롯한 각 지검 특수부의 수사능력이 日本 東京지검에 비해 우수하면 우수했지, 절대 뒤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자신합니다. 日本 검찰의 고위 관계자도 우리나라 특수수사에 대한 능력이나 시스템 등을 부러워했습니다』

─총장께서는 취임 직후, 「국가보안법이 남북 대치상황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해 왔다」는 이유로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지금도 그같은 입장에는 변함이 없는지요.

『그렇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나름대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반대합니다. 法의 명칭이 꼭 국가보안법이어야 하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南北이 대치하고 있고, 北韓은 여전히 적화통일 전략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北韓이 「南韓의 적화통일」이라는 기본전략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선언을 한 적이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국가를 지키는 法 체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총장께서는 2003년 3월 국회의 인사청문회 당시 검찰 人事시스템과 관련,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협의하는 관례를 제도화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밝히셨습니다. 지금은 검찰의 人事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일선 검사들의 개인적 능력과 선명성, 중간 간부들의 조직 지휘통솔력과 통솔권의 적정성 등에 대해서는 전체 검찰조직을 지휘하는 검찰총장이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검찰 人事 과정에서 총장의 의견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찰청법에는 검사 人事의 경우, 검찰총장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평소 저의 생각을 인사청문회 때 밝혔던 것이죠.

다행스럽게도, 2003년 12월 국회에서 이 부분에 대한 검찰청법 규정(제34조: 검사의 임명 및 보직 등)이 일부 개정됐습니다. 그 이전에는 「검사의 임명 및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행한다」고만 명시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항에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는 내용이 첨가된 것입니다. 저는 검사 人事와 관련된 규정이 이처럼 개정된 데 대해 상당히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검찰총장이 검찰조직을 원만하게 통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구요』

宋光洙 총장은 話題(화제)가 자연스럽게 검찰 人事 문제로 옮겨가자 좀더 진지한 자세로 소상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권력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수사를 한 검사에게 人事上 불이익을 주려고 할 것』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죠. 소위 정치권이나 대통령의 권력 주변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할 경우,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이 편안할 리가 없겠지요. 자신들과 관계없는 일반인들에 대한 수사의 경우, 그 내막을 모르기 때문에 결과만을 놓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반면, 권력주변에 대한 수사의 경우, 수사 대상자들은 권력자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게 되고, 심지어는 거짓말까지 동원해 가며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게 됩니다. 권력자들은 자기 주변 인사들로부터 억울함을 호소하는 말들을 반복해 듣게 되면, 검찰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검찰이 검찰권을 남용한다느니, 무리한 수사를 한다느니, 강압수사(인신구속 등)를 한다느니,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느니 하는 불만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죠.

권력자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수사를 한 검찰 구성원들에 대해 人事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려고 할 것입니다. 엄정한 法 집행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功을 인정해 보다 좋은 보직을 주어야 함에도, 권력자들은 그 반대입장을 보이는 것입니다.

검사가 열심히 노력해 권력집단의 부정부패를 처벌했는데도, 人事上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되풀이 될 경우, 어느 검사가 소신을 가지고 수사권을 행사하려고 하겠습니까? 이런 상황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검찰총장은 이런 外風을 막아 주고 일선 검사들이 소신을 가지고 수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검찰총장에게 부여된 중요한 의무 중 하나입니다. 제가 지난 2년 동안 나름대로는 노력을 했지만, 방어막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군요(웃음)』


외부 압력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다했다

─宋총장께서 재직했던 지난 2년 동안은 유별나게 정치권에 대한 수사가 많았습니다. 宋총장께서는 어느 정도 방어막 역할을 했다고 自評하시는지요.

『굳이 評價를 하라면 저는 이런 말씀은 드릴 수 있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은 다 했다」고 말입니다.

외부의 압력은 검찰총장을 통해서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일선 수사팀을 통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저를 통해서 들어오는 압력에 대해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이를 막았습니다. 일선 수사팀을 통해 들어온 압력도 저에게 보고가 될 경우 저는 이를 막았습니다. 검찰 조직의 首長이라는 사람이 외부의 압력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 조직이 어떻게 공정한 수사권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정치권이나 권력집단으로부터 밀려오는 압력을 막아내는 것은 검찰총장의 의지만 강해서 되는 건 아닙니다. 중간 수사지휘자나 일선 검사들의 수사에 임하는 의지도 강해야 합니다. 불법 大選자금 수사도 당시 安大熙 중앙수사부(중수부) 부장과 중수부 과장 및 수사검사들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검사는 권력주변에 대해 수사를 하다가 압력을 받게 되면, 「야, 이거 내가 수사를 밀고 나갔다가 人事에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인 이상 이같은 생각을 안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사권자는 비록 자기 주변에 대한 수사로 자신의 입장이 곤란하게 됐다고 해서 그 검사에 대한 人事 과정에서 그런 마음을 반영해서는 안 됩니다. 인사권자의 平常心과 공정한 평가가 전체 검찰조직을 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총장께서는 취임 직후 『검찰개혁은 검찰內 감찰기능을 강화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취임하기 직전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받는 가장 큰 비판은 「검찰이 다른 사람들을 斷罪(단죄)하는 데는 굉장히 철저하지만 자기 식구를 斷罪하는 데는 지나치게 너그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검찰권 독립 못지않게 검찰 내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저의 취임 첫 해인 2003년 한 해 동안 검사들에 대한 내부 감찰을 실시해 징계한 건수가 그 이전 10년간의 건수보다 비슷하거나 많았습니다. 조직內 불만도 많았죠. 내부에서는 저에 대해 심지어 「검찰총장」이 아니라 「감찰총장」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宋光洙 총장은 검찰총장의 국회출석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宋총장은 『검찰총장은 매년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하고 있고, 사안에 따라 청문회에도 출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宋총장은 『그러나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검찰총장이 국회에 출석하게 되면 수사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이 경우 총장뿐 아니라 검찰 조직 전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했다. 宋총장은 『총장이 국회에 자주 출석할 경우, 자칫 정치공세에 휘말릴 우려도 있다』고 했다.


검찰총장의 국회 출석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원들의 질문시간이 답변시간보다 많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정당성이 국민에게 훼손돼 전달될 수 있습니다. 검찰총장이 원천적으로 국회에 출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칙적으로 총장이 국회에 출석토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日本도 과거에는 검찰총장이 직접 국회에 출석했지만, 지금은 거의 나가지 않습니다』

─정부와 與黨은 대통령 직속기구인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공직부패수사처(公搜處·공수처)」 신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黨政은 이 公搜處에 그동안 검찰이 독점적으로 행사해 온 기소권을 부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총장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지난 제17代 總選 당시 열린당이 선거공약으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을 내세웠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당시 열린당 주장의 배경은 검찰이 수사하기 어려운 권력의 핵심부분이나 대통령 친인척, 검찰이 한 번 수사를 했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을 전담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검찰 자신의 非理를 검찰이 수사하기 어렵다는 점도 포함되겠지요.

그러나 수사기관이 하나 더 생겼다고 해서 권력핵심 非理나 대통령 친인척들의 非理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公搜處의 수사결과에 대해 국민들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거나 公搜處 內 非理 수사에 대해서는 또 어느 기관이 담당하겠습니까. 제2의 公搜處를 다시 신설할 겁니까?

국회가 고유의 임무인 입법활동을 제대로 못 했다고 해서 제2의 국회를 다시 만들 수 있습니까. 그것은 현실적으로 곤란하지 않습니까?』

─부패방지위원회는 대통령의 직속기구입니다. 이 위원회 산하에 公搜處를 신설할 경우 절대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채찍을 휘두르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公搜處의 일선 수사인력도 검찰이나 경찰에서 보충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검찰과 경찰의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같은 지적을 한 언론칼럼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분명히 이론적으로도 위험성이 있죠. 저는 대통령께서 그런 의도로 公搜處를 만들자고 하지는 않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백 명에 달하는 公搜處의 수사인력 역시 말씀하신 대로 검찰이나 경찰에서 충당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검찰과 경찰은 그만큼의 인력을 다시 충원해야 합니다. 특정분야에 한정되는 公搜處의 수사에 많은 인력을 배치한다는 게 국가차원의 예산이나 인력운용 측면에서 과연 타당한가 하는 문제는 반드시 검토돼야 한다고 봅니다.

公搜處를 대통령 직속기관化하는 것도 문제가 있구요. 검찰수사 역시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을 우려도 있겠지요』


특별검사제 활성화가 公搜處의 대안

―代案은 있습니까.

『제 생각에는 종래와 같은 특별검사제도를 활성화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특정한 사건이나 국민적 의혹이 제기될 때 새로 법안을 만들어 특별검사제를 도입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특별검사제에 대한 기본법을 만들어 놓고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그 법에 따라 특별검사를 임명해 수사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할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기본법을 만들어 놓을 경우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與野 간 밀고 당기는 일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公搜處가 신설될 경우 이 기관에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 公搜處에 기소권을 부여하게 되면,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무너지는 게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서 公搜處에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으면, 公搜處의 수사 자체가 불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公搜處가 수사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일부 시민단체는 公搜處에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하면서 기소권 부여 문제를 논쟁거리로 만들고 있습니다만, 그런 논쟁이 과연 바람직한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公搜處에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法 취지와도 맞지 않구요』

─宋총장께서는 재임 중 수사와 관련해 외부로부터의 압박을 많이 느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떤 사건을 수사할 때 가장 많은 압력을 느꼈는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大選자금 수사 때 가장 심한 압력을 느꼈습니다. 수사에 대한 언론보도나 권력자들이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밝히는 과정에서 압력을 느꼈지요. 법무부를 통해서도, 부하직원들이 청취한 일정 집단의 분위기를 저에게 전해 주는 과정에서도 압박감을 느꼈구요.

일상생활에서도 어떤 일이 생기면 압박감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압박감들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압박감은 본인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인 것이지요. 압박감에 순응한다든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大選자금 수사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상당한 압박이나 압력은 받았지만, 그것을 압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인가」라고 묻자, 宋光洙 총장은 『大選자금 수사에 대해 정치권이나 경제계 일부에서 불평·불만이 많이 있었지만, 거기에 대해서 개의치 않았다는 뜻』이라고 했다.


『大選자금 수사 때 압력 가장 많이 느꼈다』

─총장 재직 중에 가장 기억에 남거나 수사가 잘 됐다고 생각하는 사건은 무엇인지요.

宋총장은 고개를 돌려 잠깐 창 밖을 응시했다. 옅은 미소를 지은 뒤 답변을 했다.

『제가 보기에는 大選자금 수사가 검찰로서는 가장 많은 인력과 예산, 시간을 투입해서 한 것입니다. 금융계를 비롯한 각계 전문가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구요. 大選자금 수사는 총체적인 역량을 집중시켰을 뿐 아니라 당시 安大熙 중수부장도 全心全力을 다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大選자금 수사도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大選자금에 대한 재판이 끝난 부분도 있고, 진행 중인 부분도 있습니다만, 최종적인 법원판결이 나와 봐야 사건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겠지요』

─그럼, 大選자금 수사를 할 때, 청와대 쪽에서 총장에게 전화를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직접 의견을 전달해 온 적은 없습니까.

『저한테 직접 하지는 않았죠. 법무부를 통해서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서는 말씀 드릴 형편이 아니고…』

宋총장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좌우지간 大選자금 수사에 관해서 저한테 직접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하는 경우는 이상하게도 없었습니다』

─권력기관에서 총장께 직접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한 적이 없다면, 그것은 그들의 생각에 총장께 부탁을 해도 들어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인가요.

『제가 뭐 그렇게 의지가 강한 사람이겠습니까만은, 사실 제가 총장 되고 나서 人事에 대해 부탁하는 (권력자나 권력자 주변)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宋총장께서 주변관리를 잘하셨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주변에 대해 너무 매몰차게 대했다는 反證(반증)도 되지 않습니까.

『저는 업무에 관해서는 조금 매몰찹니다. 업무와 관련해서는 부하직원들에게 야단도 상당히 많이 치고 하지만, 일이 끝나면 그렇게 인정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째 조금 쑥스럽습니다. 허허…』


『大選자금 수사 확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大選자금 수사를 지휘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한 적도 있으셨죠.

『좀 있었지요. 大選자금의 발단은 SK그룹이 大選 때 한나라당 측에 100억원을 제공한 사건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大選자금과 관련된 SK그룹의 행위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고, 이에 따라 사전에 철저하고 충분한 준비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사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 이후 성공적으로 수사가 진행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에 정치권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논쟁이 일어나면서 輿論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SK그룹이 한나라당에 100억원을 지원했다면, 다른 기업들도 했을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정치권의 논쟁이 격화됐고, 언론들도 大選자금 수사를 다른 기업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당시 저희들은 大選자금 수사 확대와 관련해 굉장한 熟考(숙고)를 했습니다. 저도 검찰 출신 선배들에게 전화해서 의견을 구하기도 했구요. 저희들이 심사숙고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시중에 「국내 어느 기업이 大選 때 어느 黨에 얼마를 주었다」느니 하는 막연한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저희들도 이와 관련한 소문을 알고 있었고, 첩보도 어느 정도 입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사를 확대하고 나니까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를 않았어요. 기업들은 전부 (大選자금 기부 사실을 진술하는 것을) 망설이고, 그래서 또다시 많은 고민을 하게 됐죠. 밖으로 표현을 안 했지만, 아침마다 대책회의를 하면서 돌파구를 찾느라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大選자금 수사와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부분은 기업의 경우 大選자금 제공이라는 불법 행위의 共犯(공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치권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적인 현실에서 볼 때는 피해자라는 점이었습니다.

輿論도 양쪽으로 갈라졌습니다. 기업을 共犯으로 더 많이 봐야 한다는 여론 쪽은 기업이 大選자금을 제공한 것은 일종의 「미래에 대한 보험」이라는 것이지요. 입을 다물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협조해 주면 불구속 처리를 한다든지 비교적 가볍게 처벌하겠다는 검찰의 입장을 기업들에게 전달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사가 다 끝날 무렵 「大選자금을 제공한 기업들과 기업 총수들에 대해서는 검찰이 왜 엄하게 처벌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었습니다. 당시 상황은 검찰로서도 대단히 고통스러웠습니다』


모든 책임을 떠안은 재벌 자금담당자들

─검찰의 大選자금 수사 당시 기업의 구조조정본부장을 비롯해 임원들만 사법처리했을 뿐 총수들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저희들은 法을 집행하는 기관입니다. 구조조정 본부장을 비롯해 기업의 자금 책임자들은 大選자금 제공 과정에 대해 자신들이 알아서 정치권에 자금을 제공했을 뿐 기업 총수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는 진술만 되풀이 했습니다.

기업의 자금 책임자들은 「과거 全斗煥·盧泰愚 前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 때 기업 총수들이 많이 당했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는 정치자금 제공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알아서 계획하고 집행을 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 이런 것들보다 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도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기 일쑤입니다. 만약 기업 자금 책임자와 기업 총수 간 「공 던지기」를 하는 상태에서 기업 총수들을 기소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법원에서 100% 무죄가 선고됐을 것입니다.

결국 당초 방침대로 정치자금 제공사실이 인정되는 사람은 처벌하되, 불구속 처벌 원칙을 세웠던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기업 총수들이 모르는 상태에서 기업 자금 책임자들이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이란 막대한 자금을 정치권에 제공했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 아닙니까.

『저희도 그 점에 갈등을 많이 느꼈습니다. 검찰이 증거가 확보 안 된 상태에서 기업 총수들에 대해 기소를 하자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大選자금 수사에 대해 自評한다면, 몇 점 정도를 줄 수 있는지요.

『굳이 점수를 매긴다면 90점 정도. 왜 이렇게 높은 점수를 주느냐 하면, 수사에 대한 自評은 일종의 주관식 문제인데, 주관식 문제를 채점할 때에는 수사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 뭐 이런 것도 좀 반영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검찰의 大選자금 수사가 盧武鉉 대통령 측에는 엄격하지 못했고, 한나라당 측에만 집중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쪽 저쪽 가리지 않고 정말로 철저히 수사를 했습니다. 수사결과 밝혀 낼 만한 것은 다 밝혀 냈구요.

국민의 여론이나 정치권의 불만이 있다고 해서 느낌만으로 처벌을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오히려 대통령 주변에서는 「왜 野黨보다 우리 측에 더 심하게 수사를 하느냐」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野黨도 「與黨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野黨만 집중적으로 수사를 하느냐」는 불만을 자주 제기했구요』

宋총장은 大選자금 수사의 공정성 문제와 관련,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대해 『지금 그 문제를 더 언급해야… 그렇지 않느냐. 이 정도로만 해두자』며 말을 접었다.


『鄭夢憲 회장은 착하고 여린 사람』

─現代그룹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는 도중에 鄭夢憲(정몽헌) 회장 자살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일부에서는 「鄭회장이 검찰의 강압수사를 못 이겨 자살했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발생한 당시 宋총장께서는 검찰의 가혹행위 여부를 철저히 조사할 것이고, 가혹행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총장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鄭회장에 대한 가혹행위 여부 조사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때 중수부장이 수사 관련자들을 일일이 만나 가혹행위 여부에 대한 확인을 했습니다. 저도 일부 과장들을 직접 불러서 물어보기도 했구요.

우선, 鄭夢憲 회장 수사 과정에서는 鄭회장 변호인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수사의 모든 과정을 변호인들이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조사가 끝나면 변호인이 와서 鄭회장에 대한 조서를 확인했고, 鄭회장과 함께 조사실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鄭회장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변호인이 조사실에서 수사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정말 솔직히 말씀드립니다만, 鄭회장에 대한 강압행위는 없었습니다. 지금 돌아가신 분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만, 우리도 대검 차장검사가 검찰을 대신해 鄭회장 問喪(문상)을 가기도 했습니다. 수사 대상자가 사망했다고 해서 검찰의 고위 간부가 問喪을 간 것은 검찰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자기가 필생을 기울인 사업이 여의치 않은데다, 검찰 수사방향이 다른 부분으로 확대되고 하니까, 그에 따른 중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평소 마음이 착하고 여린 분이니까요』

宋光洙 총장은 鄭夢憲 회장 사망 원인에 대해 『추락사한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鄭夢憲 회장의 屍身(시신)에 대한 부검 결과, 外傷(외상)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現代그룹(서울시 종로구 계동) 社屋 內 회장실이 있던 12층에서 투신했다면, 뇌가 陷沒(함몰)되거나, 腸이 파열되거나, 아니면 척추가 파손되는 치명상을 입었을 것인데, 鄭회장의 경우 그런 치명상은 없었다고 합니다.

『外傷은 있었죠. 12층에서 떨어졌는데 왜 外傷이 없었겠습니까. 떨어짐으로 해서 생기는 것은 있었고, 거기서 말하는 外傷은 소위 구타를 당했다든지 하는 그런 상처는 없었다는 거죠』


李益治 현대증권 회장을 처벌하지 않은 이유

─現代그룹 비자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를 보면, 李益治(이익치) 前 現代증권 회장은 2000년 초 鄭夢憲 회장 측으로부터 CD(양도성 예금증서) 150억원어치를 받아 朴智元 前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직접 전달했습니다. 李益治씨는 또 權魯甲 前 민주당 고문이 鄭회장에게 제16代 總選 지원금 명목으로 200억원을 제공해 줄 것을 부탁했을 당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李씨는 鄭회장이 朴智元ㆍ權魯甲씨에게 돈을 제공하는 과정에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검찰이 이런 李益治씨에 대해 사법처리를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회사 사장이 부하직원을 통해 공직자한테 뇌물을 주었다고 합시다. 검찰은 그동안 이 경우 회사 사장을 처벌했습니다. 중간에 돈을 전달한 사람의 경우 행위가 아주 적극적이지 않을 때에는 처벌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大選자금 수사 과정에서 Sk그룹의 구조조정본부장이었던 金昌根(김창근)씨나 三星그룹 李鶴洙(이학수)씨는 왜 처벌을 한 것입니까. 그룹의 책임자를 대신해 자금을 정치권에 전달한 부분은 李益治씨의 경우와 같지 않습니까.

『三星그룹 李鶴洙 구조조정본부장이나 이런 분들은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자기들이 정치자금을 제공할 것을 직접 결정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분들의 진술로 볼 때, 정치자금 제공행위의 최고책임자는 이분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을 처벌한 것이고, 李益治씨의 경우 중간 전달자였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은 것입니다.

중간 전달자까지 모두 처벌을 할 경우 검찰의 처벌기준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겠어요.

과거 사건 한 가지를 예로 들죠. 鄭周永(정주영) 現代그룹 회장이 돌아가신 뒤, 鄭회장의 지시로 現代그룹 계열사들이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한라중공업을 집중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이 사건을 조사했는데, 조사결과 鄭회장의 지시로 現代그룹 계열사들이 한라중공업에 대한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검찰은 이 당시 한라중공업 측에 자금을 지원한 現代그룹 계열사 사장들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지 않았습니다』


『金忠植씨는 지금까지 해외송금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金忠植(김충식) 前 現代상선 사장은 사장 재직 시인 2000년 1월 鄭夢憲 회장의 지시를 받아 회사 자금 3000만 달러(약 360억원)를 스위스 UBS 계좌로 송금했습니다. 金 前 사장은 또 2000년 3월3∼14일 사이 용선료 등의 명목으로 회사 비자금 200억원을 조성했습니다. 金 前 사장은 결국 鄭夢憲 회장의 지시로 現代상선의 비자금 약 560억원을 불법으로 조성했습니다.

金忠植씨는 검찰의 現代그룹 비자금 수사 당시인 2003년 7월 美國 LA에 보관 중인 스위스 은행 3000만 달러 송금영수증을 가지고 오겠다며 美國으로 건너간 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이 당시 金씨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를 일시적으로 해제했구요.

美國에 체류 중이던 金씨는 2004년 11월 귀국해 검찰의 조사를 받은 뒤, 12월10일 다시 美國으로 되돌아갔습니다. 李益治씨의 경우, 회사자금을 불법적으로 조성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처벌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金忠植씨는 560억원의 회사자금을 불법으로 조성했습니다. 金忠植씨를 처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요. 혹시 「플리바겐(Plea Bargain·사전형량조정제도: 주요 피의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거나 증언을 하는 代價로 형량을 줄여주는 제도)」에 의해 검찰이 金씨를 처벌하지 않기로 한 것은 아닌지요.

『金忠植씨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할 만큼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 은행 계좌로 송금한 액수조차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구요. 지난해 연말 金忠植씨를 조사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때에도 金씨는 송금영수증을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어요.

이 부분은 더 이상 자세하게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그런데 어떻게 수사기밀을 그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습니까. 검찰의 수사기밀에 대한 보안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宋총장은 모처럼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


청와대 검사 파견은 필요

─과거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검사가 파견을 나갔지 않습니까. 盧武鉉 대통령이 집권한 후 그 파견제도가 없어졌는데, 청와대와의 의사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지금은 법무부를 통해서 하고 있죠. 청와대는 대통령을 모시고 국정을 수행하기 때문에 해당 분야에 대해서 제일 잘 알아야 된다고 봐요. 그래서 그 분야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는 사실 검사가 청와대에 파견되는 것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盧武鉉 대통령은 취임 직후 평검사와의 대화 등을 통해 검찰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곤 했는데, 그런 발언을 들을 때 검찰총장으로서 기분은 어땠습니까.

『저도 마음이 안 좋죠. 최근에 여러 가지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집권 초기보다 좀 변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듭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수사를 받는 사람들이 (청와대에) 가면 자기한테 억울한 것, 유리한 것만 이야기하죠. 이런 게 자꾸 쌓이면 일할 수 없습니다. 아주 뭐 화도 나시고, 불편하시긴 했겠죠. 이쪽 이야기도 직접 들어보시고 하면 나으실 텐데…. 제가 대통령 생각을 오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어쨌든 좀 그랬습니다』

─盧대통령과 단둘이서 만났던 적은 있습니까.

『아무도 없는 데서 둘이서만 만난 적은 없습니다. 민정수석비서관 또는 법무부 장관이 배석을 했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만난 적은 있죠』

─검찰총장 임기 2년을 마감하시면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제가 영화 「공공의 적 2」를 보고 느낀 게 있습니다. 「저 영화를 초기에 좀 봤으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公共의 敵이 참 많겠구나. 조금 더 철저하게 사회의 惡을 제거해야 하는데, 과연 우리가 얼마나 수행했느냐」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검찰에 대한 압력이라는 게 겉으로는 適法(적법)하게 오지 않습니까. 그 영화를 봐도 「왜 표적 수사를 하느냐, 또 국가를 위해서 경제를 잘 하는 기업들을 왜 검찰이 시기하고 괴롭히느냐」 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런 합법을 가장한 여러 가지 압력을 내가 검사들을 위해 충분히 막아 주었는지. 좀 부족한 건 없었는지 그런 것들이 아쉽습니다』


『康錦實 장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겠다』

기자는 『법무부의 首長과 검찰의 총장이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시기가 康錦實(강금실) 장관 때인 것 같다』며 『康 前 장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宋총장은 잠시 곤혹스런 표정을 지은 뒤 『말 안 할랍니다』라고 한 마디 툭 뱉고는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했다.

─바람직한 검찰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검사 생활을 하다 보면 유혹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소위 부당한 신세를 지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과거에 보면 정치권에 인사청탁을 하고 그게 다 빚이 되어서 자기한테 돌아오고, 나중에 어떤 사건을 할 때 그 사람이 부탁을 해오면 안 들어 줄 수 있습니까. 항상 그 점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감시와 비판을 안 받는 기관은 오만해지고 권력을 남용하게 됩니다. 그 역할은 국민들이 해주셔야 합니다』

기자는 宋총장에게 『盧대통령이 대검 중앙수사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宋총장은 『現 검찰조직 체계상 그같은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역대 정권들을 보면, 대통령이 검찰 人事에 너무 깊게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어 왔습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

『(웃음)일반론적으로는 그럴 것 같아요. 중요한 보직에 자신이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하고 싶어하겠죠. 그러나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사람, 후배들이 보기에 저 사람은 저래서 왔다든지, 저 사람은 자질이 안 된다든지, 이런 사람이 거기에 가서는 안 되는데 위에서 꼭 하라면 어떡하냐, 하면은 총장은 뭐 땜에 있습니까.

그런 것부터 틀어지기 시작하면 검찰이 아무리 수사를 잘 해도 언론이나 국민이 검찰을 못 믿는 거죠. 요새 언론이 人事 배경 같은 것을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나중에 그 부분에 대한 수사를 하면서 이것은 저렇고 임명할 때부터 그렇더니 그러면 수사 자체가 신뢰가 없는 거죠. 그럼 옛날처럼 불신이 생기는 거죠』

─검찰은 후배 기수가 상위 자리에 오르면 선배들이 다 물러나는 게 관행처럼 되어 있는데, 한 조직에서 어렵게 키워 온 전문 인력의 능력이 사장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까.

『그런 점도 있습니다만, 승진의 길을 열어 줌으로써 후배들의 사기도 올려 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보기에는 동기생의 경우 굳이 나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 그런 생각이 듭니다. 日本에서는 동기생들은 안 나갑니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동기생들도 전부 나가기 시작을 했습니다』


『정치할 생각은 전혀 없다』

─총장님의 나이 쉰다섯이면 한참 활동할 나이입니다. 퇴임 이후의 계획에 대해 들려주시죠.

『제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지금은 별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여는 것은 후배들에게 부담을 줄 우려가 있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법무법인(로펌)의 고문을 맡는 게 좋은 방법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것 같습니다.

현재 제가 재직을 하고 있을 때 검찰이 수사한 대형 사건에 대해 법무법인들이 대부분 한 건 이상씩은 변호를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위에서는 學界로 가는 게 어떠냐는 권유도 있구요.

어쨌든, 후배들이 보기에 너무 초라한 모습을 안 보이면서 지금까지 해온 여러 가지 일들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개인적인 활동도 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宋光洙 총장은 『정치권으로부터 정치입문 권유가 있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정치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宋光洙 총장과의 인터뷰는 이날 오후 5시30분께서야 끝났다. 인터뷰 도중 宋총장은 기자에게 탁자 위에 놓인 과일을 여러 차례 권했다. 그러나 기자는 과일을 먹을 수 없었다. 宋총장은 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2년 내내 정국을 뒤흔드는 메가톤급 수사를 계속해 왔고, 그로 인해 宋총장의 一擧手 一投足(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국민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한마디의 질문이라도 더 하고 싶었고, 宋총장의 말을 어느 한 부분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검청사 8층 총장실을 나오면서 기자는 宋총장과 악수를 했다. 그의 손은 생각보다 따스했다.

이제 검찰의 지휘봉을 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宋光洙 검찰총장이 온갖 群像(군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모습으로 앞으로의 人生을 그려갈지 자못 궁금하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