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기자 핼버스탐 기자 사망

20세기의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자. 월남전 취재로 퓰리처賞. 'The Best and The Brightest'가 대표작.
방금 전 CNN 뉴스 자막에서 '핼버스탐 기자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이란 글이 나갔다. CNN 기사를 검색했더니 이 老기자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 언론학 전공 학생이 모는 차를 타고 가다가 충돌당한 차속에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향년 73세였다. 핼버스탐 기자의 부인은 '남편은 동료하고는 그렇게도 경쟁적인데 후배 젊은 기자들에겐 그렇게 너그러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핼버스탐 기자는 버클리에서 '저널리즘의 기술'에 대한 강연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 기자는 10년 전 하버드 대학의 니만 프로그램에서 연수할 때 20세기의 미국 정통언론을 대표하는 이 대기자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써두었던 기사를 인용한다.

<니만 세미나에 초청된 연사 중에는 [최고의 천재들](The Best and The Brightest)의 著者 데이비드 핼버스탐 기자도 있었다. 니만의 책임자인 빌 코바치는 자신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핼버스탐을 [금세기 최고의 기자]라고 소개했다. 마침 그때 기자는 케네디 스쿨에서 [역사로부터의 추론](Reasoning from History)이란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다. 1963년에 있었던 월남 대통령 고 딘 디엠 축출 쿠데타를 다루는 시간에 교수는 [누가 고 딘 디엠을 죽였는가]라는 문제를 칠판에 쓴 다음 이름을 써내려갔다. 미국 CIA, 월남 장군들, 케네디 대통령, 당시 국무부 차관 힐스맨, 당시 駐사이공 미국 대사 헨리 캐보트 롯지…

이런 명단들 가운데 핼버스탐의 이름이 들어갔다. 당시 20대 후반으로서 뉴욕 타임스 월남 특파원이었던 핼버스탐은 월남 정부의 부패와 이런 정통성 없는 정부를 지원하는 미국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이 보도로 1964년에 그는 퓰리처賞을 받았다. 핼버스탐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젊은 기자들이 쓴 反고 딘 디엠 기사가 미국의 여론을 움직여 케네디 정부가 그를 제거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키가 거의 1백90㎝나 될 것 같은 핼버스탐은 아직도 반골기질이 강한 사회부 기자 같았다. 앉자마자 그는 요사이 미국 방송국의 보도 경향을 경멸조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그처럼 피상적이고 그림을 중시하는 보여주기 위주의 보도행태가 과연 저널리즘으로 불릴 수 있는가 하는 개탄이었다. ABC의 프로그램을 지칭하여 민망할 정도로 비판하는데 그 ABC의 프로듀서인 테리가 참다 못해 손을 들더니 '선배 기자가 이런 자리에 와서 한다는 말씀이 동료들에 대한 비판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핼버스탐은 더욱 목청을 높이더니 '그러면 당신은 그런 보도를 하는 사람이 기자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취지로 한바탕 비판을 쏟아부었다. 옆에서 구경하면서 나는 [저러니 발로 뛰어 대작(大作)을 쓰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핼버스탐은 하버드대학의 학보사 기자 출신이다. 테네시州의 지방지에서 출발하여 뉴욕 타임스에 발탁되어 갔다. 10여 년간 근무한 뒤에 1967년엔 월간 잡지 하퍼誌의 전속기자로 옮겼다. 1968년에 그는 이 잡지에 [맥 조지 번디의 비싼 교육]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왜 천재들은 거지들에게 패했나

번디는 30代에 하버드 대학의 학장을 지낸 정치학자로서 역시 하버드 출신인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서 안보 보좌관으로 발탁되어 월남전에 관한 전략수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하퍼誌 기사는 번디 같은 천재가 어떻게 월남전 확대 같은 바보짓을 할 수 있었던가에 대한 심층취재였다. 이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핼버스탐은 케네디가 발탁했던 당대의 천재들이 어떻게 월남전을 이 지경으로 몰고갔는가 하는 주제로 결정판적인 책을 써보겠다는 충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쓰는 데 4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취재에 2년 반, 집필에 1년 반. 그는 취재와 집필 기간 중에 자신의 기명(記名)이 신문과 잡지에 나오지 않게 되는 그 고독과 소외감이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기자는 하루하루 숨가쁘게 벌어지고 있는 이 세상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자신을 불태우면서 이 사회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그로 해서 유명해지곤 하는 쾌감으로 살아가는 직업인이다. 핼버스탐은 이런 저널리즘의 세계로부터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파티에 참석하면 '요사이는 뭘 하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취재하고 있는 책에 대해서 설명하노라면 그들은 흥미를 잃고서 눈동자가 희미해지는 것이었다'

핼버스탐은 그러나 취재 그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에 평균 두 사람씩을 2년 반 동안 거의 매일 인터뷰했다고 한다. 신문기자 시절에는 인터뷰가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이었는데 마감시간과 지면의 제약에서 벗어나니 서너 시간 계속되기도 하는 인터뷰가 좋은 교육이 되더라는 것이다. 핼버스탐은 [나는 역사가 내어 뿜는 흥분에 감염되었다. 나는 과거가 잡아당기는 힘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이 책은 월남전에 대한 미국의 개입 과정과 실패를 분석한 책으로는 가장 많이 팔렸고 지금도 팔리고 있는 고전(古典)이다. 1972년에 간행되어 양장제본으로 약 20만부, 페이퍼 북으로 약 1백50만부가 팔렸다. 이 책의 판매에 공헌한 것은 [The Best and The Brightest]란 제목이었다. 이 문구는 이제는 미국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상용(常用)되는 단어가 되었다.

핼버스탐은 케네디가 끌어 모았던 주로 하버드 대학 출신의 일류 엘리트를 이런 신조어(新造語)로써 지칭했다. 이 책의 주제는 그러한 천재들이 어마어마한 과학병기를 동원하고서도 왜 촌로(村老)같은 호지명(胡志明)과 교장선생님처럼 생긴 지압 장군이 지휘하는 거지같은 정글 게릴라에게 패배했느냐 하는 물음이다. 그 물음에 대해서 30년만에 답한 사람이 월남전을 지휘했던 당시 국방장관 맥나마라로서 2년 전에 자서전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의 실수는 월남의 역사와 민족성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개입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월남전에의 본격적인 개입을 결정한 1965년 여름 존슨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록을 읽어보면 미군의 전쟁수행 능력에 대해서만 논의하지 월맹측의 상황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없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제1조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다]는 무시되고 있다. 이는 英美계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우월감과 여기에서 비롯된 자기 중심적인 思考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핼버스탐은 [최고의 천재들]에서 당시 미국의 對월남전을 지휘했던 엘리트들이 가진 약점을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이 주재하는 최초의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나온 부통령 린든 존슨은 자신의 정치적 대부(代父)인 샘 레이번을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장관들이 그렇게 명석할 수가 없어요. 누가 더 머리가 좋은지 분간하기 어려운데 내 생각으로는 맥나마라가 최고인 것 같아요'
한때 미국의회를 주름잡았던 레이번은 점잖게 충고한다.
'린든, 자네 말이 맞을지 몰라. 다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겠지. 그러나 말이야, 그들 중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보안관으로 출마해서 당선된 경력이 있다면 다소 안심이 될 텐데 말일세'

군사력 對 정치력

핼버스탐은 레이번의 이 지적이 핵심을 찌른 것이라고 했다. 머리만 좋은 이 엘리트들은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선거를 치른 사람들이 체득하는 인간관계나 인간심리에 대한 통찰력도 결여된 사람이었다. 상아탑이나 최고경영자의 사무실에서 길들여진 안목과 감(感)으로 월남전을 치르다 보니 역사, 문화, 민족성, 혁명적 정열, 희생정신과 같은 무형적 요소에 대해서는 등한하게 되었다. 수치화할 수 있는 병력수, 폭탄투하량, 병참, 전사자수, 무기 생산량 같은 지표를 기준으로 해서만 전쟁을 생각하니 그들에게 있어서 월남전쟁은 컴퓨터로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숫자놀음이었다.

미국 엘리트의 이런 함정을 간파한 것이 핼버스탐이었다. 그는 1967년 월남을 방문했을 때 월남전의 본질적인 성격을 정확히 파악했다. 월남전은 미국의 군사적 우월성과 월맹측의 정치적 우월성 사이의 대결인데 시간은 월맹측의 편에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미국은 언젠가는 철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미군은 전투에서는 이기고 있었지만 월맹은 즉각 인명손실을 보충할 수 있어 얼마나 많은 생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가 하는 아주 결정적인 부문에서는 항상 미군에 대하여 우위에 서 있었다.
맥나마라의 수학 對 지압의 심리학이 대결한 꼴이었다. 1969년 2월 이탈리아의 인터뷰 전문기자 올리아나 팔라치가 월맹의 국방장관 보 구엔 지압과 나눈 대화는 핼버스탐의 문제의식과 그 궤(軌)를 같이 하고 있다. 지압은 '미국은 앞으로 10년, 또는 15년간이나 월남에 60만 대군을 주둔시킬 수는 없다.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데 그러려면 괴뢰정권, 그것도 강력한 괴뢰정권을 남겨놓고 가야 하는데 이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 월남 괴뢰정권은 미국의 노예로서의 가치도 없다'라고 했다.

'미국은 모든 것을 달러로 해결하려고 한다. 자주독립 정부도 달러만 투입하면 수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수 같은 전략은 여기서 먹히지 않는다. 미군은 달러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인민의 정신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군인의 머리수는 이곳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25대 1, 6대 1, 3대 1이니 하는 병력비율은 의미가 없다. 이 전쟁은 全인민이 그들과 싸우는 전쟁이다. 전 인민이 들고일어났을 때는 이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몽골군대도 세 번이나 물리쳤다. 모든 전쟁 수단에서는 그들이 앞섰지만 우리는 저항했고 견뎠으며 우리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모든 인민이 함께 싸워야 한다. 13세기에 유효했던 것이 20세기에도 유효하다. 문제가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월남 사람이기 때문에 모두가 뛰어난 전사들인 것이다'

지압은 당시 파리에서 진행되고 있던 평화회담에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모든 것은 군사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미국은 제2의 디엔 비엔 푸를 겪게 될 것이다'고 예언했다. 지압은 또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평화를 얻어야 한다는 식은 아니다. 우리는 타협에 의한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평화는 완전한 승리, 즉 미군의 완전 철수를 뜻한다'라고 못박았다.>

핼버스탐 기자는 20여권의 책을 남겼다. 언론과 야구를 다룬 책도 있고 자동차 회사, 1950년대를 해설한 책도 있다. 2002년에 쓴 '평화 속의 전쟁'은 퓰리처 상 심사 때 차석을 했다. 권력과 사실을 파고든 그의 용기와 열정도 자동차 사고를 당하진 못했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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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FRANCISCO, California (CNN) -- Pulitzer Prize-winning journalist and author David Halberstam, whose bestselling books -- including 'The Best and the Brightest,' 'The Breaks of the Game,' 'The Reckoning' and 'October 1964' -- chronicled politics, history and sports, was killed in a car accident Monday. He was 73.

Halberstam was a passenger in a car that was broadsided by another vehicle in Menlo Park, California, near San Francisco, the San Mateo County coroner's office said Monday. The accident occurred about 10:30 a.m. Pacific time.

The driver is a student at the Graduate School of Journalism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where Halberstam had spoken Saturday about the craft of journalism, the Associated Press reported.

Halberstam appeared to have died of internal injuries, said Coroner Robert Foucrault. Halberstam was declared dead at the scene.

In 1964 Halberstam, then with The New York Times, shared a Pulitzer for international reporting for his coverage of the early years of the Vietnam War, including the 1963 overthrow of South Vietnamese leader Ngo Dinh Diem.

According to his wife, Jean, Halberstam was working on a book about the 1958 NFL championship between the New York Giants and Baltimore Colts, often considered the greatest NFL game ever played.

Orville Schell, the dean of Berkeley's journalism school, said Halberstam was in the Bay Area to talk to NFL Hall of Famer Y.A. Tittle, who played for both the Colts and Giants, though he spent most of his career with the San Francisco 49ers.

Jean Halberstam said she would remember him most for his 'unending, bottomless generosity to young journalists.'

'For someone who obviously was so competitive with himself, the generosity with other writers was incredible,' she told the AP. (Blog: David Halberstam appreciation)

'He was a dear friend,' author Gay Talese -- who was at the Halberstams' home Monday night and was best man at his wedding -- told the AP.

'The world has lost one of our greatest journalists,' the Times' chairman and publisher, Arthur Sulzberger Jr., said in a statement issued by the newspaper. 'Our heartfelt sympathy goes to David's family.'

David Halberstam was born April 10, 1934, in New York City. His father, a surgeon, moved the family around the country, and Halberstam spent time in Texas, Minnesota and Connecticut, according to the AP.

After attending Harvard University, Halberstam launched his career in 1955 at the Daily Times Leader, a small daily in West Point, Mississippi. In those late days of Jim Crow, Halberstam's progressive politics disagreed with those of the editor, and within a few years he had moved to The (Nashville) Tennessean, 'which was more amenable to coverage of racial conflict,' observed Hank Klibanoff of the Atlanta Journal-Constitution.

The civil rights movement was growing, and Halberstam was part of a group of reporters who covered what became known as 'the Nashville Movement.' He later wrote a book about the civil rights movement, 'The Children.'

In 1960, Halberstam moved to The New York Times. In 1962, the Times sent him to Vietnam.

Halberstam has said he initially supported U.S. activity there but soon questioned American involvement. He wrote about how succeeding American governments became gradually more enmeshed in Vietnam in his 1972 bestseller, 'The Best and the Brightest.'

Halberstam, along with Malcolm W. Browne, won the 1964 Pulitzer Prize for his reporting on Vietnam.

Halberstam 'stayed the course and he kept the faith in the belief in the people's right to know,' the AP's George Esper, who spent 10 years in Vietnam, told the wire service. 'In the end, and I think we can all be very proud of this, he was proven right. The bottom line was that David was more honest with the American public than their own government.'

Halberstam quit daily journalism in 1967. His 21 books include 'The Best and the Brightest,' 'The Breaks of the Game' (about the 1970s NBA), 'The Powers That Be' (about the news media), 'The Reckoning' (about Ford, Nissan and W. Edwards Deming's engineering methods), 'The Fifties' (a chronicle of the decade) and several on baseball, including 'Summer of '49,' 'October 1964' and 'The Teammates.'

His constant shifts from heavier material to lighter fare were deliberate, he said. 'You do an allegedly serious book on politics or whatever, and then you catch your breath doing a smaller book on sports,' he told CNN.com in 2003.

His 2002 best-seller, 'War in a Time of Peace,' was a runner-up for the Pulitzer Prize for nonfiction.

He was long a strong believer in skeptical, hard-hitting journalism, and wondered about its future.

'The reporting you get on the main networks is more about entertainment and sensationalism and scandal rather than substantive, so I've been somewhat melancholy and critical of it over the last decade and a half,' he said in 2003.

But he said there would always be value in the work.

'The idea that somewhere before it is a big story that there is some young person ... putting themselves on the line morally, ethically, journalistically, that is a great thing,' Halberstam told the AP. 'I mean, that is what a free society is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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