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터키의 이스탄불에선 약30만 명의 世俗派 군중이 집회를 갖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國政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터키는 지금 차기 대통령 선거를 둘러싸고 政敎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憲政질서를 수호할 책임을 진 군부와 이슬람 원리주의파의 영향이 큰 집권여당 사이에 긴장이 高潮되고 있다.
이런 갈등의 발단은 이슬람 원리주의의 색채를 띤 여당이 대통령 후보로 굴 외무장관을 지명한 것이다. 의회투표에서 굴은 3분의 2 득표를 얻지 못해 2차 투표를 앞두고 있다. 군부는 며칠 전 성명을 발표하여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政敎분리의 원칙이 무시되면 개입할 것이란 경고를 보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터키에선 이슬람 원리주의적 색채가 강한 정당이 여당이 되는 흐름이지만, 군대, 대통령, 헌법재판소가 정교분리의 원칙을 수호해왔다. 문제는 대통령 자리에 원리주의적 집권여당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오늘 30만 집회는 군부와 政敎분리 원칙을 지지하는 시위로 해석된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굴의 부인은 이슬람 여자들이 쓰는 검은 베일을 착용한다. 이슬람의 영향력이 정치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는 政敎분리파, 이른바 세속파 세력은 '國父인 아타투르크(케말 파샤)의 궁전에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 살아선 안된다'고 말한다.
케말 파샤로 더 널리 알려진 아타투르크는 오토만 투르크 제국이 무너진 자리에 터키 공화국을 건설할 때 政敎분리의 원칙을 확립했다. 이슬람과 정치를 분리하여 국민들이 국민국가 중심으로 뭉치도록 한 것이다. 이슬람 세계의 宗主國이었던 오토만 투르크에서 이런 혁명적 변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1차 대전과 독립전쟁의 영웅인 아타투르크가 터키를 거의 한 손으로 세운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인데다가 군부가 정교분리 원칙의 수호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헌법상 아타투르크의 政敎분리를 수호할 책임은 군부에 주어져 있다. 군부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영향력이 커지면 몇 번 경고를 보낸다. 그러면 원리주의적 성향의 수상이나 정당이 알아서 사퇴한다. 끝까지 거부하면 군대가 개입하여 몰아낸다. 이는 쿠데타가 아니다. 합헌적인 憲政수호 행동이다.
유럽과 미국은 이번에도 터키 군부의 정치 개입에 대해서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유럽과 미국의 태도는 자기 모순이다. 터키가 이슬람 원리주의 노선으로 가버리면 중동은 후퇴한다. 터키만이 중동에서 유일하게 政敎분리에 성공하여 근대화를 이룬 나라이다. 그런 근대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터키 군부의 이슬람 원리주의 억제 정책이었다.
유럽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 결과가 터키의 이란화가 된다면 책임을 지겠느냐고 추궁해도 유럽이나 미국정부는 '우리는 그것까지 걱정할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이다. 국가를 세우고 지키는 일도 힘든 中東국가에 대해서 민주주의를 하라고 강요하면 그 틈을 타고 호메이니 같은 원리주의자들이 득세하여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터키 어디를 가든지 아타투르크의 사진이 보인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가 터키로 하여금 親서방적 공화국으로 남아 있도록 했다. 중동에서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터키가 世俗국가로 남아 있도록 도우는 것이 중동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터키의 헌법재판소가 어제 의회의 대통령 선거 과정에 위헌적 사태가 발생했다면서 무효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현 외무장관 굴을 대통령으로 뽑으려는 계획엔 일단 제동이 걸렸다.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에르도간 총리는 '개헌을 해서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도록 하겠다'고 반발하면서 오는 6월24일에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헌법재판소는 군부와 함께 國父 케말 파샤의 政敎 분리 원칙을 수호하는 기관이다. 군부는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대통령에 뽑히는 사태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어서 약70만 명의 시민들이 親군부-反이슬람 원리주의 시위를 벌인 끝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터키 의회와 행정부는 正義개발당이란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이 다수를 장악하고 있다. 터키 국민들은 거의 전부가 이슬람 교도들이지만 이란식의 원리주의 정치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고 있다. 중동에서 反美 분위기가 확산되는 속에서 터키내에서도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선거를 통해서 의회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中東의 이슬람 국가중 유일하게 政敎분리와 민주화에 성공한 것이 터키이다.
터키는 親서방 정책을 펴왔으나 최근 EU 가입을 둘러싼 협상과정에서 유럽국가들의 反터키 성향에 직면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터키 이민자들을 경계하고 있다. EU는 이번에 터키의 군부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으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터키의 권력을 잡는 데는 반대하고 있다.
*터키에서는 군대와 대통령과 내각이 행정권을 나눠갖고 있다. 군대와 대통령은 내각과 상의없이 독립적으로 정책을 집행하기도 한다. 3者가 균등한 것이 아니고 국방 외교 부문에선 군대가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한다.
*군대는 행정, 사법, 재정 부문에서 독립적이다. 예컨대 고등군사법정과 최고군사평의회는 군사와 관계된 사건에 있어서 민간인들에게도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군대가 제출한 예산안에 대해서는 내각과 국회가 이견을 제기할 수 없다.
*軍 인사에 대해서도 수상과 국방장관은 거의 발언권이 없고 최고군사평의회에서 독립적으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터키 헌법 117조는 참모총장은 수상에게만 책임을 진다고 규정했다. 군사문제에 관한 최고결정기관인 국가안전위원회(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참모총장은 장관급 위원들보다 높고 사실상 수상과 동급이다. 1992년 참모총장 도간 귀레스는 '나는 국가로부터 지명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터키는 군사국가이다'라고 공언했다. 참모총장의 공식 서열은 대통령, 국회의장, 수상 다음이지만 實權은 가장 크다.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 터키는 헌법118조를 통해서 국가안전위원회(NSC)를 만들었다. 이 기구는 국방 및 외교 정책을 자문한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결정한다. 구성은 군대에서 다섯 명, 민간장관들이 다섯이다. 참모총장, 육해공군 사령관, 헌병사령관이 군대 대표이다. 대통령, 수상, 국방장관, 내무장관, 외무장관이 민간인 대표이다. 국방장관은 군부가 지명하므로 이 회의에서는 군대 의사대로 결정이 나게 되어 있다. 더구나 군대 대표는 한 목소리인데 민간 대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어 표결을 하면 군대의 제안이 모두 통과된다.
*국방 외교 부문과 이에 관련된 內政에 대해서 군대가 최종적인 결정권을 제도적으로 확보했기 때문에 이슬람 정당이 등장해도 결국은 군대에 굴복한다. 1996-97년 사이 이슬람 정당인 복지당이 정의당과 연립하여 집권했을 때 수상인 에르바칸은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란 리비아 나이제리아와의 화해정책을 추진했다. 군대는 여기에 제동을 걸기 위하여 독자적인 외교-안보정책을 밀고나가 이스라엘과의 군사적 협조관계를 강화했다. 1996년 12월에 이란의 라프산자니 대통령이 앙카라를 방문하자 군대는 공식 만찬에 불참했고, 군사대표의 무기공장 방문 요청을 거절했다.
1997년 2월 군대는 국가안보위원회에 18개항의 제안을 했다. 이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정치에 간여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다. NSC를 통과하여 집권당에 통보된 18개항의 내용은 反이란, 反이슬람원리주의적 내용들이었다. 이슬람원리주의 정당에서 수상이 된 에르바칸은 18개항에 반대했으나 군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서명한 뒤 그해 6월에 사임했다.
*터키가 독일 오스트리아 편에서 참전했던 1차세계대전중 英佛 연합군이 가장 크게 졌던 갈리폴리 전투의 영웅이자 독립전쟁의 지도자이며 터키공화국 초대 대통령이자 위대한 개혁가인 케말 파샤. 國父(아타투르크)로 불리는 그는 오토만 투르크의 유산인 政敎 일체를 깨고 정치와 이슬람을 분리시켰다. 오토만 투르크 제국 시대에 황제(술탄)는 이슬람의 교황(칼리프)을 겸했다. 터키의 서구식 근대화의 핵심은 政敎 분리를 통해서 이슬람의 종교개입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케말은 이 임무를 군대에 맡겼다. 그의 死後에도 터키 군대는 케말리즘(케말의 개혁이념)과 國體의 최종 수호자로서 세 번에 걸쳐 정치에 개입하여 혼란을 수습하고 兵營에 돌아갔다. 이는 불법 쿠데타가 아니고 헌법과 전통에 기초한 군대의 합법적 개입이었다.
1960년, 1971년, 1980년 세 차례 군대는 민간정권이 정치, 경제적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國政을 장악하고는 정치지도자들을 투옥, 연금한 뒤 정치판을 정리해주었다. 터키 군대는 특권을 많이 누리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거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다. 세 번의 군대 개입 모두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슬람 세계에서 근대화 개혁에 성공한 것은 지금까지도 터키뿐이라고 할 정도이다. 이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누를 수 있었던 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터키 군대는 국가와 國體(케말의 개혁노선에 입각한 세속 체제)의 수호자이다. 이 군대의 권위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케말 파샤 숭배이다.
북한의 김일성을 제외하고는 터키처럼 죽은 지도자를 기리는 나라가 없을 것이다. 그의 사진은 길에도, 벽에도, 車에도 붙어 있다. 케말의 근대화 혁명은 '脫이슬람, 入서구'의 방향이었다. 이는 朴正熙의 근대화 혁명이 조선조적인 명분론과 양반정치문화를 배격하고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實事求是 노선을 추구했던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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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대한민국 헌법상의 '국군의 사명'
대한민국헌법 제5조: ①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②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따라서 첫째, 국군은 오로지 국가 국민 국익을 기준으로 행동해야 하며 어떤 정파 편도 들어선 안된다. 둘째, 국군은 정권을 탐해선 안되고 정치에 간여해서도 안되지만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는 정치를 알아야 한다. 셋째, 국군은 국토방위뿐 아니라 국가의 안전보장까지 책임을 져야 하므로 外敵뿐 아니라 內敵도 경계하여야 한다. 넷째, 국군은 외국을 침략해선 안된다. 다섯째, 국군은 국제평화를 유지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터키 사태의 이해를 위하여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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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4-29, 2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