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어린 소녀로부터 80이 다 된 나는 배우는 바가 많다.
나에게는 초등학교 3학년 밖에 되지 않는 매우 어린 조카가 있다. 이름은 지순이이다. 이 애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서 일찍이 영국시인 워즈워드가 무지개를 노래하면서 던진 한마디가 생각난다. “어린애는 어른의 아버지. 그리고 내가 사는 하루하루가 타고난 경건으로 얽어지기를.”
어른을 어린애의 아버지라고 해야 할 텐데 이 시인은 어찌하여 “어린애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엉뚱한 말을 했을까. 물론 예전에도 그 풀이를 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애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과 또 하나는 어른들이 잘난 척하지만 애들에게서 배울 바가 많다는 그런 뜻으로 풀이를 하였다.
그런데 날마다 성장하는 지순이를 보면서 워즈워드의 그 한마디가 얼마나 적절한가를 되새기게 되었다. 10살 어린 소녀로부터 80이 다 된 나는 배우는 바가 많다. 내가 저를 껴안고 “너 좋은 사람이지”라고 물으면 당장 “네”하지만 “너 '참' 좋은 사람이지”라고 물으면 대답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엄마 말 안 듣고 아빠 말을 거역한 일들이 생각나기 때문에 지순이는 자기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른들의 세상을 둘러보면 순수한 것이나 순진한 것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어렵다. 거짓말 잘하고 남을 속이는 일을 식은 죽 먹듯 하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이 어른들이 아닌가.
운보 김기창 화백은 만년에 가서 얼핏 보기에 유치한 그림을 그렸다. 전시장에서 “왜 그렇게 어린아이들처럼 그림을 그립니까”라고 내가 물었더니 말이 어눌한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팜프렛 뒤에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라고 적어 주었다. 동심으로 돌아가야 우리는 다시 무지개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김동길
www.kimdonggill.com
나에게는 초등학교 3학년 밖에 되지 않는 매우 어린 조카가 있다. 이름은 지순이이다. 이 애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서 일찍이 영국시인 워즈워드가 무지개를 노래하면서 던진 한마디가 생각난다. “어린애는 어른의 아버지. 그리고 내가 사는 하루하루가 타고난 경건으로 얽어지기를.”
어른을 어린애의 아버지라고 해야 할 텐데 이 시인은 어찌하여 “어린애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엉뚱한 말을 했을까. 물론 예전에도 그 풀이를 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애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과 또 하나는 어른들이 잘난 척하지만 애들에게서 배울 바가 많다는 그런 뜻으로 풀이를 하였다.
그런데 날마다 성장하는 지순이를 보면서 워즈워드의 그 한마디가 얼마나 적절한가를 되새기게 되었다. 10살 어린 소녀로부터 80이 다 된 나는 배우는 바가 많다. 내가 저를 껴안고 “너 좋은 사람이지”라고 물으면 당장 “네”하지만 “너 '참' 좋은 사람이지”라고 물으면 대답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엄마 말 안 듣고 아빠 말을 거역한 일들이 생각나기 때문에 지순이는 자기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른들의 세상을 둘러보면 순수한 것이나 순진한 것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어렵다. 거짓말 잘하고 남을 속이는 일을 식은 죽 먹듯 하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이 어른들이 아닌가.
운보 김기창 화백은 만년에 가서 얼핏 보기에 유치한 그림을 그렸다. 전시장에서 “왜 그렇게 어린아이들처럼 그림을 그립니까”라고 내가 물었더니 말이 어눌한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팜프렛 뒤에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라고 적어 주었다. 동심으로 돌아가야 우리는 다시 무지개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김동길
www.kimdonggill.com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