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면 中東의 세력균형이 反서양쪽으로 무너진다.
이슬람 근본주의적 색채가 강한 터키 집권당(AK당)의 대통령 후보 압둘라 굴(현 외무장관)은 어제 국회의 2차 대통령 間選투표가 불발한 직후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을 뽑을 때는 국회 在籍 의원수의 3분의 2 이상이 참석해야 하는데 어제 야당이 불참하여 8석이 모자랐다. 헌법재판소는 제1차 투표에서도 의결정족수가 모자랐다면서 굴의 당선을 무효화시키는 결정을 내렸었다. 에르도간 수상은 오는 7월에 국회의원 총선거를 실시하여 憲政위기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터키의 대통령職은 실권은 없으나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이 있다. 지금까지 이 자리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터키 공화국의 國父인 케말 파샤(현지에선 아타투르크라고 부른다)는 1923년에 政敎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세속적 국민국가를 발족시켰다. 이 政敎분리의 원칙을 수호할 기관으로선 군대를 지정했다. 과거 네 번에 걸쳐 터키 군대는 정치에 개입하여 정권을 교체했다. 국가안보가 위협을 받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정치를 농단하는 것을 저지할 헌법상 책임이 군대한테 있기때문이다. 군대에 의한 정권교체를 보통 쿠데타라고 부르지만 터키 軍은 합헌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오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이슬람 黨이 다수당이 될 전망이다. 터키의 이슬람 黨은 온건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슬람 黨은 집권당으로서 유럽공동체 가입을 위한 對EU 협상을 시작했다. 유럽에선 군부가 이슬람 黨을 압박하는 데 대해 비판적이다. 터키 군대가 너무 이슬람 黨을 압박하면 이 黨이 극단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中東에서 政敎분리의 원칙에 입각한 국민국가 건설이 성공한 곳은 터키뿐이다. 군대가 憲政의 수호자 역할을 하지 않았으면 터키도 內戰상태로 갔든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이란식의 혁명을 일으켰을지 모른다. 터키의 군부는 중산층, 기업인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지지를 받고 있다. 터키 군대는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다. 이것이 군대의 권위를 뒷받침하기 때문에 아직까진 어떤 정치세력도 군부와 정면 대결하지는 못했다.
터키의 가는 길을 서방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중동의 2大 군사강국이 이란과 터키이다. 터키는 군부의 작용에 의해서 親이스라엘 노선을 견지해오면서 군사협력관계를 발전시켰다. 터키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면 中東의 세력균형이 反서양쪽으로 무너진다. 이런 상황으로 해서 터키 군부는 이슬람 黨에 대해서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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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日 정권의 심장마비: BDA 거래 북한계좌 32개 명단 공개!
-32개의 은행과 무역회사가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금지 조치를 당하니 정권의 심장부가 발작을 일으켰다!
이달의 특종/북한정권 심장부 사실상 기능정지! BDA 거래 북한계좌 32개의 정체를 공개한다
-김정일 경리실, 무력부, 보위부, 보안성 등 북한정권의 은행, 회사 총망라, 정권 심장부 마비 상태!
인간과 조직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북한정권은 미국에 대해서 후안무치한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이 北核 문제 해결을 위해서 위조달러 유통 등 불법혐의로 동결된 마카오 BDA(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계좌를 풀어주어 돈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자 또 다른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만으론 안된다. 우리가 이 돈을 국제금융기관 어디에나 맡길 수 있고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불법자금을 취급했다고 하여 BDA를 '돈 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하고 미국금융기관과의 거래를 금지시킴으로써 사실상 부도로 몰아버렸다. 그래놓고 문제의 장본인인 북한정권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국제금융기관이 미국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곳도 아니다.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 경찰이 훈계방면으로 선처를 해주자 '내가 구속되어 있는 동안에 회사에서 파면되었다. 회사에 복직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김정일 정권이 이렇게 추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BDA는 북한정권의 핵심부가 私금고처럼 이용했던 은행이다. 북한정권은 간부들 사이에서 '델타은행'으로 알려진 이 은행을 통해서 사치품도 사고 선물도 구입했으며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 부품도 수입했다. 이 은행은 북한정권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對外창구였다.
BDA의 거래액중 북한 몫이 약22%였다고 한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은행에서 한 거래자의 몫이 22%라는 것은 사실상 私금고의 역할을 해왔다는 뜻이다. BDA의 북한계좌는 52개라고 한다. 그 명단은 밝혀진 것이 없다. 필자는 이 은행을 많이 이용했던 한 고위 탈북자로부터 BDA의 북한 계좌 32개의 명단을 얻을 수 있었다.
A. 은행
1. 조선무역은행
2. 대성은행
3. 조선합영은행
4. 창광신용은행(현재는 단천신용은행으로 개명. 무기관련 수출입 담당)
5. 조선상업은행
6. 고려은행
7. 은덕은행(당 군수공업부 소속)
8. 조선통일발전은행(당 경공업부 소속)
9. 룡악산 은행(인민무력부 소속)
B. 무역회사
1. 만경무역회사(김정일의 비자금 관리 39호실 소속)
2. 묘향무역회사(39호실 소속)
*위의 두 회사는 김정일과 그 측근들이 필요로 하는 사치품, 고급건축자재 들을 수입한다.
3. 광명성 무역회사(통일전선부 소속)
4. 장미무역회사(통일전선부 소속)
*두 회사는 對南무역을 맡고 있다.
5. 은덕무역회사(당중앙 군수공업부)
6. 금릉수출입상사(군수공업부)
*위의 두 회사는 무기를 수출하고 컴퓨터 등 최신장비를 수입하는 일을 한다.
7. 영광무역회사(당중앙 국제부 소속)
8. 대양무역회사(당중안 간부부 소속)
*위의 두 회사는 국제부와 간부부의 고위직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구입하고 자금을 마련한다.
9. 릉라도 무역총회사(평양시 당위원회 및 39호실 산하): 평양시가 필요로 하는 물자 수입, 명절 선물용품 수입 담당.
10. 광명성 무역총국(39호실)
11. 대성무역총국(39호실)
*위의 두 회사는 對南공작 창구이다. 김대중 정권이 現代그룹과 국정원을 앞세워 4억5000만 달러를 보낼 때도 관련된 회사이다.
12, 능라888무역상사(김일성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소속)
13. 남양무역회사(정무원 소속)
14. 동흥무역회사(인민보안성 소속)
15. 은하무역총회사(김정일 여동생 김경희가 관리하는 경공업성 소속. 피복수출, 보세가공 등)
16. 평양담배수출입회사(경공업성. 가짜 담배도 만든다)
17. 룡악산 무역총회사(군수공업 담당인 제2경제위원회 소속)
18. 은파산 무역회사(인민무력부 소속인 국경경비대 회사)
19. 비로봉 무역회사(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20. 매봉무역회사(인민무력부 소속. 금 및 무기 수출)
21. 옥류무역회사(대외봉사총국 소속)
22. 칠성무역회사(호위총국 소속)
23. 신흥무역회사(국가보위부 소속)
정권의 심장마비
위의 명단을 보면 북한정권의 심장부 기관이 다 드러난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외화를 조달하여 운영비를 대고 간부들의 호화판 생활을 유지한다. 북한체제를 위해서 필수적인 무기수출과 무기수입도 BDA를 통해서 이뤄졌다. 對南공작비도 이 은행을 거쳐서 한국으로 흘러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거꾸로 우리가 모르는 對北불법송금도 이 은행을 경유했을 가능성이 있다.
위에 적힌 32개의 명단은 북한정권을 유지해온 은행들과 회사들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계좌는 BDA가 자금세탁우려은행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不法자금을 유통시키는 계좌로 취급을 받게 되었다. 정상적인 은행이라면 이 계좌를 취급하지 않는다. 중국의 국책은행인 뱅크 오브 차이나와 HSBC 등 마카오에 있는 27개 은행 모두 북한자금 취급 거부 방침을 결정한 상태이다. 한국의 親北정권이 한국수출입은행에 압력을 넣어 BDA에서 풀려난 2500만 달러의 북한 불법자금을 세탁하여 다른 은행으로 넘겨주는 중계역할을 맡도록 하려 했다가 반발을 사고 있다. 盧 정권의 이런 압력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은행들과 특히 수출입은행을 불법돈세탁 기관으로 보게 만드는 自害행위이다.
문제는 BDA에 계좌를 가진 것으로 노출된 북한의 은행과 무역회사들이 김정일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 필수적인 존재란 점이다. 이들이 외화를 벌어들이고 무기를 수출하고 對南공작을 지원하고 핵개발 부품을 들여오지 못하면 북한정권의 심장부는 마비되고 일부 기능정지 사태가 발생한다. BDA는 사실상 북한정권의 심장이었다. 이 심장이 기능정지되니 이곳을 중심으로 흘러가던 혈관이 막혀버리고 북한정권은 마비, 경련, 공황상태로 빠져든 것이다.
김정일이 작년에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한 것도 무슨 전략적 계산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내 돈을 풀어다오'라는 뜻을 담은 신경질적인 투정이었다. 문제는 미국도 이젠 마음대로 북한정권의 계좌를 국제금융시장에서 보증해줄 수 없다는 점이다. 해결책은 북한정권에서 나와야 한다. 위조지폐를 더 만들지 않겠다는 뜻으로 동판을 파기하고 마약밀매, 무기 밀수출을 그만두고, 가짜담배, 가짜 비아그라를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과 실천을 해야 국제금융시장의 봉쇄를 풀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김정일 정권은 무너질 것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이것이 김정일의 딜레머이다.
BDA 등 북한 해외비자금의 성격은 북한인민들이 피, 땀, 눈물로 번 외화를 김정일이 해외로 횡령, 착복한 돈이다. 그만큼 북한경제가 멍들고 인민은 굶주린다.
1. 여당 對 군부: 터키사태의 他山之石
政敎분리의 케말리즘을 수호할 책임을 진 군부는 합헌적으로 물리력을 사용하여 이슬람화를 견제하고 있다.
지난 5월 초 터키의 집권 여당인 AK당이 미는 대통령 후보가 야당의 보이콧으로 국회에서 선출되지 못하자 여당은 헌법을 개정하여 국민들이 直選으로 대통령을 뽑도록 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슬람의 영향이 國政에 반영되는 것을 반대하는 군부, 세속주의 세력, 헌법재판소가 이슬람주의 AK당이 미는 대통령 후보의 선출을 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타개책이다.
헌법개정안이 통과되려면 두 번의 국회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政敎분리의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현 대통령은 헌법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갖고 있다. AK당은 자신들을 이슬람 근본주의로 모는 것은 모함이라고 주장한다. 유럽공동체(EU) 가입을 추진했고 서구적인 개혁을 많이 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터키 공화국의 前身인 오토만 터키 제국은 황제가 이슬람의 교황격인 칼리프를 겸했다. 오토만 터키는 1차세계대전 때 독일 편에 섰다가 망했다.
케말 파샤가 주도한 터키 공화국의 건국은 서구적 개혁이념을 수용했다. 지금도 國父로 추앙받는 케말 파샤(터키에선 아타투르크라고 부른다)는 여성 참정권 허용, 아랍문자를 라틴 알파벳으로 대체, 政敎분리 등 파격적 개혁을 단행했다. 1차대전과 독립전쟁의 영웅 케말 파샤는 군부를 政敎분리에 입각한 세속정치의 이념으로 무장시켰다. 이슬람 국가가 근대적 국민국가로 바뀐 것이다.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는 이슬람圈에서 가장 성공한 근대화 개혁이었다. 오늘의 터키가 그래도 流血사태 없이 종교와 정치의 갈등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성숙되었음을 보여준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건국된 대한민국의 조종실로 反자유민주적 세력이 들어와 나라를 친북화시키는 데 대한 대한민국 세력의 반발과 비슷한 상황이다. 차이는 터키에선 헌법체계가 국가이념의 수호를 군부가 책임 지도록 한 데 반해 한국에선 군대의 지휘부가 친북적 권력에 맹종하여 韓美연합사까지 스스로 해체하기로 한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5조는 국군의 신성한 임무로서 국토방위 이외에 '국가의 안전보장'을 규정하긴 했다.
지난 4월말엔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서 약70만 명의 世俗派 군중이 집회를 갖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영향력 증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갈등의 발단은 이슬람 원리주의의 색채를 띤 여당이 대통령 후보로 굴 외무장관을 지명한 것이다. 군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政敎분리의 원칙이 무시되면 개입할 것이란 경고를 보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터키에선 이슬람 원리주의적 색채가 강한 정당이 선거를 통해서 여당이 되어 행정부는 장악하지만 군대, 대통령, 헌법재판소가 政敎분리의 원칙을 수호하여 이슬람화를 막아왔다. 여당이 내세운 대통령 후보인 굴의 부인은 이슬람 여자들이 쓰는 검은 베일을 착용한다. 이슬람의 영향력이 정치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는 政敎분리파, 이른바 세속파 세력은 '國父인 아타투르크(케말 파샤)의 궁전에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 살아선 안된다'고 말한다.
대규모 시위 직후 헌법재판소도 굴에 대한 국회의 1차 투표가 정족수 미달로 무효였다고 결정했고 굴은 후보에서 사퇴했다. 여당은 오는 7월에 조기총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터키 헌법구조상 아타투르크의 政敎분리 이념을 수호할 책임은 군부에 주어져 있다. 군부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영향력이 커지면 몇 번 경고를 보낸다. 그러면 원리주의적 성향의 수상이나 정당이 알아서 사퇴하거나 해산한다. 끝까지 거부하면 군대가 개입하여 몰아낸다. 이는 쿠데타가 아니다. 합헌적인 憲政수호 행동이다.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이슬람圈 국가
유럽과 미국은 이번에도 터키 군부의 정치 개입에 대해서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유럽과 미국의 태도는 자기 모순이다. 터키가 이슬람 원리주의 노선으로 가버리면 중동은 후퇴한다. 터키만이 중동에서 유일하게 政敎분리에 성공하여 근대화를 이룬 나라이다. 그런 근대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터키 군부의 이슬람 원리주의 억제 정책이었다.
유럽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 결과가 터키의 이란화가 된다면 책임을 지겠느냐고 추궁해도 유럽이나 미국정부는 '우리는 그것까지 걱정할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이다. 국가를 세우고 지키는 일도 힘든 中東국가에 대해서 민주주의를 하라고 강요하면 그 틈을 타고 호메이니 같은 원리주의 혁명가들이 득세하여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터키 어디를 가든지 아타투르크(케말 파샤)의 사진이 보인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가 터키로 하여금 親서방적 공화국으로 남아 있도록 했다.
터키에서는 군대와 대통령과 내각이 행정권을 나눠갖고 있다. 군대와 대통령은 내각과 상의없이 독립적으로 정책을 집행하기도 한다. 3者가 균등한 것이 아니고 국방 외교 부문에선 군대가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한다.
*군대는 행정, 사법, 재정 부문에서 독립적이다. 예컨대 고등군사법정과 최고군사평의회는 군사와 관계된 사건에 있어서 민간인들에게도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군대가 제출한 예산안에 대해서는 내각과 국회가 이견을 제기할 수 없다.
*軍 인사에 대해서도 수상과 국방장관은 거의 발언권이 없고 최고군사평의회에서 독립적으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터키 헌법 117조는 참모총장은 수상에게만 책임을 진다고 규정했으나 사실은 독립적이다. 군사문제에 관한 최고결정기관인 국가안전위원회(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참모총장은 장관급 위원들보다 높고 사실상 수상과 동급이다. 1992년 참모총장 도간 귀레스는 '나는 국가로부터 지명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터키는 군사국가이다'라고 공언했다. 참모총장의 공식 서열은 대통령, 국회의장, 수상 다음이지만 實權은 가장 크다.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 터키는 헌법118조를 통해서 국가안전위원회(NSC)를 만들었다. 이 기구는 국방 및 외교 정책을 자문한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결정한다. 구성은 군대에서 다섯 명, 민간장관들이 다섯이다. 참모총장, 육해공군 사령관, 헌병사령관이 군대 대표이다. 대통령, 수상, 국방장관, 내무장관, 외무장관이 민간인 대표이다. 국방장관은 군부가 지명하므로 이 회의에서는 군대 의사대로 결정이 나게 되어 있다. 더구나 군대 대표는 한 목소리인데 민간 대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어 표결을 하면 군대의 제안이 모두 통과된다.
*국방 외교 부문과 이에 관련된 內政에 대해서 군대가 최종적인 결정권을 제도적으로 확보했기 때문에 이슬람 정당이 등장해도 결국은 군대에 굴복한다. 1996-97년 사이 이슬람 정당인 복지당이 정의당과 연립하여 집권했을 때 수상인 에르바칸은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란 리비아 나이제리아와의 화해정책을 추진했다. 군대는 여기에 제동을 걸기 위하여 독자적인 외교-안보정책을 밀고나가 이스라엘과의 군사적 협조관계를 강화했다. 1996년 12월에 이란의 라프산자니 대통령이 앙카라를 방문하자 군대는 공식 만찬에 불참했고, 군사대표의 무기공장 방문 요청을 거절했다.
1997년 2월 군대는 국가안보위원회에 18개항의 제안을 했다. 이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정치에 간여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다. NSC를 통과하여 집권당에 통보된 18개항의 내용은 反이란, 反이슬람원리주의적 내용들이었다. 이슬람원리주의 정당에서 수상이 된 에르바칸은 18개항에 반대했으나 군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서명한 뒤 그해 6월에 사임했다.
1960년, 1971년, 1980년 세 차례 군대는 민간정권이 정치, 경제적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國政을 장악하고는 정치지도자들을 투옥, 연금한 뒤 정치판을 정리해주었다. 터키 군대는 특권을 많이 누리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거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다. 세 번의 군대 개입 모두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참고로 대한민국헌법 제5조는 '①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②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천명하고 있다. 金正日에 포섭된 반역세력이 민주세력으로 위장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反국가-反헌법정책을 추진할 때 국군이 국가의 안전보장의 신성한 의무를 어떻게 다할 수 있는가는 고민할 사항이다.
2. 이란을 우습게 보는 바보들에게
이란인들은 세계적인 大제국 다섯 개를 만들었다. 이슬람은 이란인들에 의해서 풍성해졌다.
이란은 이슬람이지만 아랍이 아니다
최근 중동에 주재하는 한 한국대사를 만났다. 그는 이슬람 문화와 역사에 관련된 책도 번역하고 현지 대학에 나가 강의도 하는 학구파였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이 이란을 저렇게 대우하면 안됩니다. 이란과 페르샤의 역사를 알면 그렇게 마구 대할 순 없습니다'
영국의 이슬람 전문학자 버나드 루이스가 쓴 '바벨(Babel)에서 드라고만스(Dragomans)까지: 중동을 통역한다'라는 논평집을 읽다가 비슷한 대목과 만났다. 그는 이란이 인류역사, 특히 이슬람 문화에 끼친 막중한 영향력을 강조했다. 이 글을 읽고나니 호메이니로 대표되는 이란이 아닌 다양하고 풍성하고 교양 있는 페르샤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의 문제점을 가지고, 그것도 서구식-기독교적 관점에서만 본 문제의식을 가지고는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하고 깊은 나라가 이란이다. 인구는 약7000만 명, 면적은 한반도의 약8배인 160만 평방킬로미터이다.
이란의 독특하고 위대한 역사와 문화는 먼저 이슬람과 연관되어 설명하는 것이 편하겠다. 이란을 아랍국가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란은 이슬람 국가이지만 아랍국가는 아니다. 이란인들은 아랍족이 아니고 아랍어를 쓰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의 유럽, 특히 게르만족과 뿌리가 같은 인종이다. 히틀러는 독일사람들의 인종적 뿌리를 아리안족이라 불렀다. 이란과 아리안은 같은 뜻이다.
이란은 이슬람화되었지만 다른 中東국가처럼 아랍화되지는 않았다. 첫째, 언어가 아랍화되지 않았다. 서기 7~8세기에 이슬람을 받아들인 거의 모든 中東국가들은 고유언어를 버리고 아랍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같은 最古의 문명과 언어를 자랑하는 나라들도 母國語를 버리고 아랍어를 쓰게 되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고유문화와 상당부분 단절되었다. 이슬람은 또 이슬람의 宗敎史를 중점적으로 가르치지 국가와 민족의 역사는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슬람은 종교공동체 성격이 강해 근대 국민국가의 원리와는 항상 갈등한다.
이란은 아랍인들에 의해 점령되고 이슬람을 수용했지만 이란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란어는 독일어나 영어와 비슷한 구조이고 단어도 비슷한 게 많다. 17세기에 비엔나에 파견된 오토만 투르크 대사는 '합스부르그 왕조 사람들은 잡스러워진 이란어를 쓰고 있다'고 오해했다고 한다.
이란인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母國語를 지켜갔지만 동시에 아랍어도 배웠다. 이란의 많은 문학가와 지식인들이 아랍어로 詩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는 이슬람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발상한 이슬람은 문화적 깊이가 약했다. 아랍족의 이슬람 세력은 이란을 이슬람화함으로써 제2의 도약을 했다. 사막적인 종교가 아닌 문화적 종교, 세계적 종교로 변한 것이다. 메디안-페르샤-파르티아-사산朝로 이어지면서 축적된 독창적이고 풍성한 이란문명이 이슬람에 수혈되어 이슬람을 생동감 넘치는 종교로 거듭 태어나게 만든 것이다.
정복자 이슬람을 이란化
이란의 이런 문화적 힘은 역사에서 우러난 것이다. 이란은 중동국가들 가운데 독자성을 가장 오래 유지한 나라이다. 다른 中東국가들은 이 민족, 저 민족에 의하여 침공받고 점령되어 문화적 정체성을 오래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시리아를 예로 들면 약8000년의 역사를 통해 33개 문명이 교차했다.
이란(페르샤)은 그리스로 대표되는 서양에 대해서 항상 優位를 지켜오다가 서기 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에 의하여 잠시 점령되었으나 곧 파르티아 제국을 만들어 로마와 대결했다. 파르티아 제국은 로마의 침공도 저지하여 페르샤 지역을 서양화(기독교화)시키지 않았다. 그리스-로마 문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파르티아를 이은 제국은 사산朝였다. 이 제국은 7세기에 시리아에 본부를 둔 움마야드 왕조에 의해 점령되어 이슬람화되었으나 이란인들은 이슬람을 페르샤화해버렸다. 우수한 문화를 가진 민족은 저급한 문화를 가진 민족에 의해 정복되지만 그 문화의 힘으로 정복자를 다시 정복해버린다. 이란은 이슬람 문명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셈이다. 압바시드 왕조가 움마야드 왕조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바그다드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이란 장군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압바시드 왕조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관료, 지식인들은 거의가 이란인들이었다.
13세기에 몽골, 15세기에 티무르의 침공을 받은 이란은 황폐되었다. 이란이 몽골의 西征으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당했다. 인구의 약 반이 죽었다고 한다. 몽골이 중국의 宋을 점령하고 세운 元의 관료층 안에는 이란 지식인들이 많았다. 이슬람을 믿는 16세기의 몽골 기마군단이 인도를 점령하고 세운 무갈 제국의 지배층안에도 이란인들이 많았다. 이란은 주변지역, 즉 中東, 중앙 아시아, 터키, 인도를 밝히는 문화적 등불이었다.
1501년 이란에서 사파비드 제국이 일어났다. 이란인들은 세계 역사에 남을 만한 다섯 개의 大제국을 만든 민족이다. 메디안-페르샤-파르티아-사산朝-사파비드 제국이 그것이다.
이란이 과연 '惡의 軸'인가?
16~20세기에 中東 이슬람 세계에는 두 라이벌이 있었다. 오토만 투르크와 사파비드 제국을 세운 이란이었다. 오토만 투르크는 중동, 유럽,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여 두 차례 비엔나를 포위하는 등 유럽을 위협했으나 이란을 점령하지는 못했다. 영국의 이슬람 전문가 버나드 루이스에 따르면 오토만 투르크 제국은 문명적 측면에선 이란의 영향권 아래 들어 있었다고 한다. 루이스는 현재의 中東도 터키와 이란이 兩大 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國父 케말 파샤의 政敎분리 원칙에 입각한 터키는 세속적인 공화국이고 호메이니의 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은 政敎일치의 이슬람 공화국이란 차이가 있다. 인구도 두 나라는 비슷하다(약7000만 명). 터키는 이스라엘과 미국과 친하고 이란-이스라엘은 원수지간이다. 이란이 핵무장하면 터키도 대응 핵무장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란의 이런 독자성을 유지해온 여러 가지 힘중의 하나는 과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란인들의 자존심이다. 이런 이란을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함께 '惡의 軸'이라고 불렀다. 김정일이야 惡의 軸이 아니라 악마 그 자체이다. 하지만 이란을 이런 김정일 정권과 同格에 놓을 수 있는가?
요사이 할리우드에서 만든 '300'이란 영화는 페르샤의 大軍을 무찌른 스파르타의 300 용사를 超人으로 만들고 페르샤 군대를 괴물이나 바보멍텅구리 집단으로 그렸다. 이란 사람들이 화를 낸 것이 이해가 된다. 이란에 대해서 무식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역사는 문학, 철학과 함께 교양인의 필수과목이다. 역사공부는 다른 문화와 민족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마음을 넓혀주고 생각을 깊게 해준다. 다른 민족과 문화에 대한 존중심을 심어준다.
부시가 이라크 침공작전을 펴기 전에 버나드 루이스 같은 大家를 백악관으로 초빙하여 몇 시간 강의를 들었다면 다른 전략이 나왔을지 모른다. 당시 미국 CIA 국장 테닛은 최근 회고록에서 '이라크를 왜 굳이 쳐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易地思之(역지사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역사공부이다.
3. 통일부, 대한민국 전복기관들에 국민세금 퍼주기
-가짜 봉수교회에 3억8200만 원, 혁명戰士양성 김일성 대학에 9억2000만원 주기로.
「2007남북협력기금통계」에 따르면, 통일부는 올 3월말까지 (사)기쁜소식의 평양봉수교회 재건축 사업에 3억8200만 원을 지원했다. 봉수교회는 남한의 기독교인들을 불러 봉수교회 예배를 드린 후 거액의 선교헌금을 거둬들이는「가짜」교회이다. 對南적화사령탑인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운영한다. 봉수교회 목사와 신도들은 모두 金日成 종합대학 종교학과 등을 나온 조선노동당의 對南사업일꾼들(요원들)이다. 이들은「金日成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된 자들로서, 기독교를「金日成 수령독재」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해한다.
이들이 행하는 소위「예배」의 사전과 사후에 독특한「淨化의식」이 치러진다. 이에 대해 탈북민들은 金日成수령절대주의와 다른 사상을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은 데 대한 일종의「淨化의식」이라고 설명한다. 봉수교회는 정기적인 주일예배가 없으며, 남한 등지에서 기독교인들이 오는 경우에만「연극」처럼 예배를 드린다. 일반주민은 봉수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없고, 목사·교인들의 전도나 선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3월31일 발간된 「2007남북협력기금통계」에 따르면, 통일부는 올 3월말까지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사장: 열린당 임종석)의 소위 金日成종합대학 도서관현대화 사업에 총 4억3500만원을 집행했다. 통일부는 이미 집행된 금액을 포함, 올해 총 9억2000만원을 지원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金日成종합대학은 북한의 수령독재체제를 보위하는 소위 혁명戰士 양성기관이다.
지난 해 10월2일 로동신문은 金日成종합대학 창립60주년을 맞아 金日成종합대학은 『조선로동당의 대학』『주체교육의 최고전당』『주체의 사회주의대학』『주체교육발전의 전위기지』라고 격찬했다.
金正日은 《金日成종합대학은 혁명인재양성의 중심기지》라고 불러왔다.
통일부 담당자인 K모 사무관은, 기자가 『金日成종합대학은 소위 혁명전사를 양성하는 기관인데 지원이 타당한 것이냐』고 묻자,그런 식으로 따지면 북한의 모든 조직이 해당된다. 지원은 교육·학술 등 도서관관리시스템 개선을 위해서 쓰이고, 그쪽 자료를 전산화해서 남측에서도 활용하도록 할 것』이라고 답했다.
기자가 다시 「金日成종합대학은 주체사상 교육이 기본인데, 이런 자료 시스템을 개선하고 전자화해서 남한에 전달하는 것도 문제 아니냐」고 묻자 『순수한 학술자료를 넘겨받을 뿐 북측의 체제 선전 자료는 넘겨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철 북한연구소 연구원(탈북자)은 『金日成종합대학은 金正日 정권을 지키는 충성분자를 키우는 곳으로서, 입학도 「당성」과 「성분」으로 이뤄지고, 김책공업대학 등과 달리 인민의 삶과 무관한 정치·사상 분야만 비대해진 대학이며, 순수한 학술자료라는 것도 주체사상으로 가공돼 있는 것』이라며 『金日成종합대학을 지원하는 것은 결국 최악의 수령독재체제를 지원하는 또 다른 사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국의 陸士에 김정일 정권이 돈을 대는 셈이다. 국민들의 세금이 반역집단의 대한민국 파괴 자금으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이런 對北지원금도 너무 적다면서 '받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는가'라는 투의 이야기를 했다. 한국의 납세자는 너무 순하다(金成昱 기자).
4. 아프리카의 세계大戰을 아십니까?
-10년간 400만 명이 죽은 콩고민주공화국의 內戰. 이 자원富國의 1인당 국민소득은 118달러이다.
一流국가의 사람값과 아프리카 국가의 사람값이 다를 리 없지만 사람들의 관심도에 따라 보도의 强弱을 결정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런 언론 보도에 따라 정책의 강도를 결정하는 것이 정부이다. 미국의 학생과 교수 33명이 죽은 버지니아 工大 사건은 지금도 하루에 1000명씩 죽어가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內戰보다 훨씬 많은 언론과 정부의 주목을 받는다. 콩고의 內戰은 지난 10년간 약400만명을 죽였다. 이를 아프리카의 세계大戰이라 부르기도 한다. 潘基文 유엔 사무총장은 지금 이곳에 파견된 유엔의 평화유지군을 올해 말까지 계속 주둔시키려 한다. 주둔비용의 20% 이상을 대는 미국의 협조가 중요하다.
콩고민주공화국은 19세기 벨기에 국왕 레오파드 2세의 개인 식민지였다. 레오파드는 여기서 산출되는 고무를 팔아 돈을 많이 벌었다. 1908년부터는벨기에 정부가 관할하기 시작했다. 벨기에 식민지하에서 콩고 사람 1000만명이 개발에 따른 부작용으로 죽었다고 한다.
1960년에 독립하자마자 이 나라는 美蘇 冷戰의 현장이 되어 內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콩고는 큰 나라이다. 면적은 234만 평방킬로미터, 인구는 6300만 명이다. 문제는 여러 나라들과 접경하고 있어 외부의 개입과 침투가 쉽다는 점이다. 북쪽으로는 수단과 중앙아프리키, 동쪽으로는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탄자니아, 남쪽으로는 앙골라와 잠비아, 서쪽으로는 콩고 공화국 등 9개국과 인접하고 있다.
赤道 남쪽의 아프리카는 서양의 식민지가 되기 전에 국가를 만든 적이 없었다. 부족국가 상태였다. 콩고의 사정도 그렇다. 종족이 250종류이고 언어가 700개를 넘는다. 식민지 시절의 유산으로 국민 80%가 카톨릭이다. 10%는 이슬람.
콩고의 비극은 자원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강우량은 연간 약3000밀리이고, 밀림은 아마존 다음의 세계 2위이다. 고무, 금, 다이어먼드가 특히 많다. 외세가 개입하여 이 귀중한 자원을 채취해갈 뿐 아니라 內戰에 참여한 군대의 자금源이 되고 있다.
미국 CIA가 밀어주던 모부투 장군이 1965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97년까지 30여년간 鐵拳통치를 했다. 이 기간 콩고는 안정기였다. 국민국가를 만들어 경영한 적이 없는 나라는 갑자기 독립하면 종교, 종족갈등에 빠져들어가는데 이때 독재자가 등장하면 최소한 내전은 수습한다. 철권통치하의 정치적 안정이 反독재를 명분으로 내건 內戰보다 피를 덜 흘린다.
1974년 모부투는 수도 킨샤샤에서 권투 헤비급 세계 챔피언戰을 주최했다. 무하마드 알리가 포먼을 KO시킨 것이 이때였다.
1997년에 모부투를 몰아낸 것이 반군 지도자 카빌라였다. 그가 집권하는 과정에서 외국 군대가 많이 들어오고 종족간 분쟁이 폭발했다. 이때부터 內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카빌라는 독재타도, 민주재건을 내걸었으나 내전의 시대를 열었다. 그 카빌라는 2001년에 암살되고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다. 작년에 반란군을 포용하기 위한 선거가 있었고 아들 편이 승리했으나 內戰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에도 수도 킨샤샤에서 야당 지도자 장 피에르 벰바를 지지하는 반군들과 정부군이 시가전을 벌여 200명이 죽었다. 벰바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사관으로 피신했다가 유엔평화유지군에 의하여 구출되어 포르투갈로 탈출했다고 한다.
자원大國 콩고의 1인당 GDP는 118달러이다. 북한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이다. 一流국가는 거의가 자원貧國이다. 중동에서 제일 잘 나가는 두바이도 기름이 적게 나는 도시이다. 역경에 처했을 때 이를 돌파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에서 당초 목표를 초과, 근사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인간사에서도 그 비슷한 예를 볼 수 있다.
5. 중국남자들의 고민
-남아 선호 풍습으로 약5000만 명의 남자가 배우자 구하지 못해
2002년 통계에 의하면 중국의 出産아기 性比(성비)는 남자 116.8에 여자가 100이었다. 장차 약5000만 명의 중국남자가 짝을 찾지 못해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탈북여성들이 중국 시골남자의 부인으로 팔려가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자가 여자를 아내감으로 납치해가는 일도 있다. 중국에선 의사가 임신한 여인에게 태아의 性을 말해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한 명 낳기 운동을 오랫동안 벌여왔다.
딸을 낳은 가정이 아들을 더 낳기 위하여 딸의 출산을 신고하지 않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어떤 마을에선 출산아의 40%가 보고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인도에선 출산된 여자아이를 죽이는 일이 자주 벌어져 경찰이 단속에 나서도 숫법이 지능적이라 손을 쓰기가 어렵다. 갖난 여자아이에게 뜨겁고 매운 닭고기 수프를 먹이거나, 음식을 억지로 많이 먹인 뒤 젖은 옷을 단단히 조여 입혀 죽게 하는 방법, 또는 선풍기를 세게 돌려놓고 그 옆에 아기를 놓아 질식사시키는 숫법도 쓰고 있다.
한국에서도 1990년엔 어린이 성비가 남자 117, 여자 100이었는데, 1999년엔 110 대 100으로 완화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가면서 해결되는 나라도 있으나 인도처럼 종교적 편견과 맞물려 있는 나라에선 여아 학대 현상이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6. 한국은 삶의 질에서 선진국?
-인간개발지수 세계 26위가 의미하는 것
1990년 파키스탄 경제학자 마부브 울 하크 박사가 고안한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HDI)라는 개념이 있다. 유엔개발기구(UNDP)는 매년 이 지수에 따른 국가별 순위를 발표한다. 이 지수는 수명, 문맹률, 교육수준, 그리고 생활수준을 합산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삶의 질'이다. 선진국이 어떤 나라인가를 定義할 때 이 '삶의 질' 통계가 자주 인용된다. 물론 이 자료엔 언론자유나 정치의 자유 같은 요소는 들어가지 않는다. 1黨 독재인 싱가포르가 25위, 1人 독재국가인 쿠바가 50등으로 나와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HDI는 주로 경제적 생활 수준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생활 수준의 향상은 一流국가로 가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따라서 HDI는 一流국가를 분류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 조건은 아니지만 유력한 기준임에는 틀림 없다. UNDP가 2004년 자료를 가지고 계산하여 2006년에 발표한 국가별 순위를 훑어본다. 자료가 믿을 수 있는 세계 177개국의 랭킹에서 上位圈엔 압도적으로 유럽국가(미국 호주와 같은 유럽문명 파생국들 포함)들이 많다.
1. 노르웨이
2. 아이슬랜드
3. 호주
4. 아일랜드
5. 스웨덴
6. 캐나다
7. 일본
8. 미국
9. 스위스/네덜란드/핀란드
12. 룩셈부르그/벨기에
14. 오스트리아
15. 덴마크
16. 프랑스
17. 영국/이태리
19. 스페인
20. 뉴질랜드
21. 독일
22. 홍콩/이스라엘
24. 그리스
25. 싱가포르
26. 한국
27. 슬로베니아
28. 포르투갈
29. 사이프러스
30. 체코
이 30개국은 '삶의 질'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7위 일본, 22위 홍콩 및 이스라엘, 25위 싱가포르, 26위 한국 등 다섯 아시아 국가가 25개의 유럽문명권 국가 속으로 명함을 내밀고 있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네 나라는 儒敎-漢字 문화권 소속이다.
탑 파이브에 오른 노르웨이(1), 아이슬랜드(2), 스웨덴(5)은 바이킹들이 선조인 나라이다. 15위 덴마크까지 포함하면 바이킹이 만든 네 나라가 15위권 안에 든다. 전쟁도 잘하고 장사와 국가경영도 잘한 바이킹의 인종적 우수성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의 연구가 많다.
바이킹은 게르만족의 일파이다. 게르만족은 서기 5세기 西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뒤 유럽의 지배민족이 되었다가 기독교화된다. 이 게르만족이 세운 나라들이 오늘도 세계의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다. 선진국 30위 안에 게르만족 국가로 분류할 수 있는 게 13개이다. 캐나다, 미국,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영국, 뉴질랜드, 호주, 독일 등이다.
기독교화된 게르만족은 강건한 체력과 경건한 종교성을 바탕으로 하여 과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산업을 발전시켰다. 5세기 이후 이들이 몽골-투르크系 및 이슬람 세력과 함께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았다. 중국은 문화적으로는 이들 세력을 오히려 앞섰으나 기동성 있는 군사적 역량이 취약하여 세계제국을 만들지는 못했다.
서양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받아오던 東北아시아가 깊은 문화적 토양을 바탕으로 하여 서양의 선진문물을 발 빠르게 흡수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 하고 있다. 30위권에 든 일본, 싱가포르, 홍콩, 이스라엘, 한국은 그 선발대인 셈이다. 東北아시아는 지정학적인 중심에 있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용하기 시작했으며, 漢字와 유교를 매개로 한 동양적 실용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다. 21세기 후반에 가면 중국, 일본, 한국이 유럽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31. 바르바도스
32. 몰타/브루네이
35. 헝거리
36. 아르헨티나
37. 폴란드
38. 칠레
39. 바레인
40. 에스토니아
41. 리투아니아
42. 슬로바키아
43. 우르과이
44. 크로아티아
45. 라트비아
46. 카타르
47. 세이셀리스
48. 코스타리카
49.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50. 쿠바
위의 20개국도 살 만한 나라들이다. 여기엔 헝거리, 폴란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같은 舊동구공산권 국가들이 포함된다. 이들 나라는 공산화되기 이전엔 유럽 문명권의 일원으로서 자유와 번영을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 일단 공산주의의 억압에서 풀려나니 그 기억을 되살려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역사의 깊이는 인종적 자질, 국민국가 운영의 길이, 지정학적 조건과 함께 一流국가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양극화는 없었다
2006년판 UNDP(유엔개발기구)의 '인간개발지수' 순위를 보고 있으면 한국이 지난 60년간 얼마나 기적적인 발전을 해왔는지를 실감한다. '이러한 행운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겠나'라고 겁을 먹을 정도이다. 177개국중 26위인 한국은 UNDP의 기준평점으로는 선진국 수준이다. 한국은 지리상의 대발견 시대를 선도했던 포르투갈보다도, 중국보다도, 인도와 브라질보다도 잘 산다. 한국의 삶의 질은 요사이 한창 인기인 두바이가 소속된 아랍에미레이트연합국(49위)보다도 훨씬 높다.
1960년대 초반 한국이 개발 모델로 삼으려 했던 필리핀은 84위, 파키스탄은 134위이다. 한국의 26위에 비교해보라! 월남이 개방노선으로 잘 나간다고 하지만 인간개발지수 순위론 아직 109등이다. 한때 한국을 추격하려 했던 말레이시아는 60등. 북한은 이라크처럼 믿을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여 아예 랭킹에 들지도 않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기적적 발전을 하면서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소득분배가 잘 된 나라가 되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벌인 무지막지한 양극화 선동 캠페인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많다. 上位 소득자와 下位 소득자를 비교하여 그 격차를 수치화한 지니(GINI)계수는 높을수록 격차가 심하다는 뜻이다. 미국은 45, 싱가포르는 42.5, 남아프리카는 59.3, 소득분배가 잘 되어 있다는 일본은 37.9인데 한국은 35.8이다. 일본보다도 소득배분이 평등하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은 사회주의 국가인 월남(36.1)보다도 지니계수가 낮아 그만큼 평등하다.
세계적 기준으로 말하자면 한국엔 양극화가 없다. 좌파들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선동하고 있을 뿐이다. 李健熙 회장의 월급과 서울역 노숙자의 소득을 비교하여 양극화가 심하다는 식의 선동을 전문적으로 해대는 자들이 입만 열면 통합을 강조한다.
7. 구글의 '멋진 신세계'
-'조갑제'를 검색창에 쳐넣었더니 78만8000건의 자료가 나왔다.
1998년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라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 재학생 둘이 만든 회사가 세계를 바꾸고 우리의 삶에도 충격을 주고 있는 검색 사이트 구글(Google)이다. 구글은 10의 100 自乘을 가리키는 googol에서 나온 造語이다. 구글은 그 뜻대로 거의 무한대의 지식과 정보 축적 능력을 보여준다.
구글은 創社 9년만에 종업원 1만3000명, 年매출액 약100억 달러의 회사로 성장했다. 검색사이트 시장에서 점유하는 비중은 51%로서 야후의 두 배 이상이다. 이 회사의 신념은 “세계의 정보를 조직하고 이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하여 이를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이다. 작년 매출액 106억 달러중 105억이 광고수입이다. 매년 60~70%씩 성장하고 있다. 순이익은 연간 약30억 달러이다.
나는 구글을 이용하면서부터는 자료실에 거의 갈 일이 없어졌다. 백과사전 등 사전류를 찾을 일도 줄었다. 新羅에 대해서 알고 싶을 때는 영어로 Shilla를 친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정보가 나온다. 부족하면 관련사이트를 클릭한다. 나 같이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이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천국이다.
며칠 전 ‘조갑제’란 검색어를 쳐넣어 보았다. 검색된 자료건수가 78만8000 건이란 표시가 나왔다. 趙甲濟라고 한자를 쳐넣었더니 13만7000건이 또 검색되었다. 92만5000건의 자료라니! 내가 인터넷에 쳐넣은 글, 그것을 퍼간 것, 내 글을 두고 찬성 지지로 나뉘어 공방전을 벌인 글, 나에 대한 글 등등.
나는 1971년부터 1980년까지는 신문기자, 그 후로는 잡지기자였다. 2000년 4월19일 개인 홈페이지 조갑제닷컴(chogabje.com)을 연 뒤론 인터넷 기자가 되었다. 신문과 잡지에 쓴 글의 총량은 200자 원고지로 대략 10만 장 분량이다. 조갑제닷컴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지난 5월6일까지 내가 쓴 글은 4555건이다. 작년엔 1111건, 올해 들어서는 130일간 406건을 썼다. 하루 평균 3건이다. 1건당 길이는 원고지 10장 분량일 것이다. 한달에 대강 100건의 글을 썼는데 그 양은 원고지 900장 분량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컴퓨터를 거부하다가 1996년부터 字板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기계와 인터넷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多量의 글을 쓸 수 있었다. 金成昱 기자가 구글에 실린 검색자료수를 조사한 결과 내가 左右 논객들 중 1위라고 한다. 37년간 쓴 원고지 약15만 장 분량의 글이 인터넷 공간을 여기 저기 떠돌아다닌 덕분인 듯하다. 내가 쓴 글이 논쟁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검색수 1위의 이유일 것이다.
나는 기자에 대한 평가는 “얼마나 좋은 기사를 썼는가”보다는 “얼마나 많은 글을 썼는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스윙을 많이 한 선수가 홈런을 많이 치듯이 기사를 많이 쓴 기자가 특종도 많이 할 것이다. 확률상.
내가 쓴 글이 인터넷 세계를 이리 저리 굴러다니면서 눈사람처럼 커져 92만 건 이상의 검색자료로 남은 것이다. 감탄할 일은 이렇게 많은 기사를 찾아준 구글이다. 구글이 만들어내는 이 방대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交流가 인간을 어떻게 바꾸어갈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양의 축적이 臨界点에 도달하면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구글이 인간의 의식과 사상에 바로 그런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참으로 ‘멋진 신세계’이다.
8. 박정희, 박지성, 노무현이 1위
-구글 검색수로 본 정치인, 역사적 인물, 스포츠 인물들의 영향력 랭킹.
구글(Google.com) 한국판 검색창에다가 정치인의 이름을 쳐넣어보았다. 먼저 전여옥. 207만 건의 글이 검색되었다. 정형근: 51만5000건. 김근태: 159만 건. 누가 가장 많은 검색건수를 기록할까?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을 쳐넣었더니 248만 건이 검색되었다. 김영삼은 김대중의 반 정도인 138만 건. 그렇다면 검색건수는 살아 있는 영향력의 크기를 반영하는가? 전두환: 105만 건, 노태우: 40만7000건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현직 대통령의 검색수가 가장 많지 않을까?
'노무현'을 치니 866만 건이 나왔다. 한국 정치인들 중 1위였다. 현재의 영향력을 검색건수가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었다.
그렇다면 작고한 역사적 인물 중엔 누가 1위일까? 역시 이순신? 이순신을 치니 281만 건, 세종대왕은 102만 건. 김구는 79만8000건. 요사이 여론조사를 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누르고 한국의 역대 최고 인물로 꼽힌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박정희를 쳐넣으니 365만 건! 역사적 인물중 단연 1위였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누가 많을까? 현존 권력자인 김정일이 더 많을 것이다. 검색을 해보니 과연 그랬다. 김정일이 272만 건, 김일성이 103만 건이었다.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은? 知名度에선 역시 박근혜씨가 앞서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이명박이 592만, 박근혜가 543만 건이었다. 강재섭은 258만 건, 정동영은 125만 건, 유시민 104만 건, 김문수 77만2000건, 김혁규 25건2000건이다.
삼국시대 인물 중에선 누가 가장 많이 검색될까? 요사이 텔레비전 드라마가 주로 고구려에 집중하고 있으니 연개소문과 광개토대왕이 아닐까? 아니면 金富軾이 三國史記에서 제1인물로 꼽았던 김유신일까? 그 결과는 김유신이 116만, 연개소문이 80만8000건, 광개토대왕이 23만4000건이었다. 의외였다. 김유신에 대한 역사 자료가 풍부하고 그가 金海金氏라는 점과 관련성이 있을지 모른다. 인물의 바탕과 배경이 튼튼하면 저력을 발휘하는 모양이다. 스포츠 선수중엔 박지성이 647만 건, 이승엽이 621만 건으로 압도적이었다.
대중사회에서 정치인, 언론인, 연예인의 영향력은 知名度와 好感度의 合에서 생긴다. 이들에겐 無名보다는 惡名이 오히려 낫다는 이야기도 惡名이 知名度를 높이기 때문이다. 知名度는 ‘지금, 이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사람의 차지이다. 구글의 세계는 그런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産室이 될 것이다. 한 인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의 合이 여론이고 그것은 정치적 자본이다. 이 자본이 크면 대통령도 될 수 있고 부자도 된다.
이슬람 근본주의적 색채가 강한 터키 집권당(AK당)의 대통령 후보 압둘라 굴(현 외무장관)은 어제 국회의 2차 대통령 間選투표가 불발한 직후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을 뽑을 때는 국회 在籍 의원수의 3분의 2 이상이 참석해야 하는데 어제 야당이 불참하여 8석이 모자랐다. 헌법재판소는 제1차 투표에서도 의결정족수가 모자랐다면서 굴의 당선을 무효화시키는 결정을 내렸었다. 에르도간 수상은 오는 7월에 국회의원 총선거를 실시하여 憲政위기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터키의 대통령職은 실권은 없으나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이 있다. 지금까지 이 자리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터키 공화국의 國父인 케말 파샤(현지에선 아타투르크라고 부른다)는 1923년에 政敎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세속적 국민국가를 발족시켰다. 이 政敎분리의 원칙을 수호할 기관으로선 군대를 지정했다. 과거 네 번에 걸쳐 터키 군대는 정치에 개입하여 정권을 교체했다. 국가안보가 위협을 받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정치를 농단하는 것을 저지할 헌법상 책임이 군대한테 있기때문이다. 군대에 의한 정권교체를 보통 쿠데타라고 부르지만 터키 軍은 합헌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오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이슬람 黨이 다수당이 될 전망이다. 터키의 이슬람 黨은 온건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슬람 黨은 집권당으로서 유럽공동체 가입을 위한 對EU 협상을 시작했다. 유럽에선 군부가 이슬람 黨을 압박하는 데 대해 비판적이다. 터키 군대가 너무 이슬람 黨을 압박하면 이 黨이 극단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中東에서 政敎분리의 원칙에 입각한 국민국가 건설이 성공한 곳은 터키뿐이다. 군대가 憲政의 수호자 역할을 하지 않았으면 터키도 內戰상태로 갔든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이란식의 혁명을 일으켰을지 모른다. 터키의 군부는 중산층, 기업인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지지를 받고 있다. 터키 군대는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다. 이것이 군대의 권위를 뒷받침하기 때문에 아직까진 어떤 정치세력도 군부와 정면 대결하지는 못했다.
터키의 가는 길을 서방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중동의 2大 군사강국이 이란과 터키이다. 터키는 군부의 작용에 의해서 親이스라엘 노선을 견지해오면서 군사협력관계를 발전시켰다. 터키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면 中東의 세력균형이 反서양쪽으로 무너진다. 이런 상황으로 해서 터키 군부는 이슬람 黨에 대해서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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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의 최신정보파일
金正日 정권의 심장마비: BDA 거래 북한계좌 32개 명단 공개!
-32개의 은행과 무역회사가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금지 조치를 당하니 정권의 심장부가 발작을 일으켰다!
이달의 특종/북한정권 심장부 사실상 기능정지! BDA 거래 북한계좌 32개의 정체를 공개한다
-김정일 경리실, 무력부, 보위부, 보안성 등 북한정권의 은행, 회사 총망라, 정권 심장부 마비 상태!
인간과 조직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북한정권은 미국에 대해서 후안무치한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이 北核 문제 해결을 위해서 위조달러 유통 등 불법혐의로 동결된 마카오 BDA(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계좌를 풀어주어 돈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자 또 다른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만으론 안된다. 우리가 이 돈을 국제금융기관 어디에나 맡길 수 있고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불법자금을 취급했다고 하여 BDA를 '돈 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하고 미국금융기관과의 거래를 금지시킴으로써 사실상 부도로 몰아버렸다. 그래놓고 문제의 장본인인 북한정권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국제금융기관이 미국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곳도 아니다.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 경찰이 훈계방면으로 선처를 해주자 '내가 구속되어 있는 동안에 회사에서 파면되었다. 회사에 복직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김정일 정권이 이렇게 추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BDA는 북한정권의 핵심부가 私금고처럼 이용했던 은행이다. 북한정권은 간부들 사이에서 '델타은행'으로 알려진 이 은행을 통해서 사치품도 사고 선물도 구입했으며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 부품도 수입했다. 이 은행은 북한정권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對外창구였다.
BDA의 거래액중 북한 몫이 약22%였다고 한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은행에서 한 거래자의 몫이 22%라는 것은 사실상 私금고의 역할을 해왔다는 뜻이다. BDA의 북한계좌는 52개라고 한다. 그 명단은 밝혀진 것이 없다. 필자는 이 은행을 많이 이용했던 한 고위 탈북자로부터 BDA의 북한 계좌 32개의 명단을 얻을 수 있었다.
A. 은행
1. 조선무역은행
2. 대성은행
3. 조선합영은행
4. 창광신용은행(현재는 단천신용은행으로 개명. 무기관련 수출입 담당)
5. 조선상업은행
6. 고려은행
7. 은덕은행(당 군수공업부 소속)
8. 조선통일발전은행(당 경공업부 소속)
9. 룡악산 은행(인민무력부 소속)
B. 무역회사
1. 만경무역회사(김정일의 비자금 관리 39호실 소속)
2. 묘향무역회사(39호실 소속)
*위의 두 회사는 김정일과 그 측근들이 필요로 하는 사치품, 고급건축자재 들을 수입한다.
3. 광명성 무역회사(통일전선부 소속)
4. 장미무역회사(통일전선부 소속)
*두 회사는 對南무역을 맡고 있다.
5. 은덕무역회사(당중앙 군수공업부)
6. 금릉수출입상사(군수공업부)
*위의 두 회사는 무기를 수출하고 컴퓨터 등 최신장비를 수입하는 일을 한다.
7. 영광무역회사(당중앙 국제부 소속)
8. 대양무역회사(당중안 간부부 소속)
*위의 두 회사는 국제부와 간부부의 고위직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구입하고 자금을 마련한다.
9. 릉라도 무역총회사(평양시 당위원회 및 39호실 산하): 평양시가 필요로 하는 물자 수입, 명절 선물용품 수입 담당.
10. 광명성 무역총국(39호실)
11. 대성무역총국(39호실)
*위의 두 회사는 對南공작 창구이다. 김대중 정권이 現代그룹과 국정원을 앞세워 4억5000만 달러를 보낼 때도 관련된 회사이다.
12, 능라888무역상사(김일성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소속)
13. 남양무역회사(정무원 소속)
14. 동흥무역회사(인민보안성 소속)
15. 은하무역총회사(김정일 여동생 김경희가 관리하는 경공업성 소속. 피복수출, 보세가공 등)
16. 평양담배수출입회사(경공업성. 가짜 담배도 만든다)
17. 룡악산 무역총회사(군수공업 담당인 제2경제위원회 소속)
18. 은파산 무역회사(인민무력부 소속인 국경경비대 회사)
19. 비로봉 무역회사(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20. 매봉무역회사(인민무력부 소속. 금 및 무기 수출)
21. 옥류무역회사(대외봉사총국 소속)
22. 칠성무역회사(호위총국 소속)
23. 신흥무역회사(국가보위부 소속)
정권의 심장마비
위의 명단을 보면 북한정권의 심장부 기관이 다 드러난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외화를 조달하여 운영비를 대고 간부들의 호화판 생활을 유지한다. 북한체제를 위해서 필수적인 무기수출과 무기수입도 BDA를 통해서 이뤄졌다. 對南공작비도 이 은행을 거쳐서 한국으로 흘러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거꾸로 우리가 모르는 對北불법송금도 이 은행을 경유했을 가능성이 있다.
위에 적힌 32개의 명단은 북한정권을 유지해온 은행들과 회사들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계좌는 BDA가 자금세탁우려은행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不法자금을 유통시키는 계좌로 취급을 받게 되었다. 정상적인 은행이라면 이 계좌를 취급하지 않는다. 중국의 국책은행인 뱅크 오브 차이나와 HSBC 등 마카오에 있는 27개 은행 모두 북한자금 취급 거부 방침을 결정한 상태이다. 한국의 親北정권이 한국수출입은행에 압력을 넣어 BDA에서 풀려난 2500만 달러의 북한 불법자금을 세탁하여 다른 은행으로 넘겨주는 중계역할을 맡도록 하려 했다가 반발을 사고 있다. 盧 정권의 이런 압력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은행들과 특히 수출입은행을 불법돈세탁 기관으로 보게 만드는 自害행위이다.
문제는 BDA에 계좌를 가진 것으로 노출된 북한의 은행과 무역회사들이 김정일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 필수적인 존재란 점이다. 이들이 외화를 벌어들이고 무기를 수출하고 對南공작을 지원하고 핵개발 부품을 들여오지 못하면 북한정권의 심장부는 마비되고 일부 기능정지 사태가 발생한다. BDA는 사실상 북한정권의 심장이었다. 이 심장이 기능정지되니 이곳을 중심으로 흘러가던 혈관이 막혀버리고 북한정권은 마비, 경련, 공황상태로 빠져든 것이다.
김정일이 작년에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한 것도 무슨 전략적 계산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내 돈을 풀어다오'라는 뜻을 담은 신경질적인 투정이었다. 문제는 미국도 이젠 마음대로 북한정권의 계좌를 국제금융시장에서 보증해줄 수 없다는 점이다. 해결책은 북한정권에서 나와야 한다. 위조지폐를 더 만들지 않겠다는 뜻으로 동판을 파기하고 마약밀매, 무기 밀수출을 그만두고, 가짜담배, 가짜 비아그라를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과 실천을 해야 국제금융시장의 봉쇄를 풀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김정일 정권은 무너질 것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이것이 김정일의 딜레머이다.
BDA 등 북한 해외비자금의 성격은 북한인민들이 피, 땀, 눈물로 번 외화를 김정일이 해외로 횡령, 착복한 돈이다. 그만큼 북한경제가 멍들고 인민은 굶주린다.
1. 여당 對 군부: 터키사태의 他山之石
政敎분리의 케말리즘을 수호할 책임을 진 군부는 합헌적으로 물리력을 사용하여 이슬람화를 견제하고 있다.
지난 5월 초 터키의 집권 여당인 AK당이 미는 대통령 후보가 야당의 보이콧으로 국회에서 선출되지 못하자 여당은 헌법을 개정하여 국민들이 直選으로 대통령을 뽑도록 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슬람의 영향이 國政에 반영되는 것을 반대하는 군부, 세속주의 세력, 헌법재판소가 이슬람주의 AK당이 미는 대통령 후보의 선출을 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타개책이다.
헌법개정안이 통과되려면 두 번의 국회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政敎분리의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현 대통령은 헌법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갖고 있다. AK당은 자신들을 이슬람 근본주의로 모는 것은 모함이라고 주장한다. 유럽공동체(EU) 가입을 추진했고 서구적인 개혁을 많이 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터키 공화국의 前身인 오토만 터키 제국은 황제가 이슬람의 교황격인 칼리프를 겸했다. 오토만 터키는 1차세계대전 때 독일 편에 섰다가 망했다.
케말 파샤가 주도한 터키 공화국의 건국은 서구적 개혁이념을 수용했다. 지금도 國父로 추앙받는 케말 파샤(터키에선 아타투르크라고 부른다)는 여성 참정권 허용, 아랍문자를 라틴 알파벳으로 대체, 政敎분리 등 파격적 개혁을 단행했다. 1차대전과 독립전쟁의 영웅 케말 파샤는 군부를 政敎분리에 입각한 세속정치의 이념으로 무장시켰다. 이슬람 국가가 근대적 국민국가로 바뀐 것이다.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는 이슬람圈에서 가장 성공한 근대화 개혁이었다. 오늘의 터키가 그래도 流血사태 없이 종교와 정치의 갈등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성숙되었음을 보여준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건국된 대한민국의 조종실로 反자유민주적 세력이 들어와 나라를 친북화시키는 데 대한 대한민국 세력의 반발과 비슷한 상황이다. 차이는 터키에선 헌법체계가 국가이념의 수호를 군부가 책임 지도록 한 데 반해 한국에선 군대의 지휘부가 친북적 권력에 맹종하여 韓美연합사까지 스스로 해체하기로 한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5조는 국군의 신성한 임무로서 국토방위 이외에 '국가의 안전보장'을 규정하긴 했다.
지난 4월말엔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서 약70만 명의 世俗派 군중이 집회를 갖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영향력 증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갈등의 발단은 이슬람 원리주의의 색채를 띤 여당이 대통령 후보로 굴 외무장관을 지명한 것이다. 군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政敎분리의 원칙이 무시되면 개입할 것이란 경고를 보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터키에선 이슬람 원리주의적 색채가 강한 정당이 선거를 통해서 여당이 되어 행정부는 장악하지만 군대, 대통령, 헌법재판소가 政敎분리의 원칙을 수호하여 이슬람화를 막아왔다. 여당이 내세운 대통령 후보인 굴의 부인은 이슬람 여자들이 쓰는 검은 베일을 착용한다. 이슬람의 영향력이 정치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는 政敎분리파, 이른바 세속파 세력은 '國父인 아타투르크(케말 파샤)의 궁전에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 살아선 안된다'고 말한다.
대규모 시위 직후 헌법재판소도 굴에 대한 국회의 1차 투표가 정족수 미달로 무효였다고 결정했고 굴은 후보에서 사퇴했다. 여당은 오는 7월에 조기총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터키 헌법구조상 아타투르크의 政敎분리 이념을 수호할 책임은 군부에 주어져 있다. 군부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영향력이 커지면 몇 번 경고를 보낸다. 그러면 원리주의적 성향의 수상이나 정당이 알아서 사퇴하거나 해산한다. 끝까지 거부하면 군대가 개입하여 몰아낸다. 이는 쿠데타가 아니다. 합헌적인 憲政수호 행동이다.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이슬람圈 국가
유럽과 미국은 이번에도 터키 군부의 정치 개입에 대해서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유럽과 미국의 태도는 자기 모순이다. 터키가 이슬람 원리주의 노선으로 가버리면 중동은 후퇴한다. 터키만이 중동에서 유일하게 政敎분리에 성공하여 근대화를 이룬 나라이다. 그런 근대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터키 군부의 이슬람 원리주의 억제 정책이었다.
유럽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 결과가 터키의 이란화가 된다면 책임을 지겠느냐고 추궁해도 유럽이나 미국정부는 '우리는 그것까지 걱정할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이다. 국가를 세우고 지키는 일도 힘든 中東국가에 대해서 민주주의를 하라고 강요하면 그 틈을 타고 호메이니 같은 원리주의 혁명가들이 득세하여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터키 어디를 가든지 아타투르크(케말 파샤)의 사진이 보인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가 터키로 하여금 親서방적 공화국으로 남아 있도록 했다.
터키에서는 군대와 대통령과 내각이 행정권을 나눠갖고 있다. 군대와 대통령은 내각과 상의없이 독립적으로 정책을 집행하기도 한다. 3者가 균등한 것이 아니고 국방 외교 부문에선 군대가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한다.
*군대는 행정, 사법, 재정 부문에서 독립적이다. 예컨대 고등군사법정과 최고군사평의회는 군사와 관계된 사건에 있어서 민간인들에게도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군대가 제출한 예산안에 대해서는 내각과 국회가 이견을 제기할 수 없다.
*軍 인사에 대해서도 수상과 국방장관은 거의 발언권이 없고 최고군사평의회에서 독립적으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터키 헌법 117조는 참모총장은 수상에게만 책임을 진다고 규정했으나 사실은 독립적이다. 군사문제에 관한 최고결정기관인 국가안전위원회(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참모총장은 장관급 위원들보다 높고 사실상 수상과 동급이다. 1992년 참모총장 도간 귀레스는 '나는 국가로부터 지명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터키는 군사국가이다'라고 공언했다. 참모총장의 공식 서열은 대통령, 국회의장, 수상 다음이지만 實權은 가장 크다.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 터키는 헌법118조를 통해서 국가안전위원회(NSC)를 만들었다. 이 기구는 국방 및 외교 정책을 자문한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결정한다. 구성은 군대에서 다섯 명, 민간장관들이 다섯이다. 참모총장, 육해공군 사령관, 헌병사령관이 군대 대표이다. 대통령, 수상, 국방장관, 내무장관, 외무장관이 민간인 대표이다. 국방장관은 군부가 지명하므로 이 회의에서는 군대 의사대로 결정이 나게 되어 있다. 더구나 군대 대표는 한 목소리인데 민간 대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어 표결을 하면 군대의 제안이 모두 통과된다.
*국방 외교 부문과 이에 관련된 內政에 대해서 군대가 최종적인 결정권을 제도적으로 확보했기 때문에 이슬람 정당이 등장해도 결국은 군대에 굴복한다. 1996-97년 사이 이슬람 정당인 복지당이 정의당과 연립하여 집권했을 때 수상인 에르바칸은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란 리비아 나이제리아와의 화해정책을 추진했다. 군대는 여기에 제동을 걸기 위하여 독자적인 외교-안보정책을 밀고나가 이스라엘과의 군사적 협조관계를 강화했다. 1996년 12월에 이란의 라프산자니 대통령이 앙카라를 방문하자 군대는 공식 만찬에 불참했고, 군사대표의 무기공장 방문 요청을 거절했다.
1997년 2월 군대는 국가안보위원회에 18개항의 제안을 했다. 이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정치에 간여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다. NSC를 통과하여 집권당에 통보된 18개항의 내용은 反이란, 反이슬람원리주의적 내용들이었다. 이슬람원리주의 정당에서 수상이 된 에르바칸은 18개항에 반대했으나 군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서명한 뒤 그해 6월에 사임했다.
1960년, 1971년, 1980년 세 차례 군대는 민간정권이 정치, 경제적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國政을 장악하고는 정치지도자들을 투옥, 연금한 뒤 정치판을 정리해주었다. 터키 군대는 특권을 많이 누리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거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다. 세 번의 군대 개입 모두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참고로 대한민국헌법 제5조는 '①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②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천명하고 있다. 金正日에 포섭된 반역세력이 민주세력으로 위장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反국가-反헌법정책을 추진할 때 국군이 국가의 안전보장의 신성한 의무를 어떻게 다할 수 있는가는 고민할 사항이다.
2. 이란을 우습게 보는 바보들에게
이란인들은 세계적인 大제국 다섯 개를 만들었다. 이슬람은 이란인들에 의해서 풍성해졌다.
이란은 이슬람이지만 아랍이 아니다
최근 중동에 주재하는 한 한국대사를 만났다. 그는 이슬람 문화와 역사에 관련된 책도 번역하고 현지 대학에 나가 강의도 하는 학구파였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이 이란을 저렇게 대우하면 안됩니다. 이란과 페르샤의 역사를 알면 그렇게 마구 대할 순 없습니다'
영국의 이슬람 전문학자 버나드 루이스가 쓴 '바벨(Babel)에서 드라고만스(Dragomans)까지: 중동을 통역한다'라는 논평집을 읽다가 비슷한 대목과 만났다. 그는 이란이 인류역사, 특히 이슬람 문화에 끼친 막중한 영향력을 강조했다. 이 글을 읽고나니 호메이니로 대표되는 이란이 아닌 다양하고 풍성하고 교양 있는 페르샤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의 문제점을 가지고, 그것도 서구식-기독교적 관점에서만 본 문제의식을 가지고는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하고 깊은 나라가 이란이다. 인구는 약7000만 명, 면적은 한반도의 약8배인 160만 평방킬로미터이다.
이란의 독특하고 위대한 역사와 문화는 먼저 이슬람과 연관되어 설명하는 것이 편하겠다. 이란을 아랍국가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란은 이슬람 국가이지만 아랍국가는 아니다. 이란인들은 아랍족이 아니고 아랍어를 쓰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의 유럽, 특히 게르만족과 뿌리가 같은 인종이다. 히틀러는 독일사람들의 인종적 뿌리를 아리안족이라 불렀다. 이란과 아리안은 같은 뜻이다.
이란은 이슬람화되었지만 다른 中東국가처럼 아랍화되지는 않았다. 첫째, 언어가 아랍화되지 않았다. 서기 7~8세기에 이슬람을 받아들인 거의 모든 中東국가들은 고유언어를 버리고 아랍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같은 最古의 문명과 언어를 자랑하는 나라들도 母國語를 버리고 아랍어를 쓰게 되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고유문화와 상당부분 단절되었다. 이슬람은 또 이슬람의 宗敎史를 중점적으로 가르치지 국가와 민족의 역사는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슬람은 종교공동체 성격이 강해 근대 국민국가의 원리와는 항상 갈등한다.
이란은 아랍인들에 의해 점령되고 이슬람을 수용했지만 이란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란어는 독일어나 영어와 비슷한 구조이고 단어도 비슷한 게 많다. 17세기에 비엔나에 파견된 오토만 투르크 대사는 '합스부르그 왕조 사람들은 잡스러워진 이란어를 쓰고 있다'고 오해했다고 한다.
이란인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母國語를 지켜갔지만 동시에 아랍어도 배웠다. 이란의 많은 문학가와 지식인들이 아랍어로 詩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는 이슬람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발상한 이슬람은 문화적 깊이가 약했다. 아랍족의 이슬람 세력은 이란을 이슬람화함으로써 제2의 도약을 했다. 사막적인 종교가 아닌 문화적 종교, 세계적 종교로 변한 것이다. 메디안-페르샤-파르티아-사산朝로 이어지면서 축적된 독창적이고 풍성한 이란문명이 이슬람에 수혈되어 이슬람을 생동감 넘치는 종교로 거듭 태어나게 만든 것이다.
정복자 이슬람을 이란化
이란의 이런 문화적 힘은 역사에서 우러난 것이다. 이란은 중동국가들 가운데 독자성을 가장 오래 유지한 나라이다. 다른 中東국가들은 이 민족, 저 민족에 의하여 침공받고 점령되어 문화적 정체성을 오래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시리아를 예로 들면 약8000년의 역사를 통해 33개 문명이 교차했다.
이란(페르샤)은 그리스로 대표되는 서양에 대해서 항상 優位를 지켜오다가 서기 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에 의하여 잠시 점령되었으나 곧 파르티아 제국을 만들어 로마와 대결했다. 파르티아 제국은 로마의 침공도 저지하여 페르샤 지역을 서양화(기독교화)시키지 않았다. 그리스-로마 문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파르티아를 이은 제국은 사산朝였다. 이 제국은 7세기에 시리아에 본부를 둔 움마야드 왕조에 의해 점령되어 이슬람화되었으나 이란인들은 이슬람을 페르샤화해버렸다. 우수한 문화를 가진 민족은 저급한 문화를 가진 민족에 의해 정복되지만 그 문화의 힘으로 정복자를 다시 정복해버린다. 이란은 이슬람 문명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셈이다. 압바시드 왕조가 움마야드 왕조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바그다드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이란 장군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압바시드 왕조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관료, 지식인들은 거의가 이란인들이었다.
13세기에 몽골, 15세기에 티무르의 침공을 받은 이란은 황폐되었다. 이란이 몽골의 西征으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당했다. 인구의 약 반이 죽었다고 한다. 몽골이 중국의 宋을 점령하고 세운 元의 관료층 안에는 이란 지식인들이 많았다. 이슬람을 믿는 16세기의 몽골 기마군단이 인도를 점령하고 세운 무갈 제국의 지배층안에도 이란인들이 많았다. 이란은 주변지역, 즉 中東, 중앙 아시아, 터키, 인도를 밝히는 문화적 등불이었다.
1501년 이란에서 사파비드 제국이 일어났다. 이란인들은 세계 역사에 남을 만한 다섯 개의 大제국을 만든 민족이다. 메디안-페르샤-파르티아-사산朝-사파비드 제국이 그것이다.
이란이 과연 '惡의 軸'인가?
16~20세기에 中東 이슬람 세계에는 두 라이벌이 있었다. 오토만 투르크와 사파비드 제국을 세운 이란이었다. 오토만 투르크는 중동, 유럽,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여 두 차례 비엔나를 포위하는 등 유럽을 위협했으나 이란을 점령하지는 못했다. 영국의 이슬람 전문가 버나드 루이스에 따르면 오토만 투르크 제국은 문명적 측면에선 이란의 영향권 아래 들어 있었다고 한다. 루이스는 현재의 中東도 터키와 이란이 兩大 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國父 케말 파샤의 政敎분리 원칙에 입각한 터키는 세속적인 공화국이고 호메이니의 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은 政敎일치의 이슬람 공화국이란 차이가 있다. 인구도 두 나라는 비슷하다(약7000만 명). 터키는 이스라엘과 미국과 친하고 이란-이스라엘은 원수지간이다. 이란이 핵무장하면 터키도 대응 핵무장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란의 이런 독자성을 유지해온 여러 가지 힘중의 하나는 과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란인들의 자존심이다. 이런 이란을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함께 '惡의 軸'이라고 불렀다. 김정일이야 惡의 軸이 아니라 악마 그 자체이다. 하지만 이란을 이런 김정일 정권과 同格에 놓을 수 있는가?
요사이 할리우드에서 만든 '300'이란 영화는 페르샤의 大軍을 무찌른 스파르타의 300 용사를 超人으로 만들고 페르샤 군대를 괴물이나 바보멍텅구리 집단으로 그렸다. 이란 사람들이 화를 낸 것이 이해가 된다. 이란에 대해서 무식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역사는 문학, 철학과 함께 교양인의 필수과목이다. 역사공부는 다른 문화와 민족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마음을 넓혀주고 생각을 깊게 해준다. 다른 민족과 문화에 대한 존중심을 심어준다.
부시가 이라크 침공작전을 펴기 전에 버나드 루이스 같은 大家를 백악관으로 초빙하여 몇 시간 강의를 들었다면 다른 전략이 나왔을지 모른다. 당시 미국 CIA 국장 테닛은 최근 회고록에서 '이라크를 왜 굳이 쳐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易地思之(역지사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역사공부이다.
3. 통일부, 대한민국 전복기관들에 국민세금 퍼주기
-가짜 봉수교회에 3억8200만 원, 혁명戰士양성 김일성 대학에 9억2000만원 주기로.
「2007남북협력기금통계」에 따르면, 통일부는 올 3월말까지 (사)기쁜소식의 평양봉수교회 재건축 사업에 3억8200만 원을 지원했다. 봉수교회는 남한의 기독교인들을 불러 봉수교회 예배를 드린 후 거액의 선교헌금을 거둬들이는「가짜」교회이다. 對南적화사령탑인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운영한다. 봉수교회 목사와 신도들은 모두 金日成 종합대학 종교학과 등을 나온 조선노동당의 對南사업일꾼들(요원들)이다. 이들은「金日成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된 자들로서, 기독교를「金日成 수령독재」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해한다.
이들이 행하는 소위「예배」의 사전과 사후에 독특한「淨化의식」이 치러진다. 이에 대해 탈북민들은 金日成수령절대주의와 다른 사상을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은 데 대한 일종의「淨化의식」이라고 설명한다. 봉수교회는 정기적인 주일예배가 없으며, 남한 등지에서 기독교인들이 오는 경우에만「연극」처럼 예배를 드린다. 일반주민은 봉수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없고, 목사·교인들의 전도나 선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3월31일 발간된 「2007남북협력기금통계」에 따르면, 통일부는 올 3월말까지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사장: 열린당 임종석)의 소위 金日成종합대학 도서관현대화 사업에 총 4억3500만원을 집행했다. 통일부는 이미 집행된 금액을 포함, 올해 총 9억2000만원을 지원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金日成종합대학은 북한의 수령독재체제를 보위하는 소위 혁명戰士 양성기관이다.
지난 해 10월2일 로동신문은 金日成종합대학 창립60주년을 맞아 金日成종합대학은 『조선로동당의 대학』『주체교육의 최고전당』『주체의 사회주의대학』『주체교육발전의 전위기지』라고 격찬했다.
金正日은 《金日成종합대학은 혁명인재양성의 중심기지》라고 불러왔다.
통일부 담당자인 K모 사무관은, 기자가 『金日成종합대학은 소위 혁명전사를 양성하는 기관인데 지원이 타당한 것이냐』고 묻자,그런 식으로 따지면 북한의 모든 조직이 해당된다. 지원은 교육·학술 등 도서관관리시스템 개선을 위해서 쓰이고, 그쪽 자료를 전산화해서 남측에서도 활용하도록 할 것』이라고 답했다.
기자가 다시 「金日成종합대학은 주체사상 교육이 기본인데, 이런 자료 시스템을 개선하고 전자화해서 남한에 전달하는 것도 문제 아니냐」고 묻자 『순수한 학술자료를 넘겨받을 뿐 북측의 체제 선전 자료는 넘겨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철 북한연구소 연구원(탈북자)은 『金日成종합대학은 金正日 정권을 지키는 충성분자를 키우는 곳으로서, 입학도 「당성」과 「성분」으로 이뤄지고, 김책공업대학 등과 달리 인민의 삶과 무관한 정치·사상 분야만 비대해진 대학이며, 순수한 학술자료라는 것도 주체사상으로 가공돼 있는 것』이라며 『金日成종합대학을 지원하는 것은 결국 최악의 수령독재체제를 지원하는 또 다른 사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국의 陸士에 김정일 정권이 돈을 대는 셈이다. 국민들의 세금이 반역집단의 대한민국 파괴 자금으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이런 對北지원금도 너무 적다면서 '받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는가'라는 투의 이야기를 했다. 한국의 납세자는 너무 순하다(金成昱 기자).
4. 아프리카의 세계大戰을 아십니까?
-10년간 400만 명이 죽은 콩고민주공화국의 內戰. 이 자원富國의 1인당 국민소득은 118달러이다.
一流국가의 사람값과 아프리카 국가의 사람값이 다를 리 없지만 사람들의 관심도에 따라 보도의 强弱을 결정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런 언론 보도에 따라 정책의 강도를 결정하는 것이 정부이다. 미국의 학생과 교수 33명이 죽은 버지니아 工大 사건은 지금도 하루에 1000명씩 죽어가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內戰보다 훨씬 많은 언론과 정부의 주목을 받는다. 콩고의 內戰은 지난 10년간 약400만명을 죽였다. 이를 아프리카의 세계大戰이라 부르기도 한다. 潘基文 유엔 사무총장은 지금 이곳에 파견된 유엔의 평화유지군을 올해 말까지 계속 주둔시키려 한다. 주둔비용의 20% 이상을 대는 미국의 협조가 중요하다.
콩고민주공화국은 19세기 벨기에 국왕 레오파드 2세의 개인 식민지였다. 레오파드는 여기서 산출되는 고무를 팔아 돈을 많이 벌었다. 1908년부터는벨기에 정부가 관할하기 시작했다. 벨기에 식민지하에서 콩고 사람 1000만명이 개발에 따른 부작용으로 죽었다고 한다.
1960년에 독립하자마자 이 나라는 美蘇 冷戰의 현장이 되어 內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콩고는 큰 나라이다. 면적은 234만 평방킬로미터, 인구는 6300만 명이다. 문제는 여러 나라들과 접경하고 있어 외부의 개입과 침투가 쉽다는 점이다. 북쪽으로는 수단과 중앙아프리키, 동쪽으로는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탄자니아, 남쪽으로는 앙골라와 잠비아, 서쪽으로는 콩고 공화국 등 9개국과 인접하고 있다.
赤道 남쪽의 아프리카는 서양의 식민지가 되기 전에 국가를 만든 적이 없었다. 부족국가 상태였다. 콩고의 사정도 그렇다. 종족이 250종류이고 언어가 700개를 넘는다. 식민지 시절의 유산으로 국민 80%가 카톨릭이다. 10%는 이슬람.
콩고의 비극은 자원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강우량은 연간 약3000밀리이고, 밀림은 아마존 다음의 세계 2위이다. 고무, 금, 다이어먼드가 특히 많다. 외세가 개입하여 이 귀중한 자원을 채취해갈 뿐 아니라 內戰에 참여한 군대의 자금源이 되고 있다.
미국 CIA가 밀어주던 모부투 장군이 1965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97년까지 30여년간 鐵拳통치를 했다. 이 기간 콩고는 안정기였다. 국민국가를 만들어 경영한 적이 없는 나라는 갑자기 독립하면 종교, 종족갈등에 빠져들어가는데 이때 독재자가 등장하면 최소한 내전은 수습한다. 철권통치하의 정치적 안정이 反독재를 명분으로 내건 內戰보다 피를 덜 흘린다.
1974년 모부투는 수도 킨샤샤에서 권투 헤비급 세계 챔피언戰을 주최했다. 무하마드 알리가 포먼을 KO시킨 것이 이때였다.
1997년에 모부투를 몰아낸 것이 반군 지도자 카빌라였다. 그가 집권하는 과정에서 외국 군대가 많이 들어오고 종족간 분쟁이 폭발했다. 이때부터 內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카빌라는 독재타도, 민주재건을 내걸었으나 내전의 시대를 열었다. 그 카빌라는 2001년에 암살되고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다. 작년에 반란군을 포용하기 위한 선거가 있었고 아들 편이 승리했으나 內戰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에도 수도 킨샤샤에서 야당 지도자 장 피에르 벰바를 지지하는 반군들과 정부군이 시가전을 벌여 200명이 죽었다. 벰바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사관으로 피신했다가 유엔평화유지군에 의하여 구출되어 포르투갈로 탈출했다고 한다.
자원大國 콩고의 1인당 GDP는 118달러이다. 북한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이다. 一流국가는 거의가 자원貧國이다. 중동에서 제일 잘 나가는 두바이도 기름이 적게 나는 도시이다. 역경에 처했을 때 이를 돌파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에서 당초 목표를 초과, 근사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인간사에서도 그 비슷한 예를 볼 수 있다.
5. 중국남자들의 고민
-남아 선호 풍습으로 약5000만 명의 남자가 배우자 구하지 못해
2002년 통계에 의하면 중국의 出産아기 性比(성비)는 남자 116.8에 여자가 100이었다. 장차 약5000만 명의 중국남자가 짝을 찾지 못해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탈북여성들이 중국 시골남자의 부인으로 팔려가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자가 여자를 아내감으로 납치해가는 일도 있다. 중국에선 의사가 임신한 여인에게 태아의 性을 말해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한 명 낳기 운동을 오랫동안 벌여왔다.
딸을 낳은 가정이 아들을 더 낳기 위하여 딸의 출산을 신고하지 않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어떤 마을에선 출산아의 40%가 보고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인도에선 출산된 여자아이를 죽이는 일이 자주 벌어져 경찰이 단속에 나서도 숫법이 지능적이라 손을 쓰기가 어렵다. 갖난 여자아이에게 뜨겁고 매운 닭고기 수프를 먹이거나, 음식을 억지로 많이 먹인 뒤 젖은 옷을 단단히 조여 입혀 죽게 하는 방법, 또는 선풍기를 세게 돌려놓고 그 옆에 아기를 놓아 질식사시키는 숫법도 쓰고 있다.
한국에서도 1990년엔 어린이 성비가 남자 117, 여자 100이었는데, 1999년엔 110 대 100으로 완화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가면서 해결되는 나라도 있으나 인도처럼 종교적 편견과 맞물려 있는 나라에선 여아 학대 현상이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6. 한국은 삶의 질에서 선진국?
-인간개발지수 세계 26위가 의미하는 것
1990년 파키스탄 경제학자 마부브 울 하크 박사가 고안한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HDI)라는 개념이 있다. 유엔개발기구(UNDP)는 매년 이 지수에 따른 국가별 순위를 발표한다. 이 지수는 수명, 문맹률, 교육수준, 그리고 생활수준을 합산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삶의 질'이다. 선진국이 어떤 나라인가를 定義할 때 이 '삶의 질' 통계가 자주 인용된다. 물론 이 자료엔 언론자유나 정치의 자유 같은 요소는 들어가지 않는다. 1黨 독재인 싱가포르가 25위, 1人 독재국가인 쿠바가 50등으로 나와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HDI는 주로 경제적 생활 수준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생활 수준의 향상은 一流국가로 가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따라서 HDI는 一流국가를 분류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 조건은 아니지만 유력한 기준임에는 틀림 없다. UNDP가 2004년 자료를 가지고 계산하여 2006년에 발표한 국가별 순위를 훑어본다. 자료가 믿을 수 있는 세계 177개국의 랭킹에서 上位圈엔 압도적으로 유럽국가(미국 호주와 같은 유럽문명 파생국들 포함)들이 많다.
1. 노르웨이
2. 아이슬랜드
3. 호주
4. 아일랜드
5. 스웨덴
6. 캐나다
7. 일본
8. 미국
9. 스위스/네덜란드/핀란드
12. 룩셈부르그/벨기에
14. 오스트리아
15. 덴마크
16. 프랑스
17. 영국/이태리
19. 스페인
20. 뉴질랜드
21. 독일
22. 홍콩/이스라엘
24. 그리스
25. 싱가포르
26. 한국
27. 슬로베니아
28. 포르투갈
29. 사이프러스
30. 체코
이 30개국은 '삶의 질'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7위 일본, 22위 홍콩 및 이스라엘, 25위 싱가포르, 26위 한국 등 다섯 아시아 국가가 25개의 유럽문명권 국가 속으로 명함을 내밀고 있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네 나라는 儒敎-漢字 문화권 소속이다.
탑 파이브에 오른 노르웨이(1), 아이슬랜드(2), 스웨덴(5)은 바이킹들이 선조인 나라이다. 15위 덴마크까지 포함하면 바이킹이 만든 네 나라가 15위권 안에 든다. 전쟁도 잘하고 장사와 국가경영도 잘한 바이킹의 인종적 우수성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의 연구가 많다.
바이킹은 게르만족의 일파이다. 게르만족은 서기 5세기 西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뒤 유럽의 지배민족이 되었다가 기독교화된다. 이 게르만족이 세운 나라들이 오늘도 세계의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다. 선진국 30위 안에 게르만족 국가로 분류할 수 있는 게 13개이다. 캐나다, 미국,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영국, 뉴질랜드, 호주, 독일 등이다.
기독교화된 게르만족은 강건한 체력과 경건한 종교성을 바탕으로 하여 과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산업을 발전시켰다. 5세기 이후 이들이 몽골-투르크系 및 이슬람 세력과 함께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았다. 중국은 문화적으로는 이들 세력을 오히려 앞섰으나 기동성 있는 군사적 역량이 취약하여 세계제국을 만들지는 못했다.
서양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받아오던 東北아시아가 깊은 문화적 토양을 바탕으로 하여 서양의 선진문물을 발 빠르게 흡수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 하고 있다. 30위권에 든 일본, 싱가포르, 홍콩, 이스라엘, 한국은 그 선발대인 셈이다. 東北아시아는 지정학적인 중심에 있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용하기 시작했으며, 漢字와 유교를 매개로 한 동양적 실용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다. 21세기 후반에 가면 중국, 일본, 한국이 유럽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31. 바르바도스
32. 몰타/브루네이
35. 헝거리
36. 아르헨티나
37. 폴란드
38. 칠레
39. 바레인
40. 에스토니아
41. 리투아니아
42. 슬로바키아
43. 우르과이
44. 크로아티아
45. 라트비아
46. 카타르
47. 세이셀리스
48. 코스타리카
49.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50. 쿠바
위의 20개국도 살 만한 나라들이다. 여기엔 헝거리, 폴란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같은 舊동구공산권 국가들이 포함된다. 이들 나라는 공산화되기 이전엔 유럽 문명권의 일원으로서 자유와 번영을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 일단 공산주의의 억압에서 풀려나니 그 기억을 되살려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역사의 깊이는 인종적 자질, 국민국가 운영의 길이, 지정학적 조건과 함께 一流국가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양극화는 없었다
2006년판 UNDP(유엔개발기구)의 '인간개발지수' 순위를 보고 있으면 한국이 지난 60년간 얼마나 기적적인 발전을 해왔는지를 실감한다. '이러한 행운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겠나'라고 겁을 먹을 정도이다. 177개국중 26위인 한국은 UNDP의 기준평점으로는 선진국 수준이다. 한국은 지리상의 대발견 시대를 선도했던 포르투갈보다도, 중국보다도, 인도와 브라질보다도 잘 산다. 한국의 삶의 질은 요사이 한창 인기인 두바이가 소속된 아랍에미레이트연합국(49위)보다도 훨씬 높다.
1960년대 초반 한국이 개발 모델로 삼으려 했던 필리핀은 84위, 파키스탄은 134위이다. 한국의 26위에 비교해보라! 월남이 개방노선으로 잘 나간다고 하지만 인간개발지수 순위론 아직 109등이다. 한때 한국을 추격하려 했던 말레이시아는 60등. 북한은 이라크처럼 믿을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여 아예 랭킹에 들지도 않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기적적 발전을 하면서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소득분배가 잘 된 나라가 되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벌인 무지막지한 양극화 선동 캠페인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많다. 上位 소득자와 下位 소득자를 비교하여 그 격차를 수치화한 지니(GINI)계수는 높을수록 격차가 심하다는 뜻이다. 미국은 45, 싱가포르는 42.5, 남아프리카는 59.3, 소득분배가 잘 되어 있다는 일본은 37.9인데 한국은 35.8이다. 일본보다도 소득배분이 평등하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은 사회주의 국가인 월남(36.1)보다도 지니계수가 낮아 그만큼 평등하다.
세계적 기준으로 말하자면 한국엔 양극화가 없다. 좌파들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선동하고 있을 뿐이다. 李健熙 회장의 월급과 서울역 노숙자의 소득을 비교하여 양극화가 심하다는 식의 선동을 전문적으로 해대는 자들이 입만 열면 통합을 강조한다.
7. 구글의 '멋진 신세계'
-'조갑제'를 검색창에 쳐넣었더니 78만8000건의 자료가 나왔다.
1998년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라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 재학생 둘이 만든 회사가 세계를 바꾸고 우리의 삶에도 충격을 주고 있는 검색 사이트 구글(Google)이다. 구글은 10의 100 自乘을 가리키는 googol에서 나온 造語이다. 구글은 그 뜻대로 거의 무한대의 지식과 정보 축적 능력을 보여준다.
구글은 創社 9년만에 종업원 1만3000명, 年매출액 약100억 달러의 회사로 성장했다. 검색사이트 시장에서 점유하는 비중은 51%로서 야후의 두 배 이상이다. 이 회사의 신념은 “세계의 정보를 조직하고 이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하여 이를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이다. 작년 매출액 106억 달러중 105억이 광고수입이다. 매년 60~70%씩 성장하고 있다. 순이익은 연간 약30억 달러이다.
나는 구글을 이용하면서부터는 자료실에 거의 갈 일이 없어졌다. 백과사전 등 사전류를 찾을 일도 줄었다. 新羅에 대해서 알고 싶을 때는 영어로 Shilla를 친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정보가 나온다. 부족하면 관련사이트를 클릭한다. 나 같이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이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천국이다.
며칠 전 ‘조갑제’란 검색어를 쳐넣어 보았다. 검색된 자료건수가 78만8000 건이란 표시가 나왔다. 趙甲濟라고 한자를 쳐넣었더니 13만7000건이 또 검색되었다. 92만5000건의 자료라니! 내가 인터넷에 쳐넣은 글, 그것을 퍼간 것, 내 글을 두고 찬성 지지로 나뉘어 공방전을 벌인 글, 나에 대한 글 등등.
나는 1971년부터 1980년까지는 신문기자, 그 후로는 잡지기자였다. 2000년 4월19일 개인 홈페이지 조갑제닷컴(chogabje.com)을 연 뒤론 인터넷 기자가 되었다. 신문과 잡지에 쓴 글의 총량은 200자 원고지로 대략 10만 장 분량이다. 조갑제닷컴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지난 5월6일까지 내가 쓴 글은 4555건이다. 작년엔 1111건, 올해 들어서는 130일간 406건을 썼다. 하루 평균 3건이다. 1건당 길이는 원고지 10장 분량일 것이다. 한달에 대강 100건의 글을 썼는데 그 양은 원고지 900장 분량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컴퓨터를 거부하다가 1996년부터 字板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기계와 인터넷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多量의 글을 쓸 수 있었다. 金成昱 기자가 구글에 실린 검색자료수를 조사한 결과 내가 左右 논객들 중 1위라고 한다. 37년간 쓴 원고지 약15만 장 분량의 글이 인터넷 공간을 여기 저기 떠돌아다닌 덕분인 듯하다. 내가 쓴 글이 논쟁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검색수 1위의 이유일 것이다.
나는 기자에 대한 평가는 “얼마나 좋은 기사를 썼는가”보다는 “얼마나 많은 글을 썼는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스윙을 많이 한 선수가 홈런을 많이 치듯이 기사를 많이 쓴 기자가 특종도 많이 할 것이다. 확률상.
내가 쓴 글이 인터넷 세계를 이리 저리 굴러다니면서 눈사람처럼 커져 92만 건 이상의 검색자료로 남은 것이다. 감탄할 일은 이렇게 많은 기사를 찾아준 구글이다. 구글이 만들어내는 이 방대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交流가 인간을 어떻게 바꾸어갈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양의 축적이 臨界点에 도달하면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구글이 인간의 의식과 사상에 바로 그런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참으로 ‘멋진 신세계’이다.
8. 박정희, 박지성, 노무현이 1위
-구글 검색수로 본 정치인, 역사적 인물, 스포츠 인물들의 영향력 랭킹.
구글(Google.com) 한국판 검색창에다가 정치인의 이름을 쳐넣어보았다. 먼저 전여옥. 207만 건의 글이 검색되었다. 정형근: 51만5000건. 김근태: 159만 건. 누가 가장 많은 검색건수를 기록할까?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을 쳐넣었더니 248만 건이 검색되었다. 김영삼은 김대중의 반 정도인 138만 건. 그렇다면 검색건수는 살아 있는 영향력의 크기를 반영하는가? 전두환: 105만 건, 노태우: 40만7000건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현직 대통령의 검색수가 가장 많지 않을까?
'노무현'을 치니 866만 건이 나왔다. 한국 정치인들 중 1위였다. 현재의 영향력을 검색건수가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었다.
그렇다면 작고한 역사적 인물 중엔 누가 1위일까? 역시 이순신? 이순신을 치니 281만 건, 세종대왕은 102만 건. 김구는 79만8000건. 요사이 여론조사를 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누르고 한국의 역대 최고 인물로 꼽힌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박정희를 쳐넣으니 365만 건! 역사적 인물중 단연 1위였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누가 많을까? 현존 권력자인 김정일이 더 많을 것이다. 검색을 해보니 과연 그랬다. 김정일이 272만 건, 김일성이 103만 건이었다.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은? 知名度에선 역시 박근혜씨가 앞서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이명박이 592만, 박근혜가 543만 건이었다. 강재섭은 258만 건, 정동영은 125만 건, 유시민 104만 건, 김문수 77만2000건, 김혁규 25건2000건이다.
삼국시대 인물 중에선 누가 가장 많이 검색될까? 요사이 텔레비전 드라마가 주로 고구려에 집중하고 있으니 연개소문과 광개토대왕이 아닐까? 아니면 金富軾이 三國史記에서 제1인물로 꼽았던 김유신일까? 그 결과는 김유신이 116만, 연개소문이 80만8000건, 광개토대왕이 23만4000건이었다. 의외였다. 김유신에 대한 역사 자료가 풍부하고 그가 金海金氏라는 점과 관련성이 있을지 모른다. 인물의 바탕과 배경이 튼튼하면 저력을 발휘하는 모양이다. 스포츠 선수중엔 박지성이 647만 건, 이승엽이 621만 건으로 압도적이었다.
대중사회에서 정치인, 언론인, 연예인의 영향력은 知名度와 好感度의 合에서 생긴다. 이들에겐 無名보다는 惡名이 오히려 낫다는 이야기도 惡名이 知名度를 높이기 때문이다. 知名度는 ‘지금, 이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사람의 차지이다. 구글의 세계는 그런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産室이 될 것이다. 한 인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의 合이 여론이고 그것은 정치적 자본이다. 이 자본이 크면 대통령도 될 수 있고 부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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