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 대동강변이어서 남한TV수신이 가능했다"

대북방송 청취 경험과 대북방송에의 적용
저는 2004년 9월 탈북할 때까지 북한에서 한국 TV와 라디오를 청취하였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북한의 체제에 불만이 있거나 또 외부소식을 듣기 위해 라디오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라디오 청취는 간부들도 예외로 되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남한의 TV수신이 가능한 지역이 있습니다. 그 지역들을 보면 바닷가를 낀 황해도와 평안도지역 특히 바다와 인접한 강을 끼고 있는 지역들에는 수신감도가 매우 좋아 실시간으로 시청이 가능합니다.

저의 집 역시 평양시의 대동강변이어서 TV수신이 가능했습니다. 야외안테나의 방향만 조금 조절하면 잘 나오군 했습니다. 제일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이 9시 뉴스이며 다음으로 드라마였습니다.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를 보려고 일찍 퇴근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것은 1983년이었습니다. 그때 집에 라디오가 달린 녹음기를 사왔는데 우연 중 채널을 돌리다 한국방송을 듣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두렵고 다음에는 호기심으로 하여 듣기 시작하였는데 아예 중독이 되어 하루라도 듣지 않으면 몸살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KBS의 사회교육방송과 미국의 소리방송, 자유아시아 방송 등은 대북방송으로서 외부소식에 철저히 폐쇄된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외부세계를 알 수 있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KBS 사회교육방송에서 진행하던 전 통일부 장관이었던 강인덕 선생님의 ‘노동당간부들에게’와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통일열차’ 그리고 미국의 소리방송과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내보내는 탈북자 수기 등 북한관련 소식과 탈북자 소식은 인민들뿐이 아니라 간부들에게도 인기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처음 라디오를 청취할 때에는 밤마다 몰래 소리가 나갈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들었는데 그 후 이어폰을 구입하여 마음 놓고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활과정에 저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북한의 언론들에서 보도되지 않은 이야기들, 실례로 북한에서는 남한의 축구소식을 알려주지 않는데 친구들은 남조선이 어느 나라와 축구경기를 했는데 몇 대 몇으로 이겼다는 등 이었습니다.
저도 전날 밤에 들었기 때문에 친구도 남한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1996년에 국가안전보위부 24국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애드벌룬으로 소형라디오가 20만대 가량 북한 땅에 떨어졌다고 지시가 내려와 소형라디오 회수에 동원되었습니다.

전국적으로 보위부와 안전부의 합동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매일같이 방송차로 라디오를 가진 사람들은 자수하라고 고아댔지만 2년 동안 걷어 들인 라디오는 2만대에 불과 했습니다. 결국 18만 대가 주민들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듣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북한 주민들은 외부 소식에 목말라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북방송은 북한주민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게 하며 그들이 김정일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와 충성이 아니라 참된 인간의 권리를 보장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때문에 대북방송은 정부적인 차원에서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되어야 하며 국책으로 되어야 합니다. 지금 남한정부는 김정일 독재정권과 동조하면서 이 나라를 북의 속국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대북방송을 강화하는 것은 그만큼 김정일 독재정권의 멸망을 촉진시키는 것입니다. 대북방송은 북한주민들에게 김정일 독재정권의 악랄성과 발전하는 세계현실,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대북방송으로 하여 북한 주민들의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김정일 정권을 내부로부터 와해하여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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