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인민 여러분, 그리고 인민군 장병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정일을 해부한다’의 김필재 기자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북조선 김씨 왕조의 우상화 실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 미국의 기독교계 일간지인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가난과 기근으로 정권의 주민 통제력이 약화된 북조선이 인민들의 체제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김일성·김정일의 신격화 작업에 국가 예산의 40%를 사용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김씨 왕조의 신격화에 투입된 예산은 이데올로기 교육기관 지원, 3만개 김일성 동상 제작, 영화, 책자 등 제작, 4만여 연구소 지원, 바위에 조각 새기기 등에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북조선의 김일성·김정일 신격화 작업은 구소련 시절 스탈린의 우상화와 문화혁명 기간 동안 모택동의 신격화를 넘어 설 정도로 강화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문은 “북조선이 기근과 가난이라는 민생 문제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김 부자의 우상화를 시도하는 이유는 이데올로기의 강도를 높여 북조선 인민들이 현재 체제에 완전히 복종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풀이 된다”고 전했습니다.
국가예산의 40%를 개인 우상화에 쓰는 나라가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북조선의 김씨 왕조가 얼마만큼 자신들의 우상화에 열을 올려왔는지는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 활동을 보면 됩니다.
김정일에 대한 북조선의 우상화 선전은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 수법과 마찬가지로 호칭으로부터 시작해 각급기관과 가정에 사진을 부착하도록 하고, ‘김정일 사적관’을 건립하고, 나아가 그의 생일을 휴무일로 정하는 방법 등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러다가 북조선 주민들에게 노골적인 우상화 교양을 실시하는 단계로 이어졌는데요. 김정일의 우상화 교양은 김정일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김일성의 정치적 후계자로 삼기위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우상화 선전놀음이라는 점에서 매우 신중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김정일 우상화를 위한 교양 활동의 초기단계에는 김정일의 이름을 표면화시키지 않은 채 ‘당 중앙’이니 ‘존경하는’ 또는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호칭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대를 이어 충성하자는 구호와 함께 노래까지 만들어 보급하는 방법도 병행해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수법은 1974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과감해지더니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을 우상화해서 ‘김정숙 따라 배우기 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함경북도 회령읍(김정숙의 출생지)에는 김정숙의 동상을 세우고 혁명사적관을 만들어 성역화시켜 놓았습니다.
이것은 김정일을 김일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항일 빨치산 투쟁’과 같은 혁명투쟁 경력으로 날조할 수 없기 때문에 혈통이나마 부모가 모두 혁명가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한편으로는 후계자 문제를 둘러싼 족벌내부의 암투에서 기선을 잡으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1975년부터는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을 김일성의 생일 4월 15일과 함께 휴무일로 제정하고 이날에는 생일선물이라 하여 쌀과 돼지고기·과자 등을 인민들에게 특별 배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 기관이나 공장·기업소·협동농장 그리고 각 가정에 이르기까지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를 나란히 걸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을 실시하면서도 이 사실들이 외부세계로 발설되어 나가는 것을 엄중히 통제했습니다. 다만 일본 내 대남공작기관인 조총련 간부 학습 자료와 같은 비공개자료를 통해 조금씩 노출시켜 김정일 우상화에 대한 외부의 반응을 탐지하고 이러한 사실을 장기간의 면역을 통해 기정사실화 했습니다.
북조선이 김정일의 우상화 선동놀음을 벌이면서 이처럼 신중한 방법을 택한 이유는 김정일을 김일성의 정치적 후계자로 삼으려는 문제 자체가 봉건적 족벌세습화라는 비난을 모면할 수 없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취약점을 호도하기 위해 김씨 왕조는 1976년에 들어서면서부터 김정일 학습 연구실 설치 등과 관련해 ‘후계자론’이라는 것을 만들어내서 김정일만이 김일성의 유일한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적 근거를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후계자론’이란 북조선을 통치할 후계자는 수령에 의해서만 양성되어야 하고 해결될 수 있다는 ‘수령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후계자론에 의하면 첫째, 후계자는 수령에게 가장 충실한 자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혁명은 한 세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계승되어 가며 완성되는 것으로 김일성과 같이 연로한 구세대에서 후계자가 나와서는 안 되고 반드시 새로운 세대에서 나와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세 번째로 후계자는 권력의 승계만이 아니라 수령의 사상과 이론·덕성·영도력 등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수령과 함께 몸을 가까이 하고 그의 행동과 생각 하나 하나를 체험을 통해 체득한 자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김씨 왕조식 후계자론 입니다. 물론 이러한 후계자론은 말할 필요도 없이 김정일을 김일성의 정치적 후계자로 삼기 위해 만들어낸 주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후계자론이 대두된 이후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교양 활동은 한층 활발해져서 1977년에 이르러서는 김정일을 공산주의의 미래의 태양으로 호칭했는가하면, 1978년에는 김정일의 지시내용을 ‘친필과업이라 해서 하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0년 10월에 개최된 노동당 제6차 당 대회에서 김정일이 비로소 공개적으로 정치국 정치위원과 상무위원, 비서국 비서, 군사위원회 위원 등의 요직에 등장하는 것을 계기로 하여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됐습니다. 말하자면 ‘악의 축’(Axis of evil) 김정일 체제가 공식으로 출범한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결단과 때를 같이해 평양 용성구역에 김정일 사적관이라는 것을 건립했는가 하면 김일성의 상반신 석고상과 같은 김정일의 석고상도 만들어 각급 기관에 배치하게 했으며, 김정일 덕성실기학습을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김정일의 청소년시절을 따라 배우는 학습놀음을 북한청소년들에게 강요하는가 하면, 대를 이어 충성하자는 선전활동을 벌이기 위해 노래보급은 물론 영화나 기타 문예활동을 그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노동당 제6차 당 대회 이후 김정일의 후계자 의도를 노골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치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주로 외국의 신문에 광고하는 형식을 취하든가 해외에 있는 친북세력들을 동원해 김정일이야말로 ‘탁월한 지도자’라는 사실을 제3자적 입장에서 북조선 인민들에게 소개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이러한 선전수법을 통해 후계자론에 대한 인식이 북조선 인민들 사이에 정착되자 김정일 정권은 이후 노골적으로 김정일에 대한 개인 우상화 선전교양 활동에 착수했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한 주 동안 건강하시구요, 다음 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필재의 김정일을 해부한다, 출처: 자유북한방송 인터넷 리뷰>
北국가예산 40% '김씨 왕조 신격화'에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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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5-11, 15: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