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報戰으로 北체제 전환해야

일본 문예춘추 발행 諸君! 5월호 [월보 ‘북조선문제’23]
납치피해자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 일본인들은 냉정히 대처할 수 있는가. 북한의 체제 전환 후의 방향도 생각해야 한다.

김정일의 행정능력이 국가 능력
6자회담 합의 후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일북 국교 정상화에 관한 실무 협의가 개최됐다. 결과는 예측대로이다. 북한은 일북협의를 진전시킬 생각이 거의 없다. 핑계거리가 될 난제를 던져 시간 끌기를 할 뿐이다. 여기에는 두 견해가 성립한다. 그 하나는 미북 교섭이 진전된다는 전제 아니면 일본이 초조해져서 굽히고 나올 것이라는 발상에 기초하는 것이다.

원래 미·북은 뒷거래를 하고 있으며 양자 간에는 어떤 계략이 있을 텐데 과거의 일본이었다면 곧 이 함정에 빠졌을 것이다. 이번에도 ‘납치문제를 핵문제보다 중시하는 정책은 개선돼야 한다’(중의원 예산위 공청회에서 伊豆見 전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의 지적)라는 말처럼 6자회담의 틀을 중시하는 의견이 존재한다.(본래는 핵문제나 납치문제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 문제일 터인데).

또한 자민당 내에서도 ‘버스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 앞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도 이런 주장을 하는 자가 누구인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의 견해는 더욱 저차원적인 것인데 북한에는 몇 가지의 채널을 병행해서 끌고갈 만한 외교 능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어느 나라든 비슷하겠지만 북한의 경우 외교담당자에게는 거의 결정권이 없다. 예를 들면 일북협의에서의 宋日昊는 단지 꼭두각시에 불과한데 이는 6자회담 대표인 金桂冠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일이 모든 것을 지휘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러나 형식상으로는 모두 김정일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김정일의 행정 능력이 곧 북한의 국가 능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즉 김정일의 두뇌가 미국과의 교섭으로 가득차면 일본과의 문제 같은 것은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2000년 10월 당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은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중공군의 한국전 참전 50주년을 기념해 방북했던 遲浩田 국방장관 등 중국 대표단을 내버려둔 채 김정일은 나중에 찾아온 올브라이트를 환대하고 그가 귀국한 후에야 겨우 遲浩田 일행과 면회했다.

한국전 당시 중공군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북한은 망명 정권 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 그 중공군의 대표를 무시한 채 전쟁 상대였던 ‘미제국주의’의 국무장관을 환대한다는 것은 중국 공산당을 싫어하는 필자 조차도 어처구니없는 느낌이다. 그때 당시 김정일의 머릿속은 미북 국교 정상화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이제부터 중국 친구로부터 귀찮은 간섭 같은 것은 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이 같은 대응의 차이를 나타낸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여유 있었다면 중국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대응이 있었을 텐데 결국 북한과 같은 소독재국가로서는 그것을 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번 교섭만 하더라도 앞으로 몇 갈래로 갈라지는 분과 교섭이 진행되면 북한은 필시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이번 합의는 실패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런 북한의 혼란을 포착해 내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앞으로의 대응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일본인의 분노가 폭발할 때
4년반 전인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제1차 방북에서 ‘5명 생존 8명 사망’이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요코다 씨 부부 등 가족들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요코다 메구미 씨 사망’ 그때는 누구도 그것을 사실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당시 ‘8명 사망’을 의심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느낀 것은 분노였다. 그리고 그 분노가 결과적으로는 국민의 납치문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고 일본 정부를 움직였다. 이는 북한 당국도 일본 정부 담당자도 그리고 우리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현재 17명의 정부 인정 납치피해자 대부분은 북한에 생존해 있을 것이다. “실제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몇몇에 대해서는 북한이 발표한 사망일자 이후 목격 증언이 있다. 죽었다면 그야말로 유골이나 그 무엇을 북한에서 내놓을 것이다. 일부러 가짜 유골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그 자체가 생존의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오늘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은 ‘내일도 살아 있다’는 것을 보증하지 않는다. 또 정부 인정·미인정에도 불구하고 납치피해자 중에서 도망치려다 붙잡힌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후쿠도메 기미코 씨와 납치피해자는 아니지만 그 남편인 요도호 납치범 오카모토는 도망을 기획하다 붙잡혀 어딘가로 보내졌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전 북한공작원 안명진 씨는 납치피해자가 충격과 쇠약으로 납치 도중이나 북한에 도착하자마자 사망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한다.

북한은 ‘납치문제는 해결됐다’고 말해오고 있다. 물론 거짓말이다. 김정일이 납치를 인정하기까지는 ‘납치는 일본 반동의 날조’라고 말해 왔었다. 그 정도의 거짓말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아무리 거짓을 계속 꾸미려 해도 어디에선가 사실이 밝혀지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몇 사람인가 납치피해자의 비참한 결말을 우리는 통지받게 될 것이다. 그때 일본의 여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체제 전환 후의 비전을
일본인의 멘털리티에는 츄싱구라(忠臣藏·일본 봉건시대 무사계급사회의 대표적 전설극)로 대표되는 참고 참은 끝에 최후의 일격을 폭발시킨다는 패턴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국민적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다.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에서는 풍선을 이용해 전단을 보내는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 운동은 한국의 기독탈북인연합(대표 이민복)이 해온 일이다. 그를 지난번 서울에서 만났다. 이 씨의 말이 인상적이다.
“탈북자는 감사할 줄 모른다. 먹을 것이 별로 없는 북한 안에서 죽을 각오로 살아왔고 겨우 북한을 탈출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에게서 뭔가를 도움 받더라도 경계심이 앞서 ‘이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이익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나 자신도 탈북자이고 내게도 그런 점이 있지만…”

이 씨는 러시아를 경유해 탈북한 농업기술자이다. 현재 한국 정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기독교 관계의 단체로부터 협력을 받아가면서 풍선을 북한에 띄워 보내고 있다.

이 씨는 “이제부터 북한 어린이들의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또 현실적으로 북한 체제가 변한다면 다음의 체제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생활이 보장되어 왔던 간부를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일본의 패전 후 일제시대의 관료나 군인을 활용했다. 지금 한국에서는 친북좌익세력이 이 문제를 되씹고 있지만 실은 북한에서도 일제시대의 기술자들을 활용했다. 남북 공히 구체제의 사람들을 쓰지 않아서는 일해 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북한을 체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어느 수준인가를 명확히 해두는 것이 현 체제에 쐐기를 박는 데 있어 필요불가결한 작업이다. 예를 들어 처벌하는 것은 중앙의 간부에 한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일반 주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저 보안부 녀석이 내 아버지를 수용소에 보내 죽였다’고 해서 화근을 남길 것이다. 남한에서 정해놓은 틀에 따라 된다는 보장은 못하더라도 다음 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비전을 세워서 북한에 사는 사람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체제 전환을 위한 정보전의 역할을 할 것이다.

정부의 납치문제 TV 광고
6자회담의 합의는 기본적으로 북한 체제를 보장하는 것이고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북한 체제를 바꾸는가. 가장 효과적인 정보전 혹은 모략전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원래 북한문제는 일본의 안전보장에 관한 것이므로 이것은 정부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지금 같아서는 그런 결의가 굳건한 것 같지 않다. 그것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TV 광고였다.

정부의 납치문제 대책본부는 납치문제 해결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TV 광고를 방영했다. 납치피해자의 화상을 배경으로 ‘가족을, 인생을 빼앗아간 북한에 의한 납치. 모든 납치피해자를 일본은 반드시 데려온다’라는 식의 나레이션이 흐른다. 여기에 드는 비용이 약 1억500만 엔이다. 본예산이 아닌 추경예산이다.

이 뉴스를 접하고 나도 모르게 내뱉은 소리는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 예산을 우리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에 달라는 얘기는 아니다. 정부 내에서도 정보 수집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만성적인 예산이나 인원 부족으로 애를 태우고 있다. 그 돈을 거기에 써서 모아진 정보를 일부라도 흘린다면 언론에서 관심을 가질 것이다. 15초나 30초 짜리 스포트 광고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보도해줄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뉴스에서 와이드쇼까지 매일처럼 납치문제가 흐르고 있는데 정부가 세금을 써서까지 일본 국내에서 TV 광고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북한에 대한 풍선작전
아베정부가 들어서서 분명 대책본부는 설치되고 태세는 갖춰졌다고 하겠지만 본격적인 공세로 들어가려면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데 그것이 부족하다. 관료들이 하는 일도 주어진 범위 내에서 하는 것으로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힘에 부치기는 하지만 민간단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앞서 말한 풍선에 전단을 실어 보내는 운동이다.

한때 한국군이 풍선에 전단이나 일용품 등을 실어 띄웠다. 일부는 일본에 떨어진 것도 있다. 실제 탈북자로서 이를 보고 탈북을 결심한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하며 당시 이 전단에는 휴전선을 넘을 때는 이것을 제시하여 귀순(망명) 의지를 밝히도록 쓰여 있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김대중정부 이래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요구에 응해 이 활동을 중단했다. 이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NGO인 기독탈북인연합이다. 이 단체는 2004년부터 이 활동을 하고 있다. 풍선의 구조는 간단해 통으로 된 농업용 비닐의 한쪽을 봉해 반대쪽에서 가스를 채워넣은 길이 10m 직경 1.8m의 풍선(크기는 전단의 양에 따라 달라진다. 작년에 실제 경험 했을 때는 5~7m 정도의 길이였다)으로 3만장 정도의 전단을 보낼 수 있다.

풍선에는 간단한 시한장치가 있고 전단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여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장거리로 설정하면 평양 너머까지 간다고 한다.

실제 평양 시내에서도 발견됐다고 하며 북한 당국은 14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고 한다. 작년 여름 강화도에서 시험했을 때 풍선 하나가 북한 영내에 들어가기 전에 주머니가 열려 띄운 장소의 상공 수백 미터에서 전단이 날리고 말았다. 그런데 한 장은 며칠 후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청와대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 관한 것을 알려준 사람은 북조선난민구원기금의 가토 히로시(加藤 博) 사무국장이다. 북조선난민기금에서도 전단을 준비 중이고 머지 않아 일본의 NGO가 교대로 다양한 전단을 북한에 보내게 되었으면 한다.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가 보내는 전단이 한쪽은 납치피해자에게 일본에서 구출 노력을 하고 있고 단파방송 ‘시오가제’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가능하면 제3국을 통해서라도 정보를 일본에 보내 달라고 쓰여 있다. 다른 한쪽에는 북한 사람들을 향해 납치피해자 정보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며 정보에 따라서는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쓰여 있다.

때마침 6자회담 합의에 항의해 단파방송에 대한 정부 지원 반납을 했을 무렵 ‘정보에 대한 대가 지불’을 내세운 것은 비장한 결단으로 일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라키 가즈히로 (荒木和博)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 대표·拓殖大學 교수
번역/李英勳 교포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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