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會昌씨가 兵風 때문에 졌다는 건 오해

우파 분열이 최대의 敗因이었다. 올해도 마찬가지이다. 李와 朴이 단합하면 질래야 질 수가 없다.
우리가 상식처럼 말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시작하면 의외로 '사실이 아님'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이런 俗說이다.
'李會昌 후보는 아들 병역의혹, 그리고 김대업 사기 때문에 졌다'
'李會昌 후보는 좌익들의 촛불시위 때문에 졌다'

위의 주장은 과장되거나 왜곡되었다. 사실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이회창씨가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진 데는 여러 이유들이 있다. 많은 이유들 중 가장 중대한 이유를 들어서 '이것 때문에 졌다'라고 한다면 이는 왜곡이 아니고 강조이다. 여러 이유들 가운데 지엽적인 이유를 들어 '이것 때문에 졌다'고 한다면 이는 과장이고 왜곡이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 李會昌씨는 李仁濟씨가 경선에 불복하여 탈당한 뒤 독자적으로 출마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는 또 우파본류인 金鍾泌 자민련 총재가 좌파거두인 金大中 후보 지지로 돌아서는 것도 막지 못했다. 李仁濟, 金鍾泌 두 사람이 가져간 李會昌 후보 표만 해도 500만 표가 넘을 것이다. 그럼에도 李會昌 후보는 30만 표 차이로 졌다. 많이 얻은 것이다. 즉, 1997년 선거에서 李會昌씨가 진 제1 이유는 우파분열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兵役의혹은 그 다음의 문제였다.

2002년 대통령 선거도 같다. 金大業이 녹음테이프를 조작하여 李會昌 후보 아들의 병역의혹을 제기하고 親與언론이 이에 가세했다. 그럼에도 투표 한 달 전 여론조사에서 李會昌 후보는 10% 이상의 큰 격차로 노무현, 정몽준 후보를 리드하고 있었다. 11월말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이뤄졌다. 시너지 효과를 본 盧 후보가 앞서기 시작했다.

우파인 정몽준 후보와 손을 잡아야 할 사람은 좌파인 노무현씨가 아니라 이회창씨였다. 이회창씨와 정몽준씨는 大同단결에 실패했다. 두번째의 우파 분열인 것이다. 정몽준씨는 이인제씨처럼 독자출마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표를 盧후보한테 보태어버렸다. 李仁濟씨보다 더 큰 타격을 이회창 후보에게 준 것이다. 그럼에도 이회창 후보는 100만 표 이하의 차이로 졌다. 많이 얻은 것이다.

이 공식은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도 적용된다. 요사이 떠도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명박씨나 박근혜씨의 약점이 선거기간 막판에 폭로되고 어용언론이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하면 한나라당 후보가 질 것이란 추측, 또는 노무현-김정일 회담이 새로운 판을 만들어 한나라당 후보를 코너로 몰 것이란 추측 등이다.

이런 추측은 주변적이다. 핵심은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이 競選 뒤에도 단결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두 사람이 단합하면 우파는 질 수 없다. 우파 70%, 좌파 30%의 여론구조가 고착되어 있다. 우파가 분열하지 않으면 이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분열하지 않을 것인가이다. 競選은 치열하게 하되 감정적으로 원수가 되지 않을 만한 한계를 쌍방이 지켜야 한다. 인신공격을 자제하고 정책대결로 가도록 노력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勝者와 敗者가 권력을 나누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는 담합이 아니다. 정치의 본질이다.

내부 단합은 강력한 공동의 敵이 있을 때 쉬워진다. 박근혜, 이명박 두 사람의 공동의 敵은 김정일과 남한내의 그 추종세력이다. 主敵의식이 투철하면 경쟁자끼리는 아무리 싸워도 헤어질 수 없다. 이념무장대결상태하의 한반도에서 彼我구분을 분명히 해주는 무기가 이념이다. 이념은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대한 자각이다. 즉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가를 가르쳐주는 것이 이념이다. 한국에서 이념은 가장 큰 대통령 선거 戰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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