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대표는 『인간 朴正熙를 말한다』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박정희는 서민으로 나서 實事求是(실사구시)의 정신으로 국력을 극대화시켜 대한민국을 선진국의 문턱까지 이끈 근대화 혁명가』라고 정의하며, 『이제는 국민의 힘으로 북한동포를 해방하고, 자유통일을 이뤄, 일류국가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趙대표는 박정희가 문경보통학교 교사 시절 책상 위에 나폴레옹 그림을 두고 지냈고 이광수가 쓴 이순신 전기와 나폴레옹 전기를 열심히 읽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나폴레옹과 박정희는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둘 다 식민지 출신이고 이혼 경력이 있습니다. 둘 다 쿠데타를 두 번 했습니다. 박정희도 5.16과 10월 유신 두 번입니다. 둘 다 한 나라의 기틀을 만들었고 죽고 나서 생전의 업적을 재평가받았습니다. 167cm,164cm(박정희)로 작은 키도 비슷했습니다』
趙대표는 『傳記(전기)는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 이 책을 읽고 21세기형 박정희가 되어 대한민국을 일류국가로 만드는 역할을 했으면 하고 바란다』고 했다.
趙대표는 『李承晩 없는 朴正熙는 없다』고 강조했다. 『李박사의 업적인 자유민주주의, 韓美동맹, 교육개혁, 農地개혁이 있었기에 朴正熙의 근대화 혁명이 가능했다』는 설명이었다. 또『전두환이란 후임자를 잘 만난 것도 박정희의 행운이었다』고 했다.
『박대통령이 죽은 직후 제2차 석유파동으로 15달러이던 기름값이 35달러로 올라갔어요. 중화학공업 정책이 위기에 빠졌지만 전두환 정권이 1~2년 만에 잘 극복해 박대통령이 벌인 일들을 계속 발전시켰습니다. 80년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0.1%로 세계 200여 나라중 1등이었습니다. 또 全대통령은 박정희 시대를 격하하지 않았습니다』
趙대표는 『박정희는 죽을 때까지도 서민감각, 반골(反骨)의식을 잃지 않았던 부끄럼타고 겸손하고 눈물이 많은 권력자』『썩은 강물 같은 한 시대를 들이마시고 바다 같은 새로운 시대를 빚어낸 사람』『그러면서 자신의 혼을 오염시키지 않았던 사람』이라며 『결론적으로 淸濁을 함께 들이마신 超人이었다』고 말했다.
『1970년대는 민족사 최대의 성장시기였습니다. 박대통령은 역설로 자기 성공의 희생자이기도 했습니다. 튼튼한 중산층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정치적 욕구가 분출했고 그 욕구의 희생자가 된 셈입니다. 자기 성공의 희생자가 역사에선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趙대표는 얼마 전 박정희의 구미 生家를 찾은 이야기도 했다.
『박정희가 빗자루를 어깨에 메고 걷는 사진에 붙은 설명이 '유신은 거창한 게 아니다. 자기 집 앞을 자기가 쓰는 데서 시작한다'는 글귀였습니다만 박정희의 사상이 담긴 글입니다. 이게 간단한 이야기면서도 실천이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물질적 발전은 이뤘지만 아직도 자기 집 앞을 쓸지 않는 국민이고, 일류국가의 국민이 되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날 강연회가 끝난 뒤 趙대표는 60여명의 참석자들과 사인회, 기념촬영 등의 행사를 가졌다. 조갑제 기자의 다음 번 전국서점 순회강좌는 5월25일 부산 동보서점(오후 6시30분), 6월2일 교보 인천점(오후 3시)에서 개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