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朴에게 주는 苦言

드골의 예지력과 指導力 危機에 처한 대한민국
I
프랑스는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계획한 보불전쟁(1870-71)과, 제1차대전, 그리고 다시 제2차대전 등 3차에 걸쳐서 독일군의 先攻에 어이없이 무너졌다. 그런데 1930년대부터 국가안보의 위험을 정확하게 직시한 샤를 드골이 등장하면서 2차대전에서 패전에 직면한 프랑스는 물론, 전후에서도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대선을 앞두고 한국인들이 드골의 리더쉽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34년 5월 드골 중령은 자신의 저서, 『미래의 군대 vers l`armeee de metier』에서 “독일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마지노선’과 같은 정적인 군사이론보다는 기동력을 갖춘 소수 정예의 첨단 기계화 부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현 시점은 아주 긴박한 비상시국이라는 사실”을 대담하게 호소하였다. 드골을 더 나아가, “전선에서 즉각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기계화된 기갑부대의 10만명의 창설”을 주장했다. 드골의 책을 읽은 독자 중에서는 영국의 리델 하트경과 2차대전 초기 독일군 電擊戰의 창시자 구데리안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그의 책은 인기가 없었다. 30년대에 레옹 블룸이 이끄는 人民戰線 정부는 무기력했는데, 국방개혁의 의지를 상실하고 있었다. 블룸의 근본적인 平和主義 사상은 국방개혁을 통한 국방력의 강화를 외치는 드골이 예견한 위험성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국방부 장관이며 사회당 당수가 된 달라디에는 공공연하게 드골의 반대편에 섰다.

이렇게 30년대의 프랑스는 드골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독일 히틀러의 위협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 프랑스 국민들은 평화무드의 분위기속에서 막연하게 마지노 선이 프랑스를 독일군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다. 심지어 히틀러와는 타협과 평화가 가능하다고 선전하는 정치인도 있었다. 이런 위험한 평화주의 무드를 정착시킨 인물들이 바로 권력을 잡고 있던 좌파정치인들과 그에 附和雷同하는 좌파언론, 그리고 安保不感症에 걸린 지식인들이었다.

40년 5월, 히틀러의 기갑 부대가 아르덴느 삼림지역을 관통하여 프랑스가 자랑하는 마지노선을 무력화시켰다. 독일군 구데리안, 폰 클라이스트, 롬멜이 이끄는 전차군단은 드골이 예측대로 이동하여 드골이 미리 그려놓은 점선을 따라서 정확하게 프랑스 군대를 조각내어 버렸다. 드골이 조국 프랑스의 불행을 예견한지 꼭 5년만의 일이었다.

II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은 북한의 공산주의 집단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 세 번에 걸쳐서 완전한 기습을 당했다. 6.25무력도발과 2차에 걸친 핵 개발이 바로 그런 것이다. 첫 번째 기습은 김일성이 계획한 1950년 6.25남침이란 무력도발로 인한 同族相殘의 비극이 바로 그것이다. 간교하게도, 40년대 말 6.25남침을 앞둔 몇 년전부터 김일성은 김구와 김규식을 평양으로 초청하는 등 부쩍 평화공세를 강화했기에 순진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남북한의 평화통일과 공동번영을 학수고대했었다. 그러나 6월 24일 토요일, 한미 양국군 장교들의 댄스파티를 한 바로 그 다음날 새벽 4시에 자행된 김일성의 남침은 세계전쟁사에 그 유례가 없는 완전한 기습이었다. 6.25전쟁으로 인해 남북한 생산시설을 거의 파괴되었고 국토는 완전히 초토화되었으며, 수백만명에 이르는 이산가족을 만들어내었다. 그럼에도 김일성은 대한민국에게 제대로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전쟁의 책임을 박헌영에게 뒤집어 씨워서 그를 ‘美帝의 앞잡이’로 몰아서 그와 남로당 일당을 1956년 처형하였다.

1987년 노태우정부가 들어서고 북방정책이 추진되면서, 남북은 해빙무드에 들어갔으며, 91년 12월, 남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했었다. 그러나 94년 김일성은 간교하게도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하여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서 1차 핵 위기가 닥쳤다. 이것이 두 번째 김일성의 기습의 경우이다. 그런데 김일성은 기회만 있으면 핵 개발 의지가 없다는 점을 대내외에 표명했다. 1977년 10월 일본 NHK 논설위원과의 대담에서 처음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김일성은 1991년 9월 26일, 이와나미(岩波)서점 사장과의 한 대담에서도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단언했다. 1992년 2월 20일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단과의 오찬 담화에서도 같은 내용의 말을 했다. “우리에게는 핵무기가 없는 것은 물론 그것을 만들지도 않고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큰 나라들과 핵 대결을 할 생각도 없으며 더욱이 동족을 멸살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김일성의 死後, 김정일이 다시 한반도의 비핵화 약속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면서, 핵개발을 추진함으로써, 2차 북핵 위기가 초래되었다. 이것이 세 번째 기습이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대통령특사가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이 우라늄 농축기술을 이용한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북한이 이를 시인하면서 표면화되었다. 2005년 2월 10일 북한 외무성은 북한이 핵 무기를 만들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006년 10월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서 핵위기는 악화되었다. 올해 베이징에서 6자회담의 2.13합의를 했지만, 김정일이 핵폐기의 1단계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김정일의 비자금 2천5백만달러가 묶인 BDA의 달러 환수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III
대한민국이 이 정도로 북한 김일성-김정일 父子의 기만전술에 철저히 농락 당 할대로 당했으면, “이제는 안되겠다. 북한 김정일 체제와 정면으로 맞서야겠다. 김정일 체제를 교체할 방도를 강구해야겠다. 핵 主權을 찾아야겠다”는 등의 강력한 대북․ 대외정책을 펴는 인물이 벌써 등장했어야한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제대로 된 사회라면, 올바른 생각을 가진 정의로운 국민들이라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갔어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치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은 심각한 리더쉽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미 전 총리 고권과 전 서울대 총장 정운찬 등 양식이 있거나 중도보수 성향의 범여권의 후보군들은 자의반 타의반 탈락하였으며, 남아있는 범여권 후보군들은 김정일이 쌍수로 환영하는 친북좌익인사들로 가득 채워져서 평양을 마치 자기 집 안방처럼 들락날락하면서 북측에게 온갖 아첨으로 비위를 맞추면서 朝貢支援을 약속하면서 김정일-김대중의 최종적 落點만 고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가 워낙 떨어져 있고 기대조차 하고 있지 않기에, 그렇다손 치더라도, 야권대권후보에 속한 빅2에 속하는 이명박과 박근혜 진영에서도 국가안보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이나 확고한 대북정책이 나오지 않은 채, 그들은 좌우익 눈치만 보고 있다.

특히 이-박 양 후보들은 당내경선에 집착하여 泥田鬪狗가 심화되면서 정책 개발이 등한시되고 있다. 정책 개발도 안보문제를 접어두고 ‘경제 제1주의’로 방향을 틀어 경쟁이 심각해지고 있는 점은 한국이 처한 총체적 위기 상황으로 볼 때, 우려되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명박의 ‘경부운하 땅파기’와 박근혜의 ‘韓中열차페리’ 경쟁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가 그 정책들이 두 후보자들의 知的 水準, 유권자들에 대한 認識度, 그리고 비전과 識見이 함축된 것이기 때문에 重大性이 내포되어 있다. 더욱이 김정일이 핵개발을 했다면, 그 대책마련에서 심도 있게 연구를 했어야하는데, 양 대권후보들로부터 나오는 결과물은 다음과 같은 방식이다; “만약 김정일이 핵을 포기한다면, 한나라당이 열우당보다 더 많고 더 화끈한 대북지원을 김정일에게 약속할 것”이라든가, 비무장지대에서 이산가족이 보다 편안하게 만날 수 있도록 호화로운 관광호텔을 건축하겠다. 당의 정강정책이 대권후보들의 것보다 먼저 다듬어져야하지만, 사정은 정 반대다. 심지어 2.13합의 이후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은 대북유화책을 수립하려 했다가, 보수우익의 거센 반발을 사면서, 실종된 지 오래되었다.

문제는 김정일에게 핵을 포기하라는 점에 강조점을 둔 것이 아니라, 대북지원에 강조점이 있다는 데 있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대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대북정책에서 야당의 양 후보는 범여권과 큰 차이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왜 굳이 친북좌파정권을 교체해 달라고 국민들에게 요구하는가? 정권교체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대해서 비판하는데 있어서도, “품위 없이 말을 함부로 해서”, “사회주의 철학으로 경제를 망쳐서,” 조금 더 강경하게 공격한 水位가 “국가 정체성을 훼손해서” 라는 식이다. 그렇지만 양 후보는 대선을 앞두고 북핵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줄줄이 이어지는 친북인사들의 평양러시행렬, 각종 대북이벤트와 더 퍼주기 대북지원문제에 대해서는 대정부 비판을 삼간 채, 세몰이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IV
북한의 붕괴 및 비상사태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이 더 적극적이다. 워싱턴의 일각에서는 향후 김정일 정권의 갑작스런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것은 줄 이은 친북인사들의 ‘평양러시’와 남북한 철도 연결 이벤트에 골몰하는 한국 내의 분위기와 너무 다르다.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은 5월 미 워싱턴에서 가진 한 강연에서 “북한 관련 비상사태에 대비한 ‘작계 5029’의 존재 여부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겠다”며 “한미 양국은 오래 전부터 여러 상황에 대비해 합동 작전계획을 세워왔다”고 밝히면서 미국의 유사시 북한 문제에 대한 큰 관심을 나타내었다. 이-박 양 대권후보들은 일시적으로 표를 긁어모으면 된다는 안이한 포풀리즘의 유혹에서 한시바삐 벗어나야한다. 아무쪼록 유사시에 대비하는 마음자세를 가져서 북한 김정일 체제와 통일문제를 巨視的이고 歷史構造的 觀點이라는 큰 안목으로 바라 볼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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