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후보의 형제는 몇 명일까?

책 앞부분엔 5남매라 했다가, 어느 순간 7남매로 바뀌고, 그 뒤엔 이유도 없이 6남매로 줄었다.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후보가 쓴 「어머니」란 책을 감명 있게 읽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저미는 이름」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의 서문에서 이명박 후보는 이렇게 썼다.

「세월이 흐를수록 오늘의 나를 만든 분은 어머니라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다가온다. 어머니는 내가 20대의 초반이었을 때 50대의 아까운 나이에 돌아가셨다. 가난은 우리 가족을 끈덕지게 따라다녔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남한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우리 형제들이 가난을 원망하지 않으며,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가난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당당함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남겨주신 정신적 유산을 하나씩 꺼내 쓰며 60여 년을 살아온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기자도 몇 번 눈물을 흘렸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을 슬기롭게 이겨나간, 이명박 후보 어머니의 너무나 감동적인 사연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서 기자는 약간 짜증스러웠다. 같은 책에서 한 가지 사실, 즉 「이명박 후보의 형제 숫자」가 다르게 표기되었기 때문이다. 책 앞부분엔 5남매라 했다가, 어느 순간 7남매로 바뀌고, 그 뒤엔 이유도 없이 6남매로 줄었다. 설명이 없으니까 답답했다. 구체적인 대목들을 인용하면 이렇다.

● 어머니는 우리 오남매에게 아버지가 가장 훌륭한 분이라고 가르치셨다.(7페이지)
● 귀선, 상은, 상득, 명박, 귀분. 우리 오남매의 이름…(19페이지)
●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칠남매를 낳으시고 평생을 길에서 힘들게 일하며 세월을 보내신 어머니(25페이지)
● 우리 오남매는 영양실조에는 걸려도 당당함은 잃지 않았다.(63페이지)
● (아버지는)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근교 목장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아버지가) 잠시 조국 땅을 밟았을 때 혼례를 올렸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여섯 남매를 낳아 기르며, 열심히 일했다.(87페이지)
● 가난했던 우리 형편에 오남매를 모두 학교에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91페이지)
● (이명박 어머니의 묘비에 쓴 글 인용) “…부인인 채씨가 자녀 오남매의 학위 조달에 고생타가…”(106페이지)
● 원래 우리는 오남매가 아니라 칠남매였다. 누이(귀애)와 막내 동생(상필)은 (6ㆍ25) 전쟁 때 우리 곁을 떠났다.(189페이지)

위 내용들을 기자 나름대로 유추하면, 「이명박 후보의 형제는 본래 일곱 명인데, 두 명이 6ㆍ25 전쟁 중에 일찍 사망해 오남매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여섯 남매를 낳아 길렀다는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며, 또 6ㆍ25 전쟁 중에 사망한 두 자식을 왜 어머니 묘비에서 제외했는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명박 캠프에 출입하는 한 기자에게 그 사연을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이다.

『구술 받는 과정에서 작가가 착각을 일으킨 것이다. 원래 칠남매가 맞는데, 6ㆍ25 전쟁 중에 두 명이 일찍 사망했기 때문에 오남매로 표시한 것이다. 일본에서 육남매를 낳아 길렀다는 부분도, 막내가 일본에서 귀국한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틀린 게 아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 부모가 1935년 일본에 건너간 후 육남매를 낳았다는 부분은 호적하고 차이가 있어 책 내용을 수정하여 다시 출판한 것으로 알고 있다』

확인을 해보니 기자가 읽은 책은 지난 3월12일에 발행된 초판이었고, 그 얼마 후에 재판이 출간되었다. 이 초판은 지난 3월13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출판기념회에서 배포된 것이다. 이 기념회에 전국에서 2만 여명이 참석했다고 하니, 이 2만 여명이 만일 기자처럼 이 책을 읽어보았더라면 약간 헷갈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캠프 측은 「어머니」란 책의 내용을 수정하여 재판을 출간했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 메이저 언론에서는 보도를 회피하고 있다. 이는 작가의 착오가 빚은, 사소한 가십거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주인공이 유력한 대선 후보라는 점에서 슬그머니 넘길 수는 없는 사안인 것 같다.

그래서 기자는 「이명박 후보의 정확한 형제 숫자」를 알기 위해 이명박 부친의 호적을 입수, 분석했다. 호적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의 부친(이충우)과 모친(채태원)이 혼인신고를 한 날짜는 1931년으로, 1935년에 혼인했다는 책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호적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의 형제는 일곱 명이 맞다. 나이 순으로 귀선-상은-상득-귀애-명박-귀분(호적상 이름은 말분)-상필이다. 막내 상필은 포항에서 출생신고를 했으므로 이명박 후보의 부모가 일본에서 낳아 기른 자식은 육남매가 맞다.

호적을 보고나서 기자의 의문은 다 풀렸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6ㆍ25 전쟁 중에 사망한 두 형제(귀애-상필)는 왜 형제 취급을 하지 않느냐는 점이다. 특히 어머니 묘비를 언급하는 글에서 두 형제를 아예 제외한 점은 기자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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