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1994년 이후 잇따른 위기 국면에서 지금까지도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감시와 통제, 숙청으로 이어지는 히틀러, 스탈린과 같은 독특한 통치방식 때문이다.
김정일의 시야에 있는 권력 상층부의 고위 관료들은 ‘바늘방석’과도 같은 직위다. 특히 내각 및 경제부서와 대남공작부서의 고위 관료들은 걸핏하면 김정일의 ‘희생양’이 되기가 일쑤다.
경제 담당 고위 관료직은 ‘희생양’
북한에서 일명 ‘혁명화’로 불리는 좌천은 숙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숙청은 정치범수용소로 직행하는 경우도 있으며, 일부는 지방의 공장으로 배치받아 추방되기도 한다.
김정일정권의 고위 관료들 중 ‘과오’를 범하고 지방의 공장이나 농장 등에 가족 모두와 함께 추방돼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혁명화 단계를 거쳐 꼭 필요한 사람을 다시 복직시키는 경우에도 충성심을 재확인한 뒤 복직시키거나 다른 부서로 옮겨 발탁하기도 한다.
최근 박봉주 총리가 기업에 시급제와 일급제, 주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자본주의 도입을 꾀한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이 때문에 해임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박 총리는 해임 이후 평남 순천의 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행정책임자)으로 좌천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성산, 리근모, 홍성남 등 대다수 전직 총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에서 총리 자리는 실권은 없다. 이들은 경제개혁 등 실용성을 조심스럽게 주장해도 사상검증을 받는가 하면, 또 걸핏하면 회생 가능성이 없는 경제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희생양이 됐다.
이외 중요한 사람만도 서관히(농업담당 비서), 서윤석(당 정치국 위원·평남도당 책임비서), 김환(부총리), 김달현(부총리) 그리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 김정우와 박용석 철도상 등 많은 사람들이 제거되어 사라졌다.
대남공작부 대대적 숙청
김정일은 2002년부터 대남공작부서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2004년에는 통전부와 군부가 합세하여 대외연락부 요원들을 대폭 숙청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숙청이 이루어진 이유는 대남공작 조직원들의 허위 과장 보고와 사기 저하 및 부정부패이다.
남한에서 비밀공작원들은 김정일이 바라는 식의 성과를 올리기가 어렵다는 현실 판단 하에서 과장 정보를 보고했으며, 또 중간 조직책은 더 부풀려 김정일이 좋아하는 내용의 보고만 올렸다. 이러한 허위과장보고의 행태로 북한 지도부가 남한 정세를 오판하도록 하거나 비효율적인 대남 처방이 수십 년간 반복되도록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김용순 대남담당 비서는 2005년 의문의 고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4개월간 입원 중 사망했다. 일각에서는 총체적인 대남공작실패에 따른 모든 책임을 김용순에게 씌우고 교통사고로 위장한 제거였다는 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후임으로 남북관계를 총괄하던 림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장도 2006년 8월 70세로 사망했다.
조선아시아ㆍ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인 대남사업 책임자인 송호경도 2004년 63세로 갑자기 사망했다. 이들 두 사람의 죽음을 두고 미국과 일본에서는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김대중 정권의 대북송금 사건에서 발생한 배달사고 때문에 숙청당해 살해된 사건”이라는 기사들이 많이 보도되었다.
1994년 남북 실무 접촉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박영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국장도 2003년 66세의 나이에 간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숙청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밖에 조국통일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정준기도 제거됐다.
박민철 미래한국신문 기자 pmc3101@
對南부서·경제고위층 잦은 숙청
- 박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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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5-26, 1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