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悳洙 총리와 레닌의 ‘쓸모 있는 바보들’

"북한이라는 ‘국가’에 대한 ‘안전보장’과 김정일 정권에 대한 ‘체제보장’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韓悳洙 총리의 KBS 경제 特講과 레닌의 ‘쓸모 있는 바보들’

26일 오전 11시 좀 지나서 차중(車中)에서 켠 라디오의 KBS 방송은 ‘경제 세미나’ 시간이었다. 연사는 한덕수(韓悳洙) 국무총리. 순간적으로 그의 달변(達辯)과 풍요(豊饒)한 내용에 필자의 귀가 매료(魅了)되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그는 엘리트 관료(官僚)란 과연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하나의 전형(典型)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는 세계 경제가 날이 갈수록 국가 간 국경을 무너뜨리고 더욱 ‘세계화’되고 있는 중인데 그 흐름 속에서 한국 경제가 어떻게 활로(活路)를 개척해야 할 것인지에 관하여 풍부한 통계 및 정보 자료를 근거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면서 한-미 FTA가 어째서 필요한 것인지를 누구나 공감(共感)할 수 있는 내용으로 해설하고 있었다. 그는 이 같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성’에 바탕을 둔 ‘경쟁력’의 확보가 필요하며 FTA가 바로 문제의 ‘생산성’에 근거한 ‘경쟁력’을 제공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훌륭한 강의였다.

그의 이 같은 훌륭하기 짝이 없는 강의 내용에는, 그러나, ‘옥(玉)의 티’가 있었다. 그는 앞으로 국제경제에서 차지하는 아시아 경제의 비중이 괄목하게 커질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그는 아시아 경제의 이 같은 성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으로 북한이 외톨이로 방치되지 않고 아시아 경제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 세웠다. 원론의 차원에서 이 같은 한 총리의 말에 대해 이견(異見)을 들이댈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진 한 총리의 발언은 그답지 않은 ‘요설(饒舌)’이고 ‘궤변(詭辯)’이었다.

한 총리는 북한이 ‘체제안보’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이 같은 국제경제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고 외톨이 신세를 고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진단에 대해서도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의 체제안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이냐는 데 있었다. 여기서 ‘북한의 체제안보’라는 것은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로 이어지고 이제는 3대에 걸쳐서 김정일의 아들 가운데 한 명에게로 이어지려 하고 있는, 이제는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는 전근대적인 전제왕정(專制王政)의 유물(遺物)인, 세습 독재체제의 안보를 뜻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총리의 말은 ‘궤변’이었다.

그는 북한으로 하여금 ‘개혁ㆍ개방’을 수용하여 국제경제 대열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체제안보’에 대한 ‘불안’을 해소시켜 주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한국을 비롯하여 국제사회가 북한의 ‘체제안전’에 대한 ‘보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한 총리의 이날 강의의 이 대목은, 좋게 말하더라도, 북한에 대한 무지(無知)를 드러내 주는 것이고, 나쁘게 말한다면, 그가 모시고 섬기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위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변설(辯舌)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대한민국이,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안전보장’은 한계가 있다. 외부세계가 할 수 있는 ‘안전보장’은 기껏해야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하고 이 ‘약속’을 이행하는 것뿐이다. 이 경우도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할 수 있는 것일 뿐이지 북한이 먼저, 1950년6월25일 새벽에 했던 것처럼, 우리에 대해 무력공격을 감행했을 때도 북한에 대해 ‘안전보장’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제 한 총리가 KBS 방송 강의에서 말한 대북 ‘안전보장’은 그러한 ‘안전보장’이 아니었다. 그는 그러한 의미의 ‘안전보장’이 아니라 ‘김정일 체제’에 대한 ‘안전보장’을 말하고 있었다. 필자는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이라는 ‘국가’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대한 ‘안전보장’과 ‘김정일 정권’에 대한 ‘체제보장’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할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북한의 경우, ‘김정일 정권’은 이미 이 지구 상 어느 곳에서도 유례(類例)를 찾아 볼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독재정권이다. 대한민국이, 그 정부가, 그리고 그 국민이, 어떻게 ‘김정일 정권’의 전근대적인 ‘수령 독재체제’에 대해 ‘체제보장’을 제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의 그 같은 발언은 우리 정부가 북한의 김정일 정권으로 하여금 앞으로도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연장시켜 주는 범죄행위를 저지르겠다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아니다.

물론, 6.25 전쟁의 참화(慘禍)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것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력과 폭력이라는 방법을 배제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력과 폭력이 아닌 방법이라면, 무슨 방법으로든지, 북한의 ‘수령 독재체제’를 끝장냄으로써 2천3백만 북한 동포들을 수령독재의 폭정(暴政)으로부터 ‘해방’시키며 나아가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통일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그가 어제 특강에서 인용한 대한민국 헌법 제4조가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명제(命題)인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북한의 ‘김정일 정권’에 대해 ‘체제보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어제 한 총리의 발언은, 그 대목에 관한 한, 명백히 대한민국 헌법 제4조를 위반하는 위헌적 발상을 담고 있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는 북한으로 하여금 ‘개혁ㆍ개방’을 선택하게 하기 위하여 ‘김정일 정권’에 대한 ‘체제보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총리는, 북한의 ‘개혁ㆍ개방’ 선택은 필연적으로 ‘김정일 독재정권’의 몰락(沒落)을 초래하게 되어 있고 바로 이에 대한 우려 때문에 김정일은 지난 20년 동안 유일한 맹방인 중국의 끈질긴 종용에도 불구하고 ‘개혁ㆍ개방’의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무시ㆍ외면하는 과오를 저지르고 있었다.

실제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이에 유일하게 접목(接木)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험(實驗)인 중국의 ‘개혁ㆍ개방’은 세 가지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해 졌다는 사실을 한 총리는 모른다는 말인가. 중국의 ‘개혁ㆍ개방’은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한 후 1979년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鄧小平) 체제 하에서 ①개인숭배가 폐지되고, ②‘인치(人治)’가 ‘법치(法治)’에 의하여 대체되며 ③시장경제가 전면 수용됨으로써 비로소 성공의 길로 접어 들 수 있었다. 북한이 이 같은 세 가지의 ‘전제조건’을 수용한다는 것은 곧 ‘김씨왕조(金氏王朝)’의 퇴장(退場)을 의미한다. 바로 그 때문에 북한은, ‘김씨왕조’라는 전제왕정(專制王政)이 존속되는 한, 결코 의미 있는 ‘개혁ㆍ개방’을 수용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그 같은 ‘개혁ㆍ개방’의 ‘전제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대북 ‘퍼주기’를 키워 간다면 북한은 ‘개혁ㆍ개방’은 아랑곳함이 없이 화수분처럼 외부로부터의 원조를 빨아들여 김정일 독재체제 유지에 이를 이용하기만 한다면 그로 인하여 더 장기화되는 2천3백만 동포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진다는 것인가. 더구나, 만약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지원으로 ‘시장경제’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를 강화하는 데 이를 사용한다면 이렇게 하여 되살아난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통일 후 그 철거ㆍ해체 비용을 발생시킴으로써 통일비용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증대시키게 된다는 사실을 경제관료인 한 총리는 모른다는 것인가.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고 북한의 ‘체제안보’ 문제는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북한 동포들의 고유한 선택 영역이다. 불행하게도 ‘김씨왕조’ 아래서 ‘북한판 공산주의형 인간’으로 철저하게 개조(改造)된 지금의 북한 동포들은 적어도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 문제에 관하여 독립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정부와 국민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북대화를 통하여,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모든 가용한 수단과 방법을 통하여, 북한 동포들이 그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도록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어제 한 총리는 강의의 후반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한껏 구가(謳歌)했다. 그러나, 그가 집사(執事)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현실은 그의 이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찬가(讚歌)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 주변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정부 안팎은 구 남로당 인맥과 자생적 좌경세력 및 386 등 ‘친북ㆍ좌파’ 인맥으로 메워진 가운데 이 나라의 외교, 안보, 통일, 경제, 사회 정책은 전반적으로 좌회전(左廻轉)의 급선회(急旋回)를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초등학교의 ‘전교조’ 교사가 학생들을 인솔하고 지리산 빨치산 추모제를 참가하고 있고, 남로당 간부들이 ‘독립유공자’로 둔갑(遁甲)하여 훈ㆍ포장에다가 두둑한 보상금을 수령하고 있고, 4.3 제주도 폭동 참가자들이 ‘민주화 유공자’가 되고 있는 가하면 ‘공무원 노조’ 세미나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강의가 실시되고 있는 세상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사실상 부정하고 정통성을 북한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부여하는 내용의 교과서로 교육받는 학생들이 “6.25는 북침”이었고 “우리의 주적(主敵)은 미국”이며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미국이 못살게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 세상이다.

오늘 날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이 앞장서서 ‘양극화’요, ‘종합부동산 소유세’요 하면서 공공연하게 국민들 사이에 계급에 입각한 반목과 갈등, 그리고 질시와 증오심을 조장ㆍ증폭시키고 있다. 이는 1946년에서 47년 사이에 북한에서 ‘토지개혁’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5정보 이상의 농지 소유자를 ‘지주(地主)’로 몰아 이들에 대한 농민들의 증오심과 적개심을 조작, 조장함으로써 그때만 해도 한국인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계급투쟁’을 북한 땅에 이식시켰던 좌파 세력의 상투적 작태(作態)를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 총리가 공영방송에 나와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찬가를 구가했다.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현실과는 동 떨어진 괴리감(乖離感)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1917년 소련에서의 볼셰비키 혁명의 수령이었던 레닌이 세상에 남겨 놓은 어휘(語彙) 가운데 ‘쓸모 있는 바보들(Useful Idiots)’이라는 말이 널리 세상의 입에 회자(膾炙)되었던 적이 있다. 어제 한 총리의 KBS 강의를 들으면서 문득 레닌의 ‘쓸모 있는 바보들’이라는 어휘가 머리에 떠오르고 있었다. 특히 12월의 운명적(運命的)인 제17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이 ‘쓸모 있는 바보들’의 농간(弄奸)에 희롱(戱弄)되는 일이 또 발생한다면 이 땅의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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