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이 날이 정말 대한민국의 재생의 날이 되기를 기도하며, 맑고 환하게 트인 시원한 조국의 하늘을 그려 본다.
글/한미 자유 수호 운동본부 최 응 표
문학평론가 김 학동교수의 말처럼, 이 상화 시인은 일제의 암흑기를 살면서, 비록 나라는 빼앗겼더라도 민족혼만은 결코 빼앗길 수 없다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가” 라고 어둠에 갇힌 민족의 슬픔을 한편의 시로 엮어 냈다.
그런가 하면 그는 “하늘을 우러러 울기는 하여도 하늘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다.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달파 하늘을 흘기니 울음이 터신다.” 며 가슴을 찢는 아픔으로 망국의 한을 토해 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나라를 몽땅 빼앗겼으면서도 도피성 자족과 굴욕, 변절과 배신과 반역으로 썩어 가는 땅, 민족혼마저 빼앗겨 스스로 북의 노예이기를 자처하는 민족, 그리고 도덕은 땅에 떨어져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지 오랜, 모두가 향락에 빠져 순간을 사는 꿈 없는 사회, 여기에 만약 민족혼만은 빼앗길 수 없다고 절규하던 그 이 상화가 다시 살아온다면, 아마도 그는 “썩고 희망 없는 땅에, 어찌 봄이 오길 기다리는 가” 라고 통곡하며 무덤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가” 라고 울부짖던 그 이 상화가 아닌가. 그런데 분명 다시 찾은 땅인데도 봄기운은 없고 시베리아 찬바람만 불어 대니 어찌 안 그러겠는가.
언젠가 나는 조국의 봄은 언제나 폭풍 속에 온다고 쓴 적이 있다. 그런데 폭풍 속에서나마 어김없이 찾아오던 그 봄마저도 이젠 아예 한국에 오기를 거부 하는 것 같다.
미래학자 “티모시 맥”의 말처럼,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 주는 이미지는 분명 “평화, 차분함, 그리고 우아함”이어야 하는데, 3월의 조국 하늘에선 평화도 차분함도 우아함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찾은 조국의 봄은 그랬다. 다시 말해 “春來不以春”, 봄은 왔는데도 봄 같지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연의 봄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얌전히 참고 기다리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지만, 인간의 봄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인간의 봄은 어쩌다 잠간 한눈만 팔아도 빼앗기지 않으면 도망쳐 버리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항상 깨여 지켜야 하며, 도둑맞았을 때는 목숨 걸고 싸워 찾아야 한다. 지금 한국의 봄은 분명 붉은 도적 떼에게 강도당한 상태다. 그런데도 어쩌면 그처럼 태평성대를 살고 있는지 통 알 수가 없다.
2007년이 어떤 해인가. 대한민국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해가 아닌가. 그런데도 어느 곳 하나 희망을 걸어 볼만한 곳이 안 보인다.
정치판은 개판이고, 종교는 썩어 있고, 지식인은 죽어 있고, 교육은 문어지고, 변절과 배신과 반역은 제철을 맞은 듯 활개치고, 그 어느 곳 하나 성한 데 없이 무너져 내린 땅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대한민국이 무슨 죄가 있어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는 건지 가슴을 치며 통곡할 노릇이다. 죄가 있다면 북한 보다 잘 사는 것 밖에 더 있는 가.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건국과 호국의 험한 길을 헤치며 산업화의 길을 숨차게 달려, 그 지긋지긋 했던 가난을 털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백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5적에 대해선 그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난도질을 해 대면서, 국제 범죄 집단에게 나라는 물론 민족혼마저 팔아먹은 신5적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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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선 어떻게 그처럼 관대하고 숭배까지 하는 건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느 기자의 말처럼, 중국의 등소평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 오늘의 경제대국의 신화를 낳았다고 하는데, 어쩌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외쪽으로 가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는지 정말 통곡 할 노릇이 아닌가. 여기 일등공신은 단연 김종필과 이인제란 위인들이다. 그러고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헛소리를 해대며 활보하는 세상이 돼 버렸는데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에게 반역의 죄 값을 묻는 하늘의 징벌이 반듯이 있을 것이다.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닌가. 그래야 하늘이 아닌가 말이다.
하여간 문제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다. 그래서 그 나라의 정치수준이 곧 그 나라의 국민수준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달라 위조와 마약장사, 세계를 무대로 양민납치, 테로 등, 흉악범죄는 도맡아 하며, 초호화판 생활에 기쁨조까지 거느리면서도 300만이란 주민을 굶겨 죽이는 그 살인마를 상전으로 떠받드는 대통령이 있는 한, 희망은 이미 물 건너 간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살 길은 단 하나 국민이 깨여 나야 한다는 것이다. 뽑아 놓고 고생하는 어리석음은 김대중과 노무현우로 족한 것 아닌가.
그리고 지긋지긋하게 우리를 짓 눌러 왔던 4천년의 가난을 털어 버린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벌서 배부른 투정인가. 그래서 가난에 찌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노예근성에 젖어 버린다고 하는 것인지 모른다.
지금 대한민국을 떡 주무르듯 하는 속칭 386과 그 조정자들, 어디 대답 좀 해 보라. 그대들이 진정 땅 속에 묻었던 구겨진 태극기를 펼쳐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며 흔들어 대는 태극기 물결을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는가. 화약 냄새와 죽음을 싸안은 포탄 연기 속에 아련히 들려오는 애국가 소리에 가슴 메어지는 울음을 터뜨려 본 적이 있는가. 6;25가 어떤 것인지 장말 아는가 말이다.
모든 학교를 하향평준화로 3류 학교를 만들더니, 이젠 아예 나라마저 3류 국가로 끌어 내리겠단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북쪽처럼 불량국가 훈장 달고 김정일처럼 거지행각을 벌여야 그 꽈배기심보가 풀리겠단 말인가. 하기야 세금 한번 제대로 내 본적 없이 주체사상 품에 안고, 각목과 화염병 던지며 거리를 누비던 3류 진보들이 하루아침에 그 자리들을 꿰 차고 앉았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 갈 리가 있겠는가.
진보란, '헨리 와드 비쳐'의 말처럼, 우리에게 씨앗으로 왔던 것이 다음 세대에 가서 꽃을 피우고, 꽃으로 왔던 것이 그 다음 세대에 가서 열매를 맺도록, 열심히 살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 그것이 올바른 진보일 터인데, 허구한 날 쌈박질에 부시고, 찢고, 뒤집어엎으며 북으로만 가겠다고 하니,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지, 정말 조국이 너무 불쌍하지 않는가. 그래서 지난 10년을 주름잡은 세력을 위장민주세력이라는 것이고, 각목과 화염병부대를 민주화로 보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 들쥐 떼처럼 북으로 몰려가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 아직도 노예근성을 털어 벌이지 못한 그 아부족들이 만에 하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과연 지금의 굴욕적 현상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선 김정일의 눈도장이 필요하게 되었단 말인가. 조선시대에 명나라와 청나라로부터 왕은 물론 왕세자와 빈까지도 승인이나 책봉을 받아야 했던 그 치욕의 역사가, 어떻게 자주와 주권과 개혁을 종가처럼 행세하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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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서 되풀이 된단 말인가. '조선 인민공화국'의 '대한민국 도'가 아닌 , 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말이다.
하기야,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도둑맞은 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국군포로를 국군포로라 부르지 말고, 납북자를 납북자라 부르지 말라는 김정일의 호령에 대꾸한번 못하고, 예,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북에 종속화 된 이 한심한 정부가 정말 대한민국이 맞느냔 말이다.
그리고 지난 해, 全南 광주의 6:15 기념행사 장에서 벌어졌던 그 엄청난 일을 기억 하는가. '귀빈석'이 '주석단'으로 뒤 바뀐 그 기막힌 사건을 기억 하는가 말이다. “주석단”- 바로 김일성을 상징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조선 인민공화국”의 “광주시”가 아닌 “대한민국 광주시”에 어떻게 “주석단”이 등장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다가 저들이 “청와대”까지 “주석궁”으로 바꾸라면 “청와대”마저 “주석궁”으로 바뀔 판이 아닌가. 이렇게 끌려만 가는 그 끝은 정말 어디란 말인가.
지금까지 그처럼 나라전체가 거덜 날 정도로 퍼다 주고도 어떻게 이런 수모까지 받아야 한단 말인가. 다 죽어 가는 김정일, 그 자를 살려 주고도 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한번은 죽어야 산다는 것이다.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지 않은가. 희망을 잃고도 살아남은 민족이나 국가를 보았는가.
이젠 제발 좀 깨어나라. 정신 좀 차리고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란 말이다. 하늘이 파란지 빨간지를 가려 본 뒤에, 죽어도 죽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위에서 미쳐 돌아간다고 따라 미쳐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더욱 더 한심한 것은, 김 홍업 이라는 전과자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됐다는 사실이다. 김 홍업이 누군가. 아비의 권력을 등에 업고 흰 돈, 검은 돈 안 가리고 마구
긁어모아 베란다에 쌓아 두었다가 콩밥 먹고 나온 파렴치한이 아닌가. 아비는 나랏돈, 자식들은 뇌물로 얼룩진 그런 집안의 자식을 어떻게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줄 수가 있단 말인가. 국민수준이 고작 그 정도인데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김 정일이가 우습게 보고, 제 멋대로 끌고 다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김대중의 그 고질병인 거짓말 정치가 다시 도졌다는 것은, 정말 다시없는 조국의 수치며 비극이다. 그래서 두고두고 후회스런 것은, 김홍신 씨의 말대로 다시는 그 사기성 거짓말을 못하도록 고업용 미싱으로 봉해 버렸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는 말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경찰들이 폭도 같은 친북좌익들의 데모대에게 두들겨 맞아 눈알이 튕겨 나와도 하소연 한번 제대로 못하는 나라, 그런가 하면 광화문 네거리를 제 집 안방처럼 휘 저며 쇠몽둥이를 휘둘러 대도 감히 제지조차 못하는 공권력, 이게 어디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혼란스러웠던 해방정국과 너무도 닮은꼴이라 불안마저 든다.
3월 한 달 서울에 머무는 동안 귀가 따갑도록 스피커를 타고 쏟아지는 여자의 그 앙칼진 목소리는, 마치 6:25 때 붉은 완장을 차고 저승사자 노릇하던 여성동맹의 붉은 악령 같아 불길한 생각마저 들었다.
하기야, 교사가 뻐젓이 초등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빨치산 추모행사에 참가하는 지경에 까지 왔는데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오죽하면 서해교전에서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 대한민국이 싫다며 이민 길에 올랐겠는가. 이렇게 기막힌 일이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일어 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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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단 말인가. 빨치산 추모라니.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대한민국을 뒤엎으려던 그 빨치산 추모행사가 어떻게 대한민국 땅에서 치러질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김 정일이가 했다는 그 무서운 말, “지금 일부러 서울에 갈 필요가 있는가. 남한을 접수하러 갈 때, 그때 가겠다”. 물론 헛소리고, 뜬소문이기를 바라지만, 어째 뒷맛이 개운치 않고, 3일 만에 서울이 떨어지던 그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을 어쩌겠는가.
그리고 지금처럼 뼈 없는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다간, 서울시청 꼭대기에 “인민공화국 기”가 꽂히는 비극을 또 한 번 맛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도 떨쳐 버릴 수 가 없으니 이 또한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렇게 퍼다 주고도 김 정일이의 포악행위를 막지 못했다면, 그것이 김 정일이의 구두 닦아주는 정책(shoe shine)이지, 어떻게 햇볕정책(sun shine)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폭풍우 뒤에 비치는 햇빛은 부자의 창에만이 아니라 가난한 자의 창에도 똑같이 비친다'고'한, '소로우'의 말처럼, 진정한 햇빛은 누구에게나 골고루 비쳐야 하는 것인데, 김대중의 햇빛은 김정일에게 만 쏟아지고 있으니, 그게 김정일의 구두 닦아주는 정책이지 어떻게 햇볕정책이라 할 수 있는가 말이다.
지금 아이스크림과 빵조각 까지 해외에서 공수해다 먹는 억만장자가 이 지구상에 김정일이 말고 누가 또 있는가. 어디 그뿐인가. 김일성이의 시신을 보존한다며 자그마치 9억불이라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수십억 불의 비자금을 해외에 숨겨 놓고도 300만이라는 주민을 굶겨 죽이는, 그런 천인공노할 살인마를 상전 모시듯 하는 자들이 제정신이란 말인가.
그래서, 꼭 전쟁을 해서 피를 흘리자는 것은 아니지만,(전쟁 않고 이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라인홀드 니이버”의 이런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지 않을 가.
“도덕적인 인간들 사이에서는 사랑이 유효할지 모르지만, 비도덕적인 사회에 있어서는 힘으로 힘을 제압 할 수밖에 없다”는 이 귀가 뻥 뚫리는 시원한 말을 곰곰이 씹어 보는 것도 우리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라인홀드 니이버'가 누군가. 사회주의사상에 심취되어 있던 대표적인 진보주의 신학자가 아닌가.
그런 '니이버'가 한 말이라면, 그 말 속에 어떤 역사적 교훈이 들어있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 북한처럼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인 생지옥이 또 어디 있는가. 굶다 못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먹을 것을 찾아 탈출하다 죽어가는 저 북한 형제들의 비명소리가, 인도주의니, 진보니, 개혁이니, 동족이니 하며, 제법 사람인 체 하는 친북좌익들의 귀에는 정말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그래서 대한민국이 한번은 죽어야 산다는 것이고, 좀 심한 말인지는 몰라도, 6:25의 약효를 되살리려면, 적어도 김정일이 밑에서 다문 몇 개월이라도 배급 쌀을 타먹어야 하지 않을 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죽 답답하고 속이 터지면 이런 소리를 다 하겠는가.
하지만 국민들이 도둑맞은 지난 10년을 거울삼아, 이번 대선에 목숨을 건다면, 대한민국을 되찾고, 12월 19일은 제2의 독립일로 역사에 기록 될 것이다. 이번만은 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친북좌익에게 빼앗긴 대한민국을 되 찼지 않으면 '청와대'가 '주석궁'으로 바뀌고 서울시청 꼭대기에 인공기가 꽂히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멀리서나마, 시베리아 찬바람에 얼어붙은 조국의 들에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오길 두 손 모아 빌어 본다.
그리고 정신병환자도 의사를 제대로 만나 카운셀링을 잘 받고 치료만 잘 하면 정상을 되찾을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중병을 앓고 있는 조국도 2번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만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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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코 가정교육을 잘 받아 올곧은 심성을 가진 사람,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인성교육을 제대로 받은 지도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그런 양심적인 지도자를 뽑아 대한민국이 다시 살아난다면, 지금 앓고 있는 중병은 차라리 약이 아닌가.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는, 이 무서운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그런 지도자를 보내 줄 것을 하늘에 빌면서, 이대용 장군의 경고를 다시 한 번 새겨 본다.
'월남은 힘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는 물론, 정부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국가의 온 신경망을 장악한 간첩들에 의해 망했고, 그 간첩과 공산주의자들은 하나같이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위장해, 민족공조를 내세워 반미를 외치고 선량한 국민을 선동해 극성맞은 데모를 주도하며 대중 지지기반을 넓혀 나간 그 선동주의자들에 의해 망했다.'는 이 역사의 교훈, 어디하고 꼭 닮은꼴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가.
12월 19일, 이 날이 정말 대한민국의 재생의 날이 되기를 기도하며, 맑고 환하게 트인 시원한 조국의 하늘을 그려 본다.
한미 자유 수호 운동본부 최 응 표
http://www.independent.co.kr/
글/한미 자유 수호 운동본부 최 응 표
문학평론가 김 학동교수의 말처럼, 이 상화 시인은 일제의 암흑기를 살면서, 비록 나라는 빼앗겼더라도 민족혼만은 결코 빼앗길 수 없다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가” 라고 어둠에 갇힌 민족의 슬픔을 한편의 시로 엮어 냈다.
그런가 하면 그는 “하늘을 우러러 울기는 하여도 하늘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다.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달파 하늘을 흘기니 울음이 터신다.” 며 가슴을 찢는 아픔으로 망국의 한을 토해 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나라를 몽땅 빼앗겼으면서도 도피성 자족과 굴욕, 변절과 배신과 반역으로 썩어 가는 땅, 민족혼마저 빼앗겨 스스로 북의 노예이기를 자처하는 민족, 그리고 도덕은 땅에 떨어져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지 오랜, 모두가 향락에 빠져 순간을 사는 꿈 없는 사회, 여기에 만약 민족혼만은 빼앗길 수 없다고 절규하던 그 이 상화가 다시 살아온다면, 아마도 그는 “썩고 희망 없는 땅에, 어찌 봄이 오길 기다리는 가” 라고 통곡하며 무덤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가” 라고 울부짖던 그 이 상화가 아닌가. 그런데 분명 다시 찾은 땅인데도 봄기운은 없고 시베리아 찬바람만 불어 대니 어찌 안 그러겠는가.
언젠가 나는 조국의 봄은 언제나 폭풍 속에 온다고 쓴 적이 있다. 그런데 폭풍 속에서나마 어김없이 찾아오던 그 봄마저도 이젠 아예 한국에 오기를 거부 하는 것 같다.
미래학자 “티모시 맥”의 말처럼,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 주는 이미지는 분명 “평화, 차분함, 그리고 우아함”이어야 하는데, 3월의 조국 하늘에선 평화도 차분함도 우아함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찾은 조국의 봄은 그랬다. 다시 말해 “春來不以春”, 봄은 왔는데도 봄 같지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연의 봄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얌전히 참고 기다리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지만, 인간의 봄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인간의 봄은 어쩌다 잠간 한눈만 팔아도 빼앗기지 않으면 도망쳐 버리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항상 깨여 지켜야 하며, 도둑맞았을 때는 목숨 걸고 싸워 찾아야 한다. 지금 한국의 봄은 분명 붉은 도적 떼에게 강도당한 상태다. 그런데도 어쩌면 그처럼 태평성대를 살고 있는지 통 알 수가 없다.
2007년이 어떤 해인가. 대한민국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해가 아닌가. 그런데도 어느 곳 하나 희망을 걸어 볼만한 곳이 안 보인다.
정치판은 개판이고, 종교는 썩어 있고, 지식인은 죽어 있고, 교육은 문어지고, 변절과 배신과 반역은 제철을 맞은 듯 활개치고, 그 어느 곳 하나 성한 데 없이 무너져 내린 땅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대한민국이 무슨 죄가 있어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는 건지 가슴을 치며 통곡할 노릇이다. 죄가 있다면 북한 보다 잘 사는 것 밖에 더 있는 가.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건국과 호국의 험한 길을 헤치며 산업화의 길을 숨차게 달려, 그 지긋지긋 했던 가난을 털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백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5적에 대해선 그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난도질을 해 대면서, 국제 범죄 집단에게 나라는 물론 민족혼마저 팔아먹은 신5적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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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선 어떻게 그처럼 관대하고 숭배까지 하는 건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느 기자의 말처럼, 중국의 등소평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 오늘의 경제대국의 신화를 낳았다고 하는데, 어쩌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외쪽으로 가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는지 정말 통곡 할 노릇이 아닌가. 여기 일등공신은 단연 김종필과 이인제란 위인들이다. 그러고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헛소리를 해대며 활보하는 세상이 돼 버렸는데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에게 반역의 죄 값을 묻는 하늘의 징벌이 반듯이 있을 것이다.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닌가. 그래야 하늘이 아닌가 말이다.
하여간 문제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다. 그래서 그 나라의 정치수준이 곧 그 나라의 국민수준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달라 위조와 마약장사, 세계를 무대로 양민납치, 테로 등, 흉악범죄는 도맡아 하며, 초호화판 생활에 기쁨조까지 거느리면서도 300만이란 주민을 굶겨 죽이는 그 살인마를 상전으로 떠받드는 대통령이 있는 한, 희망은 이미 물 건너 간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살 길은 단 하나 국민이 깨여 나야 한다는 것이다. 뽑아 놓고 고생하는 어리석음은 김대중과 노무현우로 족한 것 아닌가.
그리고 지긋지긋하게 우리를 짓 눌러 왔던 4천년의 가난을 털어 버린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벌서 배부른 투정인가. 그래서 가난에 찌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노예근성에 젖어 버린다고 하는 것인지 모른다.
지금 대한민국을 떡 주무르듯 하는 속칭 386과 그 조정자들, 어디 대답 좀 해 보라. 그대들이 진정 땅 속에 묻었던 구겨진 태극기를 펼쳐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며 흔들어 대는 태극기 물결을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는가. 화약 냄새와 죽음을 싸안은 포탄 연기 속에 아련히 들려오는 애국가 소리에 가슴 메어지는 울음을 터뜨려 본 적이 있는가. 6;25가 어떤 것인지 장말 아는가 말이다.
모든 학교를 하향평준화로 3류 학교를 만들더니, 이젠 아예 나라마저 3류 국가로 끌어 내리겠단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북쪽처럼 불량국가 훈장 달고 김정일처럼 거지행각을 벌여야 그 꽈배기심보가 풀리겠단 말인가. 하기야 세금 한번 제대로 내 본적 없이 주체사상 품에 안고, 각목과 화염병 던지며 거리를 누비던 3류 진보들이 하루아침에 그 자리들을 꿰 차고 앉았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 갈 리가 있겠는가.
진보란, '헨리 와드 비쳐'의 말처럼, 우리에게 씨앗으로 왔던 것이 다음 세대에 가서 꽃을 피우고, 꽃으로 왔던 것이 그 다음 세대에 가서 열매를 맺도록, 열심히 살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 그것이 올바른 진보일 터인데, 허구한 날 쌈박질에 부시고, 찢고, 뒤집어엎으며 북으로만 가겠다고 하니,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지, 정말 조국이 너무 불쌍하지 않는가. 그래서 지난 10년을 주름잡은 세력을 위장민주세력이라는 것이고, 각목과 화염병부대를 민주화로 보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 들쥐 떼처럼 북으로 몰려가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 아직도 노예근성을 털어 벌이지 못한 그 아부족들이 만에 하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과연 지금의 굴욕적 현상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선 김정일의 눈도장이 필요하게 되었단 말인가. 조선시대에 명나라와 청나라로부터 왕은 물론 왕세자와 빈까지도 승인이나 책봉을 받아야 했던 그 치욕의 역사가, 어떻게 자주와 주권과 개혁을 종가처럼 행세하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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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서 되풀이 된단 말인가. '조선 인민공화국'의 '대한민국 도'가 아닌 , 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말이다.
하기야,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도둑맞은 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국군포로를 국군포로라 부르지 말고, 납북자를 납북자라 부르지 말라는 김정일의 호령에 대꾸한번 못하고, 예,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북에 종속화 된 이 한심한 정부가 정말 대한민국이 맞느냔 말이다.
그리고 지난 해, 全南 광주의 6:15 기념행사 장에서 벌어졌던 그 엄청난 일을 기억 하는가. '귀빈석'이 '주석단'으로 뒤 바뀐 그 기막힌 사건을 기억 하는가 말이다. “주석단”- 바로 김일성을 상징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조선 인민공화국”의 “광주시”가 아닌 “대한민국 광주시”에 어떻게 “주석단”이 등장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다가 저들이 “청와대”까지 “주석궁”으로 바꾸라면 “청와대”마저 “주석궁”으로 바뀔 판이 아닌가. 이렇게 끌려만 가는 그 끝은 정말 어디란 말인가.
지금까지 그처럼 나라전체가 거덜 날 정도로 퍼다 주고도 어떻게 이런 수모까지 받아야 한단 말인가. 다 죽어 가는 김정일, 그 자를 살려 주고도 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한번은 죽어야 산다는 것이다.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지 않은가. 희망을 잃고도 살아남은 민족이나 국가를 보았는가.
이젠 제발 좀 깨어나라. 정신 좀 차리고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란 말이다. 하늘이 파란지 빨간지를 가려 본 뒤에, 죽어도 죽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위에서 미쳐 돌아간다고 따라 미쳐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더욱 더 한심한 것은, 김 홍업 이라는 전과자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됐다는 사실이다. 김 홍업이 누군가. 아비의 권력을 등에 업고 흰 돈, 검은 돈 안 가리고 마구
긁어모아 베란다에 쌓아 두었다가 콩밥 먹고 나온 파렴치한이 아닌가. 아비는 나랏돈, 자식들은 뇌물로 얼룩진 그런 집안의 자식을 어떻게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줄 수가 있단 말인가. 국민수준이 고작 그 정도인데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김 정일이가 우습게 보고, 제 멋대로 끌고 다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김대중의 그 고질병인 거짓말 정치가 다시 도졌다는 것은, 정말 다시없는 조국의 수치며 비극이다. 그래서 두고두고 후회스런 것은, 김홍신 씨의 말대로 다시는 그 사기성 거짓말을 못하도록 고업용 미싱으로 봉해 버렸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는 말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경찰들이 폭도 같은 친북좌익들의 데모대에게 두들겨 맞아 눈알이 튕겨 나와도 하소연 한번 제대로 못하는 나라, 그런가 하면 광화문 네거리를 제 집 안방처럼 휘 저며 쇠몽둥이를 휘둘러 대도 감히 제지조차 못하는 공권력, 이게 어디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혼란스러웠던 해방정국과 너무도 닮은꼴이라 불안마저 든다.
3월 한 달 서울에 머무는 동안 귀가 따갑도록 스피커를 타고 쏟아지는 여자의 그 앙칼진 목소리는, 마치 6:25 때 붉은 완장을 차고 저승사자 노릇하던 여성동맹의 붉은 악령 같아 불길한 생각마저 들었다.
하기야, 교사가 뻐젓이 초등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빨치산 추모행사에 참가하는 지경에 까지 왔는데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오죽하면 서해교전에서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 대한민국이 싫다며 이민 길에 올랐겠는가. 이렇게 기막힌 일이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일어 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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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단 말인가. 빨치산 추모라니.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대한민국을 뒤엎으려던 그 빨치산 추모행사가 어떻게 대한민국 땅에서 치러질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김 정일이가 했다는 그 무서운 말, “지금 일부러 서울에 갈 필요가 있는가. 남한을 접수하러 갈 때, 그때 가겠다”. 물론 헛소리고, 뜬소문이기를 바라지만, 어째 뒷맛이 개운치 않고, 3일 만에 서울이 떨어지던 그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을 어쩌겠는가.
그리고 지금처럼 뼈 없는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다간, 서울시청 꼭대기에 “인민공화국 기”가 꽂히는 비극을 또 한 번 맛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도 떨쳐 버릴 수 가 없으니 이 또한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렇게 퍼다 주고도 김 정일이의 포악행위를 막지 못했다면, 그것이 김 정일이의 구두 닦아주는 정책(shoe shine)이지, 어떻게 햇볕정책(sun shine)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폭풍우 뒤에 비치는 햇빛은 부자의 창에만이 아니라 가난한 자의 창에도 똑같이 비친다'고'한, '소로우'의 말처럼, 진정한 햇빛은 누구에게나 골고루 비쳐야 하는 것인데, 김대중의 햇빛은 김정일에게 만 쏟아지고 있으니, 그게 김정일의 구두 닦아주는 정책이지 어떻게 햇볕정책이라 할 수 있는가 말이다.
지금 아이스크림과 빵조각 까지 해외에서 공수해다 먹는 억만장자가 이 지구상에 김정일이 말고 누가 또 있는가. 어디 그뿐인가. 김일성이의 시신을 보존한다며 자그마치 9억불이라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수십억 불의 비자금을 해외에 숨겨 놓고도 300만이라는 주민을 굶겨 죽이는, 그런 천인공노할 살인마를 상전 모시듯 하는 자들이 제정신이란 말인가.
그래서, 꼭 전쟁을 해서 피를 흘리자는 것은 아니지만,(전쟁 않고 이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라인홀드 니이버”의 이런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지 않을 가.
“도덕적인 인간들 사이에서는 사랑이 유효할지 모르지만, 비도덕적인 사회에 있어서는 힘으로 힘을 제압 할 수밖에 없다”는 이 귀가 뻥 뚫리는 시원한 말을 곰곰이 씹어 보는 것도 우리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라인홀드 니이버'가 누군가. 사회주의사상에 심취되어 있던 대표적인 진보주의 신학자가 아닌가.
그런 '니이버'가 한 말이라면, 그 말 속에 어떤 역사적 교훈이 들어있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 북한처럼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인 생지옥이 또 어디 있는가. 굶다 못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먹을 것을 찾아 탈출하다 죽어가는 저 북한 형제들의 비명소리가, 인도주의니, 진보니, 개혁이니, 동족이니 하며, 제법 사람인 체 하는 친북좌익들의 귀에는 정말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그래서 대한민국이 한번은 죽어야 산다는 것이고, 좀 심한 말인지는 몰라도, 6:25의 약효를 되살리려면, 적어도 김정일이 밑에서 다문 몇 개월이라도 배급 쌀을 타먹어야 하지 않을 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죽 답답하고 속이 터지면 이런 소리를 다 하겠는가.
하지만 국민들이 도둑맞은 지난 10년을 거울삼아, 이번 대선에 목숨을 건다면, 대한민국을 되찾고, 12월 19일은 제2의 독립일로 역사에 기록 될 것이다. 이번만은 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친북좌익에게 빼앗긴 대한민국을 되 찼지 않으면 '청와대'가 '주석궁'으로 바뀌고 서울시청 꼭대기에 인공기가 꽂히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멀리서나마, 시베리아 찬바람에 얼어붙은 조국의 들에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오길 두 손 모아 빌어 본다.
그리고 정신병환자도 의사를 제대로 만나 카운셀링을 잘 받고 치료만 잘 하면 정상을 되찾을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중병을 앓고 있는 조국도 2번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만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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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코 가정교육을 잘 받아 올곧은 심성을 가진 사람,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인성교육을 제대로 받은 지도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그런 양심적인 지도자를 뽑아 대한민국이 다시 살아난다면, 지금 앓고 있는 중병은 차라리 약이 아닌가.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는, 이 무서운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그런 지도자를 보내 줄 것을 하늘에 빌면서, 이대용 장군의 경고를 다시 한 번 새겨 본다.
'월남은 힘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는 물론, 정부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국가의 온 신경망을 장악한 간첩들에 의해 망했고, 그 간첩과 공산주의자들은 하나같이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위장해, 민족공조를 내세워 반미를 외치고 선량한 국민을 선동해 극성맞은 데모를 주도하며 대중 지지기반을 넓혀 나간 그 선동주의자들에 의해 망했다.'는 이 역사의 교훈, 어디하고 꼭 닮은꼴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가.
12월 19일, 이 날이 정말 대한민국의 재생의 날이 되기를 기도하며, 맑고 환하게 트인 시원한 조국의 하늘을 그려 본다.
한미 자유 수호 운동본부 최 응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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