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이름은 신은하입니다. 나이는 28세, 고향은 함경북도 무산군입니다. 형제는 5남매인데, 저의 가족은 할머니 때부터 3대째 하나님을 믿어왔습니다.
1969년경이라고 들었는데, 북한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던 분들은 거의 모두가 함경도 지방으로 추방되었고, 평성에서 생활하던 저의 부모님도 추방자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제가 철들기 전부터 저의 집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모인 사람들은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군에 살면서도 일요일마다 어김없이 모여들어, 소리죽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은연중에 두렵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92년도까지 한주도 빠짐없이 함께 추방되어 오신 분들이 저의 집에 오셔서 예배를 드렸는데, 대부분 저희 할머니가 말씀을 전하셨고, 드문히 새별광산에서 오신 할아버지가 말씀을 전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나이가 어렸고, 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예배를 드릴 때면 밖에 나가 놀면서 우리 집 쪽으로 누가 오지 않나 하고 망을 보았고, 누군가가 오는 것 같으면 방으로 들어가 알려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누가 볼세라 몰래 몰래 예배를 드리다가 1992년 11월 도 보위부 직원들에게 발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함께 와서 예배드리던 분들이 모두 붙잡혀 갔고, 남은 가족들은 삼교리라는 깊은 산골로 추방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현장에서 붙잡혀 갔고 어머니부터 시작하여 우리식구 모두가 보위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받는 과정에서 저의 가족 일거수일투족이 오래전부터 보위부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붙잡혀 간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어디에 계시는지? 살아는 계시는지? 지금까지도 전혀 소식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붙잡혀가고 보름 만에 할머니가 천국 가셨고, 어머니 혼자서 우리 5남매를 키우셨습니다. 나라에서는 있지도 않은 하나님을 믿었다고, 조선의 하나님(김일성, 김정일)을 믿지 않았다고 하면서 우리 온 가족에게 반동이라는 딱지를 붙여놓았습니다.
말 하나, 행동 하나를 일일이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흠이 잡히면 정치적으로 걸어서 매장시키려 하였습니다. 이런 말 못할 고통, 핍박을 받으며 살고 있을 때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믿음 안에서 알게 되었던 중국의 조선족 목사님께서 우리 가족을 찾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알려준 사람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이었는데 목사님의 부탁으로 휴대전화를 몰래 숨겨가지고 두만강을 건너와 중국의 목사님께서 우리를 찾고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늘 정부의 감시 대상이었기 때문에 보위부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의 우리 가족의 정신 상태를 떠보려고 보낸 사람으로 의심하고 찾아온 사람에게 중국에 친척도 없거니와 그런 사람을 모른다고 딱 잘라 말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험한 산길을 3일 연속 찾아오는 것을 보며 중국의 목사님과 통화를 해보기로 하고 깊은 밤 산꼭대기에 올라가 통화를 하였습니다. 새끼반동이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어가며 천대와 멸시를 받았지만 어느 한 순간도 북한 땅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못해보았는데 목사님과 통화를 한 후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떠나야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목사님께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들어오는데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분을 보내주셨습니다. 가족 모두 들어오려고 했지만 어머니께서 형제들과 친척들 모두 북한에 계셔서 남아계시겠다고 하여 셋째 오빠와 제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2005년 9월, 두만강을 건너 중국의 도문 목사님 댁에서 6개월을 지냈습니다. 기도하던 중, 한국으로 올 수 있는 길이 열려 몽골을 거쳐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떠날 때는 오빠와 함께 떠났는데 중국과 몽골 사이의 철조망(국경)3개 중, 2개를 넘고, 마지막 하나를 100m 앞에 남겨 놓고 매복해 있던 중국 공안에 발각되어 오빠와 함께 일행 중 3명이 붙잡혔고, 북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아직까지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입국한 지도 2년이 되어오고, 이 2년 동안을 늘 가족들의 소식을 기다리며 안타깝게 소원하던 중, 드디어 어머님과 가족의 소식을 듣게 되었으며, 며칠 전에 어머니와 큰오빠가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처럼 어머님의 소식을 기다릴 때에는 중국에라도 무사히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정작 중국에 들어와 공안들의 눈을 피해 마음졸이며 계시는 어머니와 오빠를 보면서는, 한국으로 모셔 와야겠다는 생각이 순간도 떠나질 않습니다.
61세면 한국의 어머니들은 화장을 예쁘게 하고 예쁜 옷을 입고 한 살이라도 자신들의 나이보다 더 젊게 보이기 위해 가꾸고 계시는데, 저의 어머니는 전혀 61세가 아닌, 10년은 더 늙어 보입니다.
그 땅에서 아버지가 붙잡혀 가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어린 우리 5남매를 다른 집 아이들 못지않게 키우시느라 많은 고생을 하다 보니 나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주름 깊은 우리 어머니...
늦게나마, 어머니의 그 주름 깊은 모습 앞에서 지난날의 모진 세월과, 사랑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전화를 통해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더이상 헤어져 살 수 없는 우리 모녀의 절박한 사정도 깨달은 것 같습니다.
하루 빨리 어머니와 모셔와, 작지만 아담한 저의 집에서 찬송과 경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떠나와 불효했던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 싶고,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 많은 고생을 하신 어머니 곁을 저라도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더 이상 고생시키지 않고, 그 땅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들을 아물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안전하게, 하루빨리 대한민국으로 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기도해 주시고, 안내해 주실 분이 계시면, 평생의 기도와 성의로 보답하겠습니다.
2007년 5월 28일 탈북자 신은하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