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泳禧의 궤변에 대한 탈북자의 논평. "이건 자유의 악용이다"
*고 李命英 교수의 李泳禧 비판(월간조선 1994년).
―李泳禧 교수는 「사회와 사상(89년 1월)」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외국 국가원수나 귀빈을 초대하는 초대외교 성공의 비결이 한국의 여성을 매개로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고 상식에 속한다. 몇 해 전 아프리카의 가봉이라는 나라의 봉고대통령이 다녀간 뒤에 나온 소식은 다만 그 한 가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같은 글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호색가로 이름난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그의 부관들이 수카르노를 위해 조선의 여성을 요구했다. 어느날 밤 수카르노 대통령은 그의 호텔을 찾아온 조선여성동맹 위원장인 늙은 허정숙 여사의 입에서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수카르노 대통령 각하, 대단히 미안합니다. 부관으로부터의 요청은 틀림없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남편 이외의 남자에게 육체를 바치는 여성이 없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李命英: 『그건 언젠가 북한측 간행물에서 읽은 겁니다. 이건 당파성 원칙에 의해 만들어진 선동적인 작문입니다. 李泳禧 교수가 우리 정부나 위정자들의 언동은 냉철하게 잘 보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순진하다 싶을 정도로 비판정신이 약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대한민국은 어느 모로나 정확한 국호가 되지 못한다. 나라가 크지 못한 것은 접어두더라도 「한」겨레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적대적이다. 「民國」도 아니다. 군인과 경찰과 정보기관과 재벌과 관료들과 권력자들의 나라이지 백성의 나라가 아니니까. 그러니 「대」도 아닌데다가 「한」도 아니고 「民國」은 더더구나 아니다(「한겨레신문」 88년 10월23일)」 이런 발언에 대해서는 어떤 해석을 내려야 할까요.
李命英: 『북한의 사정은 우리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우리는 야당도 있고 언론도 있어 정부가 잘못하면 혼도 나고 그러죠. 냉혹한 비판의식을 똑같이 북한에다 적용시키면 좋아요. 그러면 아주 원숙한 학자가 되겠죠』
『남한이 이기는 통일은 안돼』
―李泳禧 교수는 당장 통일을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로 「남한에 존재하는 여러 부정적 요소를 그대로 지닌 채 물질의 힘과 외세의 지원에 의한 군사적 힘으로 밀어붙여놓고, 아무리 그것을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그런 통일은 차라리 안하는 것이 좋다(「말」 93년 4월)」고 했는데요.
이명영: 『남조선이 이기는 통일은 안 된다는 뜻이 아니겠어요』
―李泳禧 교수는 북한 대중은 힘에 의해서 병합되는 경우가 아닌 한, 「약간의 경제적 혜택의 대가로 인간성이 상실된 현재의 비도덕적 범죄적 성격이 남한사회를 수락하기를 결단코 거부할 것(「신동아」 91년 3월)」으로 예상했습니다.
이명영: 『노동당 간부들은 거부하겠지만 북한 주민들이 왜 거부하겠습니까. 북한 주민들은 의식주가 해결되는 남한식 생활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겁니다. 李泳禧 교수가 북한에 호의적인 것은 북한 주민을 위한 사고가 아니라 북한 통치자들의 논리가 상당한 무게로 들어박힌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李泳禧 교수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전체적인 평등을 소중하게 여겼고, 평등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는 유보될 수 있다(말 93년 4월)」고 생각했다는데요.
이명영: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얘긴데, 참된 평등은 「자유」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북한은 리버럴리즘을 「부르조아의 썩은 논리와 철학」이라고 합니다. 리버럴리즘이란 「자유나 평등·정의·복지·행복 등등의 제 가치가 제대로 실행되자면 자유의 원칙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독재자가 「평등을 주겠다」고 해서 평등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核문제에 관해 李泳禧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지 아닌지, 핵개발이 얼마나 진전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이 미국과 남한이기에 설사 북한의 핵개발설이 사실이라 해도 그들을 비난할 근거는 없습니다. 과거 朴正熙 대통령도 미군철수로 안보위협을 느끼자 핵개발을 했던 것과 유사한 이야기 아닙니까(「말」 93년 4월)」 이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명영:『북한의 처지를 변호해주고 싶은 심정에서겠죠. 북한의 핵이 「미국과 남한 때문」이라는 논리는 남침유도설과 흡사합니다. 6·25가 남침이었다는 것이 명백해진 이후 「남한과 미국이 남침을 유도했다」면서 북한측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뭐가 다릅니까.
이런 이론은 대부분 지하에서 나옵니다. 북한의 유능한 선전이론 담당팀이 남한사회를 분석하면서 세련되고 논리적인 이론체계를 생산합니다. 이것이 남한의 지하조직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겁니다. 李泳禧 교수같은 고명한 분이 이런 논리를 주장하면 북한이 아주 편해지죠』
미군 없으면 식은 죽 먹기
―李泳禧 교수는 『한반도의 남과 북은, 이제 그 어느쪽도 「기습공격」이니 「침공」이니 하는 따위를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는 왜 아직도 걸핏하면 전쟁이니 어쩌니 해서 시끄러울까. 국민을 겁주는 「도깨비」가 너무 많다(「한겨레 신문」 88년 6월16일)』라고 했습니다. 또한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란 논문(「사회와 사상」 89년 9월)에서는 『한국의 급속한 군사력 증강 및 현대화로 북한의 남침 가능성은 그 근거가 상실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명영:『아마 미국과 북한의 핵 협상은 근본적으로 잘 안될 겁니다. 북한이 미군철수를 학수고대하는 이유는, 金日成이 敎示를 내려놓았습니다. 이 교시를 보면 조국통일에는 「평화적 前途」와 「비평화적 前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평화적 前途」는 남한 정부가 金日成에게 항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평화적 前途」는 군사적으로 조국통일을 해치우는 것입니다. 비평화적 전도를 위해서는 미군철수가 선결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6·25 때 결정적 찬스에서 미군때문에 실패했으니까 통탄할 노릇이었겠죠. 그때 경험이 머리에 박혀 「미국만 없으면 조선 인민군의 조국통일은 식은죽 먹기」라고 생각하죠』
―李泳禧 교수의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명영:『그 양반이 어느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국가보안법 때문에 자유로운 발언을 할 수 없다」면서 퇴장하더군요. 자기 발언은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국가보안법 때문에 「자유언론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요. 북한의 혁명이론이 횡횡하는 현실에서 그들의 이론에 흔들려 「혁명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물어보고 싶군요.
어떤 나라든 反사회적 언동을 규제하는 법은 꼭 있습니다. 그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규제법률이 존재합니다. 북한도 우리보다 1백배나 더 무서운 형법이 있잖아요. 북한의 형법을 보면 어떤 사람이 반혁명죄에 걸렸는지 안걸렸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걸렸다」고 봅니다. 이것을 유추해석이라고 그래요』
―李泳禧 교수의 민족 주체의식에 관한 부분입니다.
「북한은 식민지문화의 잔재인 일본어의 흔적을 씻어버리고, 한자와 한문을 한글화하고, 서양어의 무분별한 해독을 막고, 현대적 가로쓰기를 실시하고, 말을 다듬는 정책과 노력에서 남한보다 몇 십년 앞서 있는 것 같다(중략). 한글전용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태만을 두고 말하더라도 북한의 이질화를 떠드는 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다(「사회와 사상」 89년 1월)」
「김일성 대학의 정문을 책을 끼고 드나드는 여학생들의 상당수가 흰 저고리와 짧은 까만 치마의 산뜻한 옷차림인 것을 본다. 남한의 어느 대학의 정문에서 어느 시각에 찍은 사진도 민족의상으로 차린 한 사람의 여학생의 모습도 보여주지 못할 것 같다. 북한주민이 가난해서 양복을 입지 못한다는 따위의 선전으로 이해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사회와 사상」 89년 1월)」
이 논리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이명영:『나도 일본에 가서 조총련계 여학생들이 한복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뭉클한 민족 동질성을 느꼈습니다. 李교수도 너무 감동한 나머지 온당한 사고를 잠깐 잃어버린 것 같은데요. 金日成 敎示에 의하면 「민족적 형식속에 사회주의 내용을 담아라」고 했습니다. 민족을 표방하고 내용에 사회주의를 담으면, 사회주의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우리는 민족을 더 중요한 가치로 본다」면서 끌어들이기 쉽죠』
『李泳禧 교수는 남한체제에 敵意 가진 사람』
李命英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李泳禧 교수는 여수·순천 반란사건이나 거창 학살사건을 목격하면서 국가가 뭐냐, 사회가 뭐고 권력이 뭐냐, 갈증을 풀기 위해 독서를 했겠죠. 이러한 문제의식에 긍정적 해답을 준비해 놓은 책은 대부분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서들입니다. 左측 계열에서는 국가나 권력, 혁명 같이 추상적인 사안들을 단순 명쾌하게 해석합니다. 독자로 하여금 의아심을 일으키지 않도록 논리정연한 해답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좌측의 이론에 빠지게 되죠.
그 쪽에서 설정해 놓은 결론은 계급혁명이입니다. 그러나 계급혁명에 대한 결론에 회의하면서 폭넓게 사고하면 객관적인 시각이 생깁니다. 李泳禧 교수가 자신의 도그마를 뛰어넘어 좀 더 큰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북한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李泳禧 교수의 주장을 어떤 시각으로볼까. 기자는 북한에서 설계사로 일하다가 1992년 6월, 독일을 경유해 귀순한 金永成씨(60·한국 종합기술개발공사 고문)를 만나 李泳禧 교수의 글을 제시했다. 李교수의 글을 살펴본 金永成씨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저는 李泳禧 교수가 남한체제에 적의를 가진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 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美化하거나 동경한다는 건 무슨 저의가 있지 않을까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남한과 미국때문이라고 하는데, 이거야말로 북한의 논리를 대변하는 겁니다. 어떻게 대한민국의 교수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북한의 실상이 어떻고, 주민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가는지, 체제가 어떻게 붕괴되어 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책임한 내용을 쓸 수 있습니까』
―金日成 우상숭배나 인권문제도 체제를 이해하면 부정적으로 볼 수 없다는 李泳禧 교수의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북한에서 金日成을 섬기는 사람은 정신병자입니다. 오죽이나 심하면 金日成 측근들도 입을 닫겠습니까. 살아남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충성파로 위장하는 거죠. 황장엽이 원래 金日成 수석비서였는데, 그가 60년대 말에 이런 말을 했다고 그래요. 「수령님의 모든 발언과 논설과 연설은 내가 쓰는 거다」 이 말이 金日成의 귀에 들어가서 하루 아침에 내쫓겼습니다. 황장엽이가 한 달을 빌어서 용서받았다고 그래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아마 죽었을 겁니다』
「민족모순」은 쓸 데 없는 말장난
―북한의 핵 개발이 朴正熙 대통령 시절의 핵개발 논리나 다름없다는 李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의 핵 개발은 60년대 초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게 됐냐면 같은 마을에서 자랐고, 같은 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하던 ○○○라는 여자가 있었어요. 이 여자 남편이 핵 물리학자였는데 가족이 어느날 영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가 1963~64년경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핵 물리학자, 기초공학 학자를 대대적으로 투입해서 영변지역에 비밀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영변 비밀도시로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아마 이 시기부터 핵무기를 연구했거나 개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남한의 핵 개발과 연관시키는 건 납득이 안갑니다』
―李泳禧 교수는 체제의 모순을 분단과 외세, 즉 「민족모순」으로 풀어가려고 노력합니다. 따라서 항일운동과 민족주체성을 강조하는 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지식인이 남한체제의 취약성이나 잘못을 비판하는 건 좋다고 봅니다. 그래야 우리가 복지사회로 발전할 수 있죠. 그러나 남한체제 비판 논리로 북한을 찬양하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북한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들은 북한의 실상을 전혀 몰라요. 북한의 현실을 날조해서 북한을 동경하게 만드는 건 허용되어서는 안됩니다. 민족모순이고 뭐고 당장 굶어죽는 판에 무슨 쓸데없는 말장난입니까』
―민족주의란 원래 다원주의 아닙니까. 右가 있으면 左가 있고 中道도 있고요. 서로간의 논쟁으로 점진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애오라지 북한을 찬미하기만 하는 지식인들이 있다는 것이 바로 남한 사회의 후진성을 말하는 겁니다. 이건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 악용입니다. 그런 지식인들이 용납된다면 한국 사회는 또 한번 소아병을 앓아야 합니다.
제가 남한에 와서 느낀 점은 기술이나 생산력, 물질문명 등은 발전했지만 정신문명은 때를 못벗었다고 봅니다. 자유민주 체제를 비판하려면 우리보다 수백 배 열악한 북한을 질타하고 준엄하게 비판할 때 발언권이 있습니다』
*고 李命英 교수의 李泳禧 비판(월간조선 1994년).
―李泳禧 교수는 「사회와 사상(89년 1월)」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외국 국가원수나 귀빈을 초대하는 초대외교 성공의 비결이 한국의 여성을 매개로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고 상식에 속한다. 몇 해 전 아프리카의 가봉이라는 나라의 봉고대통령이 다녀간 뒤에 나온 소식은 다만 그 한 가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같은 글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호색가로 이름난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그의 부관들이 수카르노를 위해 조선의 여성을 요구했다. 어느날 밤 수카르노 대통령은 그의 호텔을 찾아온 조선여성동맹 위원장인 늙은 허정숙 여사의 입에서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수카르노 대통령 각하, 대단히 미안합니다. 부관으로부터의 요청은 틀림없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남편 이외의 남자에게 육체를 바치는 여성이 없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李命英: 『그건 언젠가 북한측 간행물에서 읽은 겁니다. 이건 당파성 원칙에 의해 만들어진 선동적인 작문입니다. 李泳禧 교수가 우리 정부나 위정자들의 언동은 냉철하게 잘 보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순진하다 싶을 정도로 비판정신이 약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대한민국은 어느 모로나 정확한 국호가 되지 못한다. 나라가 크지 못한 것은 접어두더라도 「한」겨레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적대적이다. 「民國」도 아니다. 군인과 경찰과 정보기관과 재벌과 관료들과 권력자들의 나라이지 백성의 나라가 아니니까. 그러니 「대」도 아닌데다가 「한」도 아니고 「民國」은 더더구나 아니다(「한겨레신문」 88년 10월23일)」 이런 발언에 대해서는 어떤 해석을 내려야 할까요.
李命英: 『북한의 사정은 우리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우리는 야당도 있고 언론도 있어 정부가 잘못하면 혼도 나고 그러죠. 냉혹한 비판의식을 똑같이 북한에다 적용시키면 좋아요. 그러면 아주 원숙한 학자가 되겠죠』
『남한이 이기는 통일은 안돼』
―李泳禧 교수는 당장 통일을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로 「남한에 존재하는 여러 부정적 요소를 그대로 지닌 채 물질의 힘과 외세의 지원에 의한 군사적 힘으로 밀어붙여놓고, 아무리 그것을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그런 통일은 차라리 안하는 것이 좋다(「말」 93년 4월)」고 했는데요.
이명영: 『남조선이 이기는 통일은 안 된다는 뜻이 아니겠어요』
―李泳禧 교수는 북한 대중은 힘에 의해서 병합되는 경우가 아닌 한, 「약간의 경제적 혜택의 대가로 인간성이 상실된 현재의 비도덕적 범죄적 성격이 남한사회를 수락하기를 결단코 거부할 것(「신동아」 91년 3월)」으로 예상했습니다.
이명영: 『노동당 간부들은 거부하겠지만 북한 주민들이 왜 거부하겠습니까. 북한 주민들은 의식주가 해결되는 남한식 생활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겁니다. 李泳禧 교수가 북한에 호의적인 것은 북한 주민을 위한 사고가 아니라 북한 통치자들의 논리가 상당한 무게로 들어박힌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李泳禧 교수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전체적인 평등을 소중하게 여겼고, 평등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는 유보될 수 있다(말 93년 4월)」고 생각했다는데요.
이명영: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얘긴데, 참된 평등은 「자유」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북한은 리버럴리즘을 「부르조아의 썩은 논리와 철학」이라고 합니다. 리버럴리즘이란 「자유나 평등·정의·복지·행복 등등의 제 가치가 제대로 실행되자면 자유의 원칙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독재자가 「평등을 주겠다」고 해서 평등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核문제에 관해 李泳禧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지 아닌지, 핵개발이 얼마나 진전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이 미국과 남한이기에 설사 북한의 핵개발설이 사실이라 해도 그들을 비난할 근거는 없습니다. 과거 朴正熙 대통령도 미군철수로 안보위협을 느끼자 핵개발을 했던 것과 유사한 이야기 아닙니까(「말」 93년 4월)」 이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명영:『북한의 처지를 변호해주고 싶은 심정에서겠죠. 북한의 핵이 「미국과 남한 때문」이라는 논리는 남침유도설과 흡사합니다. 6·25가 남침이었다는 것이 명백해진 이후 「남한과 미국이 남침을 유도했다」면서 북한측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뭐가 다릅니까.
이런 이론은 대부분 지하에서 나옵니다. 북한의 유능한 선전이론 담당팀이 남한사회를 분석하면서 세련되고 논리적인 이론체계를 생산합니다. 이것이 남한의 지하조직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겁니다. 李泳禧 교수같은 고명한 분이 이런 논리를 주장하면 북한이 아주 편해지죠』
미군 없으면 식은 죽 먹기
―李泳禧 교수는 『한반도의 남과 북은, 이제 그 어느쪽도 「기습공격」이니 「침공」이니 하는 따위를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는 왜 아직도 걸핏하면 전쟁이니 어쩌니 해서 시끄러울까. 국민을 겁주는 「도깨비」가 너무 많다(「한겨레 신문」 88년 6월16일)』라고 했습니다. 또한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란 논문(「사회와 사상」 89년 9월)에서는 『한국의 급속한 군사력 증강 및 현대화로 북한의 남침 가능성은 그 근거가 상실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명영:『아마 미국과 북한의 핵 협상은 근본적으로 잘 안될 겁니다. 북한이 미군철수를 학수고대하는 이유는, 金日成이 敎示를 내려놓았습니다. 이 교시를 보면 조국통일에는 「평화적 前途」와 「비평화적 前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평화적 前途」는 남한 정부가 金日成에게 항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평화적 前途」는 군사적으로 조국통일을 해치우는 것입니다. 비평화적 전도를 위해서는 미군철수가 선결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6·25 때 결정적 찬스에서 미군때문에 실패했으니까 통탄할 노릇이었겠죠. 그때 경험이 머리에 박혀 「미국만 없으면 조선 인민군의 조국통일은 식은죽 먹기」라고 생각하죠』
―李泳禧 교수의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명영:『그 양반이 어느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국가보안법 때문에 자유로운 발언을 할 수 없다」면서 퇴장하더군요. 자기 발언은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국가보안법 때문에 「자유언론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요. 북한의 혁명이론이 횡횡하는 현실에서 그들의 이론에 흔들려 「혁명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물어보고 싶군요.
어떤 나라든 反사회적 언동을 규제하는 법은 꼭 있습니다. 그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규제법률이 존재합니다. 북한도 우리보다 1백배나 더 무서운 형법이 있잖아요. 북한의 형법을 보면 어떤 사람이 반혁명죄에 걸렸는지 안걸렸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걸렸다」고 봅니다. 이것을 유추해석이라고 그래요』
―李泳禧 교수의 민족 주체의식에 관한 부분입니다.
「북한은 식민지문화의 잔재인 일본어의 흔적을 씻어버리고, 한자와 한문을 한글화하고, 서양어의 무분별한 해독을 막고, 현대적 가로쓰기를 실시하고, 말을 다듬는 정책과 노력에서 남한보다 몇 십년 앞서 있는 것 같다(중략). 한글전용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태만을 두고 말하더라도 북한의 이질화를 떠드는 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다(「사회와 사상」 89년 1월)」
「김일성 대학의 정문을 책을 끼고 드나드는 여학생들의 상당수가 흰 저고리와 짧은 까만 치마의 산뜻한 옷차림인 것을 본다. 남한의 어느 대학의 정문에서 어느 시각에 찍은 사진도 민족의상으로 차린 한 사람의 여학생의 모습도 보여주지 못할 것 같다. 북한주민이 가난해서 양복을 입지 못한다는 따위의 선전으로 이해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사회와 사상」 89년 1월)」
이 논리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이명영:『나도 일본에 가서 조총련계 여학생들이 한복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뭉클한 민족 동질성을 느꼈습니다. 李교수도 너무 감동한 나머지 온당한 사고를 잠깐 잃어버린 것 같은데요. 金日成 敎示에 의하면 「민족적 형식속에 사회주의 내용을 담아라」고 했습니다. 민족을 표방하고 내용에 사회주의를 담으면, 사회주의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우리는 민족을 더 중요한 가치로 본다」면서 끌어들이기 쉽죠』
『李泳禧 교수는 남한체제에 敵意 가진 사람』
李命英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李泳禧 교수는 여수·순천 반란사건이나 거창 학살사건을 목격하면서 국가가 뭐냐, 사회가 뭐고 권력이 뭐냐, 갈증을 풀기 위해 독서를 했겠죠. 이러한 문제의식에 긍정적 해답을 준비해 놓은 책은 대부분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서들입니다. 左측 계열에서는 국가나 권력, 혁명 같이 추상적인 사안들을 단순 명쾌하게 해석합니다. 독자로 하여금 의아심을 일으키지 않도록 논리정연한 해답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좌측의 이론에 빠지게 되죠.
그 쪽에서 설정해 놓은 결론은 계급혁명이입니다. 그러나 계급혁명에 대한 결론에 회의하면서 폭넓게 사고하면 객관적인 시각이 생깁니다. 李泳禧 교수가 자신의 도그마를 뛰어넘어 좀 더 큰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북한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李泳禧 교수의 주장을 어떤 시각으로볼까. 기자는 북한에서 설계사로 일하다가 1992년 6월, 독일을 경유해 귀순한 金永成씨(60·한국 종합기술개발공사 고문)를 만나 李泳禧 교수의 글을 제시했다. 李교수의 글을 살펴본 金永成씨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저는 李泳禧 교수가 남한체제에 적의를 가진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 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美化하거나 동경한다는 건 무슨 저의가 있지 않을까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남한과 미국때문이라고 하는데, 이거야말로 북한의 논리를 대변하는 겁니다. 어떻게 대한민국의 교수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북한의 실상이 어떻고, 주민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가는지, 체제가 어떻게 붕괴되어 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책임한 내용을 쓸 수 있습니까』
―金日成 우상숭배나 인권문제도 체제를 이해하면 부정적으로 볼 수 없다는 李泳禧 교수의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북한에서 金日成을 섬기는 사람은 정신병자입니다. 오죽이나 심하면 金日成 측근들도 입을 닫겠습니까. 살아남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충성파로 위장하는 거죠. 황장엽이 원래 金日成 수석비서였는데, 그가 60년대 말에 이런 말을 했다고 그래요. 「수령님의 모든 발언과 논설과 연설은 내가 쓰는 거다」 이 말이 金日成의 귀에 들어가서 하루 아침에 내쫓겼습니다. 황장엽이가 한 달을 빌어서 용서받았다고 그래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아마 죽었을 겁니다』
「민족모순」은 쓸 데 없는 말장난
―북한의 핵 개발이 朴正熙 대통령 시절의 핵개발 논리나 다름없다는 李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의 핵 개발은 60년대 초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게 됐냐면 같은 마을에서 자랐고, 같은 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하던 ○○○라는 여자가 있었어요. 이 여자 남편이 핵 물리학자였는데 가족이 어느날 영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가 1963~64년경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핵 물리학자, 기초공학 학자를 대대적으로 투입해서 영변지역에 비밀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영변 비밀도시로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아마 이 시기부터 핵무기를 연구했거나 개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남한의 핵 개발과 연관시키는 건 납득이 안갑니다』
―李泳禧 교수는 체제의 모순을 분단과 외세, 즉 「민족모순」으로 풀어가려고 노력합니다. 따라서 항일운동과 민족주체성을 강조하는 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지식인이 남한체제의 취약성이나 잘못을 비판하는 건 좋다고 봅니다. 그래야 우리가 복지사회로 발전할 수 있죠. 그러나 남한체제 비판 논리로 북한을 찬양하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북한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들은 북한의 실상을 전혀 몰라요. 북한의 현실을 날조해서 북한을 동경하게 만드는 건 허용되어서는 안됩니다. 민족모순이고 뭐고 당장 굶어죽는 판에 무슨 쓸데없는 말장난입니까』
―민족주의란 원래 다원주의 아닙니까. 右가 있으면 左가 있고 中道도 있고요. 서로간의 논쟁으로 점진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애오라지 북한을 찬미하기만 하는 지식인들이 있다는 것이 바로 남한 사회의 후진성을 말하는 겁니다. 이건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 악용입니다. 그런 지식인들이 용납된다면 한국 사회는 또 한번 소아병을 앓아야 합니다.
제가 남한에 와서 느낀 점은 기술이나 생산력, 물질문명 등은 발전했지만 정신문명은 때를 못벗었다고 봅니다. 자유민주 체제를 비판하려면 우리보다 수백 배 열악한 북한을 질타하고 준엄하게 비판할 때 발언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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