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人類라는 種을 형성하여 만들어낸 것들중 가장 소중한 제도는 국가와 민주주의일 것이다. 民主국가(또는 국민국가)가 있음으로 인간은 안전, 복지, 자유를 누리면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독립선언서에 明文化했던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는 독재자와 애국자의 피를 마시면서 자라는 나무다'는 말을 남겼다. 민주주의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그런 희생 없이는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국민국가 건설의 역사와 軌(궤)를 같이 한다. 19세기 말 開化期를 기점으로 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나이는 약150년,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기점으로 치면 59년, 1987년 6.29 선언을 기점으로 하면 20년이다. 매우 어린 민주주의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랜 영국의 민주주의는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를 기준으로 하면 약800년의 역사이다. 왕의 세금징수권을 제한하고 자유민을 재판 없이는 구금할 수 없도록 한 이 문서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민주주의가 정권교체의 관례를 확립하는 데는 473년이 걸렸다. 정권을 잡기 위한 수많은 內戰, 암살, 음모를 겪은 끝에 영국에서 평화적 정권교체의 규범이 정착된 것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이다.
영국을 민주주의의 어른, 한국을 어린아이로 비유한다면 영국 민주주의의 나이는 80이고 한국은 15세이다. 민주주의의 발전단계에서 마지막 고비는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정착이다. 나이가 20년인 한국과 320년인 영국, 그 차이는 국민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윤리, 제도의 운영 방식, 정치인들의 행태 속에 남아 있다. 한국의 정치, 언론, 사법, 문화 등에서 드러나는 未熟性(미숙성)은 민주주의 체험의 기간이 짧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한국인들은 지난 60년간 압축성장이란 말을 만들어내면서 인류역사상 가장 빠른 발전을 이룩했다. 경제적 발전뿐만이 아니었다. 정치적 발전, 즉 민주화의 속도도 빨랐다. 60년간의 민주국가 역사를 가진 나라중 한국만한 민주주의를 건설한 나라는 몇이 되지 않는다. 이런 시간의 단축은 어떻게 해서 가능했는가? 대한민국 헌법으로 상징되는 자유민주-시장경제란 게임의 룰이 좋았다. 좌파 대통령이 등장하기 전까진 역대 대통령들이 뛰어났다. 韓美동맹이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민족적 자질도 좋았다. 무엇보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좋았다.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東北亞의 한복판에서 세계의 最新 조류를 흡수할 수 있었다.
경제는 발전했는데 民主(정치)는 後進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경제와 民主는 동반발전한다. 경제가 민주주의의 기반을 만들고 민주주의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1987년 6월29일, 盧泰愚 당시 민정당 대표가 발표했던 이른바 6.29 민주화선언은 민주투쟁 시대에서 민주실천 시대를 열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야구를 구경하면서 평을 하는 것과 야구를 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민주투쟁 시대엔 민주주의가 '타는 목마름'이었으나 민주실천 시대의 민주주의는 法治의 생활화이다. 낭만주의가 낄 틈이 매우 좁다.
盧泰愚 당시 대표는 체육관 선거를 통해서 군사정권을 연장하려는 민주주의 敵으로 지탄받았다. 이 선언 덕분에 그는 민주실천 시대를 연 騎手가 되었다. 질풍노도와 같았던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變身이었다. '민주탄압자'가 민주실천가로 되다니! 6.29 선언은 盧씨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 선언이 나오지 않고 6월의 대시위가 7, 8, 9월까지 계속되었더라면 군대가 나오든지 민중봉기로 유혈사태가 생기고 그해 대통령 선거와 이듬해의 88 올림픽도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 6.29 선언은 한국 정치사장 가장 성공한 도박이었다. 말로써 역사를 바꾸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정치게임이었다.
6.29 선언 斷想(1)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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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6-12, 11: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