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김정일은 박정희 암살명령을 내렸는가?

김대중 납치에 대한 보복이었다는 說이 유력하다.
1974년 8월15일 국립극장의 광복기념식 행사. 북한정권에 포섭된 在日동포 文世光은 연설을 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하려다가 곁에 앉아 있던 陸英修 여사를 죽였다. 文은 反韓 활동을 하다가 조총련 및 북한공작원에게 포섭되었다. 그는 북한에서 일본으로 들어온 만경봉호에 들어가 북한공작원으로부터 구체적인 범행지령을 받았다.

文의 범행 동기중 하나는 그 전해 발생했던, 이후락 정보부장의 지시에 의한 도쿄에서의 김대중 납치사건이었다. 文에게 박정희 암살을 지령했던 것은 김일성-김정일이었다. 당시 김정일은 김일성의 후계자로 확정되어 조직, 선전, 對南공작을 지휘하고 있었다.

김일성, 김정일은 김대중 납치사건이 나자 낭패했다. 북한정권이 일본내 조총련과 친북인사들을 시켜서 공작한 反국가단체 한민통이 발족 직전에 그 의장으로 내정되었던 김대중씨 납치라는 사태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후락 정보부장이 납치를 지시한 중요한 동기가 김대중씨의 해외 친북反韓 활동이었다.

김일성은 김대중씨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어야 對南적화공작이 쉬워진다는 판단을 하고 여러 모로 준비해왔었다. 문세광에 의한 대통령 저격-영부인 사살사건의 성격은, 김일성 김정일이 김대중씨 납치사건에 대해서 朴 대통령에게 보복한 것이라는는 설이 유력하다.

탈북하여 한국에 온 전 북한노동당 간부나 전 안기부 對北전문가, 그리고 박갑동씨 같은 남로당출신들이 '김대중 납치에 대한 김일성의 보복설'에 동의하고 있다. 이때 김일성은 '반공민주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박정희 정권보다는 낫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강력한 권위주의 정부보다는 민간정부 하에서 對南공작이 용이해진다는 얘기였다.

한 북한노동당 간부 출신 탈북자는 '김일성-김정일은 朴 대통령을 제거하면 김대중씨의 집권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세광은 목표를 반쯤 달성했다. 대통령의 人生 반려자를 제거함으로써 그를 정신적으로 약화시켰다. 5년 뒤가 되는 10.26 사건의 한 요인은 陸 여사가 권력자의 곁에서 사라지고 대통령의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김대중, 박근혜, 이 세 사람의 현존 인물들은 8.15 사건에 의해 직, 간접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 3명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8.15 사건의 그림자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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