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감옥 방문한 이인모 "만약 내가 이 감옥에 있었더라면 34년은 고사하고 3개월도 못살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1993년 3월 판문점을 거쳐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이인모(89)씨가 16일 사망했다. 북한방송에 따르면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내각은 17일 공동으로 이씨의 부고를 발표하고 '전 조선인민군 종군기자이고 비전향장기수인 리인모 동지가 남조선의 감옥에서 당한 고문의 후과(후유증)로 16일 7시에 89살을 일기로 애석하게 서거했다'고 전했다.
북송된 비전향장기수들은 북한의 대남전략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북한은 비전향장기수들을 남한을 비난하고 북한의 정치를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이인모씨는 김일성 김정일이 함께 만나 조선노동당 당원증도 수여하고 많은 선물들을 보내주었다. 특히 당시 노동당 재정부장이던 윤기정이 살던 고급 저택과 벤츠를 이인모에게 선물로 주었다.
북한에서는 이인모를 정부의 상급 대우를 해주었다. 북한 인민들은 이인모를 영웅으로 알고 있었고 가사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 를 비롯해서 김 부자를 우상화하는 그의 작품들과 감옥수기가 연이어 출간되었다.
그러나 북한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인모씨는 모순점을 발견하고 더 이상 작품을 쓰지 않았다. 이인모씨는 남한의 감옥에서 34년간 옥살이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 인권이 무시되고 열악한 북한의 감옥을 방문해 본 이씨는 깜짝 놀라 “만약 내가 이 감옥에 있었더라면 34년은 고사하고 3개월도 못살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북한당국은 이 말을 막으려고 모진 애를 썼으나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이인모씨의 이 말은 북한 전역에 퍼져나갔으며 다시 한번 인권불모지인 북한의 현실을 사람들에게 일깨우는 계기로 되었다.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생활이 낙후할 줄은 정말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올 때 돈이라도 가져오는 건데...”라며 “정말 자식들 앞에 볼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인모씨와는 달리 아파트 한 채씩 주고 생활에 필요한 가전제품들을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홀몸인 사람들에게는 젊은 여성들을 배우자로 붙여주었다. 이들은 북한 당국의 항시적인 감시 속에 살고 있으며 조롱 속에 갇힌 새처럼 자유가 없이 살고 있다. 작은 감옥에서 큰 감옥으로 옮겼을 뿐이다. 북한주민들은 이들은 비웃고 있다.
“남들은 가지 못해 안달 하는 그 살기 좋은 남조선에서 무슨 고생을 못해 여기로 왔나? 여기서 살아보면 아마 정신이 버쩍 들 것이다. 그 다음 천백번 후회해도 무슨 소용이 있나?”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금룡(탈북자) 기자 krlee2006@hotmail.com
1993년 3월 판문점을 거쳐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이인모(89)씨가 16일 사망했다. 북한방송에 따르면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내각은 17일 공동으로 이씨의 부고를 발표하고 '전 조선인민군 종군기자이고 비전향장기수인 리인모 동지가 남조선의 감옥에서 당한 고문의 후과(후유증)로 16일 7시에 89살을 일기로 애석하게 서거했다'고 전했다.
북송된 비전향장기수들은 북한의 대남전략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북한은 비전향장기수들을 남한을 비난하고 북한의 정치를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이인모씨는 김일성 김정일이 함께 만나 조선노동당 당원증도 수여하고 많은 선물들을 보내주었다. 특히 당시 노동당 재정부장이던 윤기정이 살던 고급 저택과 벤츠를 이인모에게 선물로 주었다.
북한에서는 이인모를 정부의 상급 대우를 해주었다. 북한 인민들은 이인모를 영웅으로 알고 있었고 가사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 를 비롯해서 김 부자를 우상화하는 그의 작품들과 감옥수기가 연이어 출간되었다.
그러나 북한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인모씨는 모순점을 발견하고 더 이상 작품을 쓰지 않았다. 이인모씨는 남한의 감옥에서 34년간 옥살이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 인권이 무시되고 열악한 북한의 감옥을 방문해 본 이씨는 깜짝 놀라 “만약 내가 이 감옥에 있었더라면 34년은 고사하고 3개월도 못살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북한당국은 이 말을 막으려고 모진 애를 썼으나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이인모씨의 이 말은 북한 전역에 퍼져나갔으며 다시 한번 인권불모지인 북한의 현실을 사람들에게 일깨우는 계기로 되었다.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생활이 낙후할 줄은 정말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올 때 돈이라도 가져오는 건데...”라며 “정말 자식들 앞에 볼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인모씨와는 달리 아파트 한 채씩 주고 생활에 필요한 가전제품들을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홀몸인 사람들에게는 젊은 여성들을 배우자로 붙여주었다. 이들은 북한 당국의 항시적인 감시 속에 살고 있으며 조롱 속에 갇힌 새처럼 자유가 없이 살고 있다. 작은 감옥에서 큰 감옥으로 옮겼을 뿐이다. 북한주민들은 이들은 비웃고 있다.
“남들은 가지 못해 안달 하는 그 살기 좋은 남조선에서 무슨 고생을 못해 여기로 왔나? 여기서 살아보면 아마 정신이 버쩍 들 것이다. 그 다음 천백번 후회해도 무슨 소용이 있나?”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금룡(탈북자) 기자 krlee2006@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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