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여 그대는 불사조...조국이여 UN이여"

6월22일 親北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회 주최 「6·25세미나」, 이미일 6.25전쟁납북자가족협의회 이사장 발제 요약
이미일 6.25전쟁납북자가족협의회 이사장
『자유여 그대는 불사조. 우리는 조국의 강산을 뒤에 두고 홍염만장 철의 장막 속 죽음의 지옥으로 끌려가노라. 조국이여 UN이여, 지옥으로 가는 우리를 구출하여 준다는 것은 우리의 신념이라(1950년 10월 국군 평양 진주 시 강제납북자들이 수감됐던 평양형무소 내벽에서 발견된 시)』

6·25당시 김일성이 저지른 민간인 납북행위는 국제법상 명백한 전쟁범죄이다.

공보처 통계국이 52년 작성한 「6·25사변피랍치자명부」는 전쟁납북자가 8만2959명에 이른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외교통상부 외교정책자료실에서 발굴한 비밀외교문서에는 이들의 수를 12만6325명으로 적고 있다. 이 문서는 1952년 1월4일 존 무초 미국대사가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낸 긴급 비밀문건이다.

김일성이 6·25 당시 납북한 사람들은 98.1%가 남성이었으며. 84.6%가 16세부터 35세까지 한창 나이였고, 88.2%가 50년 7월과 9월 사이에 납북됐다. 납북된 사람들은 각 분야 지식인, 지도자, 기술자 들이었다.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철저한 사전계획에 의해 납치가 저질러졌다.

전쟁납북행위에 대한 증거는 ①김일성의 46년 7월31일 「남조선에서 인테리들을 데려올 데 대하여」라는 지령, ②50년 7월17일 러시아 기밀문서 「북조선 군사위원회 결정사항 제18호」, ③50년 9월5일 북한정권의 「서울시민 전출사업에 관한 협조사에 대하여」 문건, ④50년 10월11일 일본 동경 주재 미국대사관, 서울상황에 대한 본국 보고서한 등 상당수에 달한다.

문건 ②는 서울시 臨時인민위원장이 서울의 식량사정 해결을 위해 북조선 농업 및 산업현장으로 50만 명을 후송한다는 내용이다. 문건 ③은 문건 ②의 내용을 확인하는 한편 「노동력 없는 자는 북한으로 보내지 말고, 납북자 중 도주자는 체포하라」는 내용이다. 문건 ④는 50년 9월17일에서 28일 사이 대한민국에 충성한 정치범들을 적어도 2만 명 이상 북반부로 전출했다는 내용이다.

지난 4월 전후(戰後)납북자지원특별법이 통과됐다. 그러나 전여옥 의원이 立法발의한 「6·25전쟁납북자명예회복및지원에관한법률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하루빨리 특별법을 제정하여 전쟁납북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야 하고, 정부는 對北협상 시 납북자들의 소식을 탐지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정리 김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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