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필재 기자 2007-06-26 오후 7:45:23 | |
북한은 그동안 시기와 정세의 변화에 따라 ‘연방제’의 의미를 여러 차례 수정해왔으며, 공식적인 통일방안으로 지난 1980년 10월 10일 제시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하 고려연방제)을 제시하고 있다. 고려연방제는 통일의 원칙으로 ‘자주’(주한미군철수), ‘평화’(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민족대단결’(남한 내 공산주의 활동보장)의 3개항을 제시, 남한에서 이른바 ‘자주적 민주정권’ 즉, 연공(공산)정권 수립을 기본 목표로 하고 있다. 고려연방제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남한의 국보법 폐지·주한미군철수·공산주의 합법화·남한 내 ‘인민민주정권’ 수립 등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김정일 정권의 남한 무장해제를 통한 ‘적화통일’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인민민주정권이란 과거 소련공산당이 제20차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후진국에서의 공산화전략으로 완전한 공산정권수립에 앞서 민족주의 세력을 포함하는 연립정권(국방·내무 등 핵심은 공산당이 장악)을 세우는 것을 뜻한다. 김씨왕조의 이 같은 의도는 지난 1974년 1월 30일 개최된 남북 조절위원회 제3차 부위원장회의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북한 측 부위원장 류장식은 ‘대민족회의’ 구성문제와 관련해 쌍방 대표단의 인원수를 각각 350명 내지 1천500명 규모로 하고, 남한측 대표단 속에는 반공정당·반공단체·반공인사들이 참가할 수 없으며, ‘통일혁명당’ 대표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북한은 고려연방제가 ‘주체사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김일성주의는 역사·이념적 배경으로 스탈린주의에 의존하고 있고, 스탈린주의는 레닌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고려연방제’는 레닌주의 혁명전통의 연장선상에 위치해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연방제’는 볼셰비키 혁명 후 러시아에서 실시되고 경험된 역사적 사실이며, 고려연방제는 레닌주의의 유산으로 북한이 적용한 과도적 조치로서 북한식 흡수통일론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이 점을 주체사상에 의존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고려민주연방 창안방안은 무엇보다도 주체사상의 원리로부터 출발하고 그것으로 일관 되게 관통되어 있다. (고려연방제는) 주체사상과 우리나라의 구체적 현실에 기초하고 있는 가장 정당한 통일 강령이며, 통일구국 대헌장이다.”(당 기관지 ‘근로자’, 1980년 제11호 54면) 예컨대 공산주의 역사에서 민족은 과도기적 형태로 존재하며 그들이 민족주의자를 용서했다는 사실이 없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방제는 그들에게 있어 ‘전술적 과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에 대해 황장엽 비서는 “북한 통치자들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방안은 본질상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통일전선전략을 구현한 전술적 방안으로서 그들의 통일전선전략은 계급투쟁론과 무산계급 독재론에 기초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고려연방제의 가장 핵심이 되는 키워드는 1국가 2제도다. 이것은 김씨왕조가 다스리는 평양정부를 중앙정부로 하고 김정일 정권을 추종하는 남한의 서울정부를 지방정부로 하여 연합한다는 것으로 북한이 남한을 흡수 병합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편, 고려연방제는 과거 중국의 모택동이 주도한 ‘국공합작’(國共合作)과도 매우 유사하다. 1923년 1월 중국의 손문은 소련 특명전권 대사인 ‘코민테른’ 특사 요페와 회동해 ‘대소 용공정책’ 수용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는 부르주아가 진보적 역할을 하고 있는 한 공산당이 원조해야 한다는 것으로 혁명적 부르주아와의 합작을 뜻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혁명적 부르주아적 정당으로서 손문의 중국국민당이 선정됐다. 이것이 바로 국공합작이다. 1924년 중국국민당 제1차 전당대회는 “소련과 연합하고 공산당을 허용한다”는 ‘연소연공’ 정책을 발표한 결과 이 대회에서 국민당 중앙위원 1/3을 중국공산당이 장악하게 됐으며, 중국공산당은 소위 ‘국민혁명’의 명분하에 대중조직 공작과 군중투쟁을 전개해 세력을 급속히 확장시킬 수 있었다.(코나스 6월 10일자, 백병훈 국가연구원장) 국공합작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은 국민당이 마땅히 국민혁명의 중심세력이 되어야 하며, 국민혁명의 영수로서의 지위에 서야 한다고 철저하게 ‘양보전술’을 구사했다. 나아가 중국공산 당원은 국민혁명을 위하여 충실한 국민당원 노릇을 할 것이고 공산주의 선전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기도 했다. | |||||
그러나 1936년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에 제2차 국공합작을 요구하는 역사적 서한을 보내 혁명적 항일통일전선 구축을 촉구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우리의 적으로 하여금 우리의 연합전선 앞에 굴복시켜라!”는 지휘방침을 세웠다. 엽9조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편, 북한의 고려연방제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용어들이 발견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