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문로 오피시아 빌당 앞에는 이런 表誌石이 있다.
<선공감지(繕工監址)
조선 시대 토목과 營繕을 관장하던 관청인 繕工監이 있던 자리>
평당 땅 값이 천만원을 넘을 이 소중한 자리에 수백만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만든 역사자료가 이 모양이다.
구글 검색을 했더니 브리태니커 사전에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요약: 고려시대 국가의 토목공사와 궁궐 및 관사의 건축, 수선을 담당했던 관청.
내용: 고려·조선시대에 토목과 영선(營繕)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고려 목종 때 장작감(將作監)을 설치하였고 1298년(충렬왕 24) 선공감으로 고쳤으며 1308년(충선왕 즉위년) 선공사(繕工司)로 고친 뒤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조선시대에는 1392년 처음 선공감을 설치하였고, 1466년(세조 12) 관제를 크게 개정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제조(提調) 2명을 두는데, 판관(判官) 이상 1명은 구임(久任)으로 한다고 하였다. 관원은 정(정3품) 1명, 부정(종3품) 1명, 첨정(종4품) 1명, 판관(종5품) 1명, 주부(종6품) 1명, 직장(종7품) 1명, 봉사(종8품) 1명, 부봉사(정9품) 1명, 참봉(종9품) 1명이 있었다.>
흔히 관료들을 혼이 빠진 집단이라고 욕하는 이들이 많다. 권력에 굴종하고 집단 이기주의를 위하여 복무하면서 國庫를 축내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다수 공무원들은 성실하다. 위의 표지석을 만든 서울시청 공무원들은 서울시내의 수백 군데나 되는 곳에다가 비슷한 꼴의 돌을 세워놓았다. 수십억원의 세금 낭비이다. 李明博씨가 국가 예산을 20% 줄여도 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과장이 아닌 듯하다.
한심한 신문로의 表誌石
- 趙甲濟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7-06-27, 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