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남북공동성명 발표 35년을 맞아: "金씨 왕조가 존속하는 한 그들과 합의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동복의 통일대화]
이동복 방송위원은 12일 송출된 방송을 통해 “남북 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긴장의 고조를 완화시키며 나아가서 분단조국의 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합의된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35년이 지난 지금, 북한 측에서는 이 성명을 헌 신짝 버리듯이 버렸다고 말했다.
이 방송위원은 또한 7.4 남북공동성명 이후에도 북한의 대남 무력 및 폭력 도발은 중단되지 않았으며 1992년에 합의된 ‘남북기본합의서’마저도 북한 측의 일방적 파기로 인해 휴지 조각이 돼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6.15 기념행사 때 북한측에서 한나라당 대표를 주석단에 오르지 못하게 한 점을 미루어 보아 북한은 1973년 이후 달라진 것이 없으며 “북한의 김씨 왕조가 존속하는 한 그들과 합의를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임소정 기자 imsowow@naver.com
[다음은 송출된 대북방송 내용]
7.4 남북공동성명 35주년을 맞이하면서
북한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이 7월3일이니까 내일은 7월4일이군요. 7월4일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십니까. 아마도 기억하는 북한 동포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날은 지금부터 35년 전인1972년 남북한이 7.4 남북공동성명에 합의하여 내외에 발표한 날입니다. 35년 전 7월 4일 오전 10시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공동성명이 동시에 발표되었을 때 국내외의 반응은 흥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7.4 남북공동성명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남과 북은 7.4 남북공동성명에서 “남북 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긴장의 고조를 완화시키며 나아가서 분단조국의 통일을 촉진”시키기로 합의 하고 이 합의를 실천•이행하기 위한 6개 항목의 합의 사항을 공동성명에 담았습니다.
남과 북은 우선 세 가지 통일 원칙에 합의했습니다. 첫째로는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한다는 것이며 세 번째로는 우선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으로 민족의 대단결을 도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단된 한반도의 냉혹한 현실은 이 같은 통일이 일조일석 (一朝一夕)에는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남북 쌍방은 그 같은 통일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했습니다.
첫째로, 서로 상대방을 중상•비방하지 않고 대소간 무력도발을 하지 않으며 불의의 군사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기로 했습니다.
둘째로, 남북간에 다방면적인 제반 교류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셋째로, 남북적십자회담의 조속한 성사를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넷째로, 남북간에 상설 직통전화를 놓기로 했습니다
다섯째로, 이 같은 합의사항을 추진하기 위해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여섯째로, 이 같은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남과 북은 7.4 남북공동성명의 합의에 따라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1천만 이산가족들의 인도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7.4 남북공동성명의 환상은 이미 살아진 지 오래입니다. 북한측이 7.4 남북공동성명을 헌 신짝 버리듯이 버렸기 때문입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하여 구성•발족시킨 남북조절위원회는 1년도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남북적십자회담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북측은 남북조절위원회에서는 오직 이를 이용하여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데만 골몰했고 남북적십자회담에서는 이를 이용하여 남한의 국가보안법을 폐기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뿐 아니라 회담 때문에 이루어진 제한된 범위에의 남북 왕래를 통해 남한의 경제가 북한의 경제보다 훨씬 더 발전된 사실이 모습을 드러내자 양쪽 모두 회담을 중단시켜 버렸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 이후에도 북한의 대남 무력 및 폭력 도발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1974년8월15일 광복절에는 문세광 (文世光)이라는 재일조총련 청년을 시켜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을 저격하다가 영부인 육영수(陸英修) 여사의 목숨을 앗아갔고 1976년8월18일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도끼 살인 사건을 일으켰으며 1983년10월 9일에는 미얀마를 국빈 방문 중인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살해를 위해 터뜨린 폭탄 때문에 17명의 한국정부 고위 관리들이 목숨을 잃었고 1987년11월 19일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대한항공 여객기를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시켜 115명을 수장(水葬)시키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잠수함과 잠수정이 동해안과 남해안으로 침투했고 어선 납북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는 남침 터널 4개가 발견되었습니다. 1999년과 2002년6월에는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남북한 해군 함정 간에 교전이 일어났고 북한은 단•중•장거리 유도탄과 함께 핵무기 개발을 시작하여 전 국제사회에 맞서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장난을 벌이고 있습니다.
남북한은 1992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합의하여 이를 공포한 바 있습니다. 이름이 워낙 길어서 우리가 ‘남북기본합의서’라고 줄여서 부르는 이 합의서에 사실은 북측이 집요하게 주장해 마지않는 ‘평화협정’에 포함시켜야 할 모든 문제들이 모두 망라되고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남북간의 ‘평화협정’이었습니다. 이 ‘남북기본합의서’ 제11조에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7월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의 총리들이 서명하고 쌍방이 각기 필요한 절차를 거쳐서 발효시킨 공식 문건입니다. 남쪽에서는 노태우(盧泰愚) 당시 대통령이 서명하여 공포했고 북쪽에서는 최고인민회의의 비준을 거쳐서 김일성(金日成) 당시 국가주석이 역시 서명하여 공포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 ‘남북기본합의서’마저도 일방적으로 파기하여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최근 북한은 이 ‘남북기본합의서’의 명문 조항을 무시하면서 서해 상에서 군사적 긴장상태를 다시 도발하고 있습니다. 서해 상의 북방한계선은 1953년 유엔군 사령관에 의하여 설정된 이래 이미 반 세기 이상 사실상의 남북간 해상경계선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북한에서도 1959년에 발간된 지도에서는 사실상 북방한계선과 유사한 선을 서해 상에 그어 놓고 이를 ‘해상 군사분계선’이라고 명기해 놓은 일이 있는 것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바로 이 같은 사실에 입각하여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이라는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金正日)의 북한은 최고인민회의에서 비준하고 또 죽은 그의 아버지 김일성이 직접 서명하여 공포했던 ‘남북기본합의서’를 이제는 거들떠 보지도 않을뿐더러 ‘남북기본합의서’에 명문으로 담겨진 합의사항을 멋대로 묵살하고 서해 북방한계선을 가지고 시비하면서 이 문제로 남북간 군사충돌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새로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불장난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채택되어 공표되고 이에 의거하여 남북조절위원회가 구성되어 운영을 시작했을 때 북측이 보여준 태도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가 그들이 내놓은 남북조절위원회 확대 개편 주장이었습니다. 북측은 느닷없이 남북 쌍방의 각기 60 내지 70개의 정당•사회단체들의 대표 각기 5-20명씩과 ‘각계각층 인민’의 대표들이 참가하는 기구로 남북조절위원회를 개편하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남북조절위원회는 한 쪽에서 350 내지 1,500여명이 참가하는 군중집회가 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남북조절위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북측의 주장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북측의 주장에 의하면 남측에서 남북조절위원회에 참가하는 ‘각계각층 인민’에는 ‘노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 청년학생, 민족자본가, 소자산 계급’만이 포함된다는 것이고 특히 남측의 경우 “통일이 반대하는 정당•단체•개인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통일에 반대한다”는 것은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북측의 논리에 의하면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민족단결에 반대하는 것이고, 민족단결에 반대하는 것은 곧 통일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로부터 또 3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지난 달 소위 6.15 기념 남북공동행사가 평양에서 열렸을 때 한나라당 대표를 행사의 주석단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북측의 행동에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이 1973년의 그것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7.4 남북공동성명 35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북한의 김씨 왕조가 존속하는 한 그들과 합의를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끝]
[이동복의 통일대화]
이동복 방송위원은 12일 송출된 방송을 통해 “남북 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긴장의 고조를 완화시키며 나아가서 분단조국의 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합의된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35년이 지난 지금, 북한 측에서는 이 성명을 헌 신짝 버리듯이 버렸다고 말했다.
이 방송위원은 또한 7.4 남북공동성명 이후에도 북한의 대남 무력 및 폭력 도발은 중단되지 않았으며 1992년에 합의된 ‘남북기본합의서’마저도 북한 측의 일방적 파기로 인해 휴지 조각이 돼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6.15 기념행사 때 북한측에서 한나라당 대표를 주석단에 오르지 못하게 한 점을 미루어 보아 북한은 1973년 이후 달라진 것이 없으며 “북한의 김씨 왕조가 존속하는 한 그들과 합의를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임소정 기자 imsowow@naver.com
[다음은 송출된 대북방송 내용]
7.4 남북공동성명 35주년을 맞이하면서
북한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이 7월3일이니까 내일은 7월4일이군요. 7월4일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십니까. 아마도 기억하는 북한 동포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날은 지금부터 35년 전인1972년 남북한이 7.4 남북공동성명에 합의하여 내외에 발표한 날입니다. 35년 전 7월 4일 오전 10시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공동성명이 동시에 발표되었을 때 국내외의 반응은 흥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7.4 남북공동성명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남과 북은 7.4 남북공동성명에서 “남북 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긴장의 고조를 완화시키며 나아가서 분단조국의 통일을 촉진”시키기로 합의 하고 이 합의를 실천•이행하기 위한 6개 항목의 합의 사항을 공동성명에 담았습니다.
남과 북은 우선 세 가지 통일 원칙에 합의했습니다. 첫째로는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한다는 것이며 세 번째로는 우선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으로 민족의 대단결을 도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단된 한반도의 냉혹한 현실은 이 같은 통일이 일조일석 (一朝一夕)에는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남북 쌍방은 그 같은 통일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했습니다.
첫째로, 서로 상대방을 중상•비방하지 않고 대소간 무력도발을 하지 않으며 불의의 군사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기로 했습니다.
둘째로, 남북간에 다방면적인 제반 교류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셋째로, 남북적십자회담의 조속한 성사를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넷째로, 남북간에 상설 직통전화를 놓기로 했습니다
다섯째로, 이 같은 합의사항을 추진하기 위해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여섯째로, 이 같은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남과 북은 7.4 남북공동성명의 합의에 따라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1천만 이산가족들의 인도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7.4 남북공동성명의 환상은 이미 살아진 지 오래입니다. 북한측이 7.4 남북공동성명을 헌 신짝 버리듯이 버렸기 때문입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하여 구성•발족시킨 남북조절위원회는 1년도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남북적십자회담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북측은 남북조절위원회에서는 오직 이를 이용하여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데만 골몰했고 남북적십자회담에서는 이를 이용하여 남한의 국가보안법을 폐기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뿐 아니라 회담 때문에 이루어진 제한된 범위에의 남북 왕래를 통해 남한의 경제가 북한의 경제보다 훨씬 더 발전된 사실이 모습을 드러내자 양쪽 모두 회담을 중단시켜 버렸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 이후에도 북한의 대남 무력 및 폭력 도발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1974년8월15일 광복절에는 문세광 (文世光)이라는 재일조총련 청년을 시켜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을 저격하다가 영부인 육영수(陸英修) 여사의 목숨을 앗아갔고 1976년8월18일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도끼 살인 사건을 일으켰으며 1983년10월 9일에는 미얀마를 국빈 방문 중인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살해를 위해 터뜨린 폭탄 때문에 17명의 한국정부 고위 관리들이 목숨을 잃었고 1987년11월 19일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대한항공 여객기를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시켜 115명을 수장(水葬)시키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잠수함과 잠수정이 동해안과 남해안으로 침투했고 어선 납북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는 남침 터널 4개가 발견되었습니다. 1999년과 2002년6월에는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남북한 해군 함정 간에 교전이 일어났고 북한은 단•중•장거리 유도탄과 함께 핵무기 개발을 시작하여 전 국제사회에 맞서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장난을 벌이고 있습니다.
남북한은 1992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합의하여 이를 공포한 바 있습니다. 이름이 워낙 길어서 우리가 ‘남북기본합의서’라고 줄여서 부르는 이 합의서에 사실은 북측이 집요하게 주장해 마지않는 ‘평화협정’에 포함시켜야 할 모든 문제들이 모두 망라되고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남북간의 ‘평화협정’이었습니다. 이 ‘남북기본합의서’ 제11조에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7월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의 총리들이 서명하고 쌍방이 각기 필요한 절차를 거쳐서 발효시킨 공식 문건입니다. 남쪽에서는 노태우(盧泰愚) 당시 대통령이 서명하여 공포했고 북쪽에서는 최고인민회의의 비준을 거쳐서 김일성(金日成) 당시 국가주석이 역시 서명하여 공포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 ‘남북기본합의서’마저도 일방적으로 파기하여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최근 북한은 이 ‘남북기본합의서’의 명문 조항을 무시하면서 서해 상에서 군사적 긴장상태를 다시 도발하고 있습니다. 서해 상의 북방한계선은 1953년 유엔군 사령관에 의하여 설정된 이래 이미 반 세기 이상 사실상의 남북간 해상경계선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북한에서도 1959년에 발간된 지도에서는 사실상 북방한계선과 유사한 선을 서해 상에 그어 놓고 이를 ‘해상 군사분계선’이라고 명기해 놓은 일이 있는 것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바로 이 같은 사실에 입각하여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이라는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金正日)의 북한은 최고인민회의에서 비준하고 또 죽은 그의 아버지 김일성이 직접 서명하여 공포했던 ‘남북기본합의서’를 이제는 거들떠 보지도 않을뿐더러 ‘남북기본합의서’에 명문으로 담겨진 합의사항을 멋대로 묵살하고 서해 북방한계선을 가지고 시비하면서 이 문제로 남북간 군사충돌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새로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불장난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채택되어 공표되고 이에 의거하여 남북조절위원회가 구성되어 운영을 시작했을 때 북측이 보여준 태도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가 그들이 내놓은 남북조절위원회 확대 개편 주장이었습니다. 북측은 느닷없이 남북 쌍방의 각기 60 내지 70개의 정당•사회단체들의 대표 각기 5-20명씩과 ‘각계각층 인민’의 대표들이 참가하는 기구로 남북조절위원회를 개편하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남북조절위원회는 한 쪽에서 350 내지 1,500여명이 참가하는 군중집회가 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남북조절위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북측의 주장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북측의 주장에 의하면 남측에서 남북조절위원회에 참가하는 ‘각계각층 인민’에는 ‘노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 청년학생, 민족자본가, 소자산 계급’만이 포함된다는 것이고 특히 남측의 경우 “통일이 반대하는 정당•단체•개인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통일에 반대한다”는 것은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북측의 논리에 의하면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민족단결에 반대하는 것이고, 민족단결에 반대하는 것은 곧 통일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로부터 또 3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지난 달 소위 6.15 기념 남북공동행사가 평양에서 열렸을 때 한나라당 대표를 행사의 주석단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북측의 행동에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이 1973년의 그것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7.4 남북공동성명 35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북한의 김씨 왕조가 존속하는 한 그들과 합의를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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