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는 평양외국어대 학생"

"그는 남조선 비행기 폭파사건 범인으로 잡힌 여자의 아버지가 북조선 무역일꾼이었다는 말을 절대로 흘리면 안 된다고 했다"

평양사범대학 로어 로문학과에서 공부한 후 중국에 유학하고 돌아와 중앙당 선전선동부 간부가 된 제자가 있다. 그가 어느 날, 나를 비롯해서 교수 세 사람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중앙당 과장급들이 사는 고급 아파트였다. 우리가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의 아들이 턱에 숨이 차서 뛰어 들어왔다.

“아버지, 큰일 났습니다. 연락 못 받으셨습니까?” 우리 모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중앙통신사 특수부 기자가 저리도 당황하는 걸까.

“방금 들어온 통신인데 일이 튀었습니다. 야단났습니다. 중대가리 대통령놈(전두환 대통령)이 뒈지지 않고 아랫놈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공작이 제대로 못된 거 같습니다. 엇근(공들여) 준비했던 통신기사를 내보내지 못하고 오늘은 모두 집에 돌아가라고 해서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급한 지시를 받고 어젯밤 꼬박 세우면서 준비한 기사인데 분해 죽겠습니다.”

제자의 아들은 식사중인 우리도 본체만체 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제자 역시 우리를 자리에 남겨둔 채로 사무실에 가봐야 한다며 허둥지둥 나가 버렸다. 머쓱해진 우리는 서둘러 그 집을 나왔다.

그 일이 있은 후 이틀이 지나자 전국적인 규모의 남조선 규탄대회가 벌어졌다. 미얀마의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이 남조선 괴뢰정부의 자작극임을 만천하에 선포하고 하루빨리 남조선에서 미제를 몰아내고 전쟁을 통해 통일을 완수하자는 구호로 전국이 들썩거렸다. 그때서야 나는 며칠 전 제자의 집에서 겪었던 황당한 일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제자의 아들은 미얀마 아웅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공작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곤 공작이 성공해서 남조선의 대통령과 일행이 몰살당하리란 전제하에 기사를 썼을 것이다. 만일 공작이 성공했다면 당의 주목을 받고 ‘공훈기자’가 되었을 것이다.

북한에는 대남사업부서들이 모여 있는 3호청사라고 하는 특별 비공개 청사가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제자의 말을 빌면 미얀마 공작조의 파견책임자였던 과장이 아웅산 사건이 일어난 후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대통령을 암살하는 비밀공작이 실패한 책임을 지고 동해안의 신포시에 있는 작은 기업소(공장)의 당비서로 전락했다는 얘기였다.

1983년 10월 9일에 일어난 아웅산 테러사건은 남한의 서석준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요인 17명이 사망하고 15명이 중상을 입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일 년 뒤 미얀마 정부는 아웅산 테러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유엔에 보고하고 북한과 외교를 단절해 버렸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아주 훗날 서울에 와서 알게 된 것이고 당시는 매일같이 남조선 괴뢰정부 규탄대회에 불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조선의 자작극을 평양한테 넘겨씌우는 날강도 짓’이라며 연일 대규모 규탄대회가 열렸던 적이 또 있다. 바로 1987년 KAL 858기 폭파사건이었다. 11월 29일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우고 바그다드를 출발해서 서울로 돌아오던 대한항공 858기가 안다만 해역을 지나다 공중 폭파되었던 사건이었다.

중동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하고 몇 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귀국하는 근로자로 가득 찼던 비행기는 공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건 이틀 뒤, 바레인을 탈출하려던 마유미와 김승일이 테러혐의로 붙잡혔으나 김승일은 독약이 든 앰플을 마시고 자살했다. 서울로 보내진 마유미는 김현희란 이름의 북한 공작원이라고 했다.

그 당시 평양에서는 남조선 정보부의 비열한 자작극을 규탄하는 대회가 한창이었다. 나도 평양시 대학교수들이 여는 집회에 참석해 남조선을 규탄했다. 그런데 집회 도중 잠깐 쉬는 시간에 평양외국어대학 일본어과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자살하려다 살아났다는 그 여자 공작원이 당신네 대학 일본어과 여학생 맞지 않아?”
느닷없이 던진 내 질문에 일본어과 교수가 흠칫했다.
“여보, 당신 같지 않게 무슨 헛소리야?”
“나도 다 들은 게 있어서 그래. 내 말이 맞지?”
“아무래도 당신이 외국 좀 드나들더니 머리에 헛바람이 들어간 모양이로군. 도대체 당신 목숨이 몇 개나 되는 줄 알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해? 신문이나 TV에서 말해 주는 그대로 믿으면 되는 거지 캐묻긴 뭘 더 캐물어?”
“우리 과 여학생도 한 명 공작원으로 뽑혀 갔거든.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겨서 며느리 삼고 싶었는데 말이야. 차영애라고.”

그러자 일본어과 교수는 머리를 숙여 나직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바로 어제 대학당 비서가 우리 과 교수랑 학생들을 모아놓고 경고를 했네. 그 여자 문제를 갖고 함부로 입을 놀리다간 큰일 날 거라구. 말을 꺼낸 사람이나 말을 돌린 사람 모두 당적으로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거였지.”

“그러니까 자네 학과 여학생이란 말이지?”
“그렇지, 김현희 아버지가 무역일꾼이라네.”

일본어과 교수의 말은 거기서 끝났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나는 무역부에 있는 제자로부터 각별한 주의를 들었다. 그는 남조선 비행기 폭파사건 범인으로 잡힌 여자의 아버지가 북조선 무역일꾼이었다는 말을 절대로 흘리면 안 된다고 했다. 내가 외국에 자주 드나드는 만큼 말조심을 단단히 하라고, 엄히 당부하는 것이었다.

김현식 교수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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