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장의 말을 믿는 자들은 죽어 마땅하다"

이해평 뉴라이트안보연합 사무총장
오사카성은 일본을 찾는 관광객 대부분이 한번쯤은 방문하는 관광지이다. 이곳을 다녀온 관광객들은 오사카성을 단지 임진왜란을 일으킨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조한 성으로, 혹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멸망시킨 곳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오사카성은 우리에게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제공해 주고 있다.

오사카 성은 나고야, 구마모토 성과 더불어 일본 3대 성중의 하나이며, 임진왜란의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기 위한 근거지로 삼고자 1583년부터 약 15년의 세월동안 축성한 성으로서, 20 여 미터 높이의 가파른 성벽과 내외곽의 해자(垓字 : 물웅덩이, 도랑)가 이루어져 있으며, 외곽은 소토보리, 내곽은 우치보리라고 불리고 있는 해자는 적군의 공격을 지연, 저지, 방해하는 난공불락의 인공장애물이었다.

도요토미가 죽은 뒤, 일본 전국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東)군과 도요토미의 후계자인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지지하는 서(西)군으로 분할되었다. 1600년, 도쿠가와의 동군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西)군을 격파하고 전국통일을 눈앞에 두게 되었지만,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어린 아들 히데요리 처리문제로 항상 고민 하였다. 물론 처음에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에게 히데요리의 후견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히데요리가 머물고 있는 오사카성에는 서군의 패전 사무라이들을 비롯해 많은 무장 세력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를 빌미삼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국통일의 마지막 단계인 오사카 성을 공격을 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10만 병력이 운집한 난공불락 오사카성의 깊고 넓은 해자는 연일 지속된 이에야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저지하였고, 더 이상 공격은 과도한 희생자를 불러올 수밖에 없음을 간파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구전을 펼치며 강온양면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일종의 거짓 평화 제안을 히데요리에게 하게 된 것이다.

즉, 전쟁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조건으로 평화협상을 제의하게 되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오사카 성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소토보리)를 먼저 메우면, 군대를 철수하고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겠다.”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오사카성에선 화친과 전투속행을 두고 격론이 벌어졌으나, 종국에 가서 히데요리는 화친파의 건의를 받아들여 화친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화친이 비록 굴욕적이라 하더라도 이를 통해 지긋지긋한 전쟁은 끝나고 오사카성에 평화가 올 것이며, 상대방은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히데요리가 성 바깥의 해자를 메우자 도쿠가와 군은 철병은커녕 곧바로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고, 성 안의 해자도 그대로 메워 순식간에 성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이에 히데요리는 속았다는 것을 알았으나 이미 때가 늦었고, 그는 불과 20세의 나이에 할복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적의 약속만 믿고 화친을 위해 오사카 성의 해자를 스스로 없앴다가 멸망한 히데요리의 이야기는 상대방의 의도되고 계획된 거짓 평화공세를 따른 결과가 어떠한 지를 보여주는 참극이며 동시에 지난 호에서 소개한 체임벌린과 히틀러의 굴욕적 평화협정이 도리어 유럽대륙에 더 큰 참극을 불러일으킨 사례와 오버랩 된다.

또한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에서 김정일 정권과 그를 추종하는 좌파세력들이 평화, 통일, 자주, 민족이라는 미명하에 자행한 자발적 무장해제와 이적행위 역시 이 사례에 빗댈 만 할 것이다.

지난 10년, 김대중 정권은 김정일을 ‘식견 있는 지도자’라고 추켜세우고 햇볕 정책을 추진하면서 차후 통일 비용을 선불한다는 논리로 무분별한 대북지원을 감행했다. 그러나 그 지원은 도리어 빈사상태의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데 보태져 적은 더욱 강해지고 통일은 더욱 멀어졌으며 북한은 남한이 자신들의 핵우산아래에 들어와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모습에 의혹을 가지고 경고하는 세력을 향해 정권 추종세력들은 “북한은 동포지 적이 아니다”,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라는 궤변을 내세워 입을 막으려했다.

이어서 북한의 상투적인 선동구호인 반미, 자주노선을 추종하고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한 친북(종북)좌파들은 국가 중추 내부에 깊숙이 들어가 밖으로는 주한미군철수 등 한미동맹을 와해시키고 안으로는 국가 보안법을 유명무실화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이 내세우는 ‘우리민족끼리’ 연방제 통일 방식을 따르는 그들에게는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이를 오사카성의 해자에 비유한다면 스스로 대한민국이란 성 외곽의 해자(한미동맹)를 메우는데 그치지 않고 성벽 안쪽의 해자(국가보안법)까지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사카 성 함락 당시, 패배한 히데요리 측 무사들은 전원 처형당했다. 그들은 처형 직전에 승리한 도쿠가와 측의 무사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은 비겁자들”이라고 욕설을 퍼부었으나 도쿠가와 측의 무사는 이들을 향해 비웃으면서 짤막하게 답했다고 한다.

“적장의 말을 믿는 자들은 죽어 마땅하다.”

이 이야기는 도쿠가와 측 무사들이 단언을 하듯이 한 국가의 멸망은 적의 의도나 계략을 도외시한 채 ‘평화’라는 달콤한 제의에 적을 신뢰한 자들의 어리석음에도 기인한다는 준엄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2008년을 일명 미군철수, 자주 평화 연방제 통일의 원년이라고 주장하고, 국보법 폐지, 야당의 정권 재탈환을 결사저지 하겠다는, 저 남한의 친북(종북) 좌파세력들 역시 저 오사카 성의 최후가 보여준 준엄한 역사적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 안팎을 둘러싼 해자를 메우는 그들의 행위는 종국에는 자신들까지 함께 생매장 시키는 행위가 되고 말 것이며, 이는 월남패망당시 월맹군이 제일 먼저 숙청한 자들이 누구인지만 살펴봐도 증명될 것이다.

<뉴라이트안보연합 사무총장 이해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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